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오리진에서는 에스퍼들의 효과적인 통제를 위해 그들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추적 장치를 비밀리에 심어 두었는데 차윤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그 일을 추진한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그것을 심는 것을 거부했고 센터장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몸에 그것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심어 뒀어야 하는 거였는데.’
센터장이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한 것은 아니었고 모든 힘을 동원했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센터장은 S급 에스퍼들과 이하민을 바라보았다.
S급 에스퍼는 그 자체만으로도 강했는데 이하민이라는 괴물을 만나서 이제는 손도 댈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해진 것 같았다.
이 자들과 차윤이 붙는다면 차윤은 죽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잘 된 건지도 모르겠군.’
그동안 오리진을 위해서 큰일을 해 준 것은 분명했지만 차윤은 통제되지 않는 시한폭탄 같았다.
그런 사람을 S급 에스퍼들이 나서서 처리해 준다면 그들에게 큰 빚을 지는 게 될지도 몰랐다.
“얼마나 기다려야 되는 거죠?”
변태영이 짜증스럽게 물었고 센터장은 땀을 흘렸다.
땀이라고 생각한 게 실은 피였지만 그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섰으니 곧 찾을 겁니다.”
그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말했지만 얼굴에서는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고 손의 떨림은 점점 커져만 갔다.
***
오리진 센트럴에 통행 제한 조치가 내려졌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차윤의 행방을 알아낸 사람이 없었다.
오리진의 센터장은 자기가 스스로 베타의 센터장에게 연락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단 베타 센트럴의 레스토랑에서 차윤이 서은우를 데리고 나온 것까지는 CCTV로 확인을 했다고 했으니 거기서부터 알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도로의 감시 카메라를 확인해서라도 차윤의 행적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센터장이 공조를 요청했을 때 베타의 센터장은 느긋했다.
오리진의 센터장이 그렇게 나오는 것이 그에게는 퍽 즐거운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베타 센터장이 연이어 비굴하게 부탁하는 것을 보고 변태영이 다가와 스마트폰을 낚아챘다.
“장난하는 것 같습니까?”
센터장은 대꾸도 하지 못했다.
누구냐고,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도 묻지 않았다.
엄청난 굴욕감을 느끼고 있기는 했지만 그는 지금 바로 조처하겠다고 말하며 오리진의 센터장을 바꿔 달라고 했다.
사상 초유의 작전이었다.
지금껏 그런 일이 벌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동안 그런 작전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일단 하기만 하면 사라진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S급 에스퍼들도 이제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레스토랑에서 나온 후의 행적이 서서히 밝혀졌다.
30여 분 동안 이동한 경로는 금세 나타났다.
베타 센트럴을 떠나 오리진 센트럴로 간 것도 확인이 됐다.
그런데 차윤이 갑자기 차에서 내려 서은우와 함께 낯선 건물로 들어가고 그때부터 행적이 묘연해졌다.
건물은 복합 상가로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갔다.
들어가는 모습은 분명히 보였는데 나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에 옷을 갈아입은 것 같다며 비슷한 체형의 사람이 나오지 않는지 살폈다.
그러나 몇 사람이 달라붙었어도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오리진 센터의 모든 에스퍼들이 그 일에 동원됐는데도 마찬가지였다.
***
서은우는 오랫동안 잠을 잤다.
차윤은 오랫동안 찾지 않던 오두막 벽난로에 불을 피웠다.
서은우는 오래 잤다.
차윤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차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잤다.
차윤은 서은우를 묶거나 가두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재우는 방법을 택했다.
침대를 벽난로 쪽으로 끌어다 놓고 계속 따뜻하게 해 주고 있기는 했지만 이게 이렇게 오래 잘 일인가 하는 생각이 가끔씩 들곤 했다.
서은우와 함께 이곳으로 온 지는 사흘이 지나가고 있었다.
지금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레스토랑에서 서은우을 만나 그를 데리고 온 날, 베타고 오리진이고 센트럴이 발칵 뒤집어진 것은 알았다.
센트럴 외곽 경비를 맡고 있는 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자 그는 그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조리 말했다.
저에게 그것을 물은 사람이 차윤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차윤의 정신 조종에 당해 자기가 아는 것을 전부 말한 것이다.
차윤은 서은우를 데리고 건물에 들어간 후 옷 가게에 가서 옷을 샀다.
여러 벌의 옷을 산 그는 서은우를 잠시 그곳에 둔 후 화장실에 가서 옷을 전부 껴입었다.
