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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 외전(1)화 (121/137)

1화.

죽은 줄 알았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폭혈검의 검에 당했으니 그러는 것이 당연했다.

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살고 싶지 않았다. 저주스러운 삶을 잇고자 다시 그 악독한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왜 나는, 남을 죽이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것인가.

흡성대법을 익힌 것은 저의 잘못이 아니었다. 웬 미친 노인이 가르쳐 준 것을, 그게 뭔지도 모르고 익히다가 결국 거기에 완전히 잡아먹히고서야 깨달았다. 남의 기를 흡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남의 기를 뺏어야 내 목숨을 이을 수 있다면 죽어 마땅한 자를 죽이자 생각했다. 간살한 자들을 잡아 죽이며 버텨 왔는데 하필 내가 죽인 이 중에 초절정 고수의 사제가 있을 게 뭐란 말인가.

그래서 지금 견인은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기척을 느꼈지만 도망칠 기운도 없었다.

꺼져 가던 시야에 한 사내가 들어왔다. 가물가물 의식을 잃어 가던 와중에 찰나의 순간이나마 정신이 다시 돌아올 만큼, 그에게 다가온 남자는 대단히 수려한 용모를 하고 있었다.

창백해 보이리만치 희디흰 피부와 가는 붓으로 그린 것 같은 눈과 코와 입, 턱과 목으로 지나는 선이 어찌나 고운지, 그것을 바라보기 위해 저도 모르게 잠시 눈에 힘을 주고 버텼을 정도였다. 살면서 쉬이 구경해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존재에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다가오던 걸음이 잠시 우뚝 멈췄다. 이제껏 한 번도 다른 이에게 화를 내 본 적 없었을 것 같은 순한 눈매에 일순간 경계가 엿보였다. 견인에게서 지독한 사기(邪氣)를 느낀 듯했다.

이리 가까워지고서야 사기를 느낀 것인가 하고 무시할 것은 아니었다. 저를 이리 만든 초절정 고수 폭혈검을 기어이 죽인 실력이었다. 세상에 이름 알리는 것을 싫어해서 그늘 속으로만 다니지 않았다면 지금쯤 찬란한 무명(武名) 몇 개는 얻었을 것이다. 죽음을 앞둔 지금이 아니라면 마지막 순간까지 사기를 완벽히 지웠으리라.

남자의 갈등은 놀라울 정도로 짧았다. 견인이 사파의 무공을 익힌 자라고 해도 죽어 가는 그를 모른 척 지나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가 걸음을 다시 뗀 것과 거의 동시였다.

“스승님!”

그 소리를 들었을 때야 견인은 그에게 일행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신이 혼미한 와중이 아니었다면 다른 이의 존재를 그렇게 완전히 놓쳐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열여섯이나 되었을까? 소년의 경계에 발을 담고 있는 예쁜 남자아이였다. 그러나 귀여운 맛은 전혀 없고 제가 스승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차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건 말건 상관없었다. 견인은 이제 지쳤고 더 이상 이 지겨운 싸움을 이어 나갈 마음이 없었다. 제가 살기 위해 다른 이가 더 악하기를 바라며 숨죽여 다가가 그가 가진 생명의 근원까지 흡수하는 것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견인의 뜻이었을 뿐인가. 다가온 남자가 상처를 치료하려는 듯 견인의 옷섶을 풀어 헤쳤다. 견인은 그런 남자를 보고 설핏 웃었다. 애써 본다고 해도 살릴 수 있는 몸이 아니라는 것을 그도 곧 알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던 견인의 눈이 잠시 커졌다.

‘매화검수? 이런 곳에서? 게다가 이 나이에? 이리 젊은 나이에 매화검수라니. 겨우 이대 제자나 될 것 같은데 화산의 이대 제자 중에 벌써 매화검수가 된 이가 있었던가?’

남자의 소매에 놓인 매화 자수를 보며 견인은 생각했다. 그러다 그가 남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매화검수라면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다. 대문파의 후기지수 중에서도 이름을 날릴 사람일 텐데 자신으로 인해 그의 인생에 오점을 남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고로 정파인들이란 사파니 마교니 하는 이들에게 병적으로 증오를 품는 자들이니.

마교에 비하면 그나마 낫겠지만 화산이라면 사파에 관대하지 않았다.

게다가 매화검수라면….

그러면 만남과 인연에 더 유의해야 할 것이다.

“되었소. 나는 가망이 없소. 살고자 했으면 내 상처를 스스로 고쳤을 것이오.”

“그런데 왜 고치지 않으십니까.”

그는 안타까운 얼굴로 물었다. 견인이 대답을 하지 않자 그는 다시 견인의 상처를 보려 했다. 놔두면 저의 내공을 사용해 상처를 고칠 것 같았다.

견인은 죽는 길에 귀찮은 인간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다시 손목을 붙잡았다. 이렇게 가늘고 하얀 손은 처음 보았다. 이런 손으로 검은 어찌 든다고.

