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그렇지 않아도 강했는데 극성의 능력을 끌어냈다.
잘생긴 차윤의 얼굴은 이제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곤죽이 되어 있었다.
그 얼굴로도 웃는 것을 보며 서은우는 그가 미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아…… 힘을 너무 썼더니 배고프네.”
그러나 차윤의 옆에서는 조금도 더 있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밖으로 나가려 했다.
스마트폰도 없어서 전화를 걸 수도 없어 더 서둘렀다.
그런데 문까지 다가가고도 문을 열지 못했다.
그냥 손잡이를 돌리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그 의지가 영 생기지를 않았다.
‘……뭐지? 왜 이러지?’
돌아가야 하는데 문을 열려고 하는 그 순간만큼은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너냐?”
서은우가 물으며 돌아섰다.
그러자 기괴한 모습으로 멍들고 피투성이가 된 차윤이 씨익 웃었다.
“착하네. 이제는 나를 때리지 않는 거야. 알았지?”
꼭 손가락을 비틀지 않아도 순간적으로 집중할 수 있게 소리를 내면 되는 거였고 그는 그러려고 했다.
그러나 S급 신체 강화자의 속도는 그의 상상을 가뿐히 넘어섰다.
“팔을 부러뜨리는 게 낫겠네. 그렇지?”
끄으으아아아악-!!!!
차윤의 비명이 다시 한번 오두막을 뒤흔들었다.
***
이하민은 이제 자기가 S급 에스퍼들과 함께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는 건지 의문을 품었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고 그는 결국 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꺼냈다.
“이제 각자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센터에 있는다고 해도 정보가 모이는 것도 아니고 밖에 나가서 은우를 찾아도 저에게 연락을 할 수 있으니까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연락해 주세요.”
그대로 그곳에 마냥 있으면서 기다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 이하민에게 견인이 말했다.
“서은우 에스퍼를 찾고 싶어서 그런 거면 특임대를 데리고 가. 센터장한테 말할 테니까. 특임대에 쓸 만한 인원이 꽤 있어. 이하민이라면 어떤 사람이 그 일에 적합하고 유능한지 알아낼 수 있을 거야. 데리고 가. 혼자 움직이는 것보다 나을 거야.”
이하민은 그 말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뒷일은 맡아 주세요.”
“그래. 센터장에게 말하는 건 일도 아니니까.”
서은우를 데리고 있다면서 안정제를 요구한 자들은 다시 연락을 해 왔다.
이번에도 위치는 추적되지 않았다.
에스퍼들이 나타나고 생겨난 일이었다.
전에는 그런 일이 생겨도 어디에서 연락을 한 건지 알아낼 수 있었다고 하던데 에스퍼의 등장으로 그런 기술은 오히려 퇴보를 보였다.
기술적으로 할 수 있었던 일을 에스퍼가 방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위치를 추적하는 것에 실패하고 센터에서는 S급 에스퍼들과 이하민, 그리고 특임대를 내세워 가이드 안정제를 가지고 나오라고 한 곳을 첩첩이 에워쌌지만 약속 장소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와서 그런 거라며 서은우를 죽이고 싶은 거냐는 전화를 받았을 뿐.
전화를 걸어 온 자들은 자기들이 서은우를 데리고 있는 것을 알게 해 주겠다며 손가락을 보내왔다.
그걸 본 센터의 관계자들은 사색이 되었고 S급 에스퍼들조차도 그게 서은우의 것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이하민은 그걸 보고 마음을 놓았다.
S급 에스퍼들은 가장 걱정했던 이하민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가 한계에 이르는 바람에 이제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도 못하는 건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하민은 서은우의 손가락이라는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가짜예요. 에스퍼가 한 짓인 것 같아요. 이 정도로 해내려면 보통 등급은 아니고 A급은 됐을 것 같은데. 카피예요. 우리나라에 이 정도 능력을 가진 에스퍼는 없는 거로 아는데 다른 나라에서 들어왔나 보네요. 다국적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고물이 있을까 하고 왔는지도 모르고요.”
이하민은 자기가 한 말을 증명하기 위해 에스퍼들 몇 사람을 불렀다.
에스퍼의 능력을 도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하민이 한 말을 알아들었고 몇 가지 조작을 가한 후 그것이 진짜 사람의 손가락이 아니라 만들어 낸 것임을 알려 주었다.
다른 이들도 놀랐지만 S급 에스퍼들이야말로 이하민의 침착함에 충격을 받았다.
조금만 냉정하게 봤다면 S급 에스퍼들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은 서은우의 일이라서인지 거리를 두지 못했다.
완전히 몰입했고 감정적으로 사건을 대했다.
그런데 가장 감정적으로 격해져야 했을 것 같은 이하민은 그런 상황에서 점점 냉정을 회복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던 것인데 이하민은 반드시 서은우를 찾겠다는 의지뿐만 아니라 일을 꾸민 자들을 찾아내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열의를 다지고 있었다.
