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빨리 내공을 먼저 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려면 하민이 알려 준 매화생공으로 해야 할 테고 화산과 연도 없이 그것으로 내공을 쌓으면 사달이 날 텐데.’
그 생각을 하느라 걸음이 느려지자 서은우가 나를 재촉했다.
“어서 오지 않고 뭘 하느냐!”
귀찮다는 기색이 다분했지만 그도 나에게 궁금한 게 많아서 두고 갈 수가 없는 듯했다.
나는 다시 달려서 그의 옆에서 걸었다.
“몇 살이냐.”
“….”
“몇 살이냐고 물었다.”
“몇 살이냐고 물은 것은 아는데 제가 몇 살인지 모르겠어서 그럽니다.”
짜증스럽게 되묻는 말에 나도 짜증이 나서 말했다.
솔직히 서은우 따위에게 존대를 하고 있다는 이 상황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해서 그에 대한 감정을 떠올릴 틈도 없었지만 서은우만 아니었다면 하민이 죽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당장이라도 이놈의 목을 부러뜨리고 싶었다.
축 늘어진 하민의 팔이, 핏기를 잃은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는 죽었다.
분명히 보았다.
아니라고 부정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것들은 제 자리를 잡아 갔다.
그 일은 분명히 일어난 것 같은데 서은우를 통해 정확히 듣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바보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바보인 모양이구나. 제 나이도 모르다니. 이름은 아느냐.”
“!!”
화가 났지만.
이름도 모른다.
견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다가 나는 그를 힐끔 보았다.
내 이름을 견인이라고 하고 서은우의 반응을 보면 그 일이 있었다는 것을 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잘못되면 죽도록 얻어맞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일단 그것을 확인해 보자 싶었다.
“견인입니다.”
그가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고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리고 왼손을 들어 내 멱살을 잡았다.
“네놈은 누구냐! 누가 네놈을 보낸 것이냐!!”
나는 다시 그의 손등을 물려고 했고 그는 한 번 당한 게 있어서 그랬는지 빠르게 나를 내동댕이쳐 버렸다.
그는 화가 난 듯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 때문에 나는 헉헉거리면서 계속 그를 쫓아가야 했다.
시장 골목에서 나는 옷을 얻었다.
도대체 이 몸의 주인은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오래 걸은 것도 아닌데 힘이 들었다. 나중에는 더 이상 못 걸을 것 같아 주저앉아 버렸다. 서은우는 앓느니 죽는다는 표정을 하더니 내 앞에서 등을 보이며 앉았다.
“업혀라!”
“….”
더러워서 안 업힌다! 라고 하고 싶지만 다리가 너무 아파서 어쩔 수가 없었다.
서은우에게 업히고 나니 다시 짜증이 솟구쳤다.
서은우의 머리에서 하민의 냄새가 나서.
“머리를 왜 이리 묶으십니까? 묶으려면 다 올리시지!”
내 말에 서은우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기가 차다는 듯 웃는 것 같은 느낌이 몸으로 전해졌다.
“목에 팔을 두르지 마라! 코가 썩을 것 같으니까!”
“그러면 제대로 업으시던지요! 떨어질까 봐 이러지 누가 좋아서 이럽니까?”
“하!!”
나는 팔을 풀었고 서은우는 화를 내며 나를 꽉 붙잡았다.
그것도 왼팔뿐이었다.
***
목욕통에서 때를 불릴 것도 없었다.
물을 끼얹고 그냥 살짝만 만져도 때가 나오는데 창피해서 제발 좀 나가라고 해도 그는 빤히 앉아서 나를 보았다.
“네놈은 누구냐.”
그걸 물어보려고 그런다?
나는 다시 말했다.
“견인입니다. 이름은 기억이 나는데 다른 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사는 곳도, 나이도 모르겠고 부모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을 잃을 것이면 다 잃을 것이지 이름은 왜 기억이 난다는 말이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너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느냐? 나는 화산의 이대 제자다. 화산의 도사가 아니라 그냥 무인이라고 해도 양민들은 전부 겁을 먹는데 네놈은 왜 이리 겁이 없는 것이냐.”
“몇 번을 말합니까? 나는 이름밖에 기억이 안 난다니까요? 내가 몇 살인지도 모르겠는데 무인이고 화산의 도사고 그런 게 기억이 나겠습니까?”
“그 말투는 어디서 배운 것이냐. 고작 열살 남짓해 보이는 녀석이 웬.”
그러다가 그가 나를 꼼꼼히 보더니 말했다.
“사람들이 물으면 여덟 살이라고 하거라.”
“그래도…. 여덟 살보다는 더 된 것 같지 않습니까? 저는 열두 살은 된 것 같은데요?”
“여덟 살이라고 하거라. 이름은.”
