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그런데 이하민. 실전은 처음이었는데 괜찮았어? 무섭지는 않았고?”
내가 묻자 이하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변태영 에스퍼님 덕분에 하나도 걱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위험해지는 것 같으면 바로 불덩어리를 날려서 괴수의 주의를 끌어가셨어. 그래서 안전하게 공격을 해 볼 수 있었어.”
나는 변태영에게 그런 배려심이 넘친다는 건가 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집착광공이 순화되니까 이렇게 배려심이 넘치는 모양이었다.
‘훌륭해. 훌륭해.’
“그런데 이하민은 증폭 능력인데 그게 던전에서 어떤 식으로 나타나?”
견인이 묻자 이번에는 변태영이 대신 설명을 해 주었다.
“엄청나. 같은 수준의 불덩어리를 날려도 이하민이 증폭 능력을 사용하면 그게 엄청 위력이 커져. 불덩어리의 크기를 키우는 거야 사실 중요한 게 아니잖아. 열기의 문제지. 그런데 이하민이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 대충 그을음이 갈 정도로만 열기를 만들어도 이하민이 증폭 능력을 발휘하면 스스스 흩어지다가 그대로 재로 화해 버리는 것 같다고 하면 맞겠네.”
그러자 이하민이 두 손을 급히 저으며 그런 건 아니라고 정정했다.
“그때는 제가 제 능력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 증폭 능력을 극한으로 사용해서 그런 거였어요. 평소에도 자유자재로 그렇게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저도 파장이 불안정해지는 걸 경험했는데 그거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그걸 앞으로도 계속 찾아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적당한 선이 어디인지 그걸 알아 가야 할 것 같아요.”
이하민이 그런 말을 하다니.
마냥 어린 애인 줄만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 다 커서 그런 말을 한다는 말인가.
내가 흐뭇하게 본다는 걸 알았는지 이하민이 웃었다.
“나도 확인해 보고 싶어. 나랑 하면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 그냥 조금만 힘을 줘도 괴수가 뻥뻥 날아가서 부딪치려나?”
견인이 말하자 심우진도 눈을 빛냈다.
그는 굳이 입을 열어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그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의문을 품었다.
이하민의 증폭 능력이 심우진에게 적용이 되면 괴수의 앞에 끔찍한 광경이,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무서운 광경이 펼쳐지는 걸까?
“다음에는 나하고 가 볼까, 이하민 에스퍼?”
심우진의 말에 이하민이 그러겠다고 말했다.
견인이 나서서 자기랑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견인은 얌전했다.
그런 것에는 별로 욕심이 나지 않는 건가 해서 신기하다는 듯이 봤더니 왜 그러냐고 물었다.
“아뇨. 아무것도요.”
“볼 주머니에 욕이 한가득 들었는데 뭘. 참지 말고 해.”
“저는 욕 안 해요.”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서은우 에스퍼. 저는 소리 내서는 욕을 안 해요. 그렇게 해야지.”
견인의 말에 그냥 피식 웃었더니 다른 두 S급 에스퍼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우리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왜 이 형이 이렇게 조용히 넘어가는지 모르겠네. 이 정도면 벌써 푸르르 끓어올라야 할 것 같은데.”
변태영의 말에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견인은 조용히 넘어갔다.
“우리 숙소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드디어 이사 오는 사람이 생기네.”
견인은 그게 흐뭇한 모양이었다.
“짐은 가져오지 마. 아. 옷이랑 신발 같은 건 가져오고. 나머지는 내가 준비할게. 내 심미안을 믿어 봐. 두 사람, 우선 이억씩만 내 계좌로 보내.”
무슨 이억씩이나?
내가 돈이 없다고 말하자 견인이 무슨 말인가 하는 듯 나를 보았다.
“서은우 에스퍼가 왜 그 말을 하는데?”
“돈 보내라면서요.”
“아아. 심우진이랑 변태영한테 한 말이지. D급 에스퍼한테 돈이 얼마나 있다고.”
두 사람은 처음부터 바로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스마트폰으로 돈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체 완료.”
“나도 끝.”
견인이 돈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특별히 원하는 톤 있어?”
이하민은 고개를 저었고 나는 연두색으로 해 달라고 말했다가 기각당했다.
“연두색은 무슨. 괜히 물어봤네.”
아니. 왜? 내 취향 좀 존중해 주시죠?
“은우 씨는 암청색이 어울려요.”
심우진이 한 마디를 거들었다.
나는 그의 말도 무시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견인은 자기가 생각한 거랑 똑같다고 말했다.
“그래? 나는 암적색 생각했는데.”
변태영이 말하더니 암청색도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왜 다들 암이 붙지?
내가 그렇게 어두워?
이하민. 너는 왜 고개를 끄덕여?
아무도 내 취향 같은 건 존중해 주지 않았다.
연두색.
제발 연두색.
***
흥.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쓸데없이 너무 화려하다고 하고 싶지만.
좋았다. 방에서 나가고 싶지 않을 만큼.
심우진은 이사 선물이라며 무슨 스피커 세트를 그냥…….
