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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64화 (64/137)

64화.

그 말을 한 것은 센터의 연구팀장이었다.

연구팀장은 윤이재가 센터 내에서 조금 더 높은 위치로 이동하기 위해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최근에 가이드에 대한 처우와 관련해 센터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아 무슨 일이 생기는 건지 알아보려고 가이드 팀장과 같이 있는 시간을 늘렸더니 자기에게 소홀하다고 생각했는지 연구팀장이 먼저 찾아와 그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멍청한 것들! 그 정보를 줬는데 돈을 못 받아 내?’

다국적 매니지먼트 회사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센터에서 갑자기 가이드들에게 자유로운 외출을 허락해서였는데 그 조치로 자기가 누구를 만나고 다녔는지, 그들과 무슨 일을 꾸몄는지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안정제를 받아 내서 팔면 그 돈의 반을 자기에게 주기로 했었다.

조금만 생각해도 그들이 그 약속을 지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겠지만 윤이재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결국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이제는 서은우까지 돌아와 버려 그 일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이렇게 된 이상 그들과 만났다는 사실은 누구도 모르게 해야 했다.

무슨 일로 S급 에스퍼들이 차윤을 깨어나게 하려는 건지 정확하게 이해된 것은 아니었지만 윤이재는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시간이 지나고 모두가 이 일에 대해 잊을 때가 되면 다시 전처럼 돌아가겠지만 지금은 조금 거리를 두는 게 안전할 것 같았다.

‘빨리 끝내 버리자.’

그런 생각으로 윤이재는 차윤이 누워 있는 침대로 향했다.

차윤은 잘생긴 남자였다.

거만하고 도도하고 한없이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사람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죽도록 얻어터지니 이렇게 부풀고 멍들고 온몸이 찢겼던 것이다.

입술도 형편없이 터져 있어서 점막 가이딩도 어려울 듯했다.

‘이래서는 흥분시키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그는 다시 한번 얼굴 가득 짜증을 담고 옷을 벗었다.

차윤의 옷도 벗겨야 했는데 피가 말라붙어서 옷이 제대로 벗겨지지도 않았다.

새삼스럽게 S급 에스퍼들에 대한 공포심이 밀려들었다.

S급 에스퍼들의 지분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차윤이 그렇게 된 것은 거의 서은우 때문이었는데 윤이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우선 두 손을 차윤의 몸 위에 얹고 자신의 힘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생기를 찾게 해 놓지 않으면 최소한의 가이딩조차 어려울 것 같았다.

이하민의 옆에서 비교되어 그런 것일 뿐, 그리고 S급 에스퍼들과의 매칭률이 높지 않은 것일 뿐 윤이재는 어찌 됐건 센터의 A급 가이드였고 이하민을 제외하고는 가장 뛰어난 가이딩 능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의 기운이 스며들어 가면서 차윤의 몸에 변화가 나타났다.

윤이재는 일이 뜻대로 되어 간다고 생각하며 긴장을 풀었다.

가이딩의 효과는 때때로 그까지 놀라게 만들었다.

자신이 가이드로 발현했을 때도 놀랐지만 가이딩을 하며, 자신의 힘 때문에 에스퍼가 나아가고 살아나는 것을 보면 경이로웠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부풀었던 얼굴이 가라앉고 서서히 멍이 사라졌다.

찢어졌던 부위가 아물었고 그의 잘생긴 얼굴이 평소처럼 돌아왔다.

외부의 상처를 되돌리는 것은 파장을 가라앉히는 것에 비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흘러나왔던 피는 그대로였지만 이제는 옷을 벗겨도 상처에 달라붙는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핏자국을 좀 닦아 낼까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갑자기 그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윤이재는 채윤이 눈도 뜨지 않은 채 자신의 손목을 낚아챈 것을 깨달았다.

“즐기라고 데려온 게 아닐 텐데?”

전에도 그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저에게 말을 한 것은 아니었고 다른 이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리는 소리를 멀리서 들었던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난 후 윤이재는 한동안 차윤을 생각했다.

우연을 가장해 그 곁을 얼쩡거리기도 했지만 그는 어떤 관심도 주지 않았다.

지금, 다시 그 목소리를 들으며 윤이재는 당치도 않게 흥분해 버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차윤이 먼저 알아차렸다.

먼저 옷을 벗고 있던 까닭에, 몸의 반응을 감출 길이 없었던 것이다.

굳이 그것을 감출 생각도 없기는 했다.

윤이재는 차윤이 이제 곧 눈을 뜨고 저를 바라볼 거라고 생각했다.

이하민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윤이재는 센터 수뇌부 여러 사람을 유혹하는 데 성공하며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차윤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비뚜름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웃을 뿐이었다.

차윤은 눈을 감고 윤이재의 입술을 벌렸다.

말캉한 혀가 들어와 입 안을 헤집고 입술을 베어 물었다.

그럴수록 윤이재의 몸은 계속해서 흥분이 되어 갔다.

