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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 외전(4)화 (124/137)

4화.

“스승님에게 허락을 받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 말씀은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어리기는 했지만 자존심이 상했는지, 그 말을 하며 입술을 짓씹었다.

할 수 없이 하민에게 묻자 하민은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은우가 안쓰럽기도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은 금지한 것도 아니니 가르쳐 줘 볼까 하고 나섰다. 하민은 내가 은우에게 가르치는 동안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일부러 중요한 몇 가지를 틀리게 알려 줬고 하민이 깜짝 놀라며 끼어들었다.

“형님은 그동안 그것을 그리 아셨던 것입니까?”

그러면서 내가 잘못 가르치는 것들을 바로잡아 은우에게 알려 주었다. 은우는 그렇게라도 저에게 말해 주는 것이 고마운지, 해를 본 꽃처럼 감격스러워했다. 그렇게 하민은 은우를 용서하는 듯했다.

***

흡성대법을 대신해서 내공심법을 바꾼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새롭게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무공과 검법도 다시 연마해야 했다.

“다시 하시면 됩니다, 형님. 흡성대법을 버리겠다고 생각하셨으면 다른 것도 버려야지요. 제가 가르쳐 드릴 것입니다.”

내공심법은 자신이 창안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기반으로 한 화산의 검술과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이미 하민은 선을 넘고 있었다. 장문인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 때문에 시작한 것 같은데 이제는 더 이상 손을 놓은 채 하민이 하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하민, 이 이상 계속하는 것은 은우에게도 위험하다. 나는 화산을 떠나겠다. 너만큼 잘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도 검술을 창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겠다. 너는 여기에 은우와 함께 남거라.”

“초절정을 넘어선 형님을 모셔다가 날개를 꺾었습니다. 혼자 가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처절하게 매달리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은 그럴 뜻이 없으니 여러 말을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너는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살렸다.”

그러나 하민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은우를 불러 매화생공의 마지막 구결을 알려 주었다. 12성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구결이었다.

“이 자리에서 외우거라. 다 외웠거든 말해 보거라.”

은우는 무서울 정도로 영민한 아이였다. 복잡하고 어려운 구결을 한 번 듣고 그 자리에서 전부 외웠다. 그러나 자기가 외운 것을 제대로 말하지는 못했다. 제 스승이 왜 저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는지 알았을 것이다.

“스승님, 저도 데려가시면 안 되는지요.”

그 말을 하고 은우는 안타까울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누구에게도 매화생공을 알려 주지 말거라. 그것을 알려 주면 너는 대체할 수 있는 아이가 되어 버린다. 힘이 들더라도 버티고 살거라.”

그러나 은우에게 저의 안위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가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안 되는지요. 멀리서라도 뵐 수 있게 해 주세요, 스승님. 이리는 못 가세요. 이리는 보내 드리지 못합니다!”

은우는 끝까지 하민에게 매달렸다.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더니 그때는 하민을 붙잡은 채 놓질 못했다. 이대로 헤어지면 다시는 그를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폭혈검이 죽은 곳, 그곳으로 오너라. 그리하면 이 스승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 홀로 남겨져야 하는 은우를 위해 그 정도는 말을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 듯 하민이 말했다. 은우는 겨우 그것에 만족하며 남은 날을 견뎌야 했다.

“버텨야 한다, 은우야. 반드시 버텨야 한다.”

그러고는 하민이 은우의 머리를 안아 주었다. 하민이 은우를 놓아주었을 때, 은우가 흘린 눈물로 하민의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너를 보러 오마.”

가슴이 아픈 듯 하민이 말하자 은우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스승님. 이곳에 오셨다가 붙잡히시면 스승님은 살아남지 못하실 것입니다. 제가 찾아갈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로 오시면 안 됩니다.”

은우가 얼마나 하민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마음이 갈가리 찢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듯했다.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네가 네 제자를 들여 나에게 인사를 시킬 때까지 하민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게 해 주마.”

은우를 위해 무슨 말이라도 해 주고 싶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하민을 위해 죽는 것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

하민은 나에게 화산의 상승무공을 알려 주었다. 그것도 장문인에 대한 반감 때문인가 했지만 그는 웃었다.

“형님, 저에게 하신 약조는 반드시 지키셔야 합니다. 제 사문에 어려움이 닥치거든 형님의 몸을 태워서라도 지켜주시겠다 했습니다.”

“그럴 것이다.”

화산의 검법을 익혀 나갔다. 화산의 어린 제자들이 배우는 기초 검공부터 차근차근 다져 나갔다.

