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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66화 (66/137)

66화.

“저는 좋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나중에 수습하는 건 우리인데 센터장은 너무 무능해요. 오리진의 센터장은 자격이 없고요. 에스퍼님들이라면 그 일을 정말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센터에 S급 에스퍼가 네 명이나 있는데 A급이 센터장이라고 설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따지고 보면 센터가 이렇게 된 데에 S급 에스퍼님들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누나가 나타났던 꿈에서 (아직도 그게 꿈인지 아닌지 잘은 모르겠지만) 깨달은 게 너무 커서였다.

그때 일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곳으로 돌아간 후에 내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지금 이곳에서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갖지 못한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빨리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군대에 갔을 때 제대만 하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 것처럼 여기에서 품었던 마음 역시 그런 마음의 연장선일 뿐이었던 듯했다.

누나를 그리워했다는 건 역시나 말이 안 됐다.

누군가 지금 나에게 와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러지 말라고 할 것 같았다.

여기에서도 잘살고 있는데 왜?

그곳에 가면 나는 다시 현실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려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의 삶.

나쁘지 않다.

그러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하는 것이다.

S급 에스퍼들은 내가 왜 그렇게 의욕적으로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서로 바라보았다.

상당히 의심스러운 얼굴이었다.

내가 이런 얼굴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많이 의심스럽겠지.

이 인간들이 나하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제 나를 너무 잘 안다.

“생각해 보세요. 센터장, 가이드 팀장, 연구팀장…… 아. 연구팀장은 S급 에스퍼님들이 못 하나? 뭐. 특임대장도 그렇고 중요한 수뇌부는 S급 에스퍼님들이 다 할 수 있잖아요. 에스퍼님들이 훨씬 더 잘할 거예요.”

“연구팀장은 그냥 계속 시켜도 될 것 같기도 하고. 그건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 거니까.”

견인은 뜻밖의 지원을 얻은 것이 반가워서 어떻게든 그 불씨를 살리려고 하는 것 같았고 다른 S급 에스퍼들도 크게 반발하지는 않았다.

분위기가 좋았다.

‘그래. 이렇게 하면 돼.’

S급 에스퍼들에게 둘러싸인 S급 에스퍼의 삶.

이건 로또 1등에 연달아 다섯 번 정도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운이 좋은 걸걸?

일단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 이상 이 삶을 포기하거나 놓칠 수가 없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

변태영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만 하면 들어줄 것 같은 얼굴이었다.

“네. 더 이상은 센터장이나 수뇌부가 내리는 이상한 지시나 정책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요.”

“그게 이유라면 반박을 못 하지.”

견인이 심우진의 팔을 팔꿈치로 쿡 찌르며 말했다.

빨리 호응하라는 듯이.

심우진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나는 특임대장.”

심우진의 말에 이하민이 다급하게 말했다.

“에스퍼님. 특임대장 제가 하면 안 될까요? 제 능력이 특임대장이랑 딱 맞는 것 같아서요. 생각해 보세요. 특임대 개개인의 능력을 제가 증폭시켜 주면 얼마나 괜찮을 것 같은지요.”

듣고 보니 정말 이하민이야말로 그 일에 딱이었다.

“좋은데? 그러면 나는 센터장.”

변태영의 말에 견인이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은근히 센터장 노리고 있었나?

“견인 에스퍼님도 센터장 하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 다수결로 하죠, 다수결로.”

이거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은근히 싸움을 붙이며 말하자 견인이 나를 보고 웃었다.

“……왜요?”

“좋아서. 역시 서은우가 있어야 재미가 있어. 그러니까 앞으로는 납치당하지 마 서은우. S급 에스퍼의 체면이 있지 말이야. 이하민이 납치를 당했다면 내가 말을 안 하겠다.”

이하민은 정말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S급 에스퍼들은 그런 그를 희한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날, 이하민의 등급은 왜 측정 불가로 떴을까.

그리고 왜 다시 A등급이라고 떴던 걸까.

감히 연산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 측정 불가가 떴다가 인간의 수준으로 이해시키려고 적당하게 A급이 뜬 건 아니었을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미 그러지 않았던가.

“그러면 우리 이제 쿠데타를 해야 되는 거지?”

심우진이 기대된다는 듯이 말했고 나는 S급 에스퍼들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 스펙이면 무혈입성 가능한 것 아닌가?

“그런데 운이 좋은 게 한동안 던전이 안 나타난다는 거예요. 만약에 전처럼 던전이 계속 나타났으면 공략하느라고 바빠서 부조리가 눈에 들어와도 그걸 신경도 못 썼을 텐데 말이죠.”

“이하민 말이 맞아. 우리가 아니면 공략을 못 할 테니까 우리는 계속 던전에서 괴수랑 싸웠어야 했을 거고 그 사이에 센터장 같은 사람들은 뒤에서 배를 불릴 생각을 했겠지. 이제 와서 지난 얘기를 다시 하는 건 그렇지만 연구팀장이랑 연구원들은 자기들이 개발한 걸 계속 숨겼을 거고.”

