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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92화 (92/137)

92화.

“죽었습니다. 그리고 14분 후에 다음 던전 개방됩니다. 그리고 그다음 것이 15분 후에 개방돼요.”

심우진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부상당한 에스퍼들이 없는지 살폈다.

각각의 S급 에스퍼들이 팀을 이룬 에스퍼들을 확인했고 부상당한 에스퍼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벌써 두 마리나 해치웠어요, 에스퍼님!”

우리 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아까 그건 어떻게 된 거예요? 에스퍼님은 가볍고 괴수는 무거워서 그런 건가요? 그래도 그 자리에서 흙더미가 꽤 높이 솟구쳐서 저는 에스퍼님도 거기에 빠지실 줄 알았어요. 사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요. 정말 그냥 이렇게 휙 지나가셔서 그때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어요.”

“저도요. 이하민 에스퍼님이 놀라는 걸 보고 위험했던 건가 보다고 생각했어요.”

그 생각을 한 사람은 우리 에스퍼들만은 아니었는지 S급 에스퍼들이 일제히 달려와서 나를 다그쳤다.

“서은우. 죽으려고 그랬어? 누가 그런 짓을 하래!!”

견인은 정말 화가 난 것 같았고 나는 그를 달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그 상황은 한이현이 던전 개방 3분 전이라고 말을 하면서 끝났는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된 건가 해서 한이현을 보자 그가 씩 웃었다.

“아직 11분 남았습니다.”

S급 에스퍼들도 그 사실을 깨달은 듯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만 할 뿐 다시 나를 야단치지는 않았다.

에스퍼들은 두 번의 공격이 연달아 성공하면서 크게 자신감이 생긴 듯했다.

“이다음에 나오는 놈들은 다른 분들이 맡아 주십시오. 그러면 그다음에 나오는 놈들은 은우랑 제가 맡겠습니다.”

갑자기 이하민이 말했고 S급 에스퍼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안 되는데? 그러다가 이번에 나오는 놈이 아주 세면?”

변태영은 괜히 트집을 잡으려고 그러는 것처럼 말했고 다른 에스퍼들도 그건 안 되겠다며 딴지를 걸었다.

그러나 다들 이하민을 놀리려고 그러는 분위기였고 나는 이하민이 나하고는 상의도 없이 그 말을 한 것에 화를 냈어야 했는데 그냥 기분이 다 풀렸다.

나에게 화가 났을 텐데도 내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몸을 날린 게 퍽 흐뭇했던 것이다.

던전 개방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가까이 다가온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돌리자 차윤이 서 있었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왜……요?”

“설마 그거…… 아니죠?”

“뭘 말하는 건데요?”

“내가 본 거요. 설마 무공…… 아니죠?”

그는 자기가 하는 말이 얼마나 웃기게 들리는지 안다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춘 채 말했다.

그것은 절대 그에게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걸 봤다는 것도, 그게 무공이라는 걸 알아봤다는 것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러고 있을 시간 없을 것 같은데요?”

“아직 십 분 정도 남았어요. 그리고 나는 궁금한 게 있으면 못 참는단 말입니다. 안 풀리면 끝까지 집중을 못 해요.”

“지금도 별로 하는 거 없잖아요.”

“와아!”

차윤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듯이 나를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돌아갔다.

그 후로 시간은 착실하게 흘러갔다.

“30초 전입니다.”

한이현은 계속해서 시간을 알려 주었다.

어느덧 괴수가 쓰러졌고,

“3분 전입니다.”

또 한 마리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5분 남았습니다.”

“10분 남았어요.”

“벌써 일곱 마리를 죽였어요.”

“이제 다섯 마리 남았어요.”

“10분 남았습니다.”

한이현이 내 옆에서 계속 던전 개방을 알려 주었고 어느덧 마지막 던전의 개방까지 알려 주었다.

센트럴에는 괴수의 시체가 수북하게 쌓였고 부상당한 에스퍼들은 현장에 대기 중이던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거나 안정제를 먹었다.

던전이 모두 개방됐고 개방된 던전의 괴수가 모두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에스퍼들은 그 말이 믿기지 않아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게 정말이냐고 몇 번이나 물은 그들 중에는 울음을 터뜨린 사람들도 있었다.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있었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몇 번이나 샅샅이 확인을 하고 그게 맞다는 것을 알고서 우리는 저마다 서로를 꽉 끌어안았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성공이었다.

끝나고 나면 옆에 있던 동료들 중 몇 사람은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며 일부러라도 미리 정을 떼야 나중에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수고했어요. 정말 잘 싸워 줬습니다.”

눈에 보이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하고 다녔다.

S급 에스퍼들의 감격도 결코 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감격이 지나가고 나자 나는 처음에 뒤집어쓴 괴수 체액에 의해 젖은 옷 때문에 슬슬 한기가 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더니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서 긴장이 풀리며 한계에 이른 듯했다.

