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혹시 반발이 심할까?”
변태영의 말에 우리는 나란히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해야죠. 우리가 그 사람들 안전하게 살라고 목숨 바쳐서 공략하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에스퍼라고 혜택은 다 받으면서 공헌하는 건 하나도 없잖아요. 에스퍼라서 세금은 5퍼센트일 텐데.”
에스퍼는 사회에 대한 기여도 때문에 5퍼센트의 세율을 적용받고 일반인은 15퍼센트의 세율을 적용받았다.
가이드도 차등 없이 15퍼센트의 세율을 적용받았는데 생각이 난 김에 센터 소속의 가이드들의 세율도 바꿔야 하지 않냐고 말하자 변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논의를 해 보기는 해야겠네. 우리가 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자고 하면 정부 관료도 무시하지는 못할 거야. 이 문제도 그렇게 처리하면 되겠군. 만약 토파즈에서 우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세율을 높이겠다고 하는 거야.”
“센트럴에서 쫓아낸다면서요.”
“아…… 맞다. 그랬지. 그냥 세금만 올려 받을까?”
“그럴 거면 벌금을 물리는 게 낫지 않아요?”
변태영은 좋은 생각이라고 하더니 갑자기 나를 바라보았다.
“서은우. 지금부터 입 다물어. 여기에서 더 이상 아이디어를 내면 안 돼. 지금은 현안을 처리하는 것만 해도 복잡한데 서은우랑 같이 있으면 금방 다른 일이 확 불어나. 이하민. 빨리 서은우 데리고 돌아가.”
그러더니 내가 더 말을 할 것 같았는지 자기가 먼저 일어나서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토파즈는 그렇게 처리될 것 같고. 그러면 나는 미등록 에스퍼들 찾을 방법을 알아봐야겠다. 은우 너는 뭐할 거야?”
“그럼 나는 S급 에스퍼들 파장 관리나 할게.”
“그래. 그러면 저녁에 보자. 늦지 말고 와.”
처음에 녀석과 얘기를 나눈 게 식당이었고 그날 나눈 얘기가 앞으로 식사는 함께하자는 말이어서 그런 건지, 그때의 약속이 엄청나게 잘 지켜지고 있었다.
S급 에스퍼들을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끝까지 얼굴 보기가 어려워질 것 같아 나는 견인과 심우진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견인은 장시간 이어지는 회의를 주재하고 있어서 회의실에 들어가 그의 옆에 조용히 앉아 등에 손을 대고 가이딩을 해 주었다.
말도 없이 들어간 거였지만 내가 그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견인도 처음에만 내가 뭘 하는 건가 했을 뿐 그 후에는 편안히 받아들였다.
가이딩을 하면서야 견인이 상당히 지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장이 불안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심신이 지친 상태였던 것이다.
에스퍼라서 그 정도는 자신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도 능력이 사용되었다.
가이딩을 마치고 일어나자 견인이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 한마디를 나눌 시간도 없었지만 오고 가는 눈빛으로 충분했다.
심우진은 더 바빴는데 각각의 던전 공략을 위해 꾸려진 팀에게 심상을 만들어 전술을 숙지시키고 있었다.
에스퍼들은 전에 나오던 던전들과 다를 거라는 사실 때문에 긴장을 많이 한 듯했고 심우진은 그런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더 많은 심력을 소모하는 중이었다.
“이제 그만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잠깐 저 좀 보세요, 에스퍼님.”
심우진은 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나를 따라왔다.
“파장이 불안정해요. 지금 능력을 너무 많이 사용하고 계시네요.”
“그래요? 좀 힘들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아직은 버틸 만해서.”
“안으로 들어가시죠.”
“가이딩하려고요? 본격적으로 해야 돼요?”
심우진은 조금 놀란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놀란 게 아니라 자기가 그 상태가 되도록 몰랐다는 것에 놀란 모습이었다.
그는 에스퍼들에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컨디션을 끌어 올릴 정도로 훈련을 하라고 말해 두고 나를 따라왔다.
그의 집무실에는 가구가 많지 않았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디오 세트와 곳곳에 위치한 스피커였다.
“가이딩을 받는 동안 음악을 들으셔도 돼요.”
“꼭 안 그래도 상관은 없어요.”
막상 폐쇄된 공간에 둘만 남게 되자 그는 어색해하는 듯했다.
그러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심우진이 능력을 과도하게 썼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생각한 것보다 더 심각한 상태였다.
“어디까지…….”
그는 가이딩의 수위를 물으려고 한 것 같았는데 막상 그 말을 묻고 나니 어색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벗으셔야겠는데요.”
“어…….”
그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정말 웃기는 일이었다.
지금껏 이곳의 S급 에스퍼들이 이런 종류의 가이딩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지극히 극소수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나도 이들을 오해했다. 만약 이하민의 가이딩을 보지 못했거나, 변태영에게서 얘기를 직접 듣지 않았다면 그 후로도 한동안 S급 에스퍼들 역시 밀접한 신체 접촉을 동반한 가이딩을 받아 왔다고 믿었을 것이다.
