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71화 (71/137)

71화.

센터의 행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응에는 불안이 섞여 있었다.

S급 에스퍼들이 행정을?

에스퍼의 능력은 전투에서 위력을 발할 뿐 그들이 S급 에스퍼라고 해서 일상의 다른 것까지 잘할 수는 없을 거라는 불신이 팽배했다.

S급 에스퍼들도 사람들의 생각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을 탐하려고 자리를 맡은 게 아니었다.

게이트가 생기는 던전은 휴화산처럼 언제든 다시 생길 수 있었다.

힘을 얻으려고 맡은 자리가 아니었기에 S급 에스퍼들은 초조할 것도 없었다.

오리진의 에스퍼들은 강도 높은 훈련에 참가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이제야말로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생각을 느끼고 있었다.

던전이 나타나도 자기들이 공략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가 강한 동료들과 같이 훈련을 받으며 나날이 자신감이 높아졌다.

센터가 굳건해지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고 싶어 하는 정재계 관료들이 S급 에스퍼들에게 만남을 청해 왔다.

그들은 센트럴의 중심이었고 S급 에스퍼들의 협조가 없으면 지지 기반을 유지해 나가기가 어려웠다.

S급 에스퍼들이 오리진을 사실상 폐쇄하면서 그들의 위신은 곤두박질쳤다.

돌아오지 않는 이들은 더 이상 지켜 주지 않겠다는 말에 사람들은 부리나케 원래의 센트럴로 돌아왔고, 돌아오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권력자들도 나중에는 별수 없이 그 대열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일단 돌아온 이상 그들은 다시 이전의 권력을 되찾고 싶어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S급 에스퍼들과의 연대가 불가피하다는 판단하에 이미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매번 S급 에스퍼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정말 끈질기네.”

훈련을 위해 훈련장에 모인 에스퍼들을 보면서 이하민이 중얼거렸다.

“너는 그런 말 하면 안 돼, 이하민. 너는 그나마 A급이라고 정말 연락 안 한 거거든. 나만 해도 아주 그냥.”

“언제까지 이럴까? 그 사람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던전이 나타나는 게 그 사람들한테는 별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나? 오늘도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한테 뭐라는 줄 알아? 대체 훈련 안 하는 날이 언제냐고 하더라?”

“뭐. 못 할 말 한 건 아니네.”

“자기들이 사는 곳에 던전이 나타나도 그럴까? 거기에서 나온 괴수가 삶의 터전을 망가뜨려도?”

“아직 우리 센트럴에서는 던전이 개방된 적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지.”

“아니. 저쪽으로 갔다가 돌아온 사람이 그 말을 한 거야.”

“아아.”

나는 더 이상 그 무리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고 이하민에게도 신경 쓰지 말라고 충고했다.

“은우 씨, 조용히 해 주겠어요? 이제부터 집중해야 해서요. 이하민 에스퍼. 준비하지?”

자상하게 말한 심우진이 이하민을 불렀다.

지금 시작될 훈련은 심우진의 능력으로 던전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내고 각각의 에스퍼들이 던전의 괴수를 직접 마주해 싸우는 훈련이었다.

옆에서 보면 허공에 대고 능력을 사용하는 것 같지만 그들은 환상과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었다.

이하민이 증폭 능력으로 심우진을 지원하고 가끔 내가 가서 그들을 직접 상대해 주었다.

이 훈련은 내가 개발해 낸 후에 반응이 좋아서 훈련에 참가하고 싶어 하는 에스퍼들이 점점 늘어 갔다.

그래서 하루에 두 번씩 나눠서 훈련을 시키고 있는데 그렇게 하고도 훈련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사람 수를 늘리면 시간 때우기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 세 번으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긴 한데 그렇게 하면 심우진의 부담이 가중될 것 같아서 고민 중이었다.

에스퍼들의 몸놀림은 확실히 빨라졌다.

그래서 훈련을 시키는 맛이 났다.

이렇게 열심히 하면 나도 더 가르쳐줄 수밖에 없었다.

정해진 시간보다 이십 분이나 더 하고 나서야 심우진은 심상을 거두었다.

에스퍼들은 땀으로 흠뻑 젖은 채 헐떡거렸다.

나는 각자에게 가서 부족한 부분이 뭔지 설명해 주었다.

“편한 부위만 사용해서 공격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당연히 편한 대로 하고 싶겠죠. 그런데 그 손이나 발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거잖아요. 그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지금보다 두 배 정도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해 보세요. 잘 안되면 나를 찾아오세요. 상대해 주겠습니다. 함께하다 보면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하는지 더 빨리 알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에스퍼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특히 눈에 띄던 몇 사람에게 얘기를 해 주고 나자 이하민이 기다리고 있다가 다가왔다.

“은우 너는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야.”

심우진도 기다리다가 훈련 일정을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는지 물었다.

“사람을 늘리면 훈련 효과가 떨어질 것 같고 여기서 훈련 횟수를 더 늘리면 내가 부담이 될 것 같고 말입니다.”

