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세, 센터장님과 연락을 하시고 싶은 걸까요?]
전화를 받은 직원도 놀랐을 텐데 응대는 적절했다.
[맞습니다. 센터장과 직접 통화할 수 있는 번호를 알려 주면 센터장에게 전화를 걸겠습니다.]
[저, 잠시 후에 다시 전화를 걸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임의로 알려 드릴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제가 센터장님 번호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요. 5분 정도 후에 전화를 주시면 그사이에 번호를 알아 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겠습니다.]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고 센터장은 전화가 걸려 오기를 기다리면서 S급 에스퍼들에게 먼저 연락을 한 거라고 했다.
“얼마나 지났습니까?”
센터장은 시간을 확인하고 이십 분이 훨씬 더 지난 것 같다고 했다.
“전화 건 곳이 어디였는지는 알아냈습니까?”
“확인했는데 미등록 에스퍼인 것 같다고 합니다. 위치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미등록 에스퍼는 오랫동안 센터의 골치였다.
그들은 센터에 등록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다니며 일반인을 상대로 범죄 행위를 저지르기도 하고 길드를 조직하기도 하는데 위험한 던전이 나오면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라 센터에서는 그들에게 강하게 대응을 하지도 못하고 엇나간 자식을 다루듯이 해 오고 있었다.
“그럼 차윤은 뭐죠? 차윤이 데리고 있는 게 아닌가요?”
“장난 전화는 아닐까요?”
변태영과 견인이 묻는 동안 센터장은 확실하게 답을 하지 못했다.
“오리진의 센터장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리진의 센트럴에 이 내용을 방송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요.”
이하민의 말에 S급 에스퍼들과 센터장 모두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을 자극하는 게 되지 않을까요?”
특히나 센터장은 이하민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건 거짓말일 겁니다. 정신계가 아닌 한 은우를 잡아 둘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다른 국가의 S급 에스퍼가 왔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S급 에스퍼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S급 에스퍼들의 얼굴에 딱 그 정도의 의구심이 깃들었다.
그러나 지금껏 서은우와 수도 없이 훈련을 하며 그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하민은 그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 주세요, 센터장님. 나머지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은우가 왜 그랬냐고 하면 제가 미안하다고 할게요. 그리고 사과를 받아 낼게요.”
그 말을 들은 S급 에스퍼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제 생각에는 차윤이 은우와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안정제를 노리고 이런 일을 벌인 것을 알면 차윤이 나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누군가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하는 걸 알면 가만 있지 않을 성격인 것 같아서요.”
S급 에스퍼들은 설마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들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이 이하민이 그들을 보며 웃었다.
“에스퍼님들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무슨 이유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뭔가 일을 벌였어요. 그런데 다른 놈이 나타나서 그 짓을 한 게 자기라고 하면서 대가를 요구해요. 가만히 계실 거예요?”
“절대 가만 있지 않지. 그런데 차윤은 가만 있을 수도 있어. 정말 가늠이 안 되는 놈이거든.”
견인이 고개를 저어 대며 말했다.
왜 하필 차윤인 건가 하는 표정이었다.
이 일을 벌인 게 차윤만 아니었어도 벌써 실마리를 얻고 문제를 풀 수 있었을 거라고 그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가만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닐 수도 있죠. 어차피 우리는 잃을 게 없어요. 그놈들은 은우를 데리고 있지 않거든요.”
이하민이 다시 한번 강하게 말하자 센터장이 S급 에스퍼들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센터장은 그것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오리진의 에스퍼들을 이용해서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기도 어려울 터였다.
S급 에스퍼들은 꽤 오랫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하민의 말이 맞다면 그렇게 해도 되겠지만 만에 하나 그게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서은우가 다른 사람들에게 붙잡힌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서로 그런 눈빛을 열심히 주고받던 S급 에스퍼들에게서 끙끙거리는 소리만이 길게 이어졌다.
그러자 이하민이 센터장에게 말했다.
“전화하세요. 오리진의 센터장에게요. 그리고 파일을 보내세요. 센트럴의 모든 방송사에 즉각 속보로 내보내라고 하세요. 거절하는 곳이 있으면 그 명단을 우리 쪽으로 보내라는 말도 전하세요. 거절하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피하는 게 좋을 거라는 말도 잊지 마십시오. 오늘 건물이 완파될 거라는 말과 함께요.”
그 말을 하는 이하민의 얼굴에 표정은 전혀 없었다.
센터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S급 에스퍼들도 더 이상은 이하민을 막지 못했다.
