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차를 타고 돌아가며 이하민에게 물었다.
“다른 노래도 할 수 있어?”
“할 수 있지. 내 노래 좋아했었어?”
“당연하지. 너를 싫어하는 사람은 못 봤는데? 거기에서도 너랑 나, 나이가 같았다.”
처음에는 그가 나보다 나이가 많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것도 신기했다.
“그래? 아닐까 봐 말 안 했던 건데. 거기에서 나이 차이가 많았다고 하면 괜히 내가 너한테 못 할 짓 하는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는 정말 안심이 됐는지 한숨까지 쉬었다.
“나 정말 운이 좋았네. 거기에서는 너 만나기도 어려웠을 텐데. 보통 인기가 아니었잖아.”
콘서트를 열기만 하면 전 좌석이 순식간에 매진돼 버려서 나도 몇 번이나 티켓팅을 했다가 실패하고 눈물을 머금곤 했었는데.
내가 좋아했던 그 가수가 이하민이라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누나의 소설에서 개연성을 찾는 건 포기한 지 오래니까 그것마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이야기를 하자 이하민이 웃음을 지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는 듯했다.
스타들의 스타.
아득히 높은 별.
레벨이 다른 아이돌.
그런 모든 수식어들이 그를 위해 존재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그가 하는 모든 것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가 착용하는 것, 먹는 음식, 듣는 음악에도 관심이 쏠렸고 기업마다 그와 함께 하고 싶어 열렬한 구애를 펼쳤다.
어느 유명한 회사에서는 그만을 위한 향수를 개발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을 팔지 않았다고 알려졌었다.
거기에 호응해 이하민은 항상 그 향수만을 사용했고 그 향을 맡으려는 사람들로 그가 가는 곳에는 늘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정말 신기해.”
그러다가 나는 내가 누나의 동생으로서 뭐든 해 주겠다고 했을 때 이하민이 그저 웃기만 하던 걸 떠올렸다.
“아아! 그래서 그랬던 거네. 너는 이미 그런 삶을 질리도록 살아 봐서 미련이 없었던 거구나?”
그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듯했다.
“응. 나는 운이 좋은 것 같아. 그런 삶도 살아 봤고 그게 별것 아니라는 것도 알았으니까.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좋은 사람을 발견하고 그 사람의 곁에 머물면서 같이 추억을 쌓아가고 시간을 공유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 이건 그동안 상상도 못 했던 행복이야. 나는 너희 누나가 정말 고마워. 나한테는 은인이야.”
“그건 좀. 다시 생각해 봐. 우리 누나는 그런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야.”
그러다가 이것도 여전히 누나의 소설이라면 누나는 정말 뻔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하민이 말하는 이것도 누나의 대사라면….
그런데 우리 누나라면 그런 것도 거뜬하게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
다시 간헐적으로 던전이 나타났지만 상황실과 연구팀, 그리고 상급 에스퍼들의 완벽한 연계로 공략이 성공했다.
그러면서 센트럴에는 점점 활기가 돌았다.
던전이 전혀 나타나지 않을 때보다 던전이 나타나고 안정적으로 공략이 이루어지면서 더욱 센트럴이 커졌다.
앞으로 던전이 계속 나타나더라도 센트럴의 안전이 유지될 거라는 믿음이 생겨났던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라고, 우리 센트럴로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면서 에스퍼가 부족해진 다른 센트럴은 속속 무너졌다.
삶에 대한 애착은 에스퍼라고 해서 덜 하지 않았고, 일단 우리 센트럴로 오기만 하면 살길이 열리는데 그곳에서 목숨을 걸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더 많은 에스퍼들이 유입되고 그들은 센터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도 생겨났고 특임대가 나서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존재했고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문제도 생겼지만 긍정적인 영향도 있었다.
활기가 더해진 센트럴에서는 문화 공연이 많아졌다.
가끔 차윤의 공연도 펼쳐졌는데 그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차윤의 공연이라니.
백일잔치도 아닌데 그가 공연을 한다니 그걸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그런데 한우진의 백일잔치 때 노래하던 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어느 날 갑자기 스타덤에 훅 올라 버렸다.
주위 사람이 모두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오직 차윤만이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었다.
그래도 나는 설마 그가 정말 사람들의 요청대로 음반도 내고 무대에도 설 거라고는 상상을 하지 못했는데 차윤의 머릿속은 정말 상상을 못 하겠다.
그런 한편 심우진은 이하민과 함께 나만을 위한 공연을 했던 날 이후 이하민에게 다른 곡도 알려 달라고 계속 졸라 댔고 이하민은 결국 다른 곡들도 알려 주었다.
