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뭔데 이렇게 시끄러워?”
갑자기 나타난 A급 에스퍼들을 보고 에스퍼들은 자기들이 혼이 날까 봐 이하민의 잘못인 것처럼 몰아세웠다.
이하민이 길을 막고 있어서 잘 타이르려고 했는데 갑자기 에스퍼를 밀고 난동을 부렸다고.
은우는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힌다는 듯이 피식 웃더니 자기가 본 걸 설명했다.
A급 에스퍼들은 은우의 말 같은 건 간단히 무시해 버리고 이하민을 노려보았다.
“가이드 주제에 에스퍼가 몇 마디 지적을 했다고 난동을 부려? 미친 건가 보지?”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제가 나중에 에스퍼가 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제가 S급 에스퍼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아니면 SS급 에스퍼나.”
자신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지만 자기가 걱정돼서 전전긍긍하는 은우를 보면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자기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에스퍼들에게 당하는 것을 보면 은우가 다시 한번 위험을 무릅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의 이하민에게는 에스퍼들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는데 그걸 모르는 은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 에스퍼님들. 얘가 좀 아픈 것 같은데 제가 데리고 가서 잘 타이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뭘 잘못 먹은 것 같아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나대서 정말 죄송합니다.”
은우는 여기서 잘못하다가는 이하민이 크게 위험해질 거라고 생각한 듯 허리를 굽신거리면서 에스퍼들에게 사과를 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 모습이 에스퍼들의 심기를 더욱 자극한 것 같았다.
에스퍼가 왜 가이드의 편을 들어 주는 건가 하는 듯했다.
식당으로 가던 가이드들은 멀찍이 서서 불똥이 저희에게 튀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야, 이하민. 너도 빨리 사과드려. 그게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 고집을 부려. 빨리 사과드려.”
서은우는 그때까지 이하민과 개인적으로 말을 나눠본 적도 없었지만 이하민의 뒤통수를 밀면서 고개를 숙이게 했다.
이하민은 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은우가 지금 저에게 그러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에스퍼들에게는 기괴하게 보였다.
서은우는 더더욱 그랬다.
얘가 왜 안 하던 짓을 하는 건지.
원래 안 이랬는데 갑자기 왜 이러고 있는 건지.
지금 나 믿고 이러는 건지.
안 그래도 에스퍼들 성질도 안 좋은 것 같은데 여기에서 일이 커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것 같았다.
“서은우 맞지? D급 에스퍼. 네 일 아닌 것 같은데 너는 끼지 말지? 안 그러면 너도 팔다리 하나 부러진다. 너 신체 강화 능력자지? 나도 그런데. 한번 붙어 보고 싶으면 붙어 봐도 되고.”
그렇게 말한 사람은 A급이었고 에스퍼들은 음흉하게 웃었다.
은근히 서은우가 끝까지 붙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같은 계열의 능력자라면 등급의 차이에 따라 싸움의 승패가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서은우가 수많은 변수의 집합체라는 것을 몰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만.
“죄송합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평소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시면 안 될까요?”
이하민은 자기 때문에 은우가 비굴하게 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해 주기로 했다.
“말만 하다가 끝낼 게 아니면 나오세요. 아니면 제가 할까요?”
이하민은 그렇게 말했지만 상대에게 기회를 줄 마음 같은 것은 없었다.
나오라고 해 놓고 자기가 먼저 나갔던 것이다.
그때까지 기고만장한 얼굴로 이하민과 서은우의 운명을 손안에 쥔 것처럼 굴던 A급 에스퍼의 눈앞에 갑자기 이하민이 나타났다.
공간 이동이었다.
그러다가 그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나 뭐 한 거지?!”
오리진 센터에서 올 때 그냥 공간 이동으로 한 번에 오면 되는 거였는데 왜 굳이 뛰었던 거지?
그 생각이 들면서 너무나 화가 나고 억울해서 그런 거였는데 그 모습을 본 에스퍼들의 놀라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것은 S급 신체 능력 강화자라고 해도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공간 이동 능력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으니 그런 표정을 짓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 센터의 S급 에스퍼 중에는 신체 능력 강화자도 없었다.
“하고 싶은 걸 해 보세요. 덤비고 싶으면 덤비세요. 대신 죽을 각오로 덤비셔야 할 거예요.”
A급 에스퍼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그를 지켜보는 다른 에스퍼들의 표정도 비슷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건지.
그들은 모두 그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뭐 하는 거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목소리가 들렸을 때 이하민은 감격을 참지 못하고 그곳을 돌아보았다.
견인이었다.
그가 살아 있었다.
