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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114화 (114/137)

114화.

이하민이 성공할 수 있을까.

만약 그가 성공한다면, 그래서 차원 이동을 해서 서은우와 함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면 서은우는 자신을 기억할까.

아니… 기억하지 않는 게 좋겠지.

그냥 잊고 사는 게 좋겠지.

아무 기억도 갖지 말고 그냥 편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를 떠올리면 언제나 그렇게 되었다.

신기한 사람이었다.

마법 같고 햇살 가득한 오후 같았다.

그를 떠올리면 언제나 좋았고 그가 나오지 않을까 해서 숲에 이른 시간부터 늦은 저녁까지 머물던 날이 많았다.

이제는 서은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품은 채 새벽이슬에 발목을 적시는 일은 그만해도 좋을 것 같았다.

‘은우 씨. 고마웠어요. 한 번 정도 그 말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말도 못 했네요. 나는 은우 씨 만나서 좋았는데 은우 씨는 어땠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기억하지 말아요. 이하민이라면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하민이랑 돌아가서 살아요. 행복하게.’

남아 있는 모든 행운을 포기하고 서은우에게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환상을 만들어 괴수를 묶었다.

그리고 에스퍼들이 기적적으로 괴수를 공격했고 그 공격이 성공했다.

괴수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을 때 에스퍼들은 멍하니 있다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겼…어. 우리가… 해치웠어…!!”

한동안은 이기는 게 당연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게이트가 있는 던전이 발견된 이후 도대체 언제 공략에 성공했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의 환호성을 뒤로 하고 심우진이 던전을 급히 나갔다.

“에스퍼님…?!”

에스퍼들은 뒤늦게 심우진의 상태를 깨달았다.

‘혹시 폭주…?’

에스퍼들이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심우진을 쫓아가자 그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빨리 차에 타고 센터로 돌아가세요. 최대한… 빨리…!!”

그가 폭주를 가까스로 참고 있는 거라는 것을 알아챈 에스퍼들은 어찌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심우진이 만든 심상이 주위를 잠식하자 겁을 집어먹고 일제히 달렸다.

심우진은 자기 손으로 에스퍼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

속이 진탕되는 것 같고 피가 끓어오르는 듯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터져 버리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범람했다.

“으으으으으아아아악!!”

죽음을 소망하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폭주하는 S급 에스퍼.

그는 결국 그렇게 되었고 살갗이 찢어지는 고통을 생생히 느끼며 몸을 만 채 바닥을 굴렀다.

찬란했던 S급 에스퍼의 끝은 지키는 사람 하나 없이 비참했다.

***

차윤은 누구보다 빠르게 심우진의 죽음을 알아차렸다.

심우진이 에스퍼들과 함께 가야할 것 같다고 말했을 때 차윤은 그를 막지 못했다.

이하민이 돌아오기 전에 던전이 먼저 개방된다면 그들의 계획은 모두 어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던전이 개방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차윤은 크게 동요했다.

‘이하민 에스퍼. 이제는 서둘러 주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는 서은우의 눈꺼풀 아래에서 눈동자가 전과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변칙이 이어졌었다.

수많은 규칙들이 유독 서은우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차윤은 자기가 그 자리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시간이 있을 때 도망치는 게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도망쳐 봐야 피할 수 있는 곳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러는 건가?

차라리 그런 합리적인 이유라면 이리 답답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것은 너무나 자신답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은우가 죽어 가는 것이 도대체 자기랑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다른 S급 에스퍼들은 바보라서 그렇다고.

자기는 왜 그러고 있냐는 말이다.

서은우가 최면에서 깨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차윤은 자신의 능력을 더욱 사용했다.

“미쳤어. 미쳤어. 진짜 너 왜 이러냐, 차윤? 정말 미친 거야? 그런 거야?”

그는 그동안 거의 사용하지 않던 능력을 개방하며 서은우를 더욱 강한 최면 상태로 두었다.

금방 깨어날 것 같던 서은우의 의식이 다시 흐려졌다.

***

이제 S급 에스퍼들을 센터에서 보는 건 정말 힘들어졌다.

그들이 얼마나 인기가 많아졌는지 사람들은 그들의 공연을 보고 왔다고 자랑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S급 에스퍼들이 무대에서 얼마나 빛났는지,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이 센터에 거의 나타나지 않아서 S급 에스퍼들이 하던 일이 내 몫으로 넘겨져 틈을 내 센트럴에 갈 수가 없었다.

이하민은 이하민대로 바빴다.

특임대가 나서야 할 일이 계속 생긴다고 했는데 나는 그가 걱정됐다.

가끔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연구실에 가서 얼쩡거렸다.