변태영의 말을 들으며 나는 더욱더 이 일을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모두의 얼굴에 비슷한 의욕이 감돌았다.

“다 죽었어.”

견인이 신이 난 듯 말했고 마침내 우리는 센터로 향했다.

***

쿠데타는 필요도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 무혈입성이 이루어졌다.

처음에 센터장의 집무실로 가자 센터장은 우리가 무슨 생각으로 그곳에 왔는지 알지도 못한 채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소식을 들었습니다. 안정제를 노린 자들이 전부 처리됐다고 하더군요. 차윤 에스퍼가 그 일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 같아서 이 일은 이제 이 선에서 마무리를 하면 어떨까 합니다. 앞으로 던전은 계속 나올 테고 공조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걸 잊으면 안 되죠. 지금은 힘이 약하지만 토파즈도, 그리고 미등록 에스퍼들도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으니까요.”

센터장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차윤이 기여를 해요? 그렇죠. 차윤만큼 기여도가 큰 사람이 없죠. 그 새끼가 저를 납치하지 않았으면 토파즈가 그런 짓을 벌일 일도 없었을 테니까 당연히 기여도가 크죠. 공조요? 협력 관계 유지요? 그런 소리나 할 거면 센터장님은 왜 그 자리에 계십니까? 굉장히 버거워 보이는데 그냥 물러나는 게 돕는 일 아닐까요?”

갑자기 스팀이 빡 올라와서 여과 없이 말했더니 이하민이 내 손을 잡았다.

텐션을 조금 낮추라는 것 같았다.

쭉 잘 참다가 한 번씩 확 올라오는데 마침 센터장이 스위치를 올려 버린 것이다.

만약에 일이 잘 안됐으면 나는 지금도 차윤에게 붙잡힌 채로 멍하니 허공만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동안은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었던 건지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는데 차윤의 공격을 당한 토파즈의 에스퍼들을 보고 나니 제대로 파악이 되었다.

텅빈 눈동자.

이지를 상실한 표정.

인형도, 뭣도 아닌 얼굴로 차윤이 만들어 낸 환상을 보고 그 자식이 주입하고 명령한 것을 믿었을 테지.

그러다가 누나가 계획한 대로 이하민과 S급 에스퍼들을 공격하고 죽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뭐?

기여?

이하민이 걱정하는 것 같아서 참으려고 했다.

그런데 잘 안됐다.

센터장은 내 갑작스러운 말에 놀란 듯했고 허허 웃었다.

“서은우 에스퍼님이 이번 일로 충격을 많이 받은 모양입니다. 괜찮습니다. 내가 이해하도록 하지요. 아직 충격이 다 가시지 않아서 그런 거라는 거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간이 말을 계속 희한하게 하네?

“뭘 이해하는데요? 센터장님이 뭘 이해하는데요?”

다시 욱해서 소리치자 견인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자리에서 물러나세요. 한 시간이면 짐 빼는 데 충분할 것 같은데. 이 일의 시작, 당신입니다. 당신이 그 레스토랑에 수행원들을 데리고 나타나서 우리를 불러들이고 당신 들러리를 서게 하면서 이렇게 된 거라는 말입니다. 뭐. 당신만 잘못한 건 아니고 우리도 잘못 있어요. 당신이 무능하다는 거, 부적격이라는 거 알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그냥 보고 넘겼으니까.”

센터장은 견인이 그런 말을 할 거라는 건 몰랐는지 상당히 충격을 받은 얼굴을 했다.

그러나 그대로 물러나지는 않고 제법 맞섰다.

“말을 안 하고 있다고 해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모르는 건 아닙니다, 견인 에스퍼님. 견인 에스퍼님이 오리진의 초기 단계부터 깊이 관여했다는 거 모두 알고 있습니다. 몇몇 에스퍼들을 충동하고 설득해서 같이 떠나려고 했다는 것도 알고 있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동안 말을 하지 않았죠.”

“그러게요. 말을 안 했죠. 왜 안 했어요? 나 그거 되게 궁금하던데.”

그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듯 말했고 센터장은 그런 반응을 상상하지 못한 듯 움찔했다.

“쓸데없이 힘을 빼고 싶지는 않지만 꼭 그래야 하면 사양은 않겠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센터장님?”

언제나 우리 중 끝까지 정상적인 포지션을 유지하던 심우진의 말은 견인의 말보다 훨씬 더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것 같았다.

센터장은 S급 에스퍼 모두가 같은 뜻이라는 것을 알고 그때부터 긴장을 하는 듯했다.

“에, 에스퍼님들……. 그동안 같이 지내 오던 서은우 에스퍼님에게 일이 생겨 크게 충격을 받고…….”

변태영이 그에게 다가갔다.

“아뇨. 그래서 그런 게 아니고 센터장님이 얼마나 무능한지 이번에 확실하게 깨달은 거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센터장님이 던전 공략에 얼마나 크게 기여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그 일을 하도록 하세요. 다른 수뇌부도 그렇게 될 겁니다. 앞으로 현장에서 자주 보게 될 텐데 서로 친하게들 지내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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