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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63화 (63/137)

63화.

“아, 안 돼…… 안 돼. 안 돼……!!!”

이하민은 서은우를 보느라고 차윤은 보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그 꼴을 보게 됐다.

“…….”

그는 자기가 지금껏 누구를 걱정하고 있었던 건가 하면서 멍한 시선으로 그 모습을 보았다.

이건 살아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할 수밖에 없을 듯했다.

“은우야…….”

“야. 저것만 보고 함부로 동정하지 마. 저 새끼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데!”

그러나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차윤이 자기에게 어떻게 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주 오래 잔 기억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희한한 꿈을 꾸었다.

꿈에 누나를 만났다.

누나의 옆에서 누나가 쓴 소설을 읽었고 소설의 결말을 바꿨던 것 같았다.

‘아, 맞아! 그 미친 인간이 이하민을 죽이려고 했지. S급 에스퍼도. 나랑 서로 싸우다가 죽게 하려고 했었어! 이제 기억나네.’

짜증이 확 났다.

그런 인간을 그리워하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는 것이.

“아으!!”

“왜…… 왜 그래, 은우야?”

“아니야. 꿈 생각나서. 엄청 짜증 나는 꿈이라.”

이하민은 활짝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 꿈 생각이 난다고 소리 내며 짜증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서은우뿐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무사한 거 맞지? 다친 데 없는 거지?”

“응. 그런 거 같아.”

“그래. 언령부터 풀게 하자.”

그러자 서은우가 이하민을 막았다.

“너는 가까이 가지 마. 너는 S급 에스퍼가 아니라서 어떨지 몰라. 너도 나랑 비슷한 거잖아.”

“나한테도 전에 암시를 걸어 둔 적이 있었을까? 나는 가이드인데 왜?”

“그건 모르지만. 그래도 가지 마. 저거 음흉한 새끼야.”

서은우가 자신의 손을 잡으며 막는 것을 보며 이하민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그가 다시 돌아와서 자기를 지켜 주려고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하민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S급 에스퍼들이 오고 있으니 그 일은 S급 에스퍼들이 맡아 주면 될 거였다.

특임대는 자기들이 나서야 되는 게 아닌가 하다가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기에 어떤 상황인지 알아차렸던 것이다.

차윤에 대해서는 그동안 그들도 귀에 인이 박이게 들었기에 거리를 둔 채 차윤을 감시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채 오 분도 지나지 않아 S급 에스퍼들이 탄 차량이 그 자리에 도착했다.

바로 앞에 도착할 때까지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았고 달려 온 차는 엄청난 굉음을 내며 멈춰 섰다.

S급 에스퍼들이 어찌나 서둘렀는지 차가 멈추기도 전에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서은우!!”

변태영이 비명을 지르듯이 부르며 달려갔고 견인이 그 뒤를 따랐다.

변태영보다 조금 늦은 것 같았지만 서은우를 먼저 안은 건 견인이었다.

심우진 역시 차에서 내려 그에게 다가왔다.

서은우는 그들을 다시 봤다는 감격보다 S급 에스퍼를 만났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저 새끼가 저한테 암시를 걸었나 봐요. 저 새끼한테서 떨어지려고 하면 의지가 사라져요. 그것 먼저 해결 좀 해 주세요.”

서은우가 급하게 말하자 그를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감격하던 S급 에스퍼들의 얼굴이 즉시 바뀌었다.

그래도 서은우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차윤의 얼굴을 보면 그 감정이 조금 사그라들 만도 했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견인은 그 자리에서 염동력으로 차윤의 몸을 끌어왔고 차윤은 깃털처럼 날아와 견인의 손에 붙잡혔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느껴지는 끔찍한 통증에 벌벌 떨던 차윤은 저절로 터져 나오는 비명을 참을 길이 없었다.

“제, 제가……! 제가 그놈들을 잡아 드리겠습니다. 안정제를 요구하면서 서은우 에스퍼님을 데리고 있는 것처럼 했던 놈들 말입니다.”

차윤은 가까스로 말했고 견인은 그 말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야지. 어차피 하게 될 거야. 맞고 해도 되는 거거든. 네가 누구를 건드렸는지 똑똑히 알아야 할 거다. 그래야 다른 멍청한 것들이 교훈을 얻지.”

차윤의 말에 견인이 멈출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서은우는 겨우 안심했다.

견인은 차윤을 향한 화가 풀리지 않는 듯 그를 건물 벽에 내던졌는데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다.

서은우의 몸이 빙판 위에서 미끄러지는 것처럼 휙 날아갔던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했던 이하민과 S급 에스퍼는 다음 순간 상황을 파악했다.

“저, 저 개새끼……!!”

차윤에게서 떨어질 수 없더라는 서은우의 말이 이해되었던 것이다.

이하민은 차윤에게 가서 그의 몸을 걷어찼다.

“당장 은우에게 걸었던 암시 풀어! 암시를 완전히 풀어. 전에 걸었던 것까지 전부 다!”

차윤은 그 말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이어진 충격에 까무룩 정신을 잃었던 것이다.