무슨 얘기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문득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다시 이하민이랑 S급 에스퍼들이랑 같이 다니고 싶은데.

저녁 늦게 이하민이 왔다.

그는 센터의 숙소에서 혼자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 말을 왜 할까.

지금 특임대가 얼마나 바쁜지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나를 너무 배려할 때는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네가 바쁜 걸 내가 모르냐?”

“몰라서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미안하긴 해서. 너라도 그럴 거야. 네 잘못이 아니어도 내가 고생하는 걸 보면 안쓰럽고 그럴 거잖아.”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래도 미안해하지 마, 이하민.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행복한데.

그 말은 하지 못했다.

왜 얼굴이 붉어졌을까.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을 텐데.

“뭔데, 은우야?”

그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됐어. 말 안 해. 알잖아, 어차피.”

“알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듣고 싶어서.”

“싫어.”

“행복해, 은우야? 나 때문에 행복해?”

장난하는 줄 알았는데 녀석의 목소리에 물기가 서렸다.

깜짝 놀라서 그를 보았다.

“야, 이하민. 너 왜 그래? 많이 힘들어? 내가 좀 도와줄까?”

그러자 녀석이 살포시 웃으며 나를 보았다.

“은우야. 나는 너를 만난 게 가장 행복했어. 나는 너를 포기 안 할 거야. 그러니까 은우야. 너도 절대로 나 포기하지 마. 그리고 나. 기억해야 돼.”

“당연하지. 너 왜 그래? 혹시 토파즈 놈들이 문제 일으켰어? 무슨 일인데? 특임대 일이 어려워? 에스퍼들이 네 말 안 듣고 무시하고 그래? 그러면 나한테 말을 해야지 왜 울고 있어. 어?”

답답해서 마음이 급해졌다.

벌떡 일어나서 누가 그런 거냐고 하자 녀석의 얼굴에 맺혀 있던 웃음이 좀 더 커졌다.

“아니야. 그런 거. 누가 감히 나한테 그러겠냐. 일이 힘든 것도 아니야. 나는 그냥. 그냥 한 번은 너한테 이 말 하고 싶었어. 사랑한다는 말도 원 없이 하고 싶고. 은우야, 사랑해. 정말 사랑해. 세상의 누구도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건 불가능할 거야. 너를 사랑해. 너를 대신해서 죽는 게 조금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그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건 녀석을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던 것 같다.

녀석의 눈을 보면 이하민이 나를 위해 목숨을 내걸 수도 있을 거라는 걸 알 것 같았다.

처음, 그와 나 사이에 어떤 관계도 형성되어 있지 않았을 그때부터 우리는 그랬던 듯했다.

“알아, 이하민. 당연히 알지. 그리고 나도 너 사랑해. 나는 너 없으면 안 돼. 무슨 일로 그러는 건지는 모르지만 너 아니면 나는 안 되니까 너도 이겨 내. 혼자서 견디기 어려우면 나한테 꼭 말해 줘. 혹시 너. 던전 발견했냐? 상황실에서 발견 못 한 던전을 발견한 거야? 그래서 걱정돼서 그래? 그런 거야?”

그런 거라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물었더니 그가 고개를 저었다.

“혹시 게이트가 있는 던전이 나온 건 아니야? 아니지. 그런 일이 있었으면 상황실에서 나한테 가장 먼저 알려 줬을 텐데. 요즘은 내가 센터장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고 있으니까.”

결국 이하민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말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시간이 지나고 나서 후회될지도 모르잖아. 왜 말하지 못했을까 하고 말이야.”

“정말 그런 거지? 그냥 그런 것뿐이지?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지, 이하민?”

“응. 걱정 안 해도 돼.”

그는 나를 안고 내 뺨에 얼굴을 마주 대고 있다가 입술에 오랫동안 입을 맞췄다.

왜 그렇게 미련이 느껴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를 놔두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 버릴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을 텐데 대체 왜 그러는 걸까.

“혹시 센터장님이 너한테 비밀스러운 임무라도 맡기셨어? 나한테 비밀로 하고 있는 거 없지?”

“그래. 없어. 은우야. 내가 말한 대로야. 그냥 한 번쯤은 꼭 말하고 싶어서 그런 것뿐이야. 이제 더 이상 다른 생각하지 마. 다른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자. 내가 옆에 있을게.”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처음에 이하민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내가 침대에 누워 있었던 걸까.

그런데 그런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에 심우진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처음에 그를 만나고 그의 연주를 들을 때는 분명히 숲이었다.

연주를 듣는 동안 노을을 보기도 했었는데 연주가 끝났을 때는 내 침대에 누워 있었던 것 같았다.

혹시 그사이의 일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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