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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97화 (97/137)

97화.

“아니야. 서은우 너는 성질이 너무 불같잖아. 앞뒤 생각 안 하고 쏘아 댔을 게 틀림없어. 네가 그러는 걸 우리가 한두 번 보냐?”

변태영의 말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했더니 견인이 백번 지당한 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차윤 에스퍼를 반쯤 죽여 놓는 바람에 가이드가 기이딩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잊어버렸어?”

S급 에스퍼들은 내가 하는 말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나를 붙잡아 버렸다.

“아니에요. 오해가 있던 거 풀려고 온 거였어요. 얘기해서 풀렸고요. 저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하민이 해명하자 그제야 S급 에스퍼들이 정말이냐면서 나를 놔주었다.

와. 내 이미지가 어땠기에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거지?

정말 기가 막혔지만 S급 에스퍼들은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더 가관이었다.

“너는 너무 폭력적이야. 억울하다고 할 거 없어. 네가 팔을 한 번 휘두르면 괴수건 에스퍼건 뻥뻥 나가떨어지는데 어떻게 두고만 보겠냐고. 다른 사람이면 특임대를 보냈을 텐데 너라고 해서 우리가 직접 온 거잖아.”

견인의 말에 정말 기가 찼다.

이 소설에 들어오고 S급 에스퍼들에 대해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떠올리자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그들에 대해 했던 생각을 지금 그들이 나에 대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저는 그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잖아요. 제가 에스퍼 때린 건 차윤 에스퍼밖에 없었을걸요? 저를 납치한 인간이니까 그럴 만했잖아요.”

어느덧 내가 하는 말은 절규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마냥 억울하기만 했냐고 한다면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S급 에스퍼들이 나를 말리고 이하민을 지키려고 그렇게 달려왔다는 사실이 재미있기도 하고 고마웠던 것이다.

***

우리는 빠르게 일상을 되찾아 갔다.

앞으로 또 언제 던전이 나타날지 모르지만 던전이 나타날 징후가 나타났을 때의 매뉴얼을 상세하게 정했고 그 중에 에스퍼가 해야 할 일과 일반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나눴다.

앞으로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보다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센트럴에 그동안 전 세계에서 유례없을 정도로 많은 던전이 한꺼번에 나타났다는 것만 해도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는데 우리가 그 던전에서 나온 괴수들을 전부 죽였다는 소식에 세계가 들썩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센트럴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의 불안감은 치솟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 센트럴로 향하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센트럴에 들어오기 위해서 그들이 동의해야 하는 것이 있었지만 그것을 너무 높은 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했다.

목숨값으로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센트럴은 그곳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점점 규모가 커졌다.

그러는 동안 에스퍼들도 합류를 희망했고 우리는 센터에 소속되어 임무를 함께 수행하는 것을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한동안 토파즈의 기세가 대단했지만 이제 베타 센트럴에서 토파즈 소속의 에스퍼는 얼굴을 들지도, 이름을 내밀지도 못했다.

특별히 에스퍼들이 배척하지 않아도 일반인의 인식이 좋지 않았다.

토파즈 에스퍼들은 센트럴에 던전이 나타날 경우 사람들을 내버려 두고 자기들만 내빼 버릴 거라는 인식이 강해졌던 것이다.

뒤늦게 토파즈를 탈퇴하고 센트럴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견인은 그들에게 빗장을 강하게 걸어 잠갔다.

그것은 견인만의 뜻은 아니었고 에스퍼 전체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었다.

토파즈 소속의 에스퍼는 이제 일반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그것은 미등록 에스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토파즈 소속 에스퍼나 미등록 에스퍼들의 불만이 폭발할 거라는 말도 있기는 해.”

어느 날, 오랜만에 S급 에스퍼들이 저녁 식사 자리에 함께 모였을 때 심우진이 말했다.

“테러까지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던데요?”

변태영도 알고 있는 듯 그의 말을 거들었다.

“그러면 특임대가 나서야겠네요?”

내가 말하자 S급 에스퍼들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던전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까 이하민이 특임대 이끌고 나가 주면 좋을 것 같은데.”

견인의 말에 이하민이 나를 바라보았다.

“은우랑 하면 어떨까요?”

“어. 그건 안 돼.”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야.”

“나는 절대 반대야. 임무는 하지도 않고 퍽 하면 눈 맞아서 건물 안으로 사라질 것 같아.”

S급 에스퍼들은 일제히 한 뜻이 돼서 이하민의 말을 막았다.

아. 차윤은 안 그랬으니까 일제히 그런 건 아니구나.

차윤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이 그들을 무시하며 말했다.

