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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80화 (80/137)

80화.

살인적인 세율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살던 센트럴을 떠나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 갔다.

던전은 계속 생겨났지만 공략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일어난 결과였다.

나는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토파즈 에스퍼에게는 이번이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거였는데 왜 나서지 않는 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주를 원하는 사람들은 차윤이 맡았다.

나는 그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차윤을 제외한 S급 에스퍼들은 나와 비슷하게 감정적인 면이 있었는데 차윤은 실익을 챙겼다.

돈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센트럴이 유지될 수 있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을 테니까.

바깥 상황은 좋지 않았고 여러 나라의 중요한 센트럴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왔다.

이제는 세계가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 같았다.

S급 에스퍼들은 다른 에스퍼의 훈련에 더욱 열을 올렸다.

안정제 개발에 큰 공을 세운 연구팀은 이제 상황실과 데이터를 공유하며 던전을 초기에 빠르게 발견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던전이 나타날 때의 징후를 연구하고 그런 징후가 나타난 곳을 미리 알아내는 방식이었다.

우리가 소회의실에 다시 모인 것은 그런 일련의 일들이 벌어지던 때였다.

이제 S급 에스퍼들을 따로 보는 것은 전처럼 쉽지 않았다.

전에는 그들과 같은 숙소를 사용했지만 이곳에서는 우리가 다 같이 지낼 만한 숙소가 없었다.

그렇다고 함께 지낼 곳을 마련하기 위해 건물을 새로 지을 만큼 상황이 여유롭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가능하면 식사 시간을 맞춰 식사라도 함께 하려고 했는데 각자가 맡은 일이 있다 보니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이하민과 같이 식사하는 횟수도 점점 줄어 가는 실정이었으니 다른 사람들은 말을 다 한 셈이었다.

자리에 모인 S급 에스퍼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새 던전의 징후가 나타났고 상황이 나빠요. 그나마 연구팀의 성과로 던전이 나타날 곳을 미리 알게 돼서 대응할 시간을 그만큼 벌기는 했지만 상황실의 보고에 따르면 이번 주에 새로 나타날 던전만 스무 개가 넘어요. 지금껏 이렇게 많은 던전이 한꺼번에 나타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문제는 던전에서 나타나는 괴수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연구팀에서 새로운 가설을 내놨습니다. 오늘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이라고 한 것은 그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서예요.”

회의는 변태영이 주관했고 우리는 긴장한 채 그의 말을 들었다.

던전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은 모두 느끼던 바였지만 일주일 안에 그렇게 많은 던전이 나올 거라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변태영은 연구팀장에게 설명을 이어 가 달라고 했고 연구팀장이 일어섰다.

“아직은 가설에 지나지 않지만 상당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최근에 나타난 던전과 해외의 주요 센트럴을 없어지게 만든 던전에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자료 화면을 띄웠다.

“공략되지 않은 괴수는 어디로 갔을까요? 던전과 괴수는 어떤 관계일까요? 던전에서 나온 괴수는 결국 사라지게 되는 걸까요? 그러면 사라진 괴수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그것은 나도 가져 본 적 있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 답을 알지는 못했다.

연구팀장은 화면을 넘겼다.

화면에는 익숙한 괴수의 모습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화면에 나타난 괴수의 정체가 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연구팀장의 설명을 들었다.

“이건 모두 이제는 없어진 센트럴에 나타난 괴수들입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사진으로 찍은 거죠.”

말을 한 연구팀장은 나와 이하민을 바라보았다.

그가 우리를 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척후팀이었던 우리는 그 괴수들이 모두 이전의 센트럴에서 나타난 것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이하민 역시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것들은 모두 괴수가 너무 강해서 다른 S급 에스퍼들과 함께 우리가 직접 들어가 공략을 했었다.

“모두 공략이 어려웠다고 들었습니다. S급 에스퍼님들이 공략에 나서고도 어려웠다고 들었고 말입니다. 제 생각이기는 합니다만 이곳에 S급 에스퍼가 많다는 것, 그리고 던전이 나타날 때마다 공략이 잘 이루어진다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알려진 것 같습니다. 저쪽에 말이죠.”

저쪽이라는 말이 상당히 애매했지만 그는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던전을 만들어 내는 쪽.

아니면 괴수를 보내는 쪽.

누군가 던전을 만들어서 괴수를 보내고 있는 거라면 그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누가 그런 짓을 하는 거냐고,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거냐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때 왜 누나가 떠오른 걸까.

그 인간이 어떻게 설정을 했느냐에 따라서 무슨 일이건 다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왜 잊고 있었을까.

게임이나 소설에 들어오면 이런 게 위험했다.