“이하민이 달라졌어.”
변태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다른 두 명의 S급 에스퍼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안정제를 요구한 자들이 서은우를 데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좋아해야 하는 건지 싫어해야 하는 건지 그들은 알 수가 없었다.
이하민에게 들킨 것을 보면 그들은 생각만큼 주도면밀한 자들이 아닌 것 같고 그런 자들이 서은우를 데리고 있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그러면 다시 차윤인가?”
“그 새끼는 은우 씨를 데리고 대체 뭘 하는 거지? 은우 씨를 데려간 이유가 은우 씨를 이용해서 오리진을 강하게 만들려고 한 거 아니야? 던전을 공략하거나.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잖아. 센터로 돌아간 것도 아니고. 센터장이 숨기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견인의 말에 심우진이 대꾸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차윤이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차윤이 왜 서은우를 데려갔는지.
거기에서부터 막혀 버려서 생각을 진행해 가기가 힘들었다.
처음에는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다.
오리진에 나타나는 던전들.
그 던전이 공략되지 못한 채 개방되는 현실.
그것 때문에 서은우를 데려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게 이유라면 차윤은 어떻게든 센터장과 연락을 하고 센터와 접촉했어야 하는데 센터에서는 누구도 차윤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것은 S급 에스퍼들이 확인을 한 바였다.
대체 뭘까.
처음에는 그럴 생각으로 데려갔는데 갑자기 일이 복잡해져서 센터로 가지 못하고 서은우를 데리고 잠적한 건가?
지금으로서는 생각할 수 있는 게 그 정도였다.
혹시 그 새끼도 서은우에게 끌린 건가 하는 생각이 아주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생각만큼은 억지로 지우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감정적으로 극한에 내몰리고 있는데 그런 생각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이하민은 S급 에스퍼들과 헤어진 채 특임대로 갔다.
특임대에서 훈련을 하며 대기 중이던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하민을 보며 잠깐 놀랐지만 곧 일어나 그를 맞았다.
특임대장은 A급이었고 센터에서 S급 에스퍼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는 이하민에게 예를 갖췄다.
“에스퍼님.”
“몇 사람을 차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나와 함께 서은우 에스퍼를 찾아 주었으면 합니다. 견인 에스퍼님이 센터장님에게 허락을 받아 주기로 했는데 아직 정식으로 절차가 승인된 것은 아닙니다.”
이하민의 말에 특임대장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추천해도 되겠습니까.”
이하민은 고맙다고 했고 특임대장은 임무에 적합할 만한 사람들을 추천하며 그 이유까지 말해 주었다.
순식간에 네 명의 특임대원들이 차출되었다.
등급은 A급에서 B급으로 결코 낮지 않았고 스스로 자원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그들이 센터를 나서기 전에 센터장의 승인이 떨어졌고 이하민과 특임대원들이 탄 차량은 센터를 떠났다.
차가 센터를 떠난 지 이십 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뒷자리에 타고 있던 이하민은 자신의 디바이스가 울리는 것을 보았다.
센터에서 나올 때 견인에게서 연락을 받은 게 마지막이었다.
혹시 센터장의 지시에 변경이 생긴 건가 하며 그의 미간이 짜증스럽게 꿈틀거렸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억지로 참고 있는 거였기에 만약에 센터장이 한 번 더 상황을 뒤집으려고 한다면 그는 그것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차를 세우세요!”
이하민의 갑작스러운 말에 운전을 하던 특임대원이 차를 급히 세우기는 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으…… 은우야?”
그들은 이하민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했다.
디바이스에 대고 서은우를 부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하민에게 물을 필요도 없었다.
곧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야, 이하민. 여기 오리진 센트럴인데 나 데리러 와. 이 개새끼 내가 잡아 놨어. 주소 부른다. 메모할 수 있어?]
“그래. 할 수 있어. 말해, 은우야!”
[AH 트레미시 98002-2011 케이파. 들었으면 말해 봐.]
이하민의 입에서 구역명이 정확히 다시 나왔고 운전대를 잡은 특임대원은 그것을 네비게이션에 입력했다.
[너 어디야? 오는 데 얼마나 걸려?]
“43분 걸린다고 나옵니다. 15분 안에 가겠습니다.”
특임대원이 말하며 차를 출발시켰고 이하민이 대답했다.
“15분 안에 가. 조금만 기다려, 은우야.”
[그래. 빨리 와. 늦으면 내가 이 새끼 죽일 것 같거든. 왜 이 미친 짓거리를 했는지 듣기는 해야 하잖아. 참는 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하하하.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왜 이 미친 짓거리를 했는지 안 들어도 될 것 같거든. 참기 힘들면 죽여. 그래도 돼.”
[그래? 그래도 빨리 와.]
“그래. 그럴 거야.”
고마웠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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