던전에서 죽은 그가 살아 있었다.
“에스퍼님!!”
이하민이 그를 바라보며 비명에 가깝게 소리를 지르자 견인이 오히려 깜짝 놀란 듯 움찔했다.
“왜… 왜 그러지, 이하민? 너 맞았어? 사람들이 너를 괴롭혔어?”
에스퍼들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사실이라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이하민이 S급 에스퍼의 전담 가이드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S급 에스퍼들이 그를 직접 챙긴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자기들이 이런 식으로 대해도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견인이 한 말이 조금 위험하게 들렸던 것이다.
“….”
에스퍼들 중 그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거나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A급 에스퍼들도 만약 견인이 자기들을 붙잡지만 않으면 그러고 싶은 듯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가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그때부터는 도망치듯 달려가 버렸다.
이제 그곳에는 이하민과 서은우, 그리고 견인만 남아 있었다.
이하민은 서은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표정을 보면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깨달았다.
견인의 시야에 들어가 버렸다고 생각하며 자기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하고 있겠지.
이하민은 그런 서은우에게 다가갔다.
“은우야. 고마워. 그리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가 알고 있는 그 이야기. 그렇게 안 될 거야.”
“…뭐?”
서은우는 깜짝 놀랐고 그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견인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것 같았지만 더 이상 자기가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여긴 듯 돌아가 버렸다.
지금은 은우하고 둘이서 해야 할 얘기가 많았기에 이하민은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다시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터였다.
“은우야. 나야, 이하민.”
“그래… 알아. 그런데 너 좀 전에 뭐한 거야? 어떻게 된 거야? 너 가이드잖아. 혹시 너… 에스퍼이기도 한 거야?”
이하민은 고개를 끄덕였고 서은우는 그런 이하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아는데 너는… 아니야. 아닐걸? 그건….”
서은우가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이 말하는 걸 보면서 이하민이 환하게 웃었다.
“네가 알고 있는 거. 그거 많이 바뀌어. 너희 누나가 쓴 소설이 많이 바뀌게 되거든.”
“…!! 뭐?”
은우의 눈이 그대로 튀어나오려는 것 같았다.
그는 너무 놀라서 숨이 다 막혔는지 콜록거렸다.
“그걸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 게 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걸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은우였지만 그 순간에는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이하민은 그의 고민을 한 번에 다 해결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하민이고 지금은 가이드지만 나중에는 에스퍼가 될 거야. 그것도 SS급 에스퍼. SS급 에스퍼는 나밖에 없어. 나는 증폭 능력을 갖게 되고 그 후에는 복제 능력까지 생겨. 지금의 나는 그 능력을 전부 다 갖고 있는 상태야. 복제 능력이 있다고 다른 사람이 가진 능력을 전부 다 복제할 수 있는 건 아닌데 견인 에스퍼님의 능력은 복제했어.”
“…!!”
은우의 눈은 끝도 모르고 계속해서 커졌다.
덩달아 입도 크게 벌어졌다.
“어떻게… 어떻게 그게 가능해?”
“아, 그리고 이건 중요한 얘긴데 내가 하는 가이딩은 네가 생각하는 거랑 달라. 여기에 있는 다른 가이드들이 하는 가이딩이랑도 다르고. 나는 S급 에스퍼들의 전담 가이드지만 점막 가이딩도 한 적이 없어. 아. 그리고 이거야말로 중요한 건데. 너는 S급 에스퍼가 될 거고 회복 능력이 생겨. 그걸 처음에는 가이딩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 때문에 너는 죽어 가게 돼.”
“내…가? 회복 능력을 써 버리는 바람에?”
“응.”
그렇게 반문하는 것을 보면 자기가 하는 말을 아주 안 믿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이하민은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은우야.”
이하민이 아직 할 말이 더 남아 있다는 듯이, 그리고 그거야말로 중요하다는 듯이 부르자 은우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만 말해. 나 머리가 터질 것 같아.”
“그래도 이건 듣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거야말로 중요한 거야.”
“내가 죽어 가게 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얘기가 있다고?”
“응.”
은우는 그런 게 있을 리 없을 거라는 얼굴로 이하민을 바라보았다.
“뭔데? 말해 봐.”
만약에 그것만큼 안 중요하기만 해 보라는 듯이 위협적으로 말하자 이하민이 웃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돼.”
역시.
그건 너무 믿기 어려웠나?
이하민은 하늘을 보고 누워있었고 S급 신체 강화자의 주먹맛을 제대로 봤다.
그의 눈앞에는 씩씩거리면서 아직도 화를 못 가라앉히고 있는 은우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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