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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 외전(5)화 (125/137)

5화.

돌아보지 않는 그를 보는 것이 그렇게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를 알게 된 후, 내 부름을 듣고 하민이 나를 돌아보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그가 나를 돌아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등으로 다시 불덩이가 끼얹어진다. 그것이 내 등에 달라붙은 채 내 몸을 불사르는 것 같았다.

“하, 하민…!”

나는 언어를 잃은 사람처럼 오직 그의 이름을 부르기만 했다. 은우가 나를 돌아보았다. 눈에서 피를 쏟고 있는 것 같았다.

하민을 부둥켜안은 그가 나를 보고 울먹이다 하민의 몸을 안아 나에게 그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삶이 너를 떠난 그 순간까지도 너는 그렇게 찬란하구나.

나는 그 자리에 멈췄다. 하민을 보느라. 그를 보았으니 되었다.

이제 저들을 죽이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팔을 들어 올리려 했다. 그러나 의지와 달리 내 몸은 앞으로 쓰러졌다. 사실 내가 언제부터 죽었던 것인지, 그것도 알 수가 없었다.

하민.

마지막 순간, 내 머릿속에는 온통 그 이름뿐이었다. 내 삶의 축약은 오로지 그였다.

그러나.

***

너는 신선이 되었을까.

그럼 이제 우리는 같이 있지 못하게 되는 걸까.

아무래도 나는 신선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

그런데 나는 어떻게 된 걸까, 여긴 어디일까.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 거지 놈이 어디서 잠을 처자는 거야! 남의 장사 망칠 일 있어? 자려면 다른 데나 가서 자, 이놈아! 도대체 언제 씻은 거야? 태어나서 씻은 적이 있기는 한 거냐?”

그리고 갑자기 팔과 머리에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싸리 빗자루였다.

설마하니 그게 나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다가 당황하며 본능적으로 두 팔로 머리를 막았다.

그런데 이게….

뭐가 이렇게 휑한 느낌이지?

깜짝 놀라서 그대로 손을 펴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웬….

단풍잎 같은 이건 도대체 뭐지?

그게 손이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내 손이 그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조막만 해진 거냔 말이다.

아니, 조막만 하지는 않고.

열 살? 열한 살?

내가 그러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싸리 빗자루가 내 위로 떨어졌다.

그렇게 몇 번이나 내 위로 쉬지도 않고 떨어지던 것이 갑자기 멈췄다.

나는 이제 매질이 끝난 건가 하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가만히 고개를 들어보았다.

“도, 도… 도사님, 저, 저, 그게, 그게 아니고….”

새하얀 옷을 입고 서 있는 사람은 분명 화산의 도사였다.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나에게 일어난 수많은 갑작스러운 일 때문에 정신이 멍한 상태였지만 그 자리에 서서 차가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남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서은우?’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헛것이 보이는 건가 했지만 옆에서 하는 말을 듣고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죄, 죄송합니다, 도사님. 이 어린 거지가 이 앞에서 잠을 자고 있길래 제가 소란을 부렸습니다. 도사님이 계신 걸 알았으면 조심했을 터인데 죄송합니다.”

나는 눈앞에 서 있는 자가 서은우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서은우는 내가 마지막에 봤던 것보다 훨씬 자라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하민도 옆에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며 정신이 없었다.

“하민!!”

내가 주위를 돌면서 그를 찾으려 소리를 질렀을 때였다.

갑자기 매서운 손길이 내 멱살을 잡아 들었다.

서은우였다.

“네놈이 지금!!”

그러자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서은우를 눈앞에서 똑바로 보았다.

눈에서 검은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눈에서 일렁이는 분노가 금방이라도 주위를 다 태울 듯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놈과 드잡이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하민이 무사한지, 하민이 살아 있는지 그걸 먼저 알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두 손을 떼어 내려 했다.

이따위 손을 떼어 내는 것은 한 손으로도 충분해야 하는데 손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으익!!”

결국 놈의 손을 붙잡아 힘껏 물어뜯자 서은우가 깜짝 놀라며 나를 놓쳤다.

내공을 사용해 몸을 보호했다면 그 정도 것이야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내공을 사용할 틈도 없었던 듯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하민을 찾았다.

