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센터까지 갈 수 있습니까?”
“그래야지. 내 가이드가 거기에 있는데.”
그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파장이 널뛴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나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서은우의 몸에서 눈을 떴지만 아직 그 경험은 해 보지 못한 탓이었다.
“괜찮……은가?”
내 옆에서 걸으며 견인이 나에게 물었다.
“뭐가요?”
“에스퍼의 파장이 불안정하면 옆에 있는 사람들이 극도로 힘들어하던데. 살을 찢을 것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던데 서은우 에스퍼는 괜찮냐고 묻는 거야.”
“네. 저는 뭐…….”
아무렇지 않은데?
그러면서 그와 함께 서둘러 던전을 나왔다.
후처리를 맡은 팀이 던전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서둘러 센터로 향했다.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견인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어렴풋이 느꼈다.
사람들이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워하고 계속해서 목을 만지다 가슴을 쥐어뜯어 가며 괴로워했던 것이다.
“제가 운전할 수 있습니다. 두 분은 내리시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전혀 괜찮지 않은 얼굴로 하는 말을 듣고 어서 내리고 자리를 바꾸자고 말했다.
“견인 에스퍼님은 빨리 가서 가이딩을 받아야 합니다. 이 속도로는 너무 오래 걸려요.”
당신들을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니니 빨리 내리라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들은 곧 차를 멈추고 내렸다.
표정을 보니 차에서 내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견인은 두 팔을 들어 올려 머리를 감싸고 그대로 두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가만히 있는 것조차 힘이 드는 듯했다.
공략 직후 S급 에스퍼가 파장이 솟구쳐 괴로워하는 모습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볼 일이 없던 나는 조금씩 긴장이 됐다.
심우진이 이하민의 방에서 가이딩을 받는 걸 본 적은 있었지만 그때도 이미 가이딩을 받고 어느 정도 가라앉은 후였지 이렇게 심한 상태는 아니었다.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빠르게 차를 몰아 센터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이하민이 없었다.
‘맙소사……!’
이하민이 공략을 위해 던전에 간 바람에 센터에서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먼저 온 에스퍼들은 견인을 보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파장은 처음보다 훨씬 더 솟구쳐 있었고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 자꾸만 몸을 말았다.
“A급 가이드의 가이딩을 부탁합니다!”
내가 소리쳤지만 아무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평소에 S급 에스퍼의 가이딩을 맡고 싶어 했던 윤이재조차도 그랬다.
사람들은 진저리를 치며 도망치기 바빴다.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나 하급 가이드들은 더욱 못 견뎠고 에스퍼 중에도 하급 에스퍼들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다.
“빨리 어떻게든 해 봐요!!”
센터의 관리자들도 손을 쓰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견인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먼저 나서는 거였는데.
지금 견인이 이렇게 된 데에는 내 책임도 있었다.
이런다고 죽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만약에 죽는다면 그의 죽음에 내 지분이 상당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센터장과 지휘부도 나왔지만 그들도 방법을 찾지 못했다.
A급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강제하려고 해도 가이드들이 견인의 곁으로 오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우선은 가이딩룸으로 가시죠, 견인 에스퍼님.”
센터장이 말했지만 견인은 가이딩룸으로 가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그를 부축해 가이딩룸으로 가는 동안 나를 보는 여러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에는 왜 나를 보는 건가 했는데 어떻게 내가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지 그게 이해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서은우 에스퍼는 괜찮아?”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대답할 여유도 없이 가이딩룸으로 가서 견인을 눕히자 그가 의식까지 잃으며 쓰러졌다.
그곳까지 온 것이 기적 같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안정제라도 먹여야 하는 건가 하며 밖으로 나가자 센터장과 지휘부가 따라오고 있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는 하급 에스퍼고 절대로 센터장에게 그런 말투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지만 그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이 나갔고 그들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들은 견인에게 일어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초조해했다.
“이하민 에스퍼는 아직인가요? 그곳의 던전은 공략되지 않았습니까?”
“아직이다.”
내가 그곳으로 가야 하나?
내가 던전의 공략을 돕고 이하민에게 견인의 가이딩을 하라고 해야 하나?
일단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것밖에는 답이 없을 듯했다.
오가는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신체 강화 능력을 극성으로 사용해서 간다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터였다.
