30화.
대부분의 능력은 던전에서 괴수를 상대로 사용하지만 지난번 이하민을 공격한 에스퍼들도 있었던 것처럼 가끔은 그런 식의 대인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심우진이 나에게 환영을 보여 준 것은 확실히 희한한 일이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세요? 능력을 정말 많이 사용하신 것 같은데.”
나는 이제 심우진이 많이 걱정됐다.
혹시 너무 흥분한 나머지 자기 상태를 모르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
억지로라도 가이딩을 받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했는데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우 씨도 제 파장을 느낄 수 있지 않아요? 만약에 제 파장이 위험 수치에 이르렀으면 은우 씨도 알았을 텐데요.”
그건 맞다.
던전이 나타나고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에스퍼들의 파장이 위험 수치에 이르면 그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지금 심우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S급이라서 그런가? 아닌데. 전에는 정말 힘들어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우선 이하민에게 가 보기는 하자고 말하고 이하민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다 죽어 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이딩을 받아야 할 건 이하민인 것 같았다.
그래도 거절은 하지는 않았고 심우진도 무슨 상황인지 눈치챈 듯 웃었다.
“이하민 에스퍼의 가이드는 누가 될지 그것도 정말 궁금하네요.”
전화를 끊은 나에게 말하다가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은우 씨는 가이딩을 안 받아요? 그런 소리가 있던데.”
“아아…… 저는 뭐. 던전에서 크게 힘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하니까요. D급이라서 제 차례까지 오는 일도 거의 없고 대부분 상급 에스퍼들이 다 활약을 해 주니까…….”
심우진의 표정을 보니 개소리를 참 정성 들여서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다.
“일단 가시죠. 이하민이 가이딩할 수 있대요.”
“정말 괜찮은데.”
그래도 계속 고집을 부리지는 않고 순순히 말을 들었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 이하민 역시 만만치 않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았고 심우진은 그런 이하민에게 가이딩을 부탁하는 게 영 미안했는지 그냥 다른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겠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런 때가 있지 않나.
그냥 갑자기 뚝 대화가 끊기는 때.
그때는 그냥 그런 때였는데 마지막에 나온 얘기가 다른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겠다는 내용이라 거기에서 상상되는 내용이 있었다.
그 말이 허공에 아직 연기처럼 남아 있는 것 같아서 그걸 훌훌 흩어 버리는 심정으로 다른 소리를 했는데 심우진의 얼굴은 한계도 없는 것처럼 붉어졌다.
이하민은 괜찮다며 심우진의 상태를 가늠했다.
“괜찮으신데요? 아주 안정적이에요.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로 안정적이었던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평소의 평화로운 상태보다도 더 안정돼 있어요. 혹시 뭘 하셨어요, 에스퍼님?”
이하민은 희한하다는 듯이 심우진을 보았고 심우진은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하민에게 대답을 해 주었다.
“숲에서 은우 씨랑 훈련을 했는데. 강도가 높아서 평소에 위험도가 가장 높은 던전을 공략할 때 정도로 능력을 사용했어. 지금쯤 파장이 날뛰는 게 정상인데 그렇지 않아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요? 이상한데요? 그 정도로 능력을 사용하셨다면 이건 말이 안 되는 건데.”
“그래. 그렇지…….”
우리는 희한하다고 말하며 골똘히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한다고 답을 찾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해지면 바로 호출하세요. 에스퍼님.”
“그래. 이하민 에스퍼. 고맙다. 그런데 이하민 에스퍼도 더 이상 가이드를 정하는 일을 미루기만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상급 가이드 중에 적당한 사람으로 찾아봐.”
“네…….”
이하민은 다시 어려운 부분에 이르렀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불쌍한 것.
***
이하민이 훈련실에서 나왔을 때 윤이재가 다가왔다.
에스퍼 훈련실에 가이드인 윤이재가 나타날 이유는 없었는데 그는 마치 우연이라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이하민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하민. 아. 이하민 에스퍼.”
마치 ‘이하민. 아. 이하민 에스퍼.’까지가 전부 이하민을 부르는 호칭인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런 식으로 불렀다.
이하민은 윤이재와 마주친 게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그동안 윤이재가 자기를 어떻게 대했는지 알고 있어서 그가 말을 걸거나 다가오면 몸이 저절로 긴장이 되는 것 같았다.
“…….”
“이하민 에스퍼. 훈련하고 나오는 거야? 나는 센터장님이 찾으셔서. 내가 A급 가이드이다 보니까 묻고 싶은 게 많은가 봐.”
이하민은 그가 하는 말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이하민 에스퍼. 아직 가이드를 정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빨리 정해야 하지 않아? 이하민 에스퍼가 먼저 정해야 다른 사람들도 정해지지.”