내가 하민을 부른 것 때문에 서은우가 화가 난 것 같아서 더 이상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다.

그냥 내가 찾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민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서은우는 알고 있을까? 마지막에 하민과 같이 있었으니 그라면 알고 있겠지?

그에게 물으려 했지만 분노로 타오르는 안광을 보자 하려던 말이 목구멍으로 기어들어 갔다.

이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서은우에게 물을 게 아니라 스스로 알아내자.

그 생각을 하며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는데 서은우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너! 좀 전에 누구를 찾은 것이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서은우는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고 그와 엮이고 싶지도 않았다.

우선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을 생각할 시간이.

돌아서서 도망치려 했지만 금방 붙잡혔다.

내공은 사라졌고 경공을 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어린 몸이 되어 버렸으니 그런 것은 애초에 기대도 해서는 안 되는 거였을까.

반면 서은우는 나보다 더 자라 버려 순식간에 나를 붙잡았다.

열아홉? 스물?

그러다가 그가 나를 잡은 손에 눈이 갔다.

왼손이다.

그는 오른손잡이였는데 내 멱살을 잡을 때도 왼손으로 잡았던 것 같았다.

오른손을 보자 힘을 쓰지 못한 채 어깨에 달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대로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자 서은우가 당황한 듯 나를 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는 누구냐!”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가 갑자기 허리를 폈다.

이해되지 않는 것투성이였는데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집이 없거든 나와 같이 가자. 시동이 필요한 참이었다.”

그러면서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는데 나로서는 그를 따라가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그를 따라가면 어떻게든 하민의 소식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은우를 쫓아가면서 나는 내가 작아졌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조금 천천히 가 주십시오!”

퉁명스럽게 말이 나오자 그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렇다고 내 말대로 천천히 가 주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종종걸음을 치다가 뛰다가 하면서 그를 쫓아가야 했다.

그가 입고 있는 옷도, 하민처럼 머리를 반만 묶은 것도 짜증스러웠다.

서은우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하민을 다시 만난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화가 나서 노려보다가 그의 오른팔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나는 왜 이리 작아졌고 서은우는 왜 자라 버렸단 말인가. 이 몸은 누구의 것이고 왜 갑자기!’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이 몸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다.

부모는 있는지, 집은 있는지, 어디에 살고 이름은 무엇이고 나이는 몇 살인지 그런 기억도 전혀 없었다.

생각할수록 걱정만 되었다.

그런데 서은우도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더 불안했다.

아까부터 누군가 우리를 뒤따르고 있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다가 우리가 일정한 곳에 이르면 몸을 날려 새로운 자리를 차지했다.

‘화산의 무인들 같은데 저자들이 왜? 서은우를 감시하는 건가?’

그사이에 서은우와의 거리가 다시 멀어져서 그를 쫓아갔다.

서은우는 걸음을 계속 옮기려고 하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저기 보이는 객잔으로 먼저 가 있거라. 나는 갈아입을 옷을 사 갈 것이니. 점소이가 들여보내 주지 않거든 화산파 이대 제자 명현의….”

그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시동이라 하여라.”

“시동…요?”

“그래. 임무 수행 중이라 그 꼴을 하고 있는 것이라 해라.”

그러고는 철전 세 문을 주었다.

“금세 갈 것이니 그 사이에 돈이 필요할 일은 없을 것이다만.”

그러다가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냥 같이 가자.”

나도 그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나는, 존재하지 않다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생겨난 게 아니라 다른 아이의 몸속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이것도 저것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아무래도 그쪽이 그나마 말이 되는 듯했다.

이 몸의 주인이 여기서 살아왔다면 나를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괜히 나를 아는 사람을 만나서 그들에게 붙잡히기라도 하면.

내 꼴을 보아하니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제대로 보살펴 준 것 같지는 않았다.

단순히 더러운 것뿐만이 아니라 곳곳이 쑤시고 아팠다.

‘내공은 내공이라고 해도 열 살쯤 됐으면 힘을 어느 정도는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잠시 그 생각을 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과거에 초절정을 넘어서는 고수였다고 해도 내공도 없고 근력도 없는 지금의 몸으로 그것은 한낱 과거의 영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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