이하민이 오는 데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그런 걱정을 할 시간에 차라리 출발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안정제를 먹이고 이하민 에스퍼를 이곳으로 불러서 가이딩을 받는 것으로 하시죠.”
내가 말하자 센터장이 고개를 저었다.
“안정제가 아직 상용 단계에 이르지 못하기도 했고…….”
그러면서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주저하며 나를 보았다.
“서은우 에스퍼. 지금 괜찮은가.”
“저는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은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지금이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지 않나.
견인이 의식까지 잃을 정도로 괴로워서 몸부림을 치는데.
그러자 센터장이 말했다.
“나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힘이 든다. 심적인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육체적인 얘기를 하는 거야. 살이 찢기는 것 같아. 이건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살이 찢어지고 있어. 그런데 서은우 에스퍼는 괜찮냐고 묻는 거야.”
그러면서 그가 자신의 팔을 보여 주었다.
“……!!”
견인의 능력이 미미하게 흘러나오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의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살갗이 찢어지고 있었다.
내 팔을 보았지만 굳이 볼 필요도 없었다.
나는 끄떡없었다.
그러다가 그들이 견인의 요동치는 파장을 견디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은우 에스퍼. 자네야말로 가이드의 능력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센터장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저절로 그렇게 돼 버렸다.
어지간한 얘기를 해야 호응을 해 주지.
“이하민 에스퍼님이랑 비슷한 것 같아서 그러는 거네. 서은우 에스퍼.”
“아닌 것 같네요.”
“서은우 에스퍼는 지금 참고 있는 건가? 아니면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센터장의 말에 나는 여기서 대답을 잘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고…… 있는 거죠. 숨도 막히는데 참고 있는 거고요.”
내가 말하자 그가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나는 목을 문지르며 작게 소리를 냈다.
“콜……록.”
안 하는 게 좋았을 것 같았다.
모두의 시선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나에게 꽂혔다.
“정말이에요.”
“…….”
“일단 이하민 에스퍼에게는 먼저 사람을 보내시죠? 그 방법 말고는 없을 것 같은데.”
센터장도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그의 곁에 있던 지휘부 중 한 사람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사라졌다.
지휘부는 모두 A급 에스퍼라는 말이 있더니 그게 사실인가 할 정도로 엄청난 능력이었다.
그들이 휙휙 사라져서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나는 견인이 있는 가이딩룸으로 갔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의식은 돌아온 듯했다.
움켜쥔 손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거기에서 선연한 피가 흘렀다.
“…….”
그렇게까지 괴로운 거라는 걸 몰랐다가 그 모습을 보며 속이 타들어 갔다.
내가 가이드라고?
아무래도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았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내가 다가가자 견인이 이를 악물었다.
고통 때문에 저절로 신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참고 있는 듯했다.
“안정제는 아직 안 된다고 하지?”
숨이 꽉 찬 상태에서 간신히 뱉어 내는 듯이 그가 말했다.
“네.”
“흐으으으……!!”
결국 신음이 나와 버리자 그가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끝까지 덮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폭주에 시달리는 S급 에스퍼.
그를 덮은 거대한 고통의 해일이 짐작되어 이불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을 잡았다.
가이딩을 어떻게 하는 건지 알 턱이 없었다.
자신의 파장을 집어넣는다고 했던가?
흘려 넣는 것처럼?
나는 이하민이 했던 얘기의 단편들을 떠올렸다.
‘흘려 넣는다…….’
검신에 공력을 주입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인 걸까?
그런 생각으로 내 기운을 밀어 넣듯이 하자 정신없이 떨리던 견인의 손이 조금씩 잦아드는 것 같았다.
뭐지? 되고 있는 건가?
그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아직 확신이 들지는 않는 듯했다.
처음에 워낙 크게 떨고 있었기에 극적으로 차이가 느껴진 거였지 아직도 떨림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안아 줄까요?”
내 말에 그의 손에서 느껴지던 맥박이 심장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크게 뛰었다가 가라앉았다.
너무 놀랐는지 그는 떠는 것조차 잊은 것 같았다.
“뭐야. 된 거예요? 이제 안 떠네요?”
그러자 견인이 잊고 있었다는 듯이 다시 떨었다.
폭주라는 것도 일견 재미있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다른 데에 정신이 팔리면 폭주를 하다가도 그게 그냥 지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비슷한 것을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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