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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45화 (45/137)

45화.

“야, 이하민. 너 괜찮아? 파장이 이 정도면 지금 엄청 힘든 상태 아니야?”

“힘든 거 맞아.”

그러면서 녀석이 웃었다.

동생을 보살피느라고 저에게 시선을 주지 못하는 엄마의 관심을 끌고 싶어, 히터 앞에 쪼그려 앉아 얼굴에 열을 낸 아이가 지을 법한 웃음이었다.

전에 잠깐 생각했던 것이 다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이 자식.

파장을 조종할 수 있나? 하는 생각.

그때도 너무 말이 안 되는 생각이라 오래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그때보다 조금 오래 머물렀다.

이하민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랐겠지만 훈련을 조금 과하게 하기는 했다고 말했다.

“무슨 훈련을 어떻게 했는데?”

“S급 에스퍼님들이 훈련하시는 동안 도와드렸지.”

“뭘 어떻게 도왔는데?”

“증폭 능력을 사용해서.”

“그러면 S급 에스퍼를 도와준 게 아니라 네 훈련을 한 거잖아.”

“그렇지.”

훈련을 얼마나 했으면 그렇게 된다는 건가 하고 있는데 때마침 센터 관리팀 차량이 사이렌을 울리면서 급하게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 정도면 S급 에스퍼들이 모두 돌아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싸웠다는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대체 뭔데 저러지? 하고 있는데 이하민은 거기에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이 녀석이 그 일이랑 연관이 있는 건가 하고 물었더니 의외로 순순히 대답했다.

“견인 에스퍼님이 훈련하시는 거 도와드렸거든. 증폭을 어느 정도까지 해 드릴 수 있는지 나도 겸사겸사 확인해 볼 겸. 네 배 정도까지는 할 수 있는 것 같았어.”

“네…… 배? 네 배라는 게 무슨 말인데? 견인 에스퍼가 사용하는 힘의 네 배? 네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응.”

야, 이하민.

그게 그렇게 상큼하게 대답할 일이야?

나는 이런 구경은 놓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신체 강화를 해서 견인의 훈련장으로 달려갔다.

나에게 가이딩을 해 달라고 찾아온 불쌍한 어린 양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서.

그곳에 갔을 때 나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버렸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그곳에 온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여기가 원래 이렇게 생긴 곳이 아닌데?

이런 곳에 이만한 나대지가 있었나?

아닌데?

여기는 빽빽한 건물이랑 훈련장이 즐비했는데 왜 텅 비어 있지?

그러다가 주위를 제대로 둘러보고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깨달았다.

그곳에는 구경꾼과 목격자, 그리고 재앙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그 부류가 조금씩 겹쳐졌다.

탈출한 사람들은 목격자가 되고 구경꾼이 되어 있었다.

이런 일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서 사람들은 징후가 느껴졌을 때 이미 대피한 상태였고 자기들이 본 것을 열심히 떠들어 대고 있었다.

증언은 비슷했다.

견인이 견인했다는 것.

다만 이전에 봐 왔던 견인의 능력에 비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이번에도 에스퍼들은 모두 안전하게 대피했고 처음에는 놀랐을지라도 지금은 자기들이 본 광경에 순수하게 감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관리팀은 일단 출동을 하기는 했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듯 그곳을 계속 바라보기만 했다.

견인의 힘에 이하민이 더해지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고 나는 터덜터덜 돌아갔다.

이하민은 나를 마중 나왔다.

굳이.

파장이 멋대로 날뛰는 상태인데도 굳이.

“이하민. 너 아픈 거 아니지?”

“아니야, 은우야. 나 아파.”

이 자식이야말로 흑막은 아닐까?

이하민이야말로 숨겨진 계략공이고?

왜 그게 헛소리가 아닌 것 같지?

어느새 나는 그 녀석의 방으로 갔다.

가이딩룸이 따로 있었지만 거기로 가야 할 필요가 있냐는 듯이 녀석은 자기 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능력을 과하게 쓰고 파장이 날뛰는 에스퍼를 발견했고 그 에스퍼가 마침 나와 매칭률도 높으니 그 녀석에게 가이딩을 해 주는 것은 나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맞는데 왠지 녀석의 계획대로 되는 것 같아 조금 심술이 나기는 했다.

“하…….”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한번은 따끔하게 말을 해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하민. 너. 내가 있는 동안은 가이딩을 해 주겠지만 나를 믿고 능력을 마구 사용했다가 돌아왔는데 내가 없을 수도 있잖아. 그럴 때도 대비를 하기는 해야 돼. 능력을 과하게 사용하지 마. 이러다가 확 죽으면 어쩌려고 이러냐?”

녀석은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은우 네가 왜 없는데?”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거고.”

“그래도 그런 말은 안 했으면 좋겠어.”

나도 안 하고 싶은데 네가 너무 날뛰니까 이러는 거잖아, 이 자식아.

