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견인은 제 머리카락을 짜증스럽게 넘겼다.
다른 S급 에스퍼들이라고 해서 상황이 다른 것은 아니었다.
차윤.
정신계 에스퍼.
그 자가 서은우를 데리고 갔다.
그것을 알아낸 후 S급 에스퍼들과 이하민은 차를 타고 그대로 오리진으로 향했다.
오리진의 센트럴에 들어서면서 경비 업무를 맡은 자들에게 가로막힐 뻔했지만 차에 탄 이들이 S급 에스퍼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길을 텄다.
웬만하면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싶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걸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았다.
이번에 일을 수행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직감한 이들이 슬슬 자리를 피했고 그곳을 S급 에스퍼들이 탄 차량이 급히 지나갔다.
소름 끼치는 굉음을 들으며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만약 막아섰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센터에 도착할 때까지 심우진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빠르게 달렸다.
그의 대단한 안력 때문에 사고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가 지나간 곳은 사고 장소를 방불케 했다.
마침내 오리진의 센터에 이르렀을 때 차량은 센터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건물 앞에서 멈췄다.
S급 에스퍼들은 서로 어떤 작전도 세우지 않은 채 로비로 들어갔다.
그들 각 사람에게서 풍기는 기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리진으로 와서 베타 센터와는 관계없는 사람들처럼 굴고 있기는 했지만 그들도 처음에는 베타 센터에 있던 사람들이었고 S급 에스퍼에게 열등감을 가지던 이들이었다.
로비에 있던 수많은 에스퍼들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S급 에스퍼들을 보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왜 S급 에스퍼들이 그곳에 온 건가 하는 놀라움이 컸고 그 후에는 누가 S급 에스퍼들을 그렇게 화나게 만들었는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S급 에스퍼를 아는 사람들은 절대로 그들을 화나게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평소에 성격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무해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멍청한 생각은 없다는 것을, 로비에 있는 에스퍼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냥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 에스퍼들 때문에 S급 에스퍼들이 지나가는 길에는 자연스럽게 길이 생겨났다.
“센터장은 몇 층에 있습니까.”
심우진이 안내 데스크로 가서 묻자 그곳에 있던 남자 직원이 멍한 얼굴로 14층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S급 에스퍼들과 이하민은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그들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길을 터 주었다.
길을 터 준 게 아니라 물러선 것 뿐이기는 했지만.
S급 에스퍼들은 엘리베이터에 타고 호흡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형. 내가 이 건물을 전부 불태워 버리면 문제 될 게 있을까?”
변태영의 말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들 각자가 지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견인은 이 건물을 확 구겨 버리면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고 심우진은 바이올린을 켜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환상을 보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하민은 자신의 증폭 능력을 사용하면 그들이 센터장의 입을 열게 할 수 있을지 그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내가 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내리며 견인이 말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 일에는 견인이 가장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센터장의 집무실에 들어가는데 막아서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도 없는 건 아니었는데 그 사람은 견인의 손짓 한 번에 벽으로 날아가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내고 주르륵 미끄러져 누웠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물러서며 S급 에스퍼들을 외면했다.
집무실 앞에 이르기도 전에 견인은 다시 한번 손을 들었고 그의 손짓 한 번에 문짝이 뜯겨 나갔다.
견인은 이하민이 자신을 돕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였다고 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었겠지만 이하민이 돕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쉽게 되었다.
그냥 문을 열겠다는 생각으로 손을 움직여도 어느새 종잇장처럼 찢겨서 뜯어져 나가는 식이었다.
견인은 이하민의 분노가 너무 크고 자기가 도와달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돕고 있어서 자기가 스스로 힘 조절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같았다면 날뛰는 사람은 자기이고 이하민은 옆에서 말렸을 텐데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오히려 이하민이 옆에서 더 부추기는 것 같은 모양새였던 것이다.
문짝이 날아가고 그 안에 있던 센터장은 놀란 얼굴로 의자에서 일어서 있었다.
