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진짜 재미없게 하네. 응? 이런 곳에 왔으면 사람들에게 웃음도 선사하고 그래야지 누가 노래 실력을 자랑하라고 했나?”
내 말에 이하민이 폭소를 터뜨렸다.
“은우 너처럼 일관성 있게 차윤 에스퍼님을 싫어하기도 힘들겠다.”
“그럼. 나나 되니까 끝까지 일관성 유지하면서 이러는 거야.”
한이현 에스퍼의 아내가 아기를 데려와 우리에게 자주 안겨 주었고 그때마다 이하민은 아기 냄새가 너무 좋다면서 눈이 접혔다.
“아아, 우리한테도 이런 아기가 생기면 좋겠다.”
“입양하고 싶어?”
“아니.”
알면서 그런다는 듯이 팔꿈치로 내 팔을 툭 쳤다.
진짜 미친 건가?
이하민에게서 아기를 데려와 안아 주려고 했는데 아기가 이하민에게만 가려고 해서 금세 뺏겼다.
한우진은 이하민의 얼굴이 마음에 드는 듯 해처럼 웃으면서 녀석의 얼굴을 계속 조몰락거렸다.
그러는 동안 차윤의 노랫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니. 저 인간은 몇 곡이나 해?
이쯤 되면 우진이 아버님이 나서서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있는데 그런데 또 노래를 잘한다.
처음 그의 저음을 듣고 정말 듣기 좋은 음색이라고 생각했던 게 다시 떠오를 정도였다.
내가 차윤의 노래를 듣다가 이하민을 바라보자 그가 웃으면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하민이 너는 노래 못해?”
“응, 나는 노래 못해.”
“그래? 아깝네.”
“왜?”
“너는 목소리 좋잖아. 그래서 노래하면 잘할 줄 알았거든.”
“듣고 싶어?”
“아냐. 아냐. 못한다며. 노래 못하는 사람이 노래하는 거 들어 주는 거 엄청 힘들어.”
손을 내저어 가며 말했더니 이하민이 한참이나 웃어 댔다.
그게 그렇게까지 웃어 댈 일인가?
아기 우진이는 이하민이 큰 소리로 웃는 바람에 깜짝 놀란 듯 그 조그만 어깨가 위로 솟구치더니 이내 자기도 따라 웃었다.
아기가 웃는 소리는 정말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우리가 이겨 내서 이런 파티도 하고.”
문득 감격스러워서 말했더니 이하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진이가 성년이 되고 할아버지가 돼도 센트럴은 건재하겠지? 그때도 사람들은 우리를 기억할 거야. 그렇지?”
그럴 것 같았다.
그때까지 센트럴이 건재하기를.
정말 그러기를.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느새 나는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
이하민이 사라졌다.
말도 없이, 어디에 간다는 얘기도 없이 사라진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전화를 해 봤지만 전화도 받지 않았고 특임대 사무실에도 없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도 없어서 무슨 일인가 하고 있을 때 견인이 나를 불렀다.
그를 찾아가자 견인이 외투를 챙겨 걸치며 고갯짓을 했다.
“들어오지 마. 나가게.”
“어디 가시는데요?”
“밖에. 이하민이 데려오라고 하던데?”
“저를요? 이하민이요? 어디로요?”
“가 보면 알아.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심우진도 불려 간 것 같던데. 깜짝 파티 같은 거 준비하나? 아아. 그러면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되는 거였나? 지들 깜짝 파티에 왜 우리를 오라 가라야? 귀찮게.”
그러면서도 그는 살뜰하게 나를 데려가 주었다.
하기 싫었으면 안 한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얘들은 놀 때 뭘 하고 노나 궁금한 것 같았다.
물론 순전히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견인과 함께 도착한 곳은 외딴곳에 서 있는 건물이었다.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어? 왔으니까 일단 들어가 볼까?”
우중충하고 음습한데.
‘이하민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멀리서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
유명한 영화의 웅장한 OST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희한한 것은 그것이 이곳의 곡이 아니라는 거였다.
내가 있던 곳.
내가 살던 곳의 노래가 왜 이곳에서 나오는 걸까.
누가 그걸 알고?
혹시 이하민?
그가 다른 곳에서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느 시대에 살았는지, 어느 곳에 살았는지,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몇 번 묻다가 말았었는데 그도 이 노래를 알고 있었던 건가?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내려왔고 나는 급하게 올라타 4층 버튼을 눌렀다.
‘신기하다. 이하민도 그 노래를 부를 줄 아나?’
영화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OST가 워낙 대단해서 영화의 빛이 가려진다는 평가까지 나오던 곡이었다.
OST를 작곡한 사람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아이돌 가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 번 더 엄청난 이슈가 되었는데 원래는 플루트 연주곡이었던 OST에 나중에 가사가 붙어 노래가 만들어진 거라고 했다.