평소 같았다면 사 놓고 쓰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솔직히 그건 아니었다.
심우진이 연주하는 곡을 들으면서 나도 음악적인 소양을 더 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가 언급하는 곡들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기에 그것만큼 마음에 드는 선물을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변태영은, 그 생각하기 어려운 것을 해냈다.
옷장 안은 자기가 채울 테니까 이상한 걸 넣어 둘 생각하지 말라고 하더니 정말 그것을 실행해 버렸다.
옷장 안을 본 견인이 미친 새끼라며 웃음을 터뜨리고 옷장 안에 있는 옷값만 2억이 넘을 거라고 장담했다.
신발장 역시 마찬가지였고 견인의 설명에 의하면 신발장에 있는 것도 거의 1억이 넘을 거라고 했다.
옷 몇 벌 정도에서 끝났으면 딱 좋았을 텐데 아무래도 다른 건 과했다.
그런데 하나하나가 전부 다 좋기는 했다.
견인은 두 사람이 갑자기 그런 배틀을 해 버리자 무슨 차를 갖고 싶냐고 하더니 새 차를 뽑아 버렸다.
대기만 석 달이 넘게 걸린다는 차가 일주일이 되지 않아 센터에 도착했다.
S급 에스퍼의 명성은 비단 국내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고 S급 에스퍼라고 해서 다 같은 취급을 받는 게 아닌데 우리 센터의 S급 에스퍼는 세계적으로 최상위 클래스라서 받는 특별 대우였다.
내가 그런 선물을 받는 동안 이하민만 너무 소외되는 건 아닌가 했는데 애초에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옷장과 신발장도 나와 비슷하게 채워졌고 1억 안팎의 시계와 차도 받았다.
S급 에스퍼들은 자기들이 균분했다며 굳이 감사를 강요했다.
이하민은 그동안 그들에게 가이딩을 해 주며 그들의 수명에 직접적인 공헌을 했으니 그럴 만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너무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았는데 그들은 자기들이 버는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거듭 말했다.
얼마 동안 나는 그게 내가 걱정할까 봐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S급 에스퍼들이 돈을 많이 벌 거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달 수입이 5억 이상에, 던전이 나타난 횟수나 던전의 위험도에 따라 10억까지도 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왠지 기운이 확 빠졌다.
‘이러면 내가 계속 내 등급을 낮춰야 할 이유가 있나? 어차피 S급 에스퍼들은 거의 눈치를 챈 것 같고 내 실력을 안다고 해도 내 뒤에만 숨으려고 할 것 같지도 않은데.’
결국 그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S급 에스퍼들이 얼마를 버는지 알게 되자 힘을 숨기는 것이 너무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면 역시 측정을 다시 해야 하는 건가?’
한창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일이 뜻밖의 방향에서 풀렸다.
기대하지도 않은 견인에 의해서였다.
가만 보면 견인은 많은 일을 그런 식으로 해냈다.
견인에게서 시작되어 풀린 일이 상당히 많았던 것이다.
“서은우 에스퍼. 우리는 이제 다 알고 있어서 하는 말인데 정확한 매칭률을 한번 확인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 센터 관계자들도 그 사실을 알게 될 텐데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세요?”
“센터 관계자가 전부 알 필요는 없지. 그건 어차피 기계가 하는 거잖아. 우리도 기계를 판독할 수는 있고. 그러니까 기계가 있는 곳에 우리가 조용히 잠복을 하는 거야.”
나는 그 일이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다.
그것은 중차대한 문제이니만큼 기계에 전원이 들어오는 순간 센터에서도 알 수 있도록 해 두지 않았을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심우진이 그 점은 안심해도 된다며 확신을 주었다.
그는 보기와 다르게 기계에 정통했고 센터에 있는 기계들이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 문제만 해결된다면 나도 각자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게 좋기는 해서 매칭률을 알아보는 것에 동의했다.
이하민도 관심을 갖고 따라가서 같이 보고 싶어 했지만 S급 에스퍼들이 그를 막았다.
혹시라도 이하민이 나와 다시 매칭률을 알아보려고 할까 봐 걱정이 되는 듯했다.
만약 그러면 전에 했던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 테고 수습이 어렵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적극적으로 S급 에스퍼들을 설득하지는 않았고 우리는 그렇게 매칭률 측정기가 있는 곳으로 조용히 숨어 들어갔다.
기계에 전원이 들어오고 내가 세 사람을 바라보자 그들은 처음에 하고 싶지는 않은 듯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러다가 계속 그러고 있으면 끝이 보이지 않겠다고 생각한 듯 심우진이 먼저 나섰다.
기계에 올라간 사람은 매칭률이 얼마가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계를 누가 그렇게 만든 건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견인과 변태영 두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작당해서 낮은 숫자를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하민 때 그랬던 것처럼.
“얼마예요?”
“42.”
“26.”
견인과 변태영은 입을 맞추지도 않고 되는대로 말했다.
견인이 말을 했으면 변태영이라도 가만히 있어야 했을 텐데 거의 동시에 말이 나와 버렸다.
이 인간들이 내가 신체 강화자라는 걸 잊었나.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