그는 또 곰곰히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서무영이라고 하거라. 내가 막 화산에 입산했을 때 내 옆에서 같이 수련을 받던 놈이었다.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났지. 그러니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저는 견인….”
“나와 함께 화산으로 간다. 곧 삼대 제자를 뽑을 시기가 되니 화산의 제자가 되어라.”
나는 멍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화산의 제자는 그렇게 아무렇게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원로나 장로쯤 돼서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데려가면 모를까.
그러나 그는 그냥 이대 제자였다.
“매화검수가 되셨습니까?”
말을 하고 나서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 그에게 일어난 일을 묻는 것처럼 물어 버렸으니까.
매화검수이십니까? 라고 물어야 했을 텐데.
서은우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매화검수가 아무나 되는 것인 줄 아느냐. 매화검수는 일대 제자가 되어야 되는 것이다.”
“이대 제자 중에도 매화검수가 되신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그 말에 지기 싫어서 안 해도 될 말을 했다.
그러자 서은우가 나를 노려보았다.
“제 나이도, 부모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는 놈이 이대 제자 중에 매화검수가 되신 분이 있는 것은 어찌 아느냐. 그보다 네놈이 매화검수를 어찌 아느냐.”
아차 싶었지만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었다.
“등은 도사님이 밀어 주실 겁니까? 씻는 김에 때를 다 벗겨 놔야 같이 다니는 동안 냄새가 안 날 텐데요. 저 좋자고 이러는 건 아니고.”
서은우는 한숨을 길게 쉬고 나갔다.
옷을 갈아입고 편하게 밀어 주려고 그러나 보다 하면서 기다렸는데 너무 앙증맞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내 팔이 닿는 곳만 조금 밀어 보다가 나중에는 의욕이 사라져서 대충 씻고 나왔다.
그래도 머리까지 감고 보송보송해지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내가 살면서 더럽고 꼬질꼬질하다고 남의 눈총을 받게 되는 일이 생길 거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서은우는 방에 없었다.
그놈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배는 고파서 아래로 내려갔더니 자기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하민이 분명히 잘 가르쳐 놨을 텐데 도대체 왜 이렇게 비뚤어진 것일까.
나는 점소이에게 가서 돼지고기를 아주 많이 넣은 오향장육을 달라고 하고 서은우의 자리를 가리켰다.
“저기로 가져다 주시면 돼요. 저분이 제, 어, 스승님이거든요.”
그러자 점소이가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며 나를 각별히 대했다.
그 말 한마디로 화산의 삼대 제자 대우를 받았다.
서은우는 식사를 끝내 가고 있었다.
내가 앞에 가서 앉자 그가 나를 힐끔 보았다.
“그런 옷을 입어본 적이 있느냐.”
아아….
그렇구나.
나는 이런 옷을 입어본 적이 없어야 한다.
거지니까.
그러니 당연히 혼자 옷을 입지도 못했어야 한다.
‘다시 깨어나니까 신경 쓸 게 많네?’
하지만 귀찮고 배는 고프고 해서 그냥 서은우가 알아서 생각하라고 놔두었다.
그러다 그가 왼손으로 젓가락질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남의 상처를 후벼 파고 싶지는 않았지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하민을 안아 나에게 그의 얼굴을 보여 주던 그의 모습이 뒤늦게 기억이 났다.
그 당시에는 하민을 보느라고 몰랐지만 그때 오른쪽 어깨가 온통 검붉게 젖어 있었다.
‘정파 무인이라는 놈들이.’
서은우가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하민은 나를 도와 싸웠을 것이고 그날 그렇게 처참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들은 왜 하민을 죽였을까.
하민을 통해 매화생공을 알아내는 게 불가능하겠다고 생각해서?
아니면.
서은우가 매화생공의 모든 구결을 말해 버린 거였을까?
그래서 하민은 더 이상 쓸모없게 되었고 매화생공을 아는 하민을 살려 둘 이유가 없게 된 건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머리가 차게 식었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던가.
그렇게 해야만 이야기가 들어맞았다.
하민을 보여 주었을 때 나는 서은우가 나에게 자비를 베푼 거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닿지 못하는 나를 위해, 내가 하민을 볼 수 있게 해 준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네가 죽인 거라고, 하민은 너 때문에 죽은 거라고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별생각 없이 나를 바라본 것 같던 서은우는 갑자기 내 눈빛이 변한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진 듯했다.
“근맥이 잘렸습니까?”
“네놈에게 말해 줄 이유가 없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상처를 후벼 팠다고 생각했을까.
어쩌면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근맥이 잘렸다고 생각하는 나를 이상하게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도사님은 그곳에 어울립니다. 장문인과도 잘 맞는 듯합니다. 나중에 장문인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게.”
이유였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