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그 느낌이 생경하고 끔찍해서 나도 모르게 이하민의 손을 꽉 잡았고 그는 내 손을 마주 잡아 주었다.
“괴수랑은 상관없는 걸까?”
이하민도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대답해 주었으면 했다.
어차피 그가 알 거라고 생각하고 물은 것은 아니니 적당한 말로 나를 안심시켜 주기를 바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여전히 내 손을 잡아 줄 뿐이었다.
이런 시대에 살면서 우리가 서로에게 해 줄 수 있는 위안은 그것뿐이었다.
서로에게 바라고 기대하는 것도 그 거짓된 위안뿐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하민을 바라보며 괜찮을 거라고 해 주었다.
내가 겁먹고 불안해하는 것만큼 그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그가 떨지 않도록, 어둠이 내리는 것을 내 등으로 가려 주고 아직 빛이 환하다고 말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녀석은 내가 왜 그 말을 한 건지 아는 듯 웃었다.
그날 우리는 오랫동안 푸른 안개에 싸인 센트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안개의 외부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고 생각해도 사실 우리는 그 안에 들어서 있었을 것이고 우리도 안개를 맞았을 터였다.
안개가 센트럴을 감싸고 있는 동안 센트럴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평소와 같은 거대한 계획도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센트럴은 지극히 평화로웠다.
새벽의 도시는 이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랬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잠시 아늑한 생각이 들어 이하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을 만큼 평화로운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그는 내 팔을 감싸고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돌아온 우리는 S급 에스퍼에게 제대로 보고를 하지 못했다.
알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S급 에스퍼들도 특별히 뭔가 기대한 게 있어서 물은 건 아니었는지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동안 안정제를 만드는데 열중하던 연구팀은 이제 푸른 안개에 대해 연구를 해 나갔다.
그들은 연구실을 떠나 센트럴로 향했고 일을 하는 시간도 안개가 나타나는 시간으로 옮겨졌다.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새롭게 나타난 푸른 안개가 던전과 관계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모두 했을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답을 알아내기 전에 던전이 나타났다.
그러니 그것이 푸른 안개와 연관이 있을지 확실한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충분히 의심은 해 볼 만한 상황이었다.
S급 에스퍼들은 자기들이 먼저 나가 봐야 한다고 했고 그런 그들을 나와 이하민이 막았다.
나는 우선 내가 가 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고 이하민은 자기가 가 보겠다고 했다.
S급 에스퍼들의 의지도 결코 약하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다섯이 함께 움직였다.
분명히 다섯이 나선 줄 알았는데 차에 오른 사람은 차윤까지 해서 여섯이었다.
역사적인 순간이 될지도 모르는데 자기가 빠질 수는 없었다고 하면서 차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저에게 쏠리는 것을 굳이 차단하려 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S급 에스퍼들이 이렇게 다 함께 움직여도 되는 겁니까? 달걀은 나눠 담으라는 말 못 들었어요?”
차윤은 애송이들을 보는 것처럼 말했고 우리 역시 애송이를 보듯이 그를 보았다.
“나보다 더 소중한 게 뭐가 있는데? 나 죽으면 다 끝나는 거야. 나한테 가족이 있어, 뭐가 있어?”
견인이 그렇게 말하자 차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센트럴을 지킨다는 센터장의 마음가짐이 그래도 되는 거예요?”
“차윤. 내가 너한테 그런 거 지적받을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견인은 차윤에게 그 말을 들은 것이 소름 끼치게 치욕스럽다는 듯 몸까지 떨어 가며 말했다.
다른 S급 에스퍼들은 차윤을 상대도 해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견인이 왜 일일이 차윤에게 대응을 해 주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그 생각을 조금 하기는 했다.
저러다가 정드는 거 아닌가 몰라,라고 이하민에게 조그맣게 말했는데 그걸 들었는지 두 사람이 동시에 노발대발했다.
하여간 귀는 밝아요.
가는 동안 나는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견인에게 말해 주었다.
“척후팀을 꾸려서 먼저 던전을 확인하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제부터 나타날 던전은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것과 다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요. 던전이 나타났다고 전처럼 에스퍼들을 아무렇게나 임의로 들여보내면 희생이 늘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내가 말하자 S급 에스퍼들도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가겠습니다.”
이하민은 이번에도 자기가 먼저 나섰다.
나는 이 녀석이 왜 이렇게 매번 먼저 나서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하민이 그러면 기분이 좀 나빴다.