이런 흥분감을 느껴 본 게 얼마 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이드가 흥분하면 가이딩의 효과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가이딩을 하는 동안 흥분이 쉽게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모멸감을 감출 수 없으면서도 동시에 흥분은 점점 극대화되고 있었다.

굳게 감긴 눈은 그가 자신과의 관계를 전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터였다.

그걸 알고 있는데도 몸이 왜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윤이재는 저도 모르게 차윤의 뺨을 어루만지려 했고 차윤은 눈을 뜨지도 않고 그 움직임을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윤이재의 손목을 쥐었다.

치열을 고르게 두드리고 입천장까지 농락하던 혀가 한참이나 더 입 안에 머물렀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아찔한 키스였다.

그것을 점막 가이딩이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들게 한 경험이 언제였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런 경험이 있기는 했을까?

있었다면 이렇게 까맣게 잊지는 않았겠지.

윤이재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그가 몸을 섞었던 수많은 에스퍼들은 윤이재에게 소리를 내달라고 부탁하곤 했었다.

그러나 윤이재는 그런 그들의 청을 가뿐하게 거절했다.

자기를 창부 취급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그런데 지금은 교성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러나 차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씨 받으러 온 게 아닐 텐데? 웬만하면 닥치지? 스스로 못 닥치겠으면 내가 목이라도 졸라 줄까? 나는 네 얼굴 같은 건 없어도 되는데. 목 없는 가이드랑 해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그가 눈을 떴다.

차윤의 눈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면 무슨 느낌일까.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했었지만 이런 말을, 이런 눈초리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말만 한 것은 아니었다는 듯이 그가 실제로 윤이재의 목을 졸라 왔다.

윤이재는 컥컥거리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저 장난이었다는 듯이 웃고 차윤이 윤이재의 어깨를 붙잡았다.

저를 달래 주려고 그러나 보다는 생각은 몇 초도 되지 않아 사라졌다.

그는 억세게 어깨를 쥐고 그대로 윤이재의 몸을 돌렸다.

바닥에 엎드린 자세가 된 윤이재는 차윤의 무릎이 제 다리 사이로 들어와 함부로 벌리는 것을 느꼈다.

“무릎 세워. 바짝 엎드리고. 일일이 말을 해야 하나?”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흘렀다.

몸은 곧 다가올 자극에 대한 기대감으로 말할 수 없이 뜨거워져 있었다.

낭창한 허리에 두 손이 닿았다.

그런 채로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그가 들어왔다.

등을 쓸어 올리던 손이 머리로 올라왔다.

머리카락을 억세게 쥐는 손가락이 두피에서 느껴졌다.

S급 정신계 에스퍼가 어떤 징후도 없이 저의 기억을 훑고 있다는 것을 윤이재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에스퍼도 아닌 고작 가이드.

게다가 차윤에 대한 호감으로 방어벽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윤이재는 차윤에게 열린 문이나 다름이 없었다.

차윤의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성과였다.

하잘것없는 윤이재는 제법 매칭률이 높았다.

그런 가이드가 저와 매칭률이 높다는 것이 짜증스러웠지만 덕분에 가이딩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의식을 잃고 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른 회복이었다.

어느새 그는 윤이재를 향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고 윤이재의 머릿속을 훑는 것까지 가능해졌다.

‘뭐야…….’

그는 윤이재가 벌인 짓을 알고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놈들을 어떻게 찾아낼까 고민이었는데 덕분에 일이 손쉽게 풀리게 생겼다.

그는 몇 번이나 몸을 풀었다.

이렇게까지 가이딩을 받으면 가이드는 며칠 동안, 어쩌면 몇 주, 혹은 한 달까지도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시간이 없었다.

곧 S급 에스퍼들이 들이닥치고 언령을 풀게 할 할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금부터는 모든 신경을 문밖에서 나는 소리에 기울였다.

그리고 문이 열리려는 순간 윤이재에게서 빠져나와 옷을 입지도 않고 창문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만약 약간의 변수가 아니었다면 그는 성공했을 것이다.

그가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을 때, 언령의 효과로 서은우 역시 그를 따라왔어야 했을 텐데 서은우는 전처럼 혼자가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던 이하민과 S급 에스퍼들은 언령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었고 차윤이 도망치려 할 거라는 것도 예측했다.

그래서 이하민은 내내 서은우를 안고 있었고 서은우도 이번에는 제 의지로 끝까지 저항했다.

S급 정신계 에스퍼의 언령에 저항하는 것은 온몸을 찢어발기는 고통을 안겼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않았다.

견인이 문짝을 뜯어내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던 차윤의 몸을 끌어다 복도에 내동댕이친 탓이었다.

“하아아아……. 죽을 뻔했네.”

서은우는 거칠게 숨을 토하며 말했다.

S급 에스퍼들은 서은우의 귀와 입에서 짙은 선혈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언령에 저항한 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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