갑자기 떠오른 쓸데없는 생각에 피식 웃고 견인이 말했다.

“나는 흡성대법을 익혔소. 나를 살린다면 소협은 앞으로 내가 죽이게 될 사람들의 목숨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나는 강하오. 나를 죽이려고 한 폭혈검을 죽였을 정도로 그렇소.”

남자의 얼굴에 선연한 놀라움이 나타났다. 폭혈검이라는 이름이 그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 모양이었다.

견인은 이제 그쯤 했으면 설명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 자는 견인의 어깨에서 옷을 벗겨 내고 있는 것인가. 게다가 견인의 뒷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고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히기까지 했다.

“은우야, 이리 와서 나를 돕거라. 폭혈검이 혼자가 아니었다면 잔당이 주위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 스승이 이분을 치료하는 동안 호법을 서 거라.”

견인은 억지로 정신을 차렸다. 이제 그냥 삶의 끈을 놔 버리고 싶은데 설명이 충분치 않았던 건가 했다.

“이보시오, 소협. 소협은 폭혈검을 모르시오? 그자는 사파 십대 고수 중 한 사람이오.”

“알고 있습니다.”

대답을 하면서도 그는 부지런히 견인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 상처 부근의 혈을 짚어 지혈을 하고 있었다.

“소협, 나는 사파의 사람이오. 나를 도우면 소협은 난처해지게 되오. 소협의 정적이 이 일을 알게 되면 소협을 무림공적으로 몰아 단전을 폐할 수도 있소. 나는 전혀 살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그냥 돌아가시오!”

그러자 그가 견인을 보고 웃었다.

“폭혈검을 죽이신 분이라면 이 정도 상처가 있다고 해도 저와 제 제자를 공격하는 게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 사정을 걱정해 주지도 않으셨겠지요.”

내공을 사용하며 치료를 하면서도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그의 무공 수준도 쉽게 볼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젊은 무인 중에 이런 일이 가능한 자가 있었다는 것에 다시 호기심이 머리를 들었다.

“게다가 대협의 내공을 확인하니 불순하지 않습니다. 흡성대법을 익힌 자는 살인의 습벽 때문에 무고한 양민까지도 죽인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순전히 사기만으로 채워진 것을 보면 대협은 양민을 학살하고 부녀자를 간살한 자들만 죽여 오신 듯합니다.”

그것은 억지였다.

그걸 가지고 그렇게까지 추론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멍한 얼굴로 그를 보던 견인은 자신의 상처에서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제가 방법을 알 것 같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 기를 모을 방법을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어느새 견인의 상처에 손을 대고 내공을 불어넣었다. 터무니없이 정순한 내공이 저에게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견인은 당혹감을 느꼈다. 분명히 내공이 충돌할 것이다. 맞지 않아도 너무 맞지 않는다. 상성이 이렇게 나쁘기도 어려울 것이다.

견인은 이제 곧 벌어질 일을 예견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왜…?’

그는 자신의 내공이 매화검수의 내공을 받아들이며 그것에 길을 내주고 있음을 느꼈다. 매화검수의 내공은 상하고 끊어진 기혈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견인은 멍하니 매화검수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도대체….

“저를 믿어 보십시오. 제가 대협을 살려 드렸으니 나중에 제 사문에 어려움이 닥칠 때 대협의 힘을 한 번 빌려주십시오. 그리하면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얼굴에 흡족한 웃음이 지어졌다.

견인은 의혹이 가득 담긴 얼굴로 그를 보았다.

“도호는 청연이라 합니다. 이름은 이하민이지요. 하민이라 불러 주십시오. 이 아이는 아직 도호를 받지 않았고 이름은 서은우라 합니다. 이리 만나게 된 것도 원시천존의 뜻이 아니겠는지요. 부축해 드릴 테니 일어나 보십시오.”

하민이 견인을 부축했다.

견인은 그를 따라 일어나면서도 지금 제가 잘하는 짓인지 알 수가 없었다.

***

서은우는 도무지 집중을 하지 못했다. 지금껏 단 한 차례도 실수를 한 적 없던 스승님이 이번에는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려 버렸다. 자기도 그것이 잘못된 결정이라는 것을 아는데 오직 스승님만 모르는 듯했다.

그것은 스승님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서은우 자신의 안전에도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문제였다. 자기들의 거처에 외부인을, 그것도 사파의 무인을 들인다는 것은 도저히 사문에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스승님이 장문인의 사손이라고 해도 그랬다.

그랬기에 서은우는 스승님이 한 번 더 생각을 할 거라고 믿었다. 설마하니 자기에게 다른 사람의 제자가 되라고 말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화산이 생긴 이후 매우 드물게 이대 제자의 신분으로 매화검수에 오르고, 장문인의 사손이 되어 차차기 장문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 스승님이었다. 그 스승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명예로운 일일 뿐만 아니라 서은우에게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는 자애롭고 인자했다. 친자식처럼 아껴 주어 자신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고 믿어 왔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제자가 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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