나는 그 엄청난 감동을 이곳에서 다시 느끼게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을 금치 못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췄을 때는 전주가 끝나 가고 있었다.
설마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시간에 맞춘 건가 하며 견인을 보았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때 그가 잠깐 기다려 보자며 나를 붙잡았던 게 떠올랐다.
‘정말 그런 건가?’
그런데 그게 정말 맞는 것 같았다.
문이 열리면서 인트로의 부드러운 선율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믿을 수 없이 감미로운 목소리.
천상의 소리라는 찬사와 물에서 나온 목소리 같다는 환호를 불러일으키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소리마저도 그가 가진 천의 목소리 중 하나일 뿐이었고 다양한 장르를 부를 때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내던 그였다.
바이올린으로 편곡한 것은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외의 것은 어떤 것도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연주는 바뀌었는데 노랫소리는 그대로야?’
나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이 심우진인 것 같다고 생각했고 내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왜….
왜 거기에 이하민이 있는 걸까.
왜 그가 그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까.
그것도 원래의 가수와 똑같은 소리로.
혹시 어디서 녹음을 해 두었다가 그걸 튼 건가 했지만 이곳에서 그 음악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노래하는 소리와 평소의 목소리가 차이가 나기도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정말이라고? 정말 그 가수가 이하민이라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벅찬 감격에 심장이 꽉 움켜쥐어지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을 지나며 심우진의 연주가 멈췄고 이하민이 나를 향해 걸어 나왔다.
마이크 스탠드에서 멀어지면서 음량이 확 낮아졌다.
한순간 그가 나를 보고 웃었을 때 목소리가 멈췄다.
그것까지 녹음을 해 두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의 나를 바라보며 그가 한껏 웃고는 다시 노래를 이어 나갔다.
“네가 이 노래를 좋아해 주면 좋겠다, 은우야.”
“너… 아니…지? 말도 안 되잖아. 나 이 사람 아는데… 혹시, 네가…?”
“내가 원래 좀 인기가 많기는 했지.”
“뭐?”
그는 오직 나에게만 들릴 듯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차윤은 우리에 대해 알고 있지만 다른 S급 에스퍼들은 우리가 다른 세계에서 온 것을 알지 못하니 그런 말을 하는 걸 이해하지 못할 터였다.
“그렇지?”
장난스럽게 말하는 녀석을 보면서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럴 때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어느새 심우진이 다가왔다.
“연습도 않고 악보만 보고 연주한 건데 정말 잘한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이 곡 엄청 좋은 것 같아요.”
심우진은 이하민이 어떻게 이런 곡을 알고 있는지 신기한 것 같았다.
그러면서 이하민에게 묻기에 나는 그가 난처해질 것 같아 이야기를 돌렸다.
“그런데 노래를 들려 주려고 이 건물을 빌린 건 아니지? 여긴 어디야?”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조금만 소문이 나도 사람들을 끌어모으게 돼 있잖아. 이 노래의 청중은 오직 너만 되기를 바랐어.”
나는 옆에 있는 견인이 즉각 짜증을 낼 거라고 생각했다.
어지간히 하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다행이네. 나는 운 좋게 듣게 된 거네? 그런데 한 번 더 불러 줄 수 있어, 이하민 에스퍼? 노래가 정말 좋은데? 여운이 오래 남아.”
“나도 이 곡 정말 마음에 들어. 던전에서 연주해도 집중이 잘 될 것 같아.”
심우진이 견인의 말을 받더니 즉석에서 연주를 다시 시작했다.
악보도 보지 않은 채 능숙하게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심우진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처음보다 더 좋은 것 같았는데 이하민도 신기하다는 듯이 연주를 들었다.
“이하민 에스퍼, 혹시 다른 곡은 없어? 그런데 정말 어떻게 알게 됐어? 직접 작곡한 건 아니지?”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에스퍼님. 오늘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다음에 꼭 말해 줘야 해. 이 곡 정말 집중이 잘 된다. 던전에서 정말 요긴하게 쓸 수 있겠어. 던전에서 연주해도 되는 거지? 저작권이나 뭐 그런 거에 걸리는 거 아니지?”
심우진이 말을 하더니 자기도 그 말에 어이가 없었는지 피식 웃어 버렸다.
던전을 공략하려고 하는 건데 거기서 자신의 음악을 연주했다고 저작권법 위반을 운운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계속 연습할 거야?”
견인이 돌아가려는 듯 말하자 심우진이 그를 붙잡았다.
“이하민 에스퍼는 서은우 에스퍼랑 같이 갈 것 같으니까 기다렸다가 나 데리고 가. 나는 이하민 에스퍼랑 같이 왔단 말이야. 센터까지 뛰어갈 수는 없잖아.”
역시 센스가 최고다.
나는 슬쩍 엄지를 올려 보였고 그런 나에게 심우진이 윙크를 해 보였다.
든든한 지지자.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