“일단 이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돼요. 그동안 정보팀이 알아낸 것만 해도 테러 가능성이 아주 농후합니다. 센트럴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는데도 몰래 들어온 토파즈 에스퍼도 상당히 많아요. 미등록 에스퍼 중에 토파즈가 영입한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중에 까다로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나는 서은우 에스퍼가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사안의 중대성을 모르는 것 같은데 잘못하면 특임대가 전부 썰려 나갈 수도 있어요.”

차윤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특임대가 썰려 나간다는 말을 하면서 무슨…….

S급 에스퍼들은 정말 저 인간은 왜 저럴까 하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차윤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꿋꿋했다.

평판 관리를 전혀 안 하는 것 같아서 이럴 때 타격이 없는 것 같았고 그 점이 좀 부러워 보이기도 했다.

남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사는 것 같아서.

“그러면 차윤 에스퍼한테서 정보 받아서 움직이는 거로 하지. 이하민 에스퍼랑 서은우 에스퍼가 같이 움직이고 주기적으로 보고 하도록 하고.”

“그런데 제 의견은 안 물어보시나요?”

내가 말하자 S급 에스퍼들은 일제히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심우진마저도 그랬다.

쥐뿔도 안 먹히는 모양이구나.

“두 사람은 끝나고 나를 따라오세요. 그동안 모아 놓은 자료 넘겨줄 테니까요.”

차윤이 말하고 식사에 열중했고 나는 머리를 굴렸다.

정보팀이 유능하다고 해도 누나에 비할 게 아닌데.

누나는 모든 것을 아는 작가니까 최면을 걸어 달라고 하고 누나를 만나고 오는 게 빠르지 않을까 했는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미 아는 것처럼 차윤이 나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죄 많은 누나를 뒀으니까 이런 때는 도움 좀 받아도 되지 않나?

아직 다른 S급 에스퍼들은 나와 이하민에 대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하민. 센터 떠나기 전에 나 훈련하는 것 좀 도와줄 수 있나?”

심우진이 부탁하자 이하민은 물론이라면서 같이 약속을 정했다.

이하민은 내가 찾아가서 저돌적으로 고백을 한 후 다시 전처럼 돌아갔고 S급 에스퍼들은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지 못한 채 막연히 안심을 하고 있었다.

“식사 끝났으면 가죠, 서은우 에스퍼?”

차윤이 말했고 나는 당연한 듯이 이하민을 바라보았다.

차윤은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아차렸는지 얼굴이 확 붉어졌다.

누나 때문에 그런 거기는 했지만 내가 최면에 걸려 있는 동안 음흉한 짓을 하려다 걸린 이후 나는 그와 단둘이 만나는 것을 피해 오고 있었다.

함께 차윤의 집무실로 가면서 차윤은 그동안 자기가 알아낸 것들에 대해 말해 주었다.

“토파즈 본부에서도 이번 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동안은 한국 지부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면서 그냥 평가 절하할 수 있었겠는데 갑자기 우리에게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됐잖아요. 우리가 던전을 공략한 방식에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우리가 한 일을 하나하나 알고 싶어 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토파즈가 거론되고 위상이 땅에 떨어졌죠.”

그는 신이 나는 듯했다.

생각하면 정말 재미있는 일이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차윤도 그렇게 될 사람이었는데 극적으로 우리 편에 속했던 것이다.

그도 자기를 보는 내 시선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은근슬쩍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아무튼 토파즈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어요. 그 사람들은 이 일을 자기들이 했다는 걸 숨길 생각도 없는 것 같아요. 토파즈의 이름을 듣고 전 세계가 떨게 만들고 싶은 것 같거든요. 그자들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반드시 죽인다는 계획으로 이번 작전을 세웠습니다.”

그가 그런 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의 최면술이면 그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가 아는 걸 술술 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오죽하면 이하민과 나도 그에게 우리의 비밀을 말했을까.

우리가 하급이었을 때 걸린 암시 때문이기는 했지만 그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했다.

“다른 건 어느 정도 구체적인 정보까지 입수를 했는데 그 작전에 투입될 에스퍼들이나 그자들이 가진 능력은 오리무중이에요. 지금도 계속 정보망을 가동하고 있기는 한데.”

“저에게 최면을 걸어 주세요. 누나를 만나고 올게요. 그러면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하기로 했으면 미룰 필요가 없겠죠.”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 의자에 앉도록 했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기 전에 이하민을 바라보자 그가 걱정하지 말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돌아와야 할 곳.

돌아와서 영원히 머물 곳.

그곳이 이하민이 되어 있었다.

이제 최면에 걸리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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