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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83화 (83/137)

83화.

“그 일을 다시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서은우 에스퍼를 오두막에 데려간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내 능력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죠. 나는 마인드 컨트롤이 가능합니다. 기본적인 건 그거지만 일단 그걸 바탕으로 해서 나는 많은 걸 알아낼 수 있어요. 의식을 잠재우고 조종할 수 있으니까요. 나에게 의식이 통제되면 그 사람은 내가 시키는 걸 하게 돼 있어요. 가령,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하는 것 같은 것도요.”

“…….”

나는 동요한 빛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차윤은 그런 나에게 관심이 없는 듯 얘기를 이어 나갔다.

“그런 능력이 생기면 뭘 하고 싶은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겁니다. 나에게 마인드 컨트롤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도 그랬어요. 엄청나다고 생각했죠. 다른 에스퍼가 부럽지 않았어요. 게다가 나는 S급 에스퍼고.”

그 말이 이해가 됐다.

그가 할 수 있는 일들.

온갖 부정적이고 비도덕적인 일들이 한꺼번에 상상됐던 것이다.

“이런 얘기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서은우 에스퍼에게는 내가 잘못한 것도 있고 우리가 다음 주까지도 둘 다 살아 있을 거라고 보장할 수도 없으니까 얘기를 하는 건데 나는 회의실에 있는 S급 에스퍼 모두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돈이 많을 겁니다. 그 일이 나한테는 너무 간단했으니까요. 재계 인사와 자리를 만들고 명령을 하기만 하면 됐거든요. 내 계좌로 돈을 옮기라고 말이죠. 아니면 그 사람들의 계좌 정보를 알아낼 수도 있었고요.”

그런 이야기는 관심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의식을 통제해서 돈과 권력을 쥐고 다른 이들의 약점을 잡아서 흔들었다는 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이하민의 얘기였다.

그도 내가 생각하는 것을 아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에도 곧 질리더군요. 그리고 서은우 에스퍼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쓰레기는 아닙니다.”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할 자격이 있습니까?”

만약 내 능력이 그에 버금가는 수준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의 조종을 당하는 동안 일어났던 일을 계속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두막에서 있었던 일이 조금씩 떠올랐다.

내 의식을 잠재우고 차윤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때마다 오두막이 흔들려 그가 뜻을 이룰 수 없었다는 것도 기억이 났다.

그랬던 주제에 이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차윤도 내가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얼굴이 확 붉어졌다.

“아니. 그건…… 다른 사람 물건에 욕심을 내지 않던 사람도 너무 엄청난 걸 보면 순간적으로 확 돌아 버릴 수도 있는 거잖아요. 서은우 에스퍼는…… 그런 케이스였던 거죠…… 미안하게 생각하기는 합니다.”

미안하게 생각하기는 한다니.

기가 막히고 할 말이 많았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그걸 따지자고 부른 게 아니었으니까.

“알았으니까 이하민에 대한 얘기나 해 보세요.”

“알았어요. 그때 오두막에서 서은우 에스퍼가 나에게 했던 말도 기억나는 겁니까? 지금 보니까 그때 일이 생각나는 것 같은데.”

“뭘 말하는 거죠?”

“서은우 에스퍼가 자신에 대해 말했던 걸 말하는 거예요. 서은우 에스퍼가 원래는 이곳 사람이 아니고 다른 곳에 살았다고 했었죠. 던전이나 괴수 같은 게 없는 대한민국. 센터나 센트럴도, 에스퍼나 가이드도 없던 평범한 세계에 살았었다고 했죠. 그게 왜 평범하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요. 그곳에는 여러 개의 커다란 도시가 있었다고 했고 지금보다 훨씬 더 다채로웠다고도 했고 누나가 소설을 썼다고 했죠.”

“…….”

전에 차윤이 나에게 한 말을 듣고 그가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듣고 보니 내가 별소리를 다 한 모양이었다.

“그 말을 믿는다는 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의식에 혼란을 느끼거든요. 간절히 원하는 걸 자기 자신의 실제 모습과 혼동할 때도 있어요. 특히 마인드 컨트롤 상태에서는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서은우 에스퍼만은 아니었으니까요. 오두막에서 서은우 에스퍼의 말을 들으면서 웃긴다고 생각했어요. 무슨 느낌이었냐면, 이런 인간이 또 있네,라는 생각이었죠.”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그에게서 설마 이하민이라는 이름이 나오려고 하는 건가 해서.

왜 그런 생각이 든 건지는 알 수 없었는데 그 생각이 뿌리를 깊게 내렸다.

그리고 내가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누구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런 일이 있기는 했죠. 자기가 다른 곳에서 왔다고 말하는 사람. 원래는 이곳 사람이 아닌데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이곳이었다고 하던 사람.”