특히나 뒤로 갈수록 수습이 안 되는 사람의 창작물은 더욱 위험했다.

우리 누나처럼.

연구팀장이 말하는 동안 S급 에스퍼들이 경악하는 것을 보며 나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그러다가 내가 지금 한가하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고민이 깊어 가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각각의 던전이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나올지는 모릅니다. 아직 생기기 전이라 그 안에서 어떤 괴수가 나올지도 모르지요. 다만 전에 나온 괴수들을 볼 때 예상이 어느 정도 가능하기는 할 것 같습니다.”

화면에 새로운 사진이 나타났다.

본 적 없는 괴수들의 사진이었다.

아마도 센트럴을 사라지게 만든 괴수들일 것이다.

“제 예상이 틀리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정말로요.”

그때부터는 그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앞으로, 지금까지 나왔던 것만큼 강한 괴수들이 연달아 나올 거라는 게 아닌가.

그것도 S급 에스퍼들이 다 같이 나가서 겨우 공략에 성공했는데 이번 주에 비슷한 정도의 던전이 스무 개 정도가 나타난다면…….

‘가능성이 있기는 한 걸까?’

연구팀장의 설명을 듣고 S급 에스퍼들의 표정이 모두 굳었다.

연구팀장은 그런 말을 해서 미안하다는 듯이 우리를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이제 돌아가셔도 됩니다.”

“예. 이런 말씀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연구팀장은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하고 먼저 회의실을 떠났다.

남은 우리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이하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눠야 할까요?”

먼저 그것을 결정해야 하는 게 맞기는 한데 그 후에 또 긴 침묵이 찾아왔다.

나눈다면, 과연 승산이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의문이 짙어졌다.

“이하민이 없었다고 해도 우리가 공략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내 생각에는 S급 에스퍼 전원이 공략에 나선다고 해도 이하민의 증폭 능력이 없으면 실패했을 것 같은데. S급 에스퍼를 나누는 건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런데 이하민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심우진이 말하자 S급 에스퍼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차윤과 심우진은 나눠도 된다고 생각해. 두 사람의 능력은 중첩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리고 나랑 변태영도 나눌 수 있다고 봐. 그런데 나눌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야. 나랑 심우진, 변태영이랑 차윤. 이런 식으로 나눌 수는 있어. 그런데 거기에서 더 나눌 수는 없을 것 같아. 두 그룹에 서은우랑 이하민은 꼭 같이 속해야 공략에 성공할 수 있다고 봐.”

견인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그러면 그건 나누는 의미가 없지 않나요? 저랑 은우는 매번 같이 껴야 한다면요. 저랑 은우가 각각의 그룹에 한 명씩 들어가면 공략이 성공할 가능성이 없을까요?”

이하민이 말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기다렸다.

나도 그가 말한 구성을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하민이 없다면 어려울 것이다.

이하민이 없이 나와 견인, 심우진이 공략을 시도한다…….

만약 던전이 이전과 같은 위험도라면 얼마든지 해 볼 만했다.

그렇게 셋이 갈 필요도 없이 세 명이 따로 간다고 해도 승산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오는 던전에 그런 식으로 들어가면 전멸할 것 같았다.

대답을 떠올리기 전부터 우리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하민. 너는 어때? 내가 없어도 성공할 수 있겠어?”

내 질문에 이하민의 생각이 계속되었다.

“자신은 없지만 그렇게라도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왠지 이번 던전은 개방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이건 정확한 데이터를 봐야 할 것 같긴 한데 일단 던전이 개방된 후의 괴수는 처음에 던전에 나타났을 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우리가 던전에서 공략했던 괴수들, 이전 센트럴에 나타났을 때보다 더 강했던 것 같지 않아? 움직임도 빠른 것 같고.”

이하민의 말에 나는 연구팀장이 화면에 띄웠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그랬다.

처음에 그것을 봤을 때는 모습이 익숙하다는 생각만 했는데 화면에 나온 괴수들은 우리가 던전에서 마주쳤던 것들에 비해 느렸다.

이하민의 말이 맞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변칙.

그리고 다시 변칙.

변칙에 변칙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 새로운 규칙이 적용되는 게임이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S급 에스퍼들은 한숨을 쉬면서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하민의 말이 맞다면 우리는 성공 가능성이 아주 낮아진다고 하더라도 서로 흩어진 채 공략에 나서야 했다.

“우리 구성에 상급 에스퍼를 같이 데리고 가면 조금은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거야.”

견인이 말했지만 나는 그게 괜히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A급 에스퍼가 스무 명이 있다고 해도 S급 에스퍼를 대신할 수 없는 게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이하민의 말은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소리였다.

더 미치겠는 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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