“확실히 에스퍼님의 훈련이 효과가 있기는 한데 말이죠.”

견인이나 변태영은 이럴 때 심우진만큼 효율적이지 못했다.

심우진은 그 말이 듣기 좋았겠지만 지금은 그런 말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는 것을 그도 알았을 것이다.

“방법을 찾아보죠. 우선은 지금처럼 하는 거로 하고요. 정 안 되면 다른 사람들은 각자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훈련을 하게 해야죠.”

할 수 없는 건 못 한다고 인정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숙소에 돌아가는데 차윤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내가 왜 차윤을 생각 못했을까.

“차윤이다!”

내 말의 뜻을 알아들은 사람은 없는 듯했다.

이하민과 심우진 모두 그를 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왜? 반가워, 은우야?”

이하민은 그렇게 묻기까지 했다.

“그럴 리가 없지. 그런데 차윤이면 우리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아아! 그렇군요. 정말 차윤이면 에스퍼들을 훈련시킬 수 있겠네요!”

심우진은 금방 알아차렸고 이하민도 탄성을 냈다.

“차윤!”

내가 큰 소리로 불렀지만 차윤은 알은 척도 하지 않고 걸음을 더욱 서둘렀다.

분명히 들은 것 같은데 내가 좋은 이유로 자기를 부르지는 않았을 거라고 확신하고 그러는 것 같았다.

정신계 S급 에스퍼.

진작 저 인간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나는 빠르게 달려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 씨!”

차윤이 고개를 푹 숙이고 낮게 중얼거렸다.

“왜 불렀는지 아는 것 같은데 한 팀 맡아요. 오늘 오후부터 시작하는 거로 하죠.”

그러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그렇게 나오시겠다? 그러면 내가 설명해 주면 되지?

“우리가 에스퍼들 훈련시키고 있는 거 알고 있죠? 심우진 에스퍼님이랑 이하민 에스퍼가 던전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서 에스퍼들에게 훈련시키고 있어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괴수를 미리 경험하게 해 주기도 하고 자주 나오던 괴수를 더욱 강해지게 해서 상대하는 법을 습득시키기도 하죠.”

“그래서요?”

“여기에 왔으면 밥값을 하라는 거죠. 여기에 있는 S급 에스퍼들은 전부 다 그렇게 해요.”

그는 그 부분에서 움찔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얘기를 왜 나한테 하죠?”

“S급 에스퍼는 기계가 증명해 주는 게 아니죠. 뻔한 말 하게 하지 말죠?”

“중요한 일로 센터장님을 뵈러 가는 길입니다.”

“네. 일 보고 오세요. 어차피 오래 걸리지 않을 거잖아요. 내뺀다고 빠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런 건 감을 잘 잡잖아요. 안 그래요?”

나는 훈련 책임을 맡고 있는 에스퍼를 불러 앞으로 차윤이 한 파트를 맡게 될 거라고 하고 차윤에게 배울 사람들을 신청받으라고 일러두었다.

차윤은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고 다시 한번 혼자 욕을 했다.

아. 되게 개운하네.

***

심우진과 차윤의 경쟁이 점점 과열되어 갈 쯤, 던전이 나타났다.

마치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엄청난 속도였고 나오는 던전의 위험도도 높았다.

만약 우리가 그사이에 미친 듯이 훈련에 매진하지 않았다면 자칫 센트럴의 존립이 어려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S급 에스퍼들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일을 잘 해냈다.

그들은 처음부터 돈이나 다른 것을 충분히 누려 왔고 그게 별 게 아니라는 것도 알 만큼 알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것에 탐을 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안달할 이유도 없었고 자신들이 빛나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 달라며 조바심 낼 필요도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저 던전과 괴수에 대해, 그리고 센터와 센트럴의 존립에 대해서만 생각했고 그 때문에 던전이 나타났을 때 거기에 대응하는 것이 빨랐다.

이번에 나타난 던전은 확실히 전에 나타나던 것들과 양상이 달라졌다.

던전이 나타나기 전에 징후가 생겼는데 깊고 그윽한 푸른 안개가 센트럴에 거의 일주일 동안 나타났다.

안개는 습도가 높았고 끈적한 점성마저 느껴졌다.

그동안 센트럴에 나타나던 안개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기에 사람들은 희한하다고 느꼈지만 그것이 새로운 던전이 나타날 징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전과 다른 일이 오랫동안 나타나는 것이라 S급 에스퍼들은 이하민과 나를 불러 그것에 대해 조사해 보라고 했다. 그때문에 나는 이하민과 함께 안개 낀 센트럴에 나가 본 적이 있었다.

안개에 푸른빛이 감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안개를 보며 이하민에게 그걸 물은 기억이 선명했다.

원래 안개가 푸른빛을 띠냐고.

그는 고개를 저었었다.

저런 안개는 처음 본다고 하면서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안개는 센트럴을 완전히 감싸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기는 했지만 크기를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커다란 괴수가 센트럴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