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어디로 나갔을까 하면서 걸음을 옮겼고 일단 센터장에게 붙잡히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그쪽은 피했다.
초반부터 내가 잘 모르는 곳으로 걸음을 내딛어서 그 후에 나타나는 곳들이 전부 헷갈렸다.
‘이대로 가면 출구로 이어지나? 아닐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어딘가로 이어지는 복도가 나와서 그대로 걸어갔더니 식자재 창고가 나왔다.
잘못 들어섰다는 생각에 돌아온다고 돌아왔는데 직원 외에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이 붙은 문이 나왔다.
‘어…… 나 지금 어디로 온 거지?’
이제는 누가 됐던 사람과 마주치기만 바랐다.
일단 내가 있었던 곳으로 돌아간 후에 다시 시작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세련된 슈트를 입은 사람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가 레스토랑 관계자일까 하면서 걸음을 빨리하며 불렀다.
“저, 죄송합니다만.”
그러자 그때까지 등을 보이고 있던 사람이 나를 향해 돌아섰다.
깎아 놓은 듯한 이마와 대리석 같은 차가운 얼굴.
분명 전에 본 적이 있는 사람인데 어디에서 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누구지? 언제 봤지?’
그의 얼굴에 호기심이 나타났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를 만나 재미있게 됐다는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가 나를 안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았다.
“제가 길을 헤매고 있는데 혹시 홀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그가 누구인지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일단은 길을 물었다.
“길을 잃은 모양이군요.”
지독하게 낮은 목소리가 소름 끼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동시에 불길하다는 기분이 든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홀은.”
그가 말을 하고 손을 들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바라보았고 엄지와 중지가 맞닿는 것을 보았다.
딱-!
“서은우 에스퍼. 나와 함께 가 줘야겠습니다. 지금. 조용히.”
그의 음성이 귓가에 울렸다.
***
윤이재는 끈질기게 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자기라면 좀 더 좋은 조건을 말해 봐도 되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혹시 다른 나라 가이드들은 어떤 식으로 계약을 하는지 모르냐고 묻기도 했고 국가 차원의 센터에 소속되는 것보다 다국적 매니지먼트 회사로 가는 건 어떨 것 같냐고도 했다.
이하민은 그 이야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윤이재의 일을 같이 고민해 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건 네가 결정할 문제인 것 같은데. 내가 말을 하면 너는 평생 나 때문에 그렇게 결정을 했다고 할 거고 무책임했다면서 욕을 하고 다닐걸? 그게 아니라고 해도 할 말이 없어.”
“왜? 이제 너는 가이드가 아니라 이거야? 이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 이건가 보네? 이하민. 너는 그래 봤자 가이드야. 가이드였다가 에스퍼로 각성된 사람이 없다고 하지? 네가 최초라고 하잖아? 너는 그 말 들을 때마다 안 무섭냐? 나는 무섭던데. 너 같은 사람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왜 너만 그런 건데? 그게 과연 좋은 일일까?”
“좋은 일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는 모양이네. 그래. 그만하자. 그래도 이렇게 말해 주니까 고맙네. 충고를 구하는 것처럼 가식적인 말을 하는 것보다는 이게 너답다, 윤이재. 이런 말까지 했으니까 다음에 다시 친한 척하고 말 걸기 없기다.”
이하민은 진심으로 기뻤다.
이제는 자기도 화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하민. 그 뜻이 아니잖아. 네가 짜증 내니까 그런 거지. 센터에서 내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은 너야.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고.”
“아니. 그러지 마. 그러지 말아 주라.”
“너는 이제 S급 에스퍼들이랑 친해졌다 이거야? 그래. 가이드 같은 것들이랑 어울리고 싶지 않겠지.”
이하민은 자기가 윤이재를 너무 가볍게 본 것 같다는 생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좋게 말을 해서 끝내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이하민은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은 채 돌아갔다.
홀에 들어서자 센터장이 와 있는 게 보였다.
그의 수행원들도 있었고 S급 에스퍼들이 그와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런 자리에는 안 오는 게 도와주는 일이었을 텐데 S급 에스퍼가 방송에 나오는 것을 보고 자기도 얼굴을 비추고 싶어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하민은 은우도 그 자리에 있나 하면서 눈으로 은우를 찾았다.
‘어, 없네? 어디 갔지?’
그는 자기와 같이 앉았던 테이블을 보았고 그곳도 비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디 갔지?’
처음에는 궁금증이었다.
그러나 조금 후부터는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이하민이 갑자기 S급 에스퍼들에게 달려갔을 때 그들은 지겹다는 표정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센터장이 계속 가지 않고 자기들을 들러리로 삼으려고 하면 그냥 먼저 떠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그랬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하민이 급히 오는 것을 보고 S급 에스퍼들이 일제히 그를 보았다.
