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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36화 (36/137)

36화.

나는 일단 오기는 왔고 그 녀석의 얼굴까지 보기는 했는데 그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까 해서 머뭇거렸다.

이보다는 진지하고 안정된 상황에서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견인이 끝내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해 버렸다.

“이하민. 서은우 에스퍼가 가이드야. 그리고 S급 에스퍼야.”

“…….”

나는 견인의 입을 먼저 막아 놓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 순간에는 변태영과 심우진조차 그의 편이 되어 주지 않았다.

“형. 그걸 그렇게 형이 날름 말해 버리면 안 되죠. 그러면 서은우랑 다를 게 뭐가 있어요? 이하민이 얼마나 충격을 받겠냐고요!”

변태영은 견인이 다 망쳤다는 듯이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아니. 그런데 거기에서 내 이름이 왜 그런 식으로 쓰이지?

상당히 기분이 나쁜데.

그런데 지금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하민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자기가 들은 게 지금 무슨 말이냐고 묻고 싶은 것 같았다.

나도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정말, 아주 많았다.

“은우야…….”

“이하민. 일단 나랑 같이 얘기 좀 하자.”

그러자 다른 S급 에스퍼들도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협조를 해 주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그들이 우리 사이로 자연스럽게 끼어 앉았다.

“어서 말해. 서은우.”

변태영은 자기가 더 긴장된다는 듯이 말했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둘이만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자 변태영이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이하민은 그런 충격을 못 견딜 거라고.”

“맞아. 우리가 옆에 있어 주는 게 도움이 될 거야.”

견인도 덩달아 말했는데 이하민이 먼저 정신을 차려 주었다.

“나랑 둘이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거면 같이 가자, 은우야.”

“그래.”

나는 이하민이 말을 바꾸기 전에 녀석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디로 가야 저 사람들이 따라붙지 않을까 하다가 내 방으로 데려갔더니 이하민은 점점 초조해지는 듯했다.

자기가 들은 얘기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방으로 가서 문을 잠갔는데 문을 잠그면서도 그렇게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는 했다.

견인이나 변태영이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오려고 작정을 한다면 그들에게 그것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만약 그렇게까지 한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지만.

“은우야. 무슨 소리야, 그게? 네가 가이드라니? 그리고 네가 S급 에스퍼라니?”

이하민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사실이야.”

“하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냐는 느낌은 아니다. 전부터 네가 정말 특별하다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직접 말로 들으니까 희한하기는 해.”

“그래……. 그렇지.”

나는 이하민이 충격받지 않았으면 해서 그를 다독였다.

“기분은 어때, 은우야? 혹시 슬프지는 않아?”

나는 이하민이 나를 그렇게 본 이유가 뭐였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네가 가이드라는 걸 알아서 기분 나쁘지는 않아? 그냥 S급 에스퍼라는 사실만 나타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 정도로 나빠? 내가 가이드라는 게? 내가 S급 에스퍼라는 사실을 누를 정도로?”

“그러지 않을까? 이곳에서 가이드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너도 알잖아. 나는 가이드였다가 에스퍼가 된 경우지만 너는 에스퍼였다가 가이드가 된 거잖아.”

“그래도…… S급 에스퍼니까 사람들도 함부로 하지는 못하겠지. 만약에 함부로 하려고 하면 나는 센터에 계속 있지 않을 거야.”

“정말 센터를 떠날 생각도 있는 거야?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어?”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센터는 우리를 이용해서 자기들의 안전을 누리고 있어. 그런데 말도 안 되게 가이드를 계속 억압하고 착취한다면 그걸 계속 두고 볼 이유는 없을 것 같아.”

“새로운 센터로 갈 거야, 은우야?”

우리는 어느덧 거기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가이드가 됐다는 얘기를 들은 이하민의 반응은 그거였다.

불쌍하다는 것.

앞으로 힘들어질 거라는 것.

그걸 위해서 대책을 세워야 할 텐데 그 대책이라는 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거였고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새로운 센터도 다르지 않을걸? 여기를 떠나서 그냥 혼자 어디든 머물러도 될 것 같고.”

이하민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가 하는 것 같았다.

“은우야…… 그렇게 살 수도 있는 거야?”

던전이 나오는 세계.

웬만한 에스퍼는 혼자서 그 던전을 공략할 수 없고 다른 에스퍼들과 공조해야 던전과 그 안에서 나타나는 괴수로부터 스스로의 목숨을 지켜 낼 수 있었다.

