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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98화 (98/137)

98화.

나는 차윤의 말을 들었고 그가 하라는 대로 따라했다.

모든 게 평소와 같은 것 같았는데 왜 계속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지?

차윤은 내가 최면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나는 당황한 채 눈을 떴다.

차윤은 나보다 더 당황한 것 같았다.

“왜…… 눈을 뜨세요? 내가 하는 말에 집중하지 않았습니까? 서은우 에스퍼는 이미 정신력이 강하기 때문에 먼저 스스로 동조하지 않으면 최면에 걸리지 않습니다.”

“네. 알아요. 그래서 동조했는데요? 하라는 대로 다 했어요. 저번에도 그랬잖아요. 제가 안 할 이유가 없는데…… 그런데 안 되네요?”

차윤이 당황한 듯하더니 다시 한번 해 보자고 말했고 나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순종적으로, 내 의지는 모두 내려놓은 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가 하라는 대로 했다.

그가 떠올리라는 것을 정말 잘 떠올렸고 그가 말하는 것이 전부 다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최면에 걸리려고 몸부림을 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걸려는 암시가 먹히지 않았다.

‘왜 이러지?’

“은우야. 안 돼?”

이하민의 말에 나는 다급해졌다.

“다시 한번 더 해 보죠.”

차윤도 나만큼이나 초조해진 것 같았고 몇 번 더 최면을 걸려고 했다.

그러나 몇 번이나 시도하고도 안 되면서 결국 나는 사실을 직시해야 했다.

“안 돼…… 안 되나 봐…….”

내가 그동안 너무 많이 써먹어 버렸나 봐.

내 마음대로 해 버려서 화가 났나 봐.

이제 우리 망했나 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누나 하나 믿고 건방 떨었는데.

이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땅이 꺼지듯 한숨을 쉬었더니 이하민이 웃었다.

“뭘 그렇게까지 풀이 죽어? 나는 차라리 잘된 것 같은데. 전에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 봤자 이게 의미가 있는 걸까 했거든. 은우 네가 최면에 걸려서 누나를 만나고 오기만 하면 너는 다 알 수 있을 텐데 괜한 짓을 하는 것 같았고. 그런데 이제부터는 열심히 살 목표가 생기는 것 같아서 좋다.”

차윤은 어떻게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가 있냐는 듯이 이하민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하민이 열변을 토했다.

“그건 차윤 에스퍼님이 몰라서 그러시는 거예요. 특히나 은우랑 밀당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게 아주 불리하거든요. 관심 없는 척하거나 애정이 식은 척하려고 해도 이 녀석은 누나를 만나고 오면 다 알잖아요. 제가 왜 그러는 건가 하는 것까지요.”

차윤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이하민을 바라보았다.

“지금 염장질하는 거예요?”

“어. 아닌데. 그렇게 들렸어요? 죄송합니다.”

내내 웃으면서 말을 하는 이하민을 보면서 차윤이 손뼉을 딱 쳤다.

“이 방법이 안 통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이제 나가 보세요. 덕분에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만 많아진 것 같으니까요.”

정말 그랬다.

내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지면 차윤이 더 바빠질 것이다.

밖으로 나가면서 시무룩해진 나와 달리 이하민은 정말 신이 난 것 같았다.

“야. 이하민. 너 내가 걱정할까 봐서 일부러 그러는 거야, 아니면 정말 잘됐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정말 잘된 것 같은데? 은우 너도 잘 생각해 봐. 도전할 수 없게 되면 인생이 얼마나 지루해질 것 같은지. 공략법이 정해져 있다면 그걸 외워 뒀다가 공략하려고 하겠지. 그러다 보면 머리는 굳어 버리고 우리는 로봇처럼 돼 버리지 않을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위험해도, 그리고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생각하고 싶어.”

이하민은 그렇구나.

나는 그냥 안전하게 오래 살고 싶은데.

죽는 거 싫은데.

내가 전혀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인 것을 알았는지 녀석이 웃었다.

“걱정하지 마, 은우야. 내가 항상 고민할게. 그리고 옳은 방법을 떠올릴게. 지금까지 그렇게 잘해 왔잖아. 답이 뭔지 정해져 있지 않을 때도. 그리고 나는 결말을 모른다는 게 더 좋은 것 같아. 만약에 너희 누나가 우리를 다시 전부 죽이기로 했다고 생각해 봐. 우리는 이제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야 돼? 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아.”

“그래. 그건 그래. 내가 아무리 열심히 말해 봤자 누나는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 같거든. 그래도 그 얘기는 해 보고 싶었는데. 열린 결말로 놔두고 우리를 행복하게 살게 해 달라고. 어차피 우리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이하민은 잘된 거라면서 나를 위로했다.

“그냥 말만 해서는 기운을 못 차릴 것 같은데? 그래. 내가 특별히 선심 썼다. 오늘은 밤새도록 내가 기운 나게 해 줄게.”

“그거 너를 위한 계획인 것 같은데?”

“아닐걸? 잘 생각해 봐. 내 말이 맞아.”

그러면서 환하게 웃는 녀석을 보며 나는 더 이상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래. 말싸움에서 이겨서 뭘 할까.

어차피 내가 이기게 돼 있는데.

***

“아야!”

이 자식이!!