두꺼운 옷들을 연달아 껴입고 밖에 스웨터를 입자 몸이 비대해 보였다.
서은우에게는 깔창을 깐 신발을 신게 하고 건물 밖으로 나갔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면서도 오두막까지 가는 동안 그는 매 순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조심했다.
오두막에 온 후로는 관심을 껐고 바깥일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센터가 뒤집어졌다.
서은우를 데려오기로 한 것은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후회?
조금은.
그러나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다.
서은우는 그의 말을 잘 들었다.
그의 최면이 잘 먹혔고 그를 감격스럽게 했다.
차윤은 서은우에게 질문을 하고 많은 것을 알아냈다.
오리진과 베타의 센터에서 에스퍼들에 대한 정보는 질리도록 수집해 온 그였지만 만약 이 기회가 아니었다면 그는 서은우에 대해 절대로 알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서은우가 말한 것들은 너무 기이했다.
그래서 차윤은 자신의 마인드 컨트롤이 제대로 통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자기가 이세계 사람이라니.
그건 너무 허무맹랑한 말이 아닌가.
가끔 그런 사람이 있기는 했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원래 자기가 살던 곳은 이곳이 아니고 던전이나 괴수 같은 것도 없는 평화로운 대한민국이었다고 말하는 사람.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어쩌다가 이곳에 온 건지 모른다고 했다.
‘전에 그 말을 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생각을 해 보려고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 사람 저 사람 기억을 너무 많이 들쑤시고 다녔었네. 꼭 필요한 사람한테만 그렇게 할걸.’
그는 너무 많은 정보를 다뤘고 그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것은 일부러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일종의 비워 두기 같은 거였는데 그렇게 해서 용량을 다시 확보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들을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아 강박적으로 그렇게 했다.
‘그래도 내가 거침없이 비워 버린 걸 보면 별로 중요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가끔은, 나중에 필요해질 정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런 식으로 처리해 버렸다.
그래서 지금 그는 가물가물해진 기억 때문에 슬슬 기분이 나빠졌다.
안경 너머로 서은우를 바라보던 차윤이 다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은 처음부터 S급 에스퍼였을 거라고 했다.
처음부터라는 건 에스퍼로 처음 각성했을 때를 말하는 거냐고 했더니 또 희한한 소리를 했다.
그게 아니라 서은우의 몸에서 눈을 뜬 순간부터 S급 에스퍼였을 거라는 거였다.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차윤은 여러 차례 다른 식으로 질문을 했다.
서은우는 그때마다 제법 일관되게 대답을 했다.
그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그리고 모든 게 현실이라는 가정하에 서은우는 원래 살던 곳을 떠나 무협 게임 세계에서 검의 지존이 되었다가 이곳으로 왔다는 것 같았다.
‘센터로 갈 수 있었다면 서은우가 하는 말을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아직은 센터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얼마 안 돼 돌아가기는 하겠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센터장은 자기가 돌아가면 중징계를 하려고 벼를 수도 있겠지만 그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껏 차윤은 자신의 힘을 제대로 드러낸 적이 없었고 누구도 그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S급 정신계 에스퍼.
이곳에서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센터장의 정신세계를 폭발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확신했다.
이미 여러 명의 에스퍼에게 실험을 해 보고 갖게 된 자신감이었다.
“서은우.”
침대 끝에 걸터앉아 가만히 그 이름을 불러 보았다.
서은우의 몸은 차윤에게 반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깨어나라고 하면 깨어날 것이고 그대로 자라고 하면 잘 것이다.
차윤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를 깨우기로 했다.
“눈을 떠.”
그러자 천천히 눈꺼풀이 올려졌다.
길고 짙은 속눈썹이 덩달아 올라가며 신비롭고 근사한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렇게 맑을 수도 있는 걸까.
들여다보면 안 될 호수의 심연을 보는 것처럼 그 눈을 바라보면서 차윤은 저도 모르게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보고 있으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들 것 같았다.
S급 에스퍼들이 서은우에게 빠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얘기였다.
비록 S급 에스퍼들 자신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했지만 여러 차례 확인했고 차윤 자신도 그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다.
센트럴 레스토랑에서 변태영이 서은우와 함께 식사를 할 때 그도 그 자리에 있었다.
변태영은 그의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처음에 차윤은 변태영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변태영은 주위의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 같았었다.
변태영이 그러는 모습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변태영을 보며 차윤은 그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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