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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79화 (79/137)

79화.

“오늘부터는 던전을 공략하지 않습니다. 공략하지 않은 던전이 개방되고 거기에서 나온 괴수들이 사람들을 공격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우리는 그 일에 우리의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는 동료들의 목숨을 구할 거고 그들과 함께 할 겁니다.”

견인의 말에 에스퍼들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기적이고 악당같이 들린 듯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은 여기에 남아서 던전을 공략해도 됩니다. 살아남은 후에 센트럴에 온다고 해도 받아 주겠습니다.”

“도와주지는…… 않으신다는 거지요?”

에스퍼들은 난감하다는 듯이 물었고 S급 에스퍼들은 정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에스퍼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S급 에스퍼가 아니라고 해도 그들끼리 힘을 합치면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은 많이 있었다.

공략할 가능성은 높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이 일에 끝이 없다는 것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오늘 있는 던전을 전부 다 없애고 내일 떠나기로 마음먹는다고 해도 내일이 되면 새로운 던전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게 영영 발이 묶일 거라는 것을 깨달았을 터였다.

“우리는 오늘 이파네마로 갑니다.”

견인의 말에 사람들은 무슨 말인가 하는 듯이 그를 보았고 그 말을 알아들은 우리만 웃음을 지었다.

견인이 어렸을 때 가족들과 가 봤다던 이파네마 해변이 그에게는 오랫동안 꿈의 휴양지로 남아 있어 그는 언젠가 이놈의 던전이 다 사라지면 꼭 그곳에 갈 거라고 별러 왔었다.

“가족들도 함께 가도 될까요, 에스퍼님? 친구들 중에 같이 간다는 사람들이 있으면 같이 가도 될까요?”

몇몇 사람들이 다급히 물었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삶을 멈추고 우리와 함께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거절하지 않기로 미리 얘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그렇게

이파네마로 갔다.

***

새로운 터전.

우리가 오리진 센트럴에 온 것은 오리진에서 처리했어야 할 던전이 처리되지 않아 그곳을 공략하러 온 이후 오랜만이었다.

“공략하러 온 이후 처음이네요.”

내가 말하자 S급 에스퍼들과 이하민이 거의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왜……요?”

“그사이에 잊어버린 거야? 납치돼서 여기에 왔었잖아.”

변태영의 말에 아아 하고 탄성을 내며 차윤을 확 노려보았더니 차윤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 나를 모르는 척했다.

나를 납치한 사람과 동료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근래 차윤의 활약이 너무 커서 이제는 차윤이 없는 센터를 생각하기도 힘들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S급 에스퍼들은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걸 싫어했는데 가만 보니 차윤이 그런 걸 잘하고 좋아하기도 해서 우리로서는 차윤이 아주 고마웠다.

새로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았지만 바닥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니라 최악은 면했다.

얼마 전까지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 도시의 기능을 다시 가동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에스퍼들은 새로운 센터의 지위 체계를 그대로 이어 가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했고 이곳에서도 견인이 센터장을 맡고 변태영과 심우진이 그를 도와 중요한 사항들을 같이 결정해 나가게 되었다.

이하민은 여기에서도 특임대장을 맡고 나는 훈련을 맡으며 남은 모든 직책은 차윤에게 떠넘겼다.

우리는 차윤이 귀찮아하면서 거절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는 감격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각자의 취향이 다르다는 게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차윤은 우리가 자기를 굉장히 신뢰하는 줄 아는 것 같았는데 그렇게라도 생각하면서 열심히 해 주면 좋을 듯했다.

“그러면. 일단 오늘은 놀고 내일부터 일하는 거로 하죠.”

심우진의 말에 우리는 모두 찬성이었는데 차윤은 바로 시작할 일이 있다면서 나갔다.

그건 더 좋은 소식이었다.

아무래도 차윤은 좀 불편하고 그랬으니까.

가만히 보니 다른 S급 에스퍼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상황실은 바로 준비가 돼야 할 텐데요.”

이하민의 말에 변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실이랑 연구팀이랑 몇 개 팀은 바로 일 시작했어. 그 사람들은 먼저 일하고 나중에 쉬면 되지.”

“네. 다행이네요. 이제 전처럼 미루지 않고 다들 자기들 일 찾아서 해서 잘됐어요.”

연구팀은 이전의 과오를 씻으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열심히 연구에 매달렸고 그들이 만들어 낸 안정제는 이제 B급 가이드의 점막 가이딩 수준에 이르렀다.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안정제를 만드는 데 에스퍼의 능력이 필요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개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연구에 성공하면서 자신감이 점점 더 붙는 것 같았다.