능력을 사용해 컨디션을 끌어 올릴 수는 있지만 우선은 옷을 갈아입고 몸을 씻는 게 급했다.

견인에게 가서 먼저 돌아가고 싶다고 하자 수고했다며 그가 심우진을 불렀다.

“서은우 에스퍼 좀 데려가. 처음부터 온몸이 젖은 채로 싸워서 지금 몸이 정상이 아닐 거야.”

“은우 씨. 괜찮아요? 떨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은우 씨라고 해도 젖은 옷을 입고 계속 있으면 못 버티는 모양이네요. 이거야말로 아이러니인 것 같은데. 은우 씨에게 이런 인간적인 모습이 있어서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심우진의 말을 들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한 마디라도 더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평소에 말이 많지 않던 사람들마저도 그랬다.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한 몸부림인 것 같아서 나도 그들이 하는 말에 일일이 대답을 해 주었다.

“누구, 옷 가져온 사람 없어요? 옷 좀 먼저 갈아입히면 좋겠는데.”

심우진이 말했지만 옷을 가져온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대충이라도 핏물을 빼 보려고 상의를 벗어 비틀어 짰는데 그것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괴수의 피로 물든 옷을 선뜻 다시 입고 싶은 생각도 안 들고 상의야 조금 벗고 있는다고 해도 별것 아닐 것 같아서 그러고 있는데 심우진이 차를 가지고 오겠다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그사이에 다른 차가 와서 내 앞에 섰다.

“저랑 가면 됩니다.”

차에서 내린 이하민이 말하더니 함께 왔던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올 때는 다른 차에 끼어서 돌아오세요. 저는 서은우 에스퍼랑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그 말에 불평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빨리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씻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기도 했겠고 지금의 기분을 흠뻑 즐기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제대로 놀려면 센트럴이 적격이었다.

어차피 그와 한 번 정도는 얘기를 나눠 봐야 했기에 나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대로 차에 타면 시트를 다 버릴 것 같아 주저하자 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트가 더러워지는 거야 상관없지만 감기 걸리겠어. 에스퍼도 감기는 걸리잖아.”

비상시에 에스퍼는 센트럴에 있는 건물에 들어갈 수 있었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비상시에 속했다.

센터로 피하면서 센트럴의 시민들은 집 문을 열어 두고 떠났다.

그것은 센터장의 명령이었는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돌아왔을 때 문과 창문이 박살나고 깨져 있는 것을 봐야 했을 것이다.

에스퍼와 가이드들이 괴수를 상대로 목숨을 거는데 센트럴의 시민들이 자기들의 재산을 지키려고 문을 잠갔다면 용서가 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욕조가 있네.”

가장 먼저 욕실로 들어간 그가 말하더니 욕조에 물을 받았다.

“그냥 샤워하면 돼.”

“오래 떨었으니까 따뜻한 물에 몸 담그고 있으면 좋을 거야. 들어가 있어. 옷이 있는지 찾아볼게.”

그는 최대한 그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아웅다웅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뿌연 김을 내면서 금방 차오르는 물을 보니 어느덧 나도 마음이 동했다.

옷을 훌훌 벗고 욕조로 들어가자 쌓인 피로가 스르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옷은 세탁해서 다시 입을 수준이 아니었고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태워 버려야지.’

옷과 함께 오늘의 기억도 다 같이 지워 버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아마도 며칠 동안은 꿈에 나와 나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결국은 모두 죽이는 데 성공했지만 아찔한 순간이 여러 번이었다.

그때마다 다른 에스퍼들이 몸을 던져 나서 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숨이 붙은 채 살아 있을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에 절로 아찔해졌다.

욕조가 붉은 피로 물들고 있었다.

물을 한 번 갈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집주인이 돌아오면 사용료를 주자고 생각하며 욕조에 물이 넘치도록 그대로 두었다.

물이 계속 넘치는데도 붉은 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내 몸에 상처가 났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상처로 인한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손으로 몸을 문질러 괴수의 피를 닦아 내니 점점 물에 묻어나는 핏기가 사라져 가는 듯했다.

물을 잠그고 그때부터는 눈을 감은 채 기분 좋은 열기에 몸을 맡겼다.

점차 노곤해지며 잠깐 동안 졸았던 것 같았다.

발소리가 나더니 이하민이 돌아왔다.

“좀 크려나? 얼추 맞을 것 같기는 한데.”

“아. 어.”

나는 그게 얼마나 된다고 그사이에 졸았던 건가 하며 일어서려는데 이하민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벗은 몸을 한두 번 보여 준 것도 아니었지만 최근 우리 사이가 그렇게 친밀하지 않았던 터라 그가 빤히 보는 게 달갑지는 않았다.

“문 앞에 둬. 입을 테니까.”

“응.”

‘응’이라고 했으면 나가고 문 앞에 둘 것이지 뭘 그렇게 계속 보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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