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58화 (58/137)

58화.

옆에서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변태영이 서은우에게 푹 빠져 있다는 것을.

서은우에게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것을.

재미있는 것은 서은우의 반응이었다.

서은우는 변태영이 저에게 빠진 것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옆에서 보기에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건가? 안달 나게 하려고 고도의 계산 아래 그러는 건가? 그런 생각도 했지만 그들을 지켜본 결과 서은우가 정말 변태영의 마음을 모르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변태영 자신도 저의 마음을 몰랐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때부터 확실히 관심이 갔다.

그리고 서은우에 대해 정보를 더 모았고 S급 에스퍼들이 그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은우가 이하민을 챙긴다는 것도 알았고 그 이하민이 갑자기 에스퍼로 각성했다는 말을 들었다.

정말 신기하고 믿기지 않는 일이었는데 그러던 서은우가 S급 에스퍼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신기한 S급 에스퍼가 지금, 몽롱하게 이지를 잃은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벌어진 입술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도 모르는 사이 차윤은 서은우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손톱을 세운 채 긁는 것처럼 가만히.

“나를 바라봐, 서은우.”

차윤의 말에 서은우가 그를 바라보았다.

초점이 없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차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저의 뜻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서은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괜히 울컥해지는 것 같았다.

“나를 안아.”

서은우은 두 팔을 뻗어 차윤을 안았다.

공허하고 무미건조한 삶에 호기심을 이끄는 장난감이 들어온 것 같았다.

차윤은 그런 시선으로 서은우를 바라보았다.

그동안에도 차윤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고 자기가 원했다면 다른 에스퍼를 그런 식으로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이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랬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은 그가 원한 적이 없어서였다.

가이드나 에스퍼, 일반인 중에도 그의 호기심을, 성적인 끌림을 자극한 사람은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그의 삶이 이렇게까지 무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볼수록 잘생긴 얼굴이었다.

예쁘다고 말해도 아주 잘못된 것 같지는 않은 얼굴.

아니, 아름답다는 말만이 유일하게 어울리리라.

그는 손을 뻗어 서은우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나에게 말해 봐.”

“뭘요?”

자기가 그렇게 명령을 한 거였으면서도 차윤은 서은우의 목소리가 나오자 깜짝 놀란 듯 움찔했다.

“아무거나.”

그러나 서은우는 그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다.

아무거나라는 것은 그가 처리할 수 있는 명령이었다.

“사랑한다고 해 봐.”

차윤의 말에 서은우는 곧장 명령을 실행했다.

“사랑합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차윤은 저도 모르게 서은우를 끌어안고 그의 입술을 찾았다.

부드러운 입술에 막 입술이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오두막이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지진이 난 건가 했다.

“정신 차려, 서은우.”

그것은 최면에서 깨어나게 하는 주문과도 같은 말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거야말로 이상했다.

차윤도 서서히 돌아오는 서은우의 눈빛을 보며 자기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뒤늦게 깨달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는 고민할 것도 없이 자신의 최면에 걸린 사람을 버려두고 도망쳤을 것이다.

도망치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면을 풀어 주지는 않았을 터였다.

서은우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빠르게 주위를 훑은 서은우가 차윤을 바라보았다.

좀 전의 것은 뭐였는지, 오두막은 다시 얌전해졌다.

차윤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벽에 붙은 채 창 쪽으로 가서 밖을 살폈다.

에스퍼들이 드글거리는 세상이라 희한한 일은 수시로 일어난다.

에스퍼가 일으킨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밖의 상황을 살폈지만 주위에 다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다른 건물이나 나무 같은 것도 없어서 숨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S급 에스퍼들이 서은우를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그러고 싶어도 이곳을 알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추격을 따돌리려고 차도 버려둔 채 걸어서 이곳까지 온 거니까.

돌아봤을 때 서은우은 차윤을 쏘아보고 있었다.

“아…….”

“여기가 어디지?”

낯선 곳에서 저를 깨어나게 한 사람에게 존댓말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지, 서은우는 처음부터 반말이었다.

“내가 여섯 살이나 많은데.”

“그래서?”

“아니. 그냥 그렇다고. 존대해 달라고 하는 건 아니고.”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나는 레스토랑에 있었는데?”

서은우는 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거울로 다가갔다.