이자식은 자기가 돌아오지 못할 때 내가 어떤 기분일지 몰라서 이러는 건가?
견인은 기다리는 가족이 없어서 상관없다고 하지만 이하민은 그러면 안 되는 게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그가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같이 갈 거지, 은우야?”
아아. 그 뜻이었어? 같이 가자고?
나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S급 에스퍼들은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일단 오늘은 다 같이 움직이면서 최대한 많은 던전을 확인해 보자고. 그러면 이번에 나타나는 던전의 수준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해.”
“그리고 뭐. 던전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사실 서은우랑 이하민 두 사람이 가면 공략은 거의 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하지.”
견인과 변태영이 말하는 동안 심우진은 조금 신중한 표정이었다.
“나는 큰 도움이 못 될 것 같아서 아쉽네요.”
심우진은 자신의 능력으로 에스퍼들을 훈련시키며 공헌이 컸으면서도 이럴 때 자기가 돕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했다.
심우진과 거의 포지션이 비슷하면서도 센터의 일은 자기가 혼자 다 하는 것 같다면서 늘 불만투성이인 차윤과는 정말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차윤을 볼 때마다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까지 다른 걸까 해서 신기하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솟구치곤 했다.
마침내 차량이 가장 가까이에 나타난 던전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던전 주위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전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 말을 하지 않은 채 바라보았는데 그냥 그것만으로도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모두가 같은 기분인 것 같았고 차윤마저도 그때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S급 에스퍼가 긴장하는 모습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들만큼은 언제나 강한 산성이자 거대한 성벽처럼 버텨 주기를 바랐는데 그 순간에는 S급 에스퍼들의 얼굴에서도 초조함이 느껴졌다.
던전을 바라보다가 견인이 우리를 돌아보았다.
“가 보자. 어차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잖아.”
S급 에스퍼들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이곳에 와서 S급 에스퍼들을 봤을 때만 해도 그들에게서 이런 기분을 느끼지는 못했는데 그사이에 그들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사이에 흐른 시간은 그렇게 긴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시간을 들여 그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에게 소중해져 있었다.
앞서 걸어가던 심우진이 그것을 느꼈는지 나를 돌아보았다.
어색하기는 했지만 이미 눈이 마주친 후라 갑자기 고개를 돌려 버리는 것도 어색해서 멍하니 그를 보았더니 그가 웃었다.
걱정할 것 없다는 듯한 얼굴을 보면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게 해 주고 싶었다.
오늘과 같은 내일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괜찮다고, 아직 좀 더 자도 된다고 말하며 이불을 덮어 주고 그들의 가슴을 토닥거려 주고 싶었다.
그들이 평안했으면 좋겠다.
나는 어느덧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걸음을 옮기다가 우리는 일제히 그 자리에 멈췄다.
그것을 봤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모두의 행동으로, 내가 본 것을 그들도 봤다는 사실을 알 수밖에 없었다.
던전의 색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차윤을 의심했다.
혹시 그가 헛짓을 해서 그렇게 보이게 하는 것은 아닌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차윤도 다른 사람들처럼 긴장한 듯 보였고 그 모습이야말로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다시 던전을 보았다.
던전은 점점 투명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을 두고 서서히 변하는 그것을 보며 우리는 조급함을 느꼈다.
그렇게 된 후에는 어떤 결과가 기다리는 건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기다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요.”
나는 말을 하면서 이미 달리고 있었고 S급 에스퍼들도 나와 함께 움직였다.
지금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 건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멍하니 보고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던전으로 들어간 우리는 그 안에서 포효하며 날뛰는 괴수를 발견했다.
이전에 던전에서 나타나던 괴수들보다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그동안 강해진 것은 괴수만은 아니었다.
우리 역시 달라지고 강해졌다.
우리는 작전을 세울 새도 없이 괴수를 공격했다.
철저하게 죽인다는 생각도 없었다.
던전의 공략.
빠르고 정확하게 마친 후에 이곳을 나간다는 생각뿐.
우리에게 이곳은 유일한 공략 대상이 아니었다.
함께 나타난 던전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아직 방치되어 있었다.
우리가 가지 않으면 다른 에스퍼들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그들이 희생 없이 던전을 공략할 수 있을 거라고 안심하며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가 하나라도 더 공략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각자가 최대의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면서도 지극히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한 사람의 공격으로 괴수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으면 우리는 기다렸다.
힘을 아끼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각자가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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