매화검, 육합검, 낙영검법….

새로 만든 길을 닦아 나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어려울 것도 없었다. 하나하나의 것을 대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하민은 무서운 스승이었고 내가 한눈을 팔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일년이 지났을 때 하민과 나는 화산의 상승무공으로 비무를 했고 나는 하민이 거기에서 더 많은 검법을 창안하는 것을 보았다.

하민은 그러도록 만들어진 사람 같았다. 그에게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검로가 보이는 듯했다. 가야 하는데 아직 가지 못한 길, 검에게 그 길을 만들어 주기 위해 늘 매달리는 것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막상 창안하고도 실제로 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거였다. 이게 왜 안 되지요? 하고 물으면 나는 그것을 해 주었다. 하민은 신이 나서 검로를 이어 나가며 몇 개의 검법을 더 만들어 냈다.

매화생공에도 몇 번이나 변화를 주어 나중에는 그것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게 어려울 정도가 되었는데 그 때문에 축기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남들이 보면 마공을 익힌 게 아닌지 의심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그것 역시 하민은 실제로 하지 못했다.

“저는 이게 왜 안 될까요?”

시무룩해하는 하민의 앞에서 초식을 쭉 펼쳐 보다 그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우면 보러 가자. 내가 있는데 뭘 걱정해. 은우가 보고 싶은 거잖아.”

하민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형님 눈에는 제 생각이 그냥 다 보입니까? 저는 아무 내색도 안 했는데 왜 그러세요?”

“내가 너를 모를까.”

웃는 하민의 매끄러운 피부에 입술을 댔다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마음을 굳힌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가지 않을 거예요. 어차피 오래 머물지도 못하는데 마음만 흔들어서 무얼 해요. 마음 잡고 수련에 열중하게 해 주는 게 좋아요.”

“네 고집을 어찌 당하겠느냐. 그런데 은우도 너를 꼭 닮았지. 네 자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식은 아니겠지. 나이 차이가 겨우 열두 살 차이니까. 그럼 형제일까?”

“은우 이야기는 하지 마십시오. 보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

“그랬구나. 그러면 다른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해 줘야겠구나.”

가녀린 팔이 내 목을 감을 때마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기꺼이 죽으리라는 생각이 들 뿐.

***

어쩌면 그것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은우가 하민을 찾아온 것은 하민과 내가 화산을 떠나온 지 3년이 지난 후였다,

하민은 우리가 어디에 머물지 어느 정도 알려 주었지만 우리가 지내는 곳을 정확히 알고 찾아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도 근방을 샅샅이 헤맸을 것이다. 은우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것을 모른 듯했다. 제가 수많은 화산의 일대 제자들을 이끌고 왔다는 것을.

은우와 하민은 서로를 보고 기뻐할 시간도 없었다.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사방팔방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들은 하민과 나를 놔두고 은우를 공격했다. 놀란 은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맞서려 했다.

그들이 어떤 계획을 세운 건지 알 듯했다. 정파의 자랑인 화산이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나와 하민은 동시에 몸을 날렸다. 하민은 은우를 구하러 갔고 나는 두 사람에게 덤벼드는 이들을 먼저 베어 낸 후에 다른 사람들을 막았다. 그러나 그 수가 너무 많았고 하민은 싸움에 가담하지 못했다.

생각할수록 헛웃음이 나왔다. 은우를 먼저 공격한 것으로 그들은 철저하게 하민의 손을 묶어 버렸던 것이다. 덤벼드는 이들 중에는 초절정 고수는 물론이고 화경의 경지에 이른 자까지도 있는 듯했다. 그들의 기세를 보며 오늘 반드시 하민을 데려갈 작정으로 온 거라고 생각했다.

절대로 그를 뺏길 수는 없었다. 내공이 점점 바닥이 나고 단전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져도 다시 팔을 들었다. 하민이 무사한지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럴 틈도 없이 또다시 여러 사람이 달려왔다. 내가 무너지면 그들은 곧장 하민에게로 갈 거라는 생각에 그러지도 못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를 봐야 했다. 살아 있는 그를 볼 기회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그렇게 쉽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

“스승니이이임!!”

은우의 절규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등에서 선연한 피를 흘리며 무너진 하민을 보였다.

“하, 하민…!”

그를 향해 짓쳐들어오는 이들에게 하민을 뺏길 수가 없었다. 하민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수차례 검격이 이어졌다. 불이 붙는 것 같은 통증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나는 하민에게 가야 한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그의 곁이었다.

“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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