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S급 에스퍼들이 여기에는 왜 온 거냐는 궁금증을 담은 얼굴들을 보면서 솔직히 기가 막히고 화가 났다.
해결도, 수습도 하지 못한 채 고집스럽게 던전을 끌어안고 있다가 우리가 나타난 것에 대해 적의까지 드러내는 자들을 보면서 도대체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마음은 던전으로 가까이 다가가면서 예민해지는 감각 때문에 더욱 치솟았다.
앞서서 가던 이하민이 갑자기 멈칫했다.
“왜 그래, 이하민?”
변태영이 묻자 이하민이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따가워서요. 괴수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하민이 그걸 확실히 예민하게 느끼더라고요. 이하민이 하는 말이 맞을 거예요.”
변태영이 말하자 견인과 심우진도 그 말을 무시하지는 않은 채 주의를 기울이는 듯했다.
“건성으로 해서 될 놈은 아닌 것 같으니까 다들 정신 차리고 확실하게 끝내고 나오죠.”
누가 알아 주지도 않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놔 버릴 수도 없는 문제였다.
던전을 지키고 있던 하급 에스퍼들이 우리에게 다가오려 하자 견인이 손을 들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오려 하던 세 명의 하급 에스퍼들이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여기에서 괜한 힘을 쓰지 않게 하지 마. 다시 다가오면 그때는 힘 조절 안 해.”
견인이 말하자 그들도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견인의 얼굴만 봐도 그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터였다.
다섯이 함께 공략을 위해 같은 던전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긴장할 필요도 없는데 괜한 걱정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던전으로 들어가며 나는 괴수의 기척을 느끼기 위해 집중했다.
누나는 괴수가 나오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다룬 일이 많지 않았다.
만약 누나가 괴수와 공략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써 두었다면 나에게 크게 도움이 됐을 텐데.
누나가 만들어 둔 대로 공략을 하면 괴수를 죽이는 게 훨씬 쉽지 않겠는가.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쿠에에엑 거리는 소리와 함께 벽에서 그림자가 스며 나오는 것처럼 괴수가 나타났다.
서 있던 자리에서 갑자기 모습이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이하민의 앞으로 나타난 것은 분명 좀비의 형체를 하고 있었다.
이하민은 좀비보다 더 빠르게 사라졌고 좀비의 뒤에서 다리를 휘둘러 놈을 쓰러뜨리려 했다.
그 정도의 일격이었다면 벌써 쓰러지는 것이 정상이었을 텐데 불길한 소리가 이하민 쪽에서 났다.
분명히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말도 안 돼!’
이하민이 균형을 잃고 무릎을 꿇자 견인이 좀비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좀비의 몸통이 벽으로 날아가 부딪쳤고 변태영이 좀비를 불살랐다.
‘설마 저대로 끝난 건가?’
아무래도 그건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화염 속에서 좀비가 몸을 일으켰다.
좀비의 몸에서 불붙은 살점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흘러내렸다.
나는 이하민의 허리를 감고 그를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이하민은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다리만 부러진 거야. 싸울 수 있어. 내가 가야 돼.”
견인과 변태영이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다면 이하민도 그렇게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겠지만 분위기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았다.
그때 심우진이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고 좀비는 잠시 거기에 영향을 받는 듯했다.
걸음을 옮기다가 갑자기 넘어지고 이리저리 몸이 흔들리는가 하면 잠시 그 자리에 꼼짝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나와 함께 연습했던 심상을 만들어 내는 듯했다.
아마도 심우진은 그것을 오래 유지하지 못할 것이고 견인과 변태영이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것을 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럴수록 이하민의 마음은 더욱 급해지는 듯했다.
나라도 가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하민을 그대로 둘 수는 없어 나 역시 마음이 급해졌다.
가이딩.
가이딩.
나는 전에 하던 방식으로 이하민의 손을 잡고 기운을 불어넣는다는 느낌으로 가이딩을 하려 했다.
그러나 가이딩이 더디게 이루어졌다.
“은우야. 내가 해도 돼?”
“뭘? 가이딩?”
“아니. 가이딩은 네가 하는 거지.”
“그럼 뭐?”
이하민은 말을 하는 대신 내 허리를 감았다.
그러고는 내게 다가와 입술을 삼켰다.
“……!”
무슨 짓이냐고 할 틈도 없었다.
그러다가 그의 파장이 빠르게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나를 안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어느덧 우리 사이에는 작은 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분명히 불쾌하고 기분이 나빠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은 들 틈이 없었다.
‘이게 가이딩인가? 이하민이 낫고 있나?’
오직 그 생각뿐이었던 것 같았다.
그 순간은 오래 가지 않았고 이하민은 어느덧 나를 놔주었다.