“…….”
심우진의 얼굴은 끝도 모른 채 붉어지고 있었다.
놔두면 어디까지 붉어질지 알 수 없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키스는 할 줄 알죠?”
분위기를 좀 가라앉혀 보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말했는데 잘못 말한 것 같았다.
얼굴이 더 불타올랐던 것이다.
“그냥 빨리 끝내는 게 나아요. 그거 아세요? 오히려 지금 더 파장이 날뛰고 있다는 거요.”
“그러게요. 정말 그런 것 같네요. 이거 몸에 너무 해로워요. 그러니까…… 가이딩요.”
심우진이 말을 하더니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그러더니 계속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의지를 다잡는 것처럼 심호흡을 했다.
“아. 벗으라고 했죠.”
그러고는 훌러덩 셔츠를 벗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꽤 여유가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그러고 나오자 긴장이 됐다.
나도 벗기는 해야 하는데.
일단은 서로 상의를 탈의한 채 꼭 끌어안는 게 좋은데.
그러면서 주섬주섬 옷을 벗었다.
심우진은 나를 한 번 힐끔 보더니 계속 보는 게 민망했는지 슬금슬금 몸을 움직여 돌아섰다.
그의 구두코가 이제 완전히 옆을 향하고 있었다.
놔두면 날이 새도록 그가 먼저 나를 안는 일은 없을 것 같아 결국 내가 먼저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고 좀 더 다가가 끌어안았더니 그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 어…….”
그는 그렇게 한 게 미안했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거부한 것처럼 느껴지며 나에게 상처가 될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폭주할 수도 있겠는데요? 가이딩 과정이 긴장돼서 폭주하는 최초의 에스퍼로 기록될 수도 있겠어요.”
“안 되겠어요. 음악 틀게요.”
그가 리모컨을 찾으러 걸음을 옮겼고 나는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그냥 등을 기대고 팔을 걸친 채 앉아 있었던 것뿐이었는데 음악을 켜고 돌아선 그가 나를 보고 움찔했다.
거리는 몇 걸음 되지도 않았는데 그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오늘 안에는 도착하나?
“에스퍼님. 저 바쁘거든요.”
“아. 네…… 그, 그렇죠…….”
그는 지금 이 가이딩에 의미를 잔뜩 부여하는 사람은 자기뿐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는지 다시 또 얼굴을 붉혔다.
이러다가는 안 끝난다는 생각에 소파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 거침없이 입을 맞췄다.
“아, 하아……!”
그가 깜짝 놀라며 두 팔을 들어 올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입술을 탐했다.
어쩔 줄 모르는 혀를 감고 빨았다.
“우흐……!!”
그는 두 손으로 뭘 어째야 할지 모르는 것 같더니 결국 가만히 내 허리를 잡아 왔다.
그러더니 등을 천천히 쓰다듬다가 조금 후에는 훨씬 격정적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내 머리카락에 손을 넣고 손가락으로 헤집는가 싶더니 그대로 꽉 끌어안았다.
틈 없이 밀착된 몸.
손은 어느새 허리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바지는 입고 있는 상태였는데 옷 위로 쓰다듬던 손이 허리춤으로 올라오더니 그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이, 이것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에스퍼님.”
“확실해요?”
믿을 수 없이 매혹적인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의 가슴을 살짝 밀어 내며 말했다.
“네. 확실해요. 안정되고 있어요.”
“키스도 안 돼요?”
“점막 가이딩은 조금 더 해 줄 수 있어요.”
“키스죠?”
“점막 가이딩이죠.”
자기가 받은 솜사탕이 조금 작은 것 같다는 걸 알아차린 아이처럼, 작은 불만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알았어요. 계속하죠, 점막 가이딩.”
그 말이 어쩐지 엄청나게 의욕적으로 들렸다.
그리고 거침없이 입술을 겹쳐 왔다.
마치 입을 흡입해 버릴 것처럼 집요하게 빨던 그가 나를 놔주었을 때는 입술이 얼얼할 정도였다.
겨우 끝났나 보다고 생각했지만 오해였다.
그는 숨이 모자라서 잠시 숨을 쉬려고 그런 것이었을 뿐, 그것은 긴 긴 시간의 초반부에 불과했다.
나를 놔주면 이제 충분하다고 할까 봐 그런 거였는지 한동안 그는 나를 놔주지 않았다.
끝났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그 후로도 몇 분이나 계속되었다.
두 사람 모두 S급 에스퍼였지만 나는 신체 강화자였다.
그러니 힘으로 그를 밀어 내려고 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정도로 능력을 사용하면 그가 다칠 수밖에 없었고 심우진을 향해서 차마 그렇게까지 적의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
심우진은 영리하게 그 간극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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