“그래. 우리가 서은우를 아무리 잘 안다고 해도 이하민만큼 알지는 못하지. 우리가 아무리 서은우를 걱정한다고 해도 이하민만큼은 아닐 거야. 그래. 그렇게 하는 게 낫겠어. 거절하는 곳이 나오면 좋겠다. 참기만 하는 거 너무 적성에 안 맞아서 뭐 좀 때려 부수면 좋겠거든.”
견인이 말하자 변태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불태우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센터장의 전화를 받은 오리진의 센터장은 즉각 그 말을 수용했고 센트럴의 모든 매체가 방송을 일제히 중단하고 관련 내용을 내보냈던 것이다.
***
생필품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차윤은 그날 그 방송을 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오래 오두막에 머물 계획이 아니었기에 준비가 부족했다.
먹을 것도 떨어졌고 필요한 것들이 계속 생겼다.
그는 서은우에게 자고 있으라고 해 두고 밖으로 나왔다.
정신계 S급 에스퍼라고 해도 일반인에 비하면 신체 능력이 월등했다.
귀찮아서 안 할 뿐이지 작정을 하고 달리면 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마을로 나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나온 김에 그는 모터바이크라도 하나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필요한 물건을 골라 그대로 가게를 나왔다.
직원들은 그가 물건을 고르고 나가는 동안 전혀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유유히 나가던 차윤이 길거리에서 우뚝 멈췄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식당 앞이었는데 식당 안에 있는 구식 텔레비전에서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서은우 에스퍼의 석방 대가로 C급 가이드 안정제를 요구하는 납치범에 대한 소식이었다.
멍하니 자막을 보던 그가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윤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속보를 보았다.
‘뭐? 서은우를 데리고 있어? 돌려받으려면 안정제를 내놔? 저 새끼들이!’
차윤의 눈썹이 짜증스러움으로 꿈틀거렸다.
그는 식사를 하고 있던 이에게 다가갔다.
“차 키 줘.”
식사를 하던 남자는 별말도 없이 차 키를 내주었다.
“차 어디에 뒀어.”
“건물 옆에 있는 흰 차가 제 차입니다.”
허공을 보는 눈은 이지가 없이 흐릿했다.
식당 안의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밖으로 나온 그는 흰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아…….”
식당에 짐을 두고 온 게 생각나서 돌아가 짐을 가져오고 그대로 오두막을 향했다.
누군가 그의 행태를 본다면 아무리 S급 에스퍼라고 해도 이 정도로 능력을 사용하고 다니면 지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차윤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의 1할도 개방하지 않고 있었다.
오두막으로 돌아가자 서은우가 마치 죽은 것처럼 자고 있었다.
“일어나 봐, 서은우. 같이 갈 데가 있어. 우선은 식사 먼저 하고.”
서은우는 멍하니 일어났다.
멍한 모습의 그를 보는 건 유쾌하지 않았다.
서은우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와 함께 있는 게 좋았지만 그런 인형 같은 모습으로 곁에 두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욕심이 생겼고 서은우를 설득해 옆에 계속 머물게 할 방법은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요 근래 부쩍 늘었다.
잠시 고민하던 차윤이 말했다.
“떠나면 안 돼. 너는 언제나 내 옆에 있어야 해.”
그러고는 최면을 풀었다.
그것은 그동안 차윤이 사용했던 것 중에 가장 강한 언령이었다.
정신을 차린 서은우는 짜증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차윤에게 시선을 다 돌리지도 않고 그의 얼굴에 주먹을 정통으로 날렸다.
막거나 피할 새도 없었다.
다시 손가락을 비틀어 소리를 낼 틈도 없이 서은우의 주먹과 발길질이 연달아 이어졌다.
“죽어 버려, 이 새끼야!”
차윤은 정신없이 맞으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이럴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때리지 말라는 말을 미리 해 두지 않았다.
너무 굴욕적이고 미치게 아픈데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실컷 웃어라, 개새끼야!”
“그만 좀 해!”
결국 차윤은 다시 최면을 걸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서은우도 멍하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손가락을 비틀어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발로 손가락을 짓이겨 버렸던 것이다.
“으으아아악!!”
소름 끼치는 비명을 들으며 서은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듣기 좋네.”
그러고는 누워 있는 차윤의 앞에 쭈그려 앉아 그의 손을 잡았다.
차윤은 서은우가 그래도 자기를 걱정해 주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오산이었다.
서은우는 손에 쥔 차윤의 손가락을 하나씩 부러뜨렸다.
“끄으으으아아아악!!”
오두막에 그의 비명이 끝도 없이 울려 퍼졌다.
서은우는 기분이 풀릴 때까지 차윤을 걷어차고 짓밟았다.
두 시간 정도 그렇게 하고 나니 기분이 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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