이게 지금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이하민이 염력으로 나를 박력 있게 잡아당긴다고 하면서 힘과 방향 조절이 잘 안돼서 나를 벽에 갖다가 처박은 게.

와……!

내가 신체 강화자였으니 망정이었지 그게 아니었으면 이렇게 멀쩡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하민은 그때마다 깜짝 놀라면서 무릎을 꿇었다.

얼마나 급하게 꿇는지 무릎이 깨진 건 아닌가 할 정도였다.

“야!!”

“아아! 네가 너무 가벼워서 그런가 보다, 은우야. 괴수들 상대로는 잘됐는데. 그래서 그랬나 보네. 안 할게.”

하지 말라는 건 아닌데 내가 너무 겁줬나?

“아……니야. 나는 안 다치니까 나 가지고 연습하는 게 낫지. 알았으니까 계속해.”

“아냐, 아냐. 다른 거로 연습하고 너를 옮길 때는 잘할 거야.”

“나 가지고 연습해도 된다니까?”

“아니야. 정말 괜찮아.”

재미있었는데.

“그런데 나를 왜 옮기려고?”

“멋있겠잖아. 은우 네가 다른 거 하고 있는데 확 옮겨서 안아 주려고. 키스도 하고.”

“……알았어. 다시 한번 해 봐.”

이하민이 키득거리고 웃었다.

얼마나 신나게 웃는지.

나는 이하민이 옮기기 전에 있던 자리로 가 있었고 녀석은 심기일전한 채 나를 옮겼다.

음. 이번에는 안정적인데?

자기도 그렇게 느낀 것 같았다.

궤적도 정확하고 안착도 부드럽게 했다.

“와. 잘했다. 역시 소질 있네, 이하민.”

“이렇게 하는 것도 만만치 않게 힘드네. 무거운 걸 옮길 때 더 힘이 들 줄 알았더니.”

“정확해야 하는 건 그만큼 어렵지. 다치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옮기는 것도 어렵고.”

“은우 너도 이거 할 수 있는 거야?”

이하민은 혹시나 하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까 너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공 중에 그것도 있잖아. 허공섭물인가? 그거 할 수 있으면 염력 쓸 수 있겠는데?”

이하민은 자기가 그 생각을 왜 이제야 했을까 하는 듯이 나를 보았다.

“아냐. 못 해.”

나 혼자 이것저것 다 잘한다는 걸 알면 기죽을 것 같아서 말한 건데 이하민은 먼저 눈치를 챈 듯했다.

“해 봐, 은우야. 너 할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하는 거 보면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닐걸?”

“아니라고?”

이하민은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한 눈치였다.

SS급 에스퍼인 이하민.

그가 복제해 낸 능력.

그것보다도 내 대답의 의미가 궁금한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궁금해한다면 실력을 제대로 한번 보여 줘?

“너. 동서고금 천하제일인이라는 말 들어 봤냐?”

“혹시 은우 네 얘기야?”

그러던 이하민의 눈이 커졌다.

“설마. 정말 그거였다고?”

“그럼 그럼. 내가 그거였지. 내가 휙, 휙 검을 휘두르면 수막이 파파파팍 생기고 그 뒤에 있다가 내가 몸이랑 검이랑 하나가 되게 파악 날아가서 적들을 벴지. 내가 스윽 돌면 목이 댕겅 떨어졌어.”

감격은 한 것 같은데 제대로 믿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이하민의 몸을 들어 올려 저만치 옮겨서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러고 보니 또 내가 너무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새끼 기 세워 주려고 그랬는데 왜 이러고 있지?

나는 하여간 이게 문제다.

***

자기는 왜 이렇게 강한 걸까 하면서 고민하고 자신의 강함을 깨달을 때마다 풀 죽는 은우를 볼 때마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너무 큰 목표가 생겨 버렸다.

은우가 더 이상 그런 생각으로 고민하지 않도록 내가 은우보다 더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SS급 에스퍼라면 그건 그냥 가볍게 해낼 수 있어야 할 텐데 하필 은우는 왜 은우여서…….

그래도 일단은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은우가 박력 있게 나를 찾아와서 내 마음을 붙잡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누구였는지, 내가 어쩌다가 이곳에 오게 된 건지, 그 기억이 떠오른 것은 정말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갑자기 안개가 걷힌 것처럼, 아무 징조도 없이 그 일이 떠올랐다.

평범하기 그지없던 대한민국.

그래도 내 삶까지 평범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데뷔 1년 만에 아이돌 브랜드 평판 1위에 오른 후 줄곧 정상을 놓치지 않았고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기록을 갱신했다는 소식과 이제 내 경쟁자는 나뿐이라는 뉴스 타이틀은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마다 나를 전속 모델로 삼고 싶어 했지만 회사에서는 3개월 이상 광고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고 시즌마다 다른 브랜드의 광고 모델로 섰다.

콧대 높은 브랜드들이 나를 모델로 삼기 위해 그동안의 관행을 깨고서라도 나를 붙잡으려 혈안이 되었고 나는 일단 광고 계약을 하면 광고한 제품의 완판 행진을 이끌었다.

수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으면서도 점점 무기력해졌고 무대에도, 일에도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이 간절히 갖고 싶어 열광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쉽게 주어졌고 왜 열심히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모두가 나를 원하는 것 같은데 내가 원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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