그것이 센터를 존재하게 만들었고 던전과 괴수가 크고 강할수록 사람들은 그 밖으로 나가서 사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정말 그래야 하는 걸까.

이하민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답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은우야. 너는 정말 굉장하다. 어떻게 하면 너처럼 될 수 있을까? 너를 보면서 놀라는데 그 놀라움에 끝이 없는 것 같아.”

그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지어졌다.

“은우 너는 처음부터 이랬던 것 같아. 사람들이 대단하게 생각하고 욕심내는 걸 너는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지. 그래서 정말 대단해.”

“내가 센터를 떠날 수도 있다는데 걱정도 안 돼?”

“응. 은우 네가 센터를 나가면 나도 나갈 거니까.”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워낙 당연해서 말을 할 필요도 없다는 것 같아 그 모습이 재미있었다.

이하민과 함께라면 그 센터는 얼마나 강할까.

이하민과 내가 있는 센터.

그리고 어쩌면 그 센터에는 우리만 있게 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우리가 그곳에 있겠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곳에 함께 가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센터가 가장 강할 거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을 터였다.

‘센터? 센터라는 말도 마음에 안 들기는 하는데. 그냥. 뭐. 그냥 집이라고 해도 되는 거 아니야?’

이것저것 마음에 안 들다 보니 센터라는 말도 마음에 안 들고 갑자기 다 반감이 생겼다.

내가 가이드가 되고 난 후에 그것을 이유로 센터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 아직 없기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봐 온 게 너무 많아서 그랬을 것이다.

“은우야. 그런데 정말 대단하다. S급 에스퍼라니.”

이하민은 신기하다는 기분을 감추지 못한 채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다가 눈을 밝혔다.

“이하민. 나하고 대련해 볼까?”

“굳이?”

그러면서 이하민이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해 보자, 이하민. 너는 증폭 능력을 갖고 있잖아. 너하고 같이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고 싶어.”

“같이 훈련을 하자는 거지?”

이하민이 정정을 해 주었고 나도 그 말이 맞겠다고 인정했다.

서로를 적으로 두고 하는 대련이 아니라 같은 적을 두고 함께 공격하는 훈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는 금방 뜻이 맞아서 같이 밖으로 나갔고 문밖에 서 있던 S급 에스퍼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내가 가이드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하민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던 것 같은데 이하민이 내가 S급 에스퍼라는 사실에 집중하며 함께 훈련을 하기로 하는 것을 희한하게 보는 것 같았다.

그거야말로 이하민과 그들의 결정적인 차이인 듯했다.

“같이 훈련하러 가는 거면 같이 가.”

변태영이 자연스럽게 말했고 다른 두 사람은 말을 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따라붙었다.

“센터를 나간다는 것도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아. 설마 지휘부가 그렇게 멍청하게 굴지는 않을 것 같지만 만약에 서은우가 가이드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의 가이딩까지 억지로 맡기려고 한다거나 하면 나도 센터를 나갈 거야.”

견인은 밖에서 우리 말을 엿들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나도 그래.”

“저도 그렇습니다, 은우 씨.”

변태영과 심우진도, 그 이야기만큼은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했다.

S급 에스퍼 모두가 나와 함께 움직이기로 한다면 센터가 받을 타격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내가 이들을 너무 가볍게 봐서 그렇지 이들 셋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세상이 떠들썩해질 정도로 파장이 엄청날 텐데…….

“생각해 보니까 어마어마한데? 우리 다섯이 센터를 나간다고 하면 이 센터에 남아 있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걸? 도시만 해도 바로 붕괴될 거야. 도시를 지탱하고 있는 기업들도 전부 빠져나갈 거고. 더 이상 센터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건데 뭘 믿고 여기에 있겠어?”

견인이 진지하게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겠다고 여긴 것 같았다.

“뭐. 그래도 지금 당장 나가자고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 센터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동안은 최대한 누리죠.”

이하민과 하려던 훈련이었는데 S급 에스퍼들이 함께하기로 의견을 모으면서 그들의 능력도 다 같이 확인을 해 보기로 마음을 바꿨다.

심우진과 했던 것처럼 견인과 변태영의 능력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했고 거기에 이하민의 능력이 가미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한 번쯤은 확실하게 파악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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