그사이에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가만히 서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은 얼굴을 차윤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대답 안 해 줄 건가 보지?”

재차 묻기에 차윤은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짓을 하기에 사냥이나 해 볼까 하고 가 봤지. 가이드랑 S급 에스퍼들이 모여 있으니까 그중에 쓸 만한 게 있으면 데려와 볼까 했지. 그런 짓을 벌였으면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거잖아.”

잘못은 그런 모임을 가진 S급 에스퍼들이 한 거라는 듯이 뻔뻔하게 말하는 차윤을 보면서 서은우는 감정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리진의 센트럴인가?”

“그래.”

“얼마나 지났지?”

“며칠 안 돼.”

“사람들이 나를 찾을 텐데. 센트럴이 쑥대밭이 됐겠군.”

“자존감 과잉인가? 그런 일은 없었는데? S급 에스퍼들이 너를 퍽 아낀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자신 있게 꽁꽁 잘 숨은 모양이네.”

서은우는 제법 관심이 생긴다는 듯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고는 황량한 그곳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여간해서 두려울 게 없고 자신감이 넘치는 서은우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방향 감각이었다.

혹시 내가 방향치인가 하는 생각을 그동안 몇 번 정도 할 기회가 있기는 했지만 그동안은 애써 모른 척 눌러 버렸는데 이번에는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었다.

갑자기 센터장이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서은우는 밖으로 나갔다.

주위는 황량했다.

그에게 가장 안 좋은 조건이었다.

설상가상 이곳은 새로 만들어진 센트럴이었다.

계획도시이기는 했지만 방향을 잘못 잡으면 끝도 없이 황량한 벌판이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차윤을 힐끔 보았지만 일부러 자신을 여기로 데려온 작자가 순순히 말을 해 줄 리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은 한 번 가 볼까 했지만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몰라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고민할 시간은 길지 않았다.

뒤에서 차윤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서은우. 이제 다시 자는 게 좋겠군.”

서은우의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

S급 에스퍼들은 화약고처럼 날뛰었다.

베타의 센터장과 오리진의 센터장은 똑같은 운명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S급 에스퍼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빨리 서은우를 데려다 놓지 않으면 그들의 화를 잠재울 방법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베타 센터의 센터장은 하필 레스토랑에 가는 바람에 S급 에스퍼들에게 당하지 않아도 됐을 모욕을 계속 당하는 중이었다.

자기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 해서 억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말을 감히 S급 에스퍼 앞에서 할 수는 없었다.

그동안 봐 왔던 S급 에스퍼들의 모습은 정말 순한 양과 같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지금 그들은 정말 무서웠다.

굳이 밖에 나가 상황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열어 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매캐한 냄새가 증거였다.

벌써 몇 동이 불에 타서 없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더 무서운 것은 변태영이 그러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도 불길이 솟구쳤다는 거였다.

처음에 한 동이 불길에 휩싸였을 때 변태영은 그 사실을 알리고 에스퍼들에게 대피를 명령하기도 했다.

그런 일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변태영이 뛰어난 에스퍼라고 칭송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완벽에 가까운 컨트롤에 있었다.

그는 일단 화염을 만들어 내고 나면 거기에서 열기를 없앨 수도 있었고 온도를 식히는 것도 가능했다.

불이 번지지 않게 할 수도 있었고 수 킬로미터에 불길이 번져도 그것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의 통제를 벗어나 불길이 날뛰곤 했다.

화염의 징후가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열기에 휩싸여 불에 타기도 했다.

그 와중에 인명 피해가 없는 것이 기적에 가깝다고 할 만했다.

그 모든 일의 원흉은 이하민이었다.

S급 에스퍼의 곁에 있는 이하민은 재앙을 부르는 마수와도 같았다.

그가 함께 있는 것으로 S급 에스퍼들은 더 이상 자기들의 능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었다.

S급 에스퍼들이 느끼는 당혹감도 상당했다.

심우진은 변태영과 견인의 능력이 폭주하는 것처럼 널뛰는 것을 보면서 바이올린을 아예 들지도 못했다.

이하민의 증폭 능력은 그야말로 잔인무도했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 가는 것 같았다.

분노와 초조함이라는 감정이 더해지면서 그 능력이 빠르게 각성되는 듯했다.

이 능력으로 던전에서 괴수와 마주하면 엄청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은우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