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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46화 (46/137)

46화.

나는 허벅지 사이로 저 녀석의 것이 흐른다고 툴툴거렸고 이하민은 내가 씻는 동안 도와주었다.

첫 가이딩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두 번째라고 그것을 허락해 줄 수 있게 됐다.

갈수록 좀 뻔뻔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허물없이 되어 가는 것 같기도 했다.

“빨리 안정제가 만들어져야 할 텐데.”

나를 씻겨 주던, 특히나 다리 사이를 집중적으로 씻겨 주던 이하민이 갑자기 한 말에 나는 무슨 얘기냐고 물었다.

“그렇잖아.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다른 S급 에스퍼님들 가이딩까지 하면 얼마나 더 힘들겠어?”

“괜찮아. 나는 S급 가이드니까.”

“……은우 너는 괜찮아, 정말? 아무렇지 않아?”

“뭐가?”

“S급 에스퍼님들 가이딩하는 거.”

“뭐…… 살리기는 해야 하잖아. 죽게 놔둘 수는 없잖아.”

“그건 내가 할게, 은우야. 나 아직 가이딩 능력이 사라진 건 아니니까 내가 할 수 있어.”

“너도 에스퍼잖아. 이번에도 네가 가장 능력을 많이 썼고.”

그러나 이하민은 굴하지 않았다.

“은우 너도 많이 썼잖아. 그런데 네가 내 가이딩을 해 줬잖아.”

그건 맞는 말이기는 한데.

“일단은 안정제를 만드는 게 가장 급한 일인 것 같아. 그러고도 안 되면 내가 가이딩을 해야겠어. 그러는 게 낫겠어.”

“왜? 나 S급인데. 매칭률도 높고. 내가 하면 금방 될 텐데. 너도 알잖아.”

“알지…….”

나는 이하민이 심우진의 가이딩을 하던 것을 떠올렸다.

파장이 가라앉지 않아서 다시 가서 가이딩을 하던 모습.

나에게는 이하민의 가이딩이 그런 식으로 기억됐다.

에스퍼들이 그를 공격했다가 변태영의 화염에 휩싸였을 때, 수많은 에스퍼들을 이하민이 가이딩해서 낫게 한 일도 있었지만 그런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이하민에게 요구되는 것은 어차피 S급 에스퍼에 대한 가이딩이니까.

S급 에스퍼에 대한 가이딩만 두고 봤을 때 그는 나에 미치지 못했다.

이하민에게 굳이 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도 그걸 몰라서 그 말을 한 건 아닌 것 같았으니까.

녀석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고 자기 뜻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닌 것 같고 방법을 빨리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열심히 모은 도토리를 숨길 장소를 찾느라고 머리가 바빠진 다람쥐처럼 급해진 이하민을 보면서 귀엽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

회의실을 나오면서 S급 에스퍼들은 각자 말이 많아졌다.

오리진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어. 가만히 있다가는 우리가 먼저 당할 게 뻔하거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안심하면 안 돼. 그건 계획에 이미 들어 있던 일이거든.”

견인은 결국 그 이야기까지 했고 S급 에스퍼들은 깜짝 놀라며 자세히 말해 보라고 했다.

견인은 자기가 그 이야기까지 해야 하는 건가 하는 듯했지만 결국은 모두 털어놓았다.

“오리진 센터장이 나를 데려가려고 했잖아. 그 사람이 머리를 잘 쓰기는 했지. S급 에스퍼를 다 데려가는 것보다 나 하나를 데려가는 게 훨씬 실속 있을 거라는 걸 그 사람도 알았던 거지. 맞는 얘기잖아.”

S급 에스퍼들은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라면서 재촉했고 견인도 씨알이 안 먹히는 말을 하느라 진을 빼는 대신 본론을 말했다.

“오리진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게 정신계 에스퍼들을 포섭하는 거였어. 일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그 영향이 커. 생각해 봐.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해진 것 같은지. 정신계 에스퍼들이 먼저 나서서 사람들을 조종해서 가능해진 거야. 정재계 고위 관료들을 조종한 것도 그 사람들이고. 그 계획이 다 내 머리에서 나왔지.”

견인은 지금 자기가 자랑스럽게 말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굉장히 우쭐해 하면서 말했다.

변태영이 심우진을 보면서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물었다.

“그러게. 죄책감을 느끼면서 우리한테 사죄해야 할 것 같은 타이밍인 것 같은데 이 자식이 왜 이렇게 당당하지? 혹시 내가 이해를 잘못한 건가?”

심우진의 말에 견인은 뒤늦게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때는 나도 오리진으로 갈 생각이었으니까 그런 거고……. 어쨌든 안 갔잖아. 그러니까 나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거지. 결과적으로 가장 큰 선물을 준 거잖아. 내가 여기에 남아 있는 것으로 말이야.”

S급 에스퍼들은 어쩌면 이렇게 저 편한 대로 생각을 할 수 있냐는 거냐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댔고 견인은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심우진. 그냥 한 말 아니니까 앞으로 항상 바이올린 가지고 다녀. 그런데 바이올린만 연주할 수 있는 거야? 다른 악기는 못 해? 그것참 시원찮은 능력이네.”

