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말도 안 돼. 이건 잘못된 거야. 어지간한 소리를 해야 믿지!”
심우진조차도 그때는 차갑게 화를 냈다.
그러고는 아예 나가 버리기까지 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가 받았을 충격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나가서 붙잡지 않았다.
“그동안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이하민 에스퍼님과 서은우 에스퍼님은 비슷하지 않았습니다. 가이드 능력과 에스퍼 능력이 같이 나타난다면 이하민 에스퍼님과 같아야 했을 거라는 게 저희의 생각이었습니다. 이하민 에스퍼님은 가이드로서의 능력이 점점 퇴화하고 있었는데도 신체에 가이드 특유의 체질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은우 에스퍼님의 경우에는 가이드의 특징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이제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연구팀장의 말에 변태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변명이라는 건 알지만 전 세계적으로 워낙 그런 사례가 없어서 저희는 그런 경우 그렇게 되는 건가 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먼저 말씀드렸으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서은우 에스퍼님은 저희도 누구보다 의지하는 분입니다….”
그 말을 들은 S급 에스퍼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 상황에 감정이 극도로 동요한 것이 자기들만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단 이하민뿐만 아니라 S급 에스퍼 모두에게 서은우는 특별한 존재였다.
그들의 세상이 그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 말이 전혀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S급 에스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은우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은우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다.
“계속 말해 보세요.”
차윤이 무섭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은우 에스퍼님이 가이딩을 할 수 있었던 건 가이드로서의 능력이 발현되어서가 아니라 에스퍼로서 회복 능력이 나타나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에 없던 능력이 새로 발현되면 측정기에 그렇게 나타나야 했을 겁니다.”
견인이 말하자 연구팀장이 그를 바라보았다.
“사실 저희는 측정기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측정기를 만든 것은 순수하게 우리의 기술이 아니지 않습니까, 센터장님. 몇 등급인지 알아내는 것까지는 우리 기술로 할 수 있다고 해도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능력에 대해 설명해 주는 건 대체 누구인 걸까요? 측정기는 처음에 어떤 식으로 만들어져서 보급된 걸까요?”
그 말에 S급 에스퍼들과 이하민은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 말이 맞았다.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어느 순간부터는 당연하다고 여기며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심우진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동안 없던 능력이 나타나면 능력에 대한 설명이 측정기에 나타났다.
측정기는 그걸 어떻게 아는 걸까.
누구도 모르는 그 내용을.
측정기를 만들 때 괴수의 사체에서 추출한 특별한 물질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자기들의 주도적인 기술로 그것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한 번의 결정적인 속임수를 위해 그 오랜 시간 동안 진실을 말해 주었던 거라고? 당연하게 의존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하민은 허공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절대 믿고 싶지 않았다.
S급 에스퍼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그 사이에 심우진이 돌아왔다.
충격을 받고 화가 난 게 자기만이 아니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곳에서 들어야 할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돌아온 심우진은 자기가 나갔던 그사이에 더 큰 충격적인 이야기가 오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견인이 그에게 말을 해 주었고 심우진은 그대로 넋이 나가 버린 것처럼 망연자실했다.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심우진이 묻자 연구팀장이 죄책감 서린 얼굴로 말했다.
“지금 상태에서는 모든 게 가설일 뿐입니다. 저희도 확실하게 답을 드리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일단 저희가 생각한 것은, 회복 능력의 경우에 그것을 사용할수록 에스퍼의 수명이 줄어드는 게 아닌가 했습니다. 그동안 서은우 에스퍼님이 회복 능력을 사용하셨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하민은 말을 하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S급 에스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가이딩을 갈구하면서 은우에게 다가갔던 것이 은우를 죽어 가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하민은 특히나 더 심했다.
자기가 은우의 목을 조른 것 같다는 생각, 은우의 목을 부러뜨려 버렸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견인이 조급하게 말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S급 에스퍼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억누르고 연구팀장을 바라보았다.
“일단은, 서은우 에스퍼님에게 이 일을 숨기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동요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의지가 사라져서 더 빨리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조금만 주신다면 방법을 찾겠습니다. 서은우 에스퍼님은 평범한 분이 아니니 반드시 이겨 낼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만 해도 이하민과 S급 에스퍼들은 그 말을 믿었다.
그럴 거라고, 그렇게 될 거라고 믿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악화된 것은 던전이 급속도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마치 이때가 되기를 일부러 노렸다는 것처럼 던전이 증식하듯이 나타났다.
던전에서 나타난 괴수는 그동안 그들이 상대했던 어떤 것보다도 강했다.
처음 던전의 징후가 발견됐을 때 이하민이 공격계 S급 에스퍼들과 함께 나가 겨우 공략에 성공했을 정도였다.
그들은 던전을 공략하면서 심각한 문제를 깨달았다.
던전의 괴수 자체도 강했지만 이제는 자신들이 폭주할 때 가이딩을 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그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켰던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하필 두 번째 던전에 게이트가 나타났다.
던전 내부에서 게이트가 나타나는 바람에 그날 이하민과 S급 에스퍼들은 하마터면 던전에서 살아 나오지 못할 뻔했다.
그날, 그들은 간신히 게이트와 던전을 공략하고 나왔지만 전원이 거의 방전 상태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치밀하게 계획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다음 던전이 나오면서였다.
몸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던전이 나왔고 이하민과 S급 에스퍼들은 공략에 나섰다.
다른 에스퍼들도 그들과 함께 했다.
차라리 그러지 않는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은 S급 에스퍼들의 공격이 괴수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경악했고 순간의 동요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괴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해 왔고 그날 수많은 에스퍼들이 중상을 당했다.
가까스로 공략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득보다 실이 훨씬 컸다.
그날부터였다.
전세가 기울어 버린 것은.
활기를 띠던 센트럴은 움츠러들었다.
곳곳에서 절망과 죽음의 냄새가 나는 듯했다.
S급 에스퍼들이 공략에 실패했다.
S급 에스퍼들이 부상 당했다.
공략에 나선 에스퍼들이 중상을 입었다.
그런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나갔다.
그것이 그냥 단순히 S급 에스퍼들의 명예와만 관련된 일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람들은 S급 에스퍼들에게 자기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예상하며 불안에 떨었다.
그래도 아직 다행인 것은 던전이 센트럴 한복판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언제 변칙이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S급 에스퍼들과 이하민이 급하게 소집된 것은 상황판에 새로운 던전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을 즈음이었다.
견인이 차윤과 함께 그들을 소집했고 이하민과 S급 에스퍼들은 왜 차윤이 견인과 함께 있는 건지 의아해하면서 견인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불렀어. 지금은 우리를 향해서 맹렬한 공격이 퍼부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모두가 여기에만 주목하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차윤 에스퍼에게 생각이 있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견인의 말에 이하민과 S급 에스퍼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차윤의 정신계 능력으로 뭘 하려고 하는 건지 생각하는 중이었다.
“비관적인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이번만큼은 우리도 이겨 내지 못할지 몰라. 그런데 차윤이 신기한 말을 하더군.”
견인이 말하고 이하민을 바라보았다.
이하민은 차윤이 그 이야기를 견인에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우는 자신이 소설 속에 빙의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것이 소설 속의 세계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은우가 말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까 봐 걱정한 거였을 뿐 S급 에스퍼들을 믿지 못해 그런 건 아니었다.
만약 이런 식으로 그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잘된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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