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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 외전(2)화 (122/137)

2화.

스승님이 장문사손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이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았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면 다른 이대 제자들과 똑같은 생활 방식을 따라야 했을 것이고 특별한 대우를 요구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테니.

그러나 그는 장문사손이었고 화산 전력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를 키울 시간에 수련에 매진하겠다는 말이 어른들에게 통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다른 사람의 제자가 될 것 같아서 서은우는 지금껏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반항이라는 것을 해 보았다.

-이 제자가 그리 보기 싫으시거든 죽어 버리겠습니다!’

내가 외친 말에 가슴을 검에 관통당하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스승님은 저를 안아 주었다.

-내 결정으로 인해 네가 위험해질까 봐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이다. 왜 네가 보기 싫겠느냐.

그 말이 더 서러웠다.

-제가 위험해질 것 같으면 그자를 보내 버리시면 되는 게 아닙니까!

-이것은 원시천존의 뜻인 것 같다, 은우야. 너는 총명한 아이이다. 너는 화산의 보물이야. 부디 이 스승의 뜻을 헤아려 주면 좋겠구나.

그럴 수 없었다. 스승님이 하려는 짓은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 들어가는 일이었다. 흡성대법을 익힌 사파의 무인을 데려다가 스승이 가르친 것이 무엇인가. 사람 대신, 그들의 뒷마당에 자라는 매화의 앞에서 그것의 기운을 흡수하게 하는 거였다.

매화생공.

스승님이 창안하고 이름 붙인 심법이었다. 그것은 스승이 혼자서 연구해 온 심법이었지만 스승이 창안한 것은 사문의 재산이었다. 사파의 잡배에게 알려 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서은우는 견인이 알아서 떠나기를 바랐다. 떠나라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검을 들고 협박을 해 보기도 했다. 그자는 이곳까지 와서는 안 되는 거였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화산에 온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것인데 왜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인가.

견인은 꿈쩍도 하지 않고 매화나무 앞에 머물렀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는 것 같았다. 평생 천형처럼 짊어지고 오던 흡성대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오로지 거기에만 몰두했다.

서은우는 혼자서 검술을 연마하다가 도무지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견인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언제나 제 스승과 저, 두 사람만 머물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 저는 그곳에 가는 것도 허락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견인이 운기조식을 하는 동안 방해하면 견인도, 다른 사람도 위험해질 거라는 게 이유였다.

그곳에 가는 다른 사람이라고 해 봐야 저뿐인데 저를 다른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 못내 서러웠다. 그 말을 듣고 눈시울이 단번에 붉어질 만큼.

스승은 견인이 운기조식을 하는 동안 그곳에서 호법을 섰다.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승은 그 시간 동안 내내 견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그를 샅샅이 바라보았다.

단정한 골격, 반듯한 이마, 거만해 보일 정도로 높은 콧날, 흠잡을 곳 없이 잘생긴 얼굴. 넓은 어깨와, 잔근육이 단단하게 들어찬 몸.

운기조식을 하는 동안 상의를 벗고 있는데 서은우는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물지 않은 제 몸을 보면서 늘 조급한 마음만 그득했다. 빨리 자라서 제 스승의 눈길을 받고 싶었다. 보살핌의 대상이 아니라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그런데 제가 아직 그 시간을 채 뛰어넘지 못하고 있을 때 그가 나타나 버린 것이다. 그리고 당당히 스승의 시선을 가져가 버렸다.

제 스승은 정파의 모든 이가 인정하는 천재였는데 그자 역시 만만치 않은 실력자였다. 흡성대법을 익혀 모두에게 자신을 철저히 숨겨 오느라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사파의 십대 고수라는 폭혈검을 죽인 지금의 나이가 겨우 서른둘이었다. 제 스승과는 고작 네 살 차이였다.

화산에 돌아오기 전, 서은우는 두 사람이 비밀리에 나눈 비무를 엿보았다. 훔쳐보는 것이면서도 제 스승이 위험해지지는 않을까 해서 몇 번이나 뛰어나갈 뻔했다.

제 스승이 누구이던가. 정파 무림에서 제일가는 후기지수였다. 후기지수 중에 스승님과 겨룰 수 있는 사람은 남궁세가의 소가주 정도라고들 했다. 그것도 오대세가에서 자존심 때문에 하는 소리지, 남궁세가 소가주도 감히 스승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았다.

그런데 그 스승을 견인은 당당하게 눌렀다. 스승을 봐주지도 않고 끝까지 짓쳐들어오더니 마침내 쓰러뜨리고 검날을 마주했다. 두 손으로 검을 붙잡은 스승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었다.