심우진은 이하민이 그런 곡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정말 궁금해했고 이하민이 직접 만든 곡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희한하게도 심우진은 이하민이 만든 곡에 몰입을 잘했고 던전에서 괴수를 상대로 그 곡들을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듯했다.
***
얼마쯤 시간이 지나고 나는 차윤이 더 이상 혼자서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일 거였다.
그의 뒤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심우진이 서서 악기를 연주했고 견인과 변태영이 그의 양 날개가 되어 버렸다.
정말 절대로, 단 한 순간도 원치 않은 날개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S급 에스퍼들이 언제 다른 사람의 생각에, 특히 차윤의 생각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었던가.
그들은 차윤이 혼자 너무 재미있게 노는 게 좀 부러웠던 듯했고 던전도 안 나오는데 여가 생활을 색다르게 즐겨 보자고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S급 에스퍼들이 여유 있는 표정으로 공연을 하는 모습이 세계 각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 센트럴은 멈추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그들을 향해 퍼져 나갔을 것이다.
딱 거기까지였으면 얼마나 훈훈하고 아름다웠을까.
전에도 그들은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존재들이었지만 이제는 아이돌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S급 에스퍼들이 인기를 누리고 무대에서 환호를 받는 것을 보며 에스퍼와 가이드, 일반인들 할 것 없이 공연 사업에 뛰어들었고 사람들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나는 S급 에스퍼들이 그 판을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그들은 진심으로 그 일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고 수많은 도전자들을 진지하게 상대했다.
그런데 그거야말로 딱 S급 에스퍼들다운 모습 같기도 했다.
“센터장님. 일 안 하세요? 에스퍼들이 센터장님 보기가 너무 어렵다고 저한테 성화예요. 센터장님이 해야 할 일을 제가 처리한 게 이번 주만 해도 몇 건인지 아세요?”
견인은 정말 전직을 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고 내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진지하게 고민을 하며 답하곤 했다.
“안 그래도 나도 그 얘기를 진지하게 한번 해 보고 싶기는 했는데 센터장을 다시 뽑을 때가 된 것 같아. 나 혼자 너무 장기 집권하는 것 같잖아. 다른 S급 에스퍼들한테 기회를 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그가 그렇게 우회적으로 말을 하는 것은 이미 다른 S급 에스퍼들에게 센터장을 떠맡기려고 했다가 거절당해서였다.
S급 에스퍼들은 그 귀찮은 일을 미쳤다고 하겠냐면서 코웃음을 쳐 버렸던 것이다.
게다가 S급 에스퍼들은 센터장의 일을 나눠서 해 왔을 뿐 다른 직책을 맡지도 않아서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었고 견인은 그런 S급 에스퍼들을 부러워했다.
차윤은 정보팀장이었지만 사실 정보팀은 센터 내에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조직도 아니었다.
나는 여기서 좀 더 깊이 얘기를 하면 나나 이하민이 센터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그대로 물러섰다.
“SS급 에스퍼도 있는데 무슨 S급 에스퍼 따위가 센터장을 하겠다고 설친 걸까. 나는 이걸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서은우 에스퍼는 어떻게 생각하지?”
“에이. 왜 그러세요? 그동안 잘해 오셨으면서.”
견인이 이하민에게 넘기려고 기회를 노리면 나는 그를 달래느라 바빴다.
“그런데 서은우 에스퍼. 나는 요즘에야말로 정말 내가 살아 있다고 느껴. 이런 기분은 처음 느끼는 것 같아. 초조하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고, 노래를 하는 동안은 정말 자유로워지는 것 같거든.”
“그러게요. 그런 것 같아 보여요. 다행이에요. 센터장님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찾으셔서요.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게 돼서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실 수 있게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어째 먼저 자진 납세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군.”
역시 견인은 감각이 너무 날카로웠다.
***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졌다.
S급 에스퍼들이 발매한 음반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기특하고 좋았는데 대략 5백 번쯤 듣고 나니까 이 정도면 충분히 들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블랙피시에서는 연일 센터로 전화를 걸어 S급 에스퍼들에게 방송에 출연해 주면 안 될지 요청을 해 왔고 이제 센터는 여느 회사와 다름없어 보였다.
하급 에스퍼 중에는 센터를 떠나 센트럴로 간 사람도 있었다.
에스퍼를 유지하는 것도 돈이 드는 것이라 센터에서도 합리적으로 대처했다.
다른 곳에서 온 에스퍼 중에 전투 능력이 출중한 상급 에스퍼들이 많아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센터를 떠나는 에스퍼들은, 만약 던전이 갑자기 많이 나타나 자기들의 힘이 필요하면 지체 없이 올 테니 불러 달라고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디스토피아가 될 수밖에 없었을 세계에 다른 내일이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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