내가 체념하며 한숨을 쉬었더니 녀석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것도 웃기는 것 아닌가?

내가 체념하는데 왜 좋아해?

그러나 나는 내가 이하민을 밀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를 가이딩하는 순간이 좋고 기다려진다는 것을 계속 부정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해도 돼, 은우야?”

“그런 말 하지 마, 인마. 이상하니까 그냥 해.”

“응.”

녀석은 에스퍼가 돼도, 나에게 가이딩을 받는 입장이 돼도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언제나처럼 다정하고 순수했다.

어느 틈에 다가온 거였을까.

녀석이 내 머리를 감싸고 가만히 입을 맞춰 왔다.

파장이 이렇게 심하게 날뛰는데도 이렇게나 부드럽게.

도대체 이 녀석의 자제력은 얼마나 대단한 걸까.

가만히 겹쳐 온 입술이 벌어졌다.

조금만 더 서둘러 줬으면.

그러다가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닫고 깜짝 놀랐다.

그가 웃는 게 느껴졌다.

입술이 겹쳐진 채로 웃는 바람에 그의 웃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혀를 얽어 오고 틈 없이 밀착해 나를 안았다.

어느새 나도 가만히 팔을 들어 그의 목에 둘렀다.

이하민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제 셔츠 단추를 풀었다.

그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내 몸에서는 열기가 피어올랐다.

그의 손이 내 뺨을 어루만지고 귓불을 만지작거리다가 셔츠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하아…….”

지극히 만족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와 버렸다.

내 탄식의 그의 입 안으로 흘러간다.

그 사실이 나를 흥분시켰다.

나는 지금 일하는 중이다.

가이딩을 하는 중.

이하민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거다.

사내 녀석에게 매달려 흥분하고 있는 내 꼴이 우스울 때는 그런 말을 변명처럼 늘어놓았다.

지금의 포지션이 이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셔츠 밑으로 들어온 녀석의 손이 내 복근을 만지다가 조금 더 위로 올라왔다.

납작한 젖꼭지 위로 이하민의 손가락이 다가왔다.

“큿!”

그게 뭐라고 이상한 열감이 온몸에 퍼진다.

상냥한 움직임이 제법 장난기를 띠었다.

마침내 그가 키스를 멈추고 나를 바라보고 방긋 웃더니 내게서 셔츠를 벗겨 내려 했다.

두 팔을 들어 올리자 셔츠가 벗겨졌다.

그는 황홀한 듯이 내 몸을 바라보며 제 셔츠도 벗어 던졌다.

바닥에는 두 사람의 옷이 벗겨진 허물처럼 아무렇게나 겹쳐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고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깎은 듯한 얼굴을 감상하다가 이하민이 나를 마주 보는 바람에 눈이 마주쳐 버렸다.

녀석의 눈에 익숙한 웃음이 지어졌다.

그가 내 등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그의 손길 아래에서 내 세포들이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정성스럽게도 만졌다.

내 모든 것이 궁금해서 하나하나 전부 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손가락으로, 손바닥으로, 어떤 때는 손톱으로 내 등을 쓸어내리더니 결국에는 허리에 얹어졌다.

그가 가만히 내 허리를 당겼다.

이하민이 나보다 키가 컸고 그와 그렇게 바짝 닿을 때면 우리의 키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를 바라보려면 고개를 들어야 했고 그는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벌어진 입술의 각도, 그 입술에 묻은 타액.

그 모든 것이 깊은 열망을 상상케 했다.

녀석의 손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가 내 엉덩이를 다시 그런 식으로 쓰다듬었다.

손바닥으로, 손가락으로, 손톱으로.

그때마다 나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흥분되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몸이라 내가 흥분하고 있다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이 더 흥분을 가중시키는 것 같았다.

진한 키스를 해 오며 그가 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로 벌어진 일이었지만 이제는 알고 있었다.

이제 곧 이하민과 하나가 될 거라는 것을.

내 안에 녀석이 들어올 거라는 사실.

녀석이 내 안에 머물고 나를 채울 거라는 사실.

우리가 연결될 거라는 상상이 머릿속을 뜨겁게 달구었다.

팔로 목을 감고 어느덧 내가 더 매달렸던 것 같다.

이하민은 큰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활짝 핀 얼굴로 나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감격한 얼굴.

그런 모습이라서 고마웠다.

녀석이 감정을 잘 나타내는 얼굴이라서 다행이었다.

만약 표정 없는 얼굴이었다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면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이하민. 네 파장이 더 불안해지는 것 같아.”

“걱정 안 해도 돼. 좋아서 이러는 거니까.”

“복상사라는 것도 있다더라. 너무 좋아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 모양이야.”

“은우 너하고라면 복상사도 괜찮을 것 같아.”

이 녀석이 그런 말을 다 하다니.

그러나 절대로 그냥 농담을 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그를 받아들였고 이하민은 내 안을 제 것으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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