***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얼굴 가득 싣고 윤이재가 나타났다.

왜 하필 자기에게 이런 일을 시키는 건가 해서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차윤의 가이딩.

서은우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윤이재는 짜증을 감추지 못했다.

서은우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윤이재만큼 좋아했던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서은우만 없으면 이하민이나 S급 에스퍼도 자기에게 의존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는 한껏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래도 상대가 워낙 대단한 서은우여서 곧 돌아오지 않을까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수많은 에스퍼들이 그의 수색 작전에 동원되고도 찾지 못하자 조금씩 희망이 커졌다.

그런데 결국, 특임대와 함께 간 이하민이 그를 찾아 버렸다.

그때부터 계속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호출이 왔다.

가이딩을 준비하라는 거였다.

며칠 전에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센터에 상주 가이드로 남기로 했다.

가장 잘나간다는 다국적 매니지먼트 회사보다는 못했지만 그만하면 계약 조건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계약서에는 상주와 비상주를 선택하는 항목 외에 가이딩 대상을 본인이 결정할지, 센터에서 정해 주는 에스퍼 누구든 가이딩할지 정하는 항목도 있었다.

당연히 센터에서 정해 주는 에스퍼를 누구든 가이딩하는 것이 보수가 높았고 가이드 본인이 결정하는 것에 비해 세 배나 되었다.

기본 보수가 적지 않았기에 그 보수의 세 배는 하급 에스퍼가 받는 돈에 버금갈 정도였다.

윤이재는 후자를 택했고 그 결과 지금 꼼짝없이 차윤의 가이딩을 하게 되었다.

S급 에스퍼들이 무서운 얼굴을 하고 그 자리에 있었다.

그들은 윤이재가 들어온 것을 보고도 아는 척을 하지 않은 채 계속 뭔가를 의논했다.

침대에는 괴수에게 끔찍하게 당한 것 같은 모습의 차윤이 있었다.

그동안 죽음을 앞둔 에스퍼도 수없이 봐 왔지만 지금처럼 끔찍한 몰골을 본 적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할 정도로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윤이재는 놀란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럴 필요도 없었다.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윤이재는 S급 에스퍼들이 도대체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그들을 보았다.

“가이딩하는 동안에도 여기에 있을 수는 없는 거잖아. 일단 방을 나가는 것도 안 되겠어?”

“해 봤는데 안 되는 거잖아. 떨어질 수 있는 거리가 이 미터 정도인 것 같아.”

“아오!!”

“그만해. 더 때리면 더 골치 아파져. 일단은 저 새끼를 깨어나게 해야 돼. 그렇게 해서 언령만 풀게 하면 끝나. 그다음에 죽이자.”

변태영과 견인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윤이재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진짜 애매하네. 그렇다고 둘이 최고도 가이딩을 하는 걸 옆에서 보고 있을 수도 없잖아요.”

심우진이 말하는 최고도 가이딩이라는 것은 차윤과의 섹스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침대를 문 앞에 끌어다 두고 우리는 복도에서 기다리는 거죠. 이 미터는 유지가 돼야 할 것 같으니까요.”

이하민이 말하자 서은우가 손뼉을 쳤다.

“그게 낫겠다. 그렇게 하면 되겠어.”

“그럼 되는 거네. 진작 생각 좀 해 내지 그랬냐, 이하민.”

견인이 말하더니 그대로 손을 들어 차윤이 누워 있는 침대를 옮겼다.

침대는 위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옮겨졌다.

“윤이재. 최대한 빨리 끝내. 꼭 살릴 필요도 없고 낫게 할 필요도 없어. 정신만 들게 하면 돼.”

변태영이 말하더니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가 버렸다.

윤이재는 기가 막혔다.

이하민은 애지중지하면서 자기는 뭐가 그렇게 다르다고 그러는 것인지.

그의 분노는 어느덧 서은우에게 향했다.

‘죽어 버리지! 죽어 버리지!!’

서은우만 없으면 이하민과 가깝게 지내고 제 손으로 주무를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 날부터 서은우가 이하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결국 지금에까지 이른 듯했다.

오래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 그거였다.

그만 아니었다면 이하민이 제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고 건방지게 굴 수는 없었을 텐데…….

‘일이 왜 이렇게 된 거지?’

어려울 게 없는 일이었다.

순조롭게 풀릴 일들.

그런데 그게 손에 다 닿은 것 같은 그 순간 매번 손끝에서 사라졌다.

이번만 해도 그랬다.

센터 연구팀에서 가이드 안정제를 만든다는 소문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다.

S급 에스퍼들이 갑자기 가이드 인권의 수호자처럼 나서며 뒤에서는 안정제를 만들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안정제.

그것은 가이드를 해방시켜 주는 것과 동시에 그들을 나락으로 몰고 갈 수도 있었다.

상급 가이드로서 센터에서 받는 처우에 크게 불만이 없던 윤이재에게는 안 좋은 점이 훨씬 더 많이 부각됐다.

그래도 안정제가 가이드를 대신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C급 가이드가 몸을 섞으며 가이딩을 했을 때 나타나는 효과가 안정제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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