“……!!”

“누군지 기억을 하려고 하는데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거예요. 대수로운 것도 아니라 그냥 지나쳤죠. 그러다가 시간이 꽤 흐르고 그 일이 다시 생각났어요. 기분 나쁘지 않습니까. 기억을 해 내려고 하는데 안 떠오르면. 그래서 그때는 작정을 하고 기억을 해 내려고 했어요. 만약 내가 작정을 한다면 기억을 복원하는 게 아주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그때로 돌아가서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가능하지 않을까 했거든요.”

만약 성공했다면 그는 굳이 나에게 그 말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생각한 게 맞다는 듯이.

“생각이 안 나더군요. 그걸 성공하려면 어느 시점으로 가야 하는지를 알아야하는데 내가 그사람을 언제 만났는지가 기억나지 않는 거예요. 오랜만에 느끼는 패배감이었죠. 그러다가.”

피식 웃으며 그가 나를 보았다.

“떠오르더군요. 그 모습을 보면서 말입니다. 나에게 의식을 조종당하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그 모습이 갈고리에 걸린 것처럼 따라 올라온 거죠.”

이하민의 모습을 보고서…….

나는 그가 하려는 말을 깨달았다.

“어찌나 진지하게 말하는지 그 말에 속겠더군요. 그래서 그의 기억을 옮겼습니다. 며칠 전으로 돌아가라고 하고 질문을 했어요. 너는 누구냐고 했더니 이하민이라고 하더군요. 너는 다른 곳에 살았던 적이 있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했습니다.”

“왜…….”

극도로 혼란스러워 그를 바라보자 차윤이 웃었다.

“이하민의 모든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는 자기가 이곳에 온 걸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게 되겠죠. 일단 전부 다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내가 놀란 건 왜 그동안 그 기억이 그렇게나 깊이 박혀서 나오지 않았냐는 거죠.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서은우 에스퍼랑 이하민은 같은 정신병에 걸린 거라는 거죠.”

“…….”

나는 멍하니 그를 보았다.

마지막에 가서 이렇게 거하게 헛발질을 할 수도 있는 건가 해서.

그러나 나에게 일어난 일을 믿기가 어려웠을 것이라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희한한 망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되다니. 게다가 하나는 S급 에스퍼에 다른 하나는 그보다도 더 높은 에스퍼라니. 그것 말고도 두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이 더 있죠. 가이드에서 에스퍼가 됐고 에스퍼에서 가이드가 됐고. 두 능력이 공존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그가 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절대로 평범하지 않고 나의 비밀을 드러내는 거였는데 차윤은 자기가 하는 말의 중대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도대체 망상이 얼마나 간절하면 그렇게까지 될 수 있는 건지 신기하기는 합니다.”

“그…….”

“예?”

“그곳에서…….”

차윤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자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말하던가요?”

“그게 왜 궁금하죠? 아아.”

그러더니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서은우 에스퍼도 그걸 믿으니까.”

그러면서 그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웃어 댔다.

“그건 못 물어봤네요. 이하민도 그것까지는 말을 하지 않았고요. 관심 가질 줄 알았으면 자세히 말해 달라고 할 걸 그랬나 봐요. 그래도 아주 포기하지는 마세요.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잖아요? 지금은 힘을 그렇게 낭비할 수는 없을 것 같으니 일단 던전을 공략하고 난 다음에 하죠.”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지금 이하민이 그 사실을 안 건가요? 혼자서 허공을 보면서 생각을 깊이 하는 것 같던데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말이죠.”

“아직은요?”

“네. 두 사람은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달라요. 둘 다 망상증이 심하지만 서은우 에스퍼는 자기가 빙의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하민은 모르고 있다고 믿는 거거든요. 그런데 쾅!”

차윤이 제 머리를 주먹으로 쿵 때렸다.

“그 봉인에 균열이 가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 정도로 복잡하고 강력한 능력이 발현되려면 온전한 정신으로는 불가능한 건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에요.”

그는 조금 더 웃다가 웃음을 훌훌 털어 버리는 것 같았다.

차윤은 혼자 후련해진 표정을 하고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나는 머리를 짚은 채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말이 안 되잖아.’

그건 누나의 소설에 나온 적도 없었다.

도대체 이 미친 누나가 소설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누나에게 갑자기 일이 생겨서 자기가 소설을 마칠 수 없게 되면서 다른 사람이 쓰기라도 한 건가?

그 사람이 비엘 작가가 아니라 판타지 작가나 다른 장르 작가였던 거야?

정말 기가 막힌 것은 그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타당하고 합리적인 추리라는 거였다.

‘그보다 이하민은 누구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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