신기한 것은 그들 모두가 이하민을 보다가 그의 뒤를 확인했다는 거였다.
이하민을 보면서 동시에 서은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도 희한한 일이었다.
“이하민. 서은우는?”
변태영이 가장 먼저 물었다.
“저도 그걸 여쭈려고 왔는데요? 저는 지금까지 윤이재 가이드랑 있었습니다. 지금 왔는데 은우가 안 보여서 어디에 있냐고…….”
말을 하던 이하민의 시선이 견인에게 닿았다.
견인은 그가 왜 그러는 건지 알지 못한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들 모두의 머릿속에 동시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정신계 에스퍼.
오리진으로 떠났던 정신계 에스퍼가 기회를 노리고 온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그들은 잠시도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서은우 에스퍼를 본 분 계십니까?”
심우진이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홀에서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누던 가이드들은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봤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S급 에스퍼들은 각자 흩어졌고 이하민도 은우를 찾으러 가려 했다.
그러다가 윤이재가 들어오는 것을 보며 그에게 달려갔다.
“너! 무슨 수작이었어! 왜 나를 불러낸 거냐고!!”
윤이재는 깜짝 놀라며 이하민을 바라보았다.
“야. 너 미쳤냐? 무슨 헛소리야? 내가 말하는 동안 내 말 안 들은 거냐? 계약 조건 좀 같이 고민해 달라고 부른 거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하민은 자기가 잘못 짚은 건가 보다고 생각하며 달렸다.
윤이재는 그 일과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지금은 은우를 찾는 게 더 급했다.
레스토랑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작정을 하고 뒤지면 그 안에 숨어 있는 사람을 찾는 게 어렵지 않을 텐데 S급 에스퍼들이 전부 나서고 능력까지 사용을 했는데도 은우를 찾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남아 있는 S급 에스퍼들의 능력이라고 해 봐야 사라진 사람을 찾는 데는 별로 쓸모가 없었다.
화염 능력과 염력, 심상을 만들어 내는 능력으로 어떻게 찾아낼까.
이하민의 능력도 이럴 때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S급 에스퍼들이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난 것처럼 사라지자 센터장은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며 함께 온 수행원들을 보냈다.
수행원들은 자기들이 맡은 일이 센터장의 명을 따르는 것이라 S급 에스퍼들에게 묻고 다녔다.
S급 에스퍼들은 그것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갑자기 센터장이 오지만 않았어도 은우가 사라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S급 에스퍼들은 화가 나는 것을 겨우 참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성격이 별로 좋지 않던 그들이었다.
“센터장님이 걱정되면 그냥 돌아가자고 하는 게 나을 겁니다.”
심우진은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면서 말했고 수행원들도 그들의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서은우가 사라졌다.
그들도 그 사실은 알아냈다.
S급 에스퍼들이 서은우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센터에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지간히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서라도 알고 있었을 텐데 그 서은우가 갑자기 사라졌다.
센터장의 수행원들은 센터장에게 돌아가 그 사실을 알렸다.
잠시 후 센터장과 수행원들이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
가이드들은 S급 에스퍼들이 따로 부탁을 하지 않았지만 함께 서은우를 찾아 나섰다.
그들은 서은우에게 특별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중에는 서은우에게 직접 도움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각자 구역을 나누고 레스토랑 관계자들에게 허락을 구하며 출입이 제한되는 곳도 샅샅이 살폈다.
사람들에게 혹시 서은우를 보지 못했냐고 묻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봤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땅으로 꺼진 게 아닌 한 그렇게 사라질 수는 없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이하민이 직원을 붙잡았다.
“CCTV가 있을 것 같은데 그걸 보여 줄 수 없을까요?”
“그건 공개할 수 없습니다. 에스퍼님.”
“보통은 그러겠죠. 그런데 지금은 그 보통의 경우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하민은 직원과 실랑이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CCTV를 확인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듯 이하민의 곁으로 다가왔다.
직원들은 그 모습에 위기감을 느꼈고 때마침 S급 에스퍼들도 이쪽으로 왔다.
CCTV 얘기가 나오는 것을 듣고 그들도 그쪽으로 파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레스토랑 직원들은 S급 에스퍼들이 오고도 CCTV를 보여 주지 못한다고 버텼다.
“이 정도로 버티는 걸 보면 뭔가 구린 짓을 하고 있다는 소리인데. 뭔데 그래요? 밀실 같은 거라도 운영하나? 만나면 안 될 사람들한테 룸이라도 제공하는 거예요? 룸 제공료를 받고 몰래카메라로 촬영이라도 했나 보네.”
견인이 거침없이 말하자 직원들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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