남의 능력을 깎아내리는 건 절대 하면 안 되는 일 중 하나인데 심우진은 의외로 그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그것 때문에 귀찮아지겠다는 생각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았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형. 우리가 오리진을 먼저 치면 돼요.”

변태영은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 그냥 그런 모든 근심의 근원을 제거해 버리자고 마음을 먹은 듯했다.

“나는 좀 기대되네.”

혼잣말을 한 거였는데 주위가 조용해졌다.

잠시 후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것을 알고 나는 멋쩍어서 이마를 문질렀다.

“아니. 그냥 혼잣말이었는데…….”

“뭐가, 서은우?”

견인이 물었고 나는 그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하민은 어떻게 안 걸까.

“대인전이 기대된다는 말을 하려고 한 거지? 나도 그래. 특히 이번에는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는 거잖아. 경우에 따라서는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을 거고.”

“아아. 그 말이었어? 대인전을 기대하고 있었어? 아아!”

견인이 연거푸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처음에는 나와 이하민이 한 말에 대해 이해했다는 의미였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내 능력이 대인전에서 발휘할 효과를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네. 서은우야말로 정말 기대할 만하겠는데?”

“은우 씨. 기대돼요.”

심우진은 두 손으로 짝짝 손뼉까지 치면서 말했다.

하…….

이렇게들 기대를 해 주면 내가 또 절대로 대충 할 수가 없는데.

“그런데 정신계 에스퍼들은 어떤 식으로 공격을 해요? 대인전에서요.”

“마인드 컨트롤이지.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S급 정신계 에스퍼들이 몇 명 있거든. 그 사람들은 던전에서 활약하는 것보다 다른 나라에서 S급 에스퍼들을 스카우트 하는 것으로 더 대단한 활약을 한다고 들었어. 구체적인 활동은 공개된 게 없는데 S급 에스퍼들 몇 명이 자기들 모국을 떠나서 정신계 에스퍼들이 속한 국가로 간 일이 있지. 그게 정신계 에스퍼들에게 조종당해서 그런 거라고 하는 말이 있어.”

“나도 그 말 들었어. 그리고 신빙성 있다고 생각해.”

“생각보다 훨씬 더 자주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나는 그 사람들이 국가를 위해서 일을 할 것 같지는 않거든요. 돈이나 권력에 의해서 움직일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활약상이 훨씬 더 클 수 있어요. S급 에스퍼들이 최근에 거대 다국적 매니지먼트 회사로 들어갔잖아요. 국적은 안 바뀌었지만 나는 그 회사에 정신계 에스퍼들이 관여된 게 아닌가 했는데.”

견인의 말에 심우진과 변태영이 말을 받았다.

“마인드 컨트롤을 어떤 식으로 하는데요? 정신계 에스퍼가 공격을 할 때 징후 같은 거라도 있나요?”

이하민이 묻고 심우진을 바라보았다.

그런 건 아무래도 그가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심우진이 그쪽과 가깝기는 했지만 그에게서는 이렇다 할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심상을 만들어 내는 거라서 방향이 다른 것 같은데? 그리고 오리진으로 간 정신계는 신경 쓸 것 없을걸? 정신계에 A급이 있었던가, 견인?”

“있지 않았어? 있었을걸? 나는 있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견인의 말에 모두 그를 힐난하듯이 바라보았다.

“아니. 일을 맡았다는 사람이 그것 하나 제대로 모르면 어떻게 해요?”

“아니. 우리한테는 다 같은 하급 에스퍼잖아. 하급 에스퍼에 A급이니, B급이니 하는 게 크게 차이가 있나? 그냥 다 하급 에스퍼지.”

“하긴. 그건 그래.”

변태영의 말에 견인이 대꾸하자 심우진이 동의했다.

S급 에스퍼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이 사람들이 나와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나도 이제 S급 에스퍼라는데 생각이 미쳤고 나도 나중에는 저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하게 될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아!!”

갑자기 심우진이 이하민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정신계 애들한테도 이하민의 능력이 통하겠네. 그러면 정신계 하급 에스퍼들도 능력이 증폭되는 거잖아. 오리진 애들이 이하민을 노리는 거 아니야?”

그 말에 깜짝 놀라서 덩달아 이하민을 바라보았다.

어쩌다가 심우진이 그것을 깨닫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확실히 가능성이 높은 얘기였다.

이하민을 데려갈 수 있다면 오리진에는 큰 수확이 될 터였다.

“가이드이자 에스퍼. 세계 유일의 증폭 능력. 나라고 해도 이하민을 데려가고 싶기는 하겠네. 이하민 하나면 커버되는 일이 많잖아.”

“그렇게 치면 서은우도 그런데? 가이드이자 에스퍼. 게다가 S급 에스퍼. 신체 능력 강화자.”

변태영과 견인이 각각 의미심장한 얼굴로 우리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두 사람. 앞으로 조심해. 가장 기본적인 건 소리야. 소리가 들리면 저절로 거기에 집중하게 되잖아. 그게 정신계 에스퍼들이 마인드 컨트롤을 시작할 때 가장 자주 쓰는 수법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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