내게서 떨어지는 그의 입술에 나와 연결된 은사가 걸려 있었다.
그걸 보고 얼굴에 열기가 확 올랐는데 정작 이하민은 그걸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S급 에스퍼이자 가이드의 점막 가이딩이라니. 어마어마하다, 은우야.”
게다가 녀석과 나의 매칭률까지 생각하자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나……았어?”
아무리 그래도 겨우 그것을 가지고 정말 뼈가 부러진 부상이 나았을까 하며 묻자 이하민이 확인을 하지도 않은 채 그렇다고 말했다.
“고마워, 은우야.”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곧바로 달려 나가는 이하민을 보며 알 수 있었다.
‘세상에…… 나 정말 얼마나 엄청난 거야?’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편하게 앉아 있을 때가 아니었다.
좀비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도망쳤고 에스퍼들의 공격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심우진이 좀비의 움직임을 막아 주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심우진의 집중이 눈에 띄게 흐트러지고 있었다.
이하민이 합류하면서 견인과 변태영의 공격이 확실히 강해지는 것 같았지만 좀비는 쉽사리 쓰러지지 않았다.
던전이 오랫동안 공략되지 않으면서 그곳의 주인인 좀비가 더욱 강해진 것 같았다.
각각의 공격이 불발되는 것을 보며 바닥을 차고 달려가 좀비를 향해 주먹을 꽂아 넣었고 공격이 성공했지만 놈은 그 타격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지 않은 채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연달아 몇 번의 공격을 성공시켰지만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의 자잘한 상처만 계속 만드는 것과 같은 형국이라 나는 결국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놈을 쓰러뜨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와 봐, 서은우.”
변태영이 말했지만 그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충분히 봤다.
상성이 안 맞는 것이다.
변태영의 공격이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면 모르겠지만 몇 번은 그것이 제대로 먹혔는데도 그때마다 좀비는 크게 피해를 입지 않았다.
몸이 녹아도 뼈만 남아 있으면 계속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 이미 죽음을 건넌 몸이라서 그런 공격은 통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견인의 공격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때부터 남은 방법은 한 가지였다.
같은 공격을 의미 없이 반복하는 것보다는 좀비가 불편해하는 공격을 찾아야 했다.
다른 에스퍼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고 나는 이하민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증폭 능력을 사용해 줘.”
“그래.”
이하민이 그 능력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일단은 부탁을 해 두었다.
그러자 심우진이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던 좀비가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놈의 눈앞에 어떤 심상이 나타난 건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놈이 잠시 동안이라도 움직일 수 없게 됐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고 나는 그 기회를 최대한 살려야 했다.
검을 빼 들어 휘둘렀지만 그것 역시 좀비에게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상처를 내는 것으로는 좀비를 죽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확실하게 찢어 놔야 하는 건가?’
내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 알아보려면 일단은 해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검을 포기하고 단도를 꺼내 들었다.
S급 에스퍼들은 내가 뭘 하려고 하는 건지는 모른 채 좀비가 나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해 주고 있었다.
좀비는 심우진의 바이올린 소리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우진의 힘이 점점 소진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단도를 든 채 좀비에게 달려갔다.
좀비는 이번에도 별 탈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번에야말로 끝을 낸다고 생각하며 놈의 팔을 붙잡았다.
좀비는 다른 손으로 나를 붙잡아 할퀴려고 했지만 그것을 피하면서 놈의 겨드랑이에 단도를 집어넣은 채 그대로 팔을 뜯어냈다.
쿠에에에에엑-!
커다란 비명이 들렸지만 놓지 않았다.
좀비는 몸부림을 쳤고 나는 그대로 단도를 비틀었다.
S급 에스퍼들은 경악한 듯했고 좀비의 반응이 이때까지와 다르다는 것을 그들도 마침내 알아차린 듯했다.
‘통한다. 이렇게 해야 죽는 거였어!’
견인이 다가왔고 나를 도와 좀비를 공격했다.
일단 내가 시작을 해 놓자 그때부터 그의 염동력으로 좀비를 공격하는 게 강해졌다.
좀비는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때마다 견인의 공격이 이어지자 비명을 질러 댔다.
내 공격은 눈에 보였지만 견인의 공격은 그렇지 않았고 좀비는 점점 더 당황하는 것 같았다.
이제 심우진의 바이올린은 완전히 멈춰 있었다.
더 이상은 그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도 너무 많은 능력을 소모한 터라 그는 쉴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는데 그와 견인의 연계 공격이 자연스러웠다.
변태영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조금 지나고 나면 그가 마무리를 해 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제법 잘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나는 잠시 물러섰다가 견인이 좀비의 몸을 뜯어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가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좀비의 가죽은 생각보다 질겼고 한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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