소매가 흘러내려 하얗게 드러난 가느다란 손목을 보며 서은우는 분해서 안광을 뿜었다. 제 스승이 비무에 져서 쓰러졌는데, 그리 드러난 손목을 보며 제 여린 몸의 일부가 단단해진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견인은 한 손으로 넉넉히 스승의 검을 눌렀다. 그만하면 그가 이겼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았을 것인데 검을 치우지 않고 그 상태로 제 스승을 지독하게 바라보았다. 스승은 계속 버티지 못했고 검날이 얼굴에 닿고야 놓여날 수 있었다.

견인은 그제야 제 검을 잡은 손에서 힘을 뺐고 스승은 힘이 모두 빠진 양 헉헉거리며 거친 숨을 토해 냈다. 그러고도 견인은 일어나지도, 제 스승을 일으켜 주지도 않았다. 그러고는 그 위에서 빤히 스승을 바라보기만 했던 것이다.

자세가 불편한지 그 위에서 몇 번 몸을 움직이면서. 힘들면 그냥 일어날 것이지.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나고야 마침내 그가 먼저 일어서더니 스승을 일으켜 주었고 두 사람은 엇갈린 채로 서서 또 그렇게 한참이나 서 있었다.

서은우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견인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그야말로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었다. 화산의 제자가 그런 마음을 품는 것이 죄스러우면서도 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잘하셨습니다. 매화생공은 형님도 새로 연공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매화가 죽었을 것입니다. 매화를 죽이지 않은 채 매화의 기운을 얻고자 하는 형님의 마음 때문에 매화가 살았습니다. 매화생공을 익히기까지 몇 그루는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이리하신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가당치 않게 형님이라 부르는 것도, 그깟 매화생공을 해냈다고 칭찬을 하는 것도 싫었지만 더 싫은 것은 스승이 그리 말을 하는데 견인이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오직 새롭게 익힌 내공심법으로 성취를 이루려는 생각뿐인 것 같았다.

“스승님, 말씀하신 것을 다 하였습니다. 시키신 것보다 스무 번씩 더 했습니다.”

불퉁한 목소리로 서은우가 말했다.

말하기 전부터 이미 스승은 그가 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내내 견인을 지켜보고 있던 스승이 일어나 그를 향해 돌아섰다. 반만 잡아서 길게 묶어 내린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더 이상 닿을 수도, 다가갈 수도 없는 스승은 서럽게 아름다웠다.

“그래. 잘하였다. 은우야.”

그도 이제 더 이상 은우에게 다른 사람의 제자가 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신의 곁을 온전히 내어 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언제까지 이럴 작정이십니까. 지금까지 운 좋게 들키지 않았다고 해도 여기에 다른 사람이 오고 이곳에 외부인이 있는 걸 보면 스승님과 저는 함께 파문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서은우는 그만하자고 생각했으면서도 견인을 보자 다시 화가 치밀어 소리쳤다. 스승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견인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그러자 스승이 말했다.

“이 자리에 없어야 할 사람은 형님이 아니다, 은우야.”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 순간에조차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는 스승을 보며 서은우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새카만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그 눈에 원망을 담은 채 스승을 바라보았다. 눈에 눈물이 차오르다가 기어이 뺨으로 흘러내렸다. 제 가슴을 이리 아프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스승뿐이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로 온화하게 제 가슴을 후벼 파는 스승인데도 그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서은우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원망스럽고 서러웠다. 비참해서 이곳을 그냥 딱 떠나 버렸으면 좋겠는데 이 빌어먹을 몸뚱이는 조금도 움직이질 않았다. 모멸감을 참으면 참았지 제 스승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버티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아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

“벌써 오성에 이르셨습니다. 이리 빠를 줄은 몰랐습니다.”

물에 적신 목면천을 들고 내게 다가오며 하민이 말했다.

“형님이 대단하신 분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것은 형님이 가 보지 않은 길을 새로 가는 것이 아니었는지요.”

“이리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가서 씻으면 돼.”

“제가 하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니 못 이기는 척 받아 주시지요.”

하민이 웃으며 말했다.

그가 마냥 상냥하기만 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고집이 셌고 원하는 대로 조련하는 것은 수준급이었다. 하민이야말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자신도, 서은우도 결국 그의 말에 꼼짝을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민, 이제 나는 화산을 떠나고 싶다. 나를 도와준 것은 말할 수 없이 고맙다. 반드시 너와 네 사문에 진 빚을 갚을 것이다. 허나 이제는 내려가겠다. 너와 네 제자를 위험에 처하게 하고 싶지 않다.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이리 살고 싶지는 않아.”

그의 어깨가 움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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