S급 에스퍼들이 오고 있다는 소식은 그도 전해 들은 후였다.
에스퍼들을 시켜 S급 에스퍼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센터장도 A급 에스퍼였고 S급 에스퍼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지 않았다.
베타 센터에 있는 동안 그는 지위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남들보다 계산과 판단이 빨랐고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았으며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 결과, 오리진 센터의 수장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자기보다 유능하고 뛰어난 사람을 제거하는 일에 능했고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센터, 새로운 센트럴을 세우는 데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해 왔다.
집무실에 들이닥친 S급 에스퍼들을 본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지는 못했다.
그는 무서울 정도로 S급 에스퍼 각자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럴 때는 그런 지식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너무 잘 안다는 사실이 그를 극한의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것이다.
“여, 여기에는 어떻게…….”
그는 자신의 말이 비굴하게 들릴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제대로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냥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이 들게 만드는 S급 에스퍼들이 무슨 일인가로 인해 크게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폭주한 것은 아닌데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운은 폭주했을 때와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몸이 따갑다고 느끼던 그는 자신의 옷이 찢어지고 너덜거리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뜨끈한 것이 팔에서 흐르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은 팔이었지만 얼굴에서도 찢어지는 통증이 느껴졌다.
‘이게……!’
잠시 후에야 그는 그 기운의 실체를 깨달았다.
견인의 염력이 통제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센터장을 바라보던 견인의 얼굴에 난감하다는 기색이 떠올랐다.
견인은 이하민을 바라보았고 센터장은 그 시선을 보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알아차렸다.
이하민에 대해서 베타 센터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곳이 오리진 센터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베타 센터에서는 이하민에 대해 철저히 분석할 필요가 없었을지 모르지만 오리진 센터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이하민의 가치를 정확하게 알아내고 만약 필요하다면 센터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제의하고서라도 그를 데려오려고 했는데 지금,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하민의 능력이 방출되고 있는 것 같았다.
센터장은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이하민의 능력이 그렇게까지 발현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알게 되는 것은 그도 절대 원치 않았다.
몸이 계속해서 찢겨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던전에서 괴수에게 공격을 당하는 것과 비견할 만했다.
센터장은 S급 에스퍼들이 아직 아무것도 묻지 않고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먼저 물어서라도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무슨 일입니까. 뭘 원하십니까……!”
“서은우를 내놓으세요.”
견인이 소리치자 센터장의 머리가 텅 비는 것 같았다.
“서……은우 에스퍼요? 서은우 에스퍼를 왜 여기에서 찾으시는 건지…….”
그렇게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의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떠올려야 할 사람은 한 사람이었다.
차윤.
센터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며 센터장 역시 크게 의지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는 너무 충동적이었고 계획되지 않은 일을 협의 없이 저질러 버리곤 했다.
“서은우 에스퍼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릅니다. 아마 차윤 에스퍼가 그런 것 같은데 차윤 에스퍼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차윤 에스퍼의 위치를 알아내면 서은우 에스퍼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여러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그가 말하자 견인이 다른 S급 에스퍼들을 바라보았다.
이하민도 견인을 보았고 견인은 그를 달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윤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려면 센터장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이제부터 그를 놔줘야 한다는 사실에 결국 이하민도 기운을 가라앉혔다.
그가 기운을 가라앉혔다고 해서 지금까지 난 상처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기에 센터장의 몸에서는 계속 피가 흘렀다.
그러나 그는 상처를 먼저 치료하겠다는 말 같은 것은 하지도 못한 채 전화기를 붙들었다.
“차윤 어디에 있어!!”
당장 호통을 치고 그가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차윤 데리고 와! 차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고 센터 내에 있는 A급 에스퍼들을 모두 보내! 가장 먼저 차윤을 데려오는 사람에게 특급 보상이 있을 거라고 말하고 필요한 에스퍼들은 누구든 데려가도 된다고 해!”
나름대로 급하게 명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상대가 차윤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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