“어차피 전담 가이드인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이하민이 말하자 윤이재가 멈칫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전에는 이런 비슷한 말을 하지도 못하더니 서은우하고 같이 어울려 다니기 시작한 후부터 한 번씩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에스퍼로 각성한 후부터는 더욱 그러는 것 같고.
이하민이 에스퍼가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이 왜 하필 여기에서 일어나 버린 건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생각을 하면 짜증이 솟구쳤지만 그래도 지금 단계에서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나가기 위해 윤이재는 화를 참았다.
“전에 내가 이하민 에스퍼에게 잘해 준 게 많잖아. 이제 와서 그런 거 전부 다 잊은 것처럼 그러면 나도 서운해. 가이딩할 때 서로 마음이 맞아야 효과가 잘 나타난다는 건 이하민 에스퍼도 잘 알잖아. 나처럼 이하민 에스퍼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데 나를 전담으로 두면 어때?”
이하민은 그 자리에서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는 던전에서 괴수와 싸워 본 적도 없었고 가이딩이 필요할 정도로 능력을 사용해 보지도 않았다.
센터에서는 이하민이 그것을 경험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것을 위해 능력을 끌어내는 훈련을 시키고 있었는데 아직 파장이 불안해진다거나 폭주하는 일은 없었다.
폭주하는 것은 몰라도 적어도 파장이 불안정해지는 것은 경험해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훈련의 강도를 높이고 능력을 강하게 사용하고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언젠가 가이딩을 받아야 할 일이 생기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윤이재는 싫어.’
이하민은 그 생각만큼은 확실하게 할 수 있었고 윤이재가 들러붙으면 더 강하게 얘기를 해 줄 수도 있었다.
윤이재의 표정이 조금씩 썩어 들어갔다.
그는 세 명의 S급 에스퍼들과도 매칭률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에스퍼의 전담 가이드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이하민의 가이드가 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A급 에스퍼인 이하민에게만 전담 가이드를 붙여 주는 것에 대해서 특혜 논란이 있었지만 그가 특별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 논란은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윤이재는 기분이 나쁜 것을 참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아직 안 해 봤잖아. 그러니까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는 거잖아. 한번 해 보자. 훈련받고 나서 피곤할 텐데. 벌써 파장이 널뛰고 있잖아.”
그러면서 은근히 다가가 이하민의 팔을 노골적으로 쓰다듬으려 했다.
그러나 간단히 몸을 피하고 이하민이 웃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면 더 이상 말을 할 필요도 없는 것 같은데.”
자신의 파장을 그렇게까지 모른다면 얘기를 할 필요도 없다는 거였고 윤이재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런 윤이재를 보던 이하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에는 윤이재를 떼어 내기 위해서 한 말이었는데 그의 표정을 보면서 윤이재가 정말 자신의 파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게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자기가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에스퍼라서 그럴 수 있다면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오히려 이상한 일은 따로 있었다.
-이하민. 파장이 조금 불안정한데? 가이드 구하는 걸 계속 미루면 안 되겠어. 오늘은 훈련을 쉬는 게 낫지 않아? 가이드를 구하기 전에는 능력을 사용하는 게 위험할 것 같은데.
-이하민. 뭐 했어? 가이딩 받았어? 파장은 안정됐네? 어떻게 한 거야? 맞는 가이드를 찾았어? 누구야?
곁에서 늘 그의 파장을 알아차리고 그에게 조언을 해 주었던 사람.
오히려 그가 이상했던 것이다.
‘은우는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이하민의 걸음이 빨라졌다.
처음에는 센터에 있는 연구관들에게 물어보려고 했다.
그러던 그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들에게 말을 했다가 은우에게 귀찮은 일이 생기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지?’
궁금증을 풀고 싶은 생각에 고민을 하던 그의 앞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또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얼굴 가득 불만을 품고 오는 은우였다.
은우를 보자 이하민의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은우야.”
“아. 이하민. 하…… 훈련 시간 채우라는 것 때문에 진짜 짜증 나. 왜 훈련실에서 하는 훈련만 쳐 주냐고. 다른 곳에서 알아서 훈련 잘하는 사람은 뭔데? 아니. 훈련한 거 증명할 수 있다고 하는 데도 꼭 훈련실에 와서만 하라고 하고. 이건 말도 안 돼. 짜증 나, 진짜.”
구시렁거리는 은우를 달래다 이하민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센터장님한테 직접 말씀드려 봐.”
“그건 안 돼. 지금도 너무 주목받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내 인생 모토랑 너무 어긋나. 눈에 안 띄게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
“우리 은우가 고생이 많네.”
“너라도 알아 줘서 다행이지.”
이하민은 윤이재로 인해 조금 높아졌던 파장이 지극히 안정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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