안정제가 만들어지면서 에스퍼들도 마음을 놓았고 가이드들도 전처럼 목숨을 걸며 가이딩을 할 필요는 없게 되어 모두에게 만족도가 높았다.

“저쪽 던전 상황 좀 보자. 이제 저쪽이 다시 베타가 되는 거네. 이번에야말로 이름이 제대로 된 것 같아.”

심우진이 텔레비전을 켜면서 말했고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자연스럽게 블랙피시에 채널을 맞췄는데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우리가 떠나고 사람들은 다시 오리진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니냐며 뒤늦게 우왕좌왕했다.

던전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토파즈에 강력하게 공략을 요구하는 사람도 늘어 갔다.

<센터>를 통해, 새로 나오는 던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제대로 알게 된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큰 공포를 느끼고 불안에 떠는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늦게 깨달은 걸까.

“저 사람들이 센트럴로 온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나에게는 완전히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센터에서 임시 정부를 구성해서 센트럴을 통제하기로 했어. 센트럴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소득의 40퍼센트를 세금으로 내는 것에 동의해야 하고 각종 부역에 응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해야 돼. 차윤이 만들어 놓은 게 있는데 서은우 에스퍼도 볼래?”

“아뇨. 그렇게까지 궁금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차윤 에스퍼 정말 대단하네요. 저라면 그런 것까지는 생각을 못 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 확실히 악당으로서 자질이 있는 것 같아. 당하고는 못 살 사람 같잖아. 그런데 지금까지 왜 우리 편에 서서 같이 호구처럼 굴었나 했더니 이때를 노린 것 같아. 지금은 이런 짓을 해도 우리가 그렇게까지 나쁘게 보이지 않잖아.”

내 말에 변태영이 대꾸했다.

빌런으로 태어난 사람.

아마도 차윤은 누나가 갑자기 분량을 채우느라고 급히 만들어 낸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그냥 단순한 엑스트라 정도로 만들려고 했다가 이야기에 살을 붙이면서 애정이 생겨 분량이 늘어난 캐릭터인지도 모른다.

“헛걸음 안 하게 미리 알려 주면 좋을 것 같긴 하네.”

심우진이 방송을 보며 말했고 견인은 그것도 이미 전해졌다고 알려 주었다.

일단 우리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차윤도 먼저 생각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여기에 온 게 베타 센트럴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거나 엿을 먹이려고 그런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하고 이곳에서 나올 던전에 대비하는 게 좋을 거야. 꼭 그 사람들이 괴수들에게 죽기를 바라서 두고 온 건 아니잖아.”

견인의 말에 침묵이 감돌았다.

쉽게 말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였다.

나도 견인의 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우리 목숨을 거는 게 싫어서 그런 거였지 그들이 죽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는 그들의 삶에 관여하지 않고 서로 모르는 사이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에게 들러붙기만 하는 사람들의 구원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무협 게임 세계에서의 삶을 청산했을 때 마음먹은 게 그거였으니까.

어쨌건 견인의 그 말로 우리는 슬금슬금 흩어졌다.

분명히 오늘 하루는 쉬기로 한 것 같은데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럴 수가 없었다.

“이하민. 에스퍼들 훈련하는 거 도와줄 수 있지? 잘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도와주면 좋겠는데.”

“네. 특임대가 한가할 시간이 길지 않을 것 같으니까 시간 있을 때 도와드리겠습니다.”

왜 나한테는 안 묻는가 해서 심우진을 보았다.

“제 도움은 안 필요하세요?”

“당연히 필요하죠. 그런데 은우 씨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안 물어본 거죠.”

“아아…… 저도 바쁠 수 있는데요?”

“안 됩니다. 은우 씨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커요. 은우 씨가 있으면 에스퍼들의 긴장감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은우 씨하고 같이 훈련하고 나면 던전에서 엄청 기민해져요.”

나는 심우진이 그걸 알아차린 게 기뻤다.

사실 에스퍼들이 심우진의 심상을 보고 훈련을 할 때 나는 매번 작은 소리를 내면서 다가가 공격을 하곤 했다.

작정을 하면 그 소리도 얼마든지 지울 수 있었지만 그들이 내가 내는 소리에 반응하도록 그렇게 하는 거였다.

일단 내가 말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심우진이 그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세심하게 계산하면서 훈련을 해 줘서 확실히 에스퍼들의 성장이 빠릅니다.”

웃지 않으려고 했는데 배시시 웃음 끝이 길어졌고 그걸 본 심우진과 이하민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좋아서 그런 건 아니고요.”

아. 왜 이러지?

그만 웃어야지 하는데도 웃음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결국 내 집무실을 봐야겠다면서 도망치듯 가 버렸고 뒤에서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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