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하민을 죽인?
사람들을 하민에게 끌고 온 이유?
나는 그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하지 않았다고 달라졌을까?
서은우가 죽일 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마침 점소이가 오향장육을 내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그 후로 그릇을 비우는데만 열중했다.
지금의 나는 서은우를 죽일 수 없었다.
그러니 기꺼이 그를 따라 화산에 들어갈 것이다.
서은우의 제자가 되고 그에게 배우고 익혀 결국에는 그를 죽이리라.
***
서은우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일찌감치 장로회에 퍼졌다. 서은우가 돌아왔다는 것만 해도 충분한 이야깃거리가 될 텐데 보고된 소식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아이가 어린아이를 데려와? 자세히 말해 보아라.”
장문인의 사제가 자신의 사손을 재촉했다. 어지간히 궁금한 모양이었다.
“한 아이가 점포 앞에서 자고 있는데 점포 주인이 나와 그 아이를 싸리비로 때렸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명현이 나서서 그를 말렸습니다. 이상한 일은 그 아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사람을 찾는 듯하더니 하민을 부른 것입니다.”
“하민? 청연을 말하는 것이더냐. 그게 무슨 소리더냐.”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것뿐이 아닙니다. 아이가 묘하게….”
“무엇이냐! 빨리 말을 하지 않고 뭘 하는 게냐!”
“그것이… 워낙 말이 안 되는 일이라 이런 말을 옮겨도 되는 것인지…,”
그러나 그는 거센 호통을 듣고 결국 제가 생각한 것을 말했다.
“견인을 닮았습니다.”
“뭐라? 견인을 닮았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견인의 친척이라도 되는 것 같더라는 말이냐. 아니면 견인이 자식이라도 낳았다는 것이냐?”
“그것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 아이에 대해 물었습니다만 그 아이에 대해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곳에 살던 아이가 아니라는 말이냐.”
“지나다니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어디서 사는지, 부모가 누구인지 그런 것을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장로들은 일제히 장문인을 바라보았다.
“어찌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러자 장문인이 웃음을 지었다.
“잘된 것이 아닌가. 하민이 죽은 후 명현 그 아이는 고삐 풀린 망아지나 다름없었지. 누가 명현을 통제할 수 있었는가. 그런데 제 손으로 아이를 데려왔다니 잘되지 않았는가. 그 아이를 명현의 제자로 주게. 정을 붙이고 싶었던 모양이지. 실컷 정이 들게 한 후에 그 아이의 목을 틀어쥐면 명현도 하민이 만든 심법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자 장로들이 크게 감탄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희한한 일입니다. 견인이라면 명현의 입장에서는 죽이고 싶을 터인데 견인을 닮은 아이를 데려왔으니 말입니다.”
“아이라고 하지 않나. 명현이 본디 심성은 여리지 않은가. 아무리 견인을 닮았다고 해도 어린아이를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그 아이는 몇 살이나 되어 보이더냐.”
장로의 물음에 그의 사손은 열두, 세 살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 삼대 제자로 들이기에 나이가 좀 많은 것이 아닌지요.”
보통은 다섯 살에서 여덟 살, 많으면 열 살까지 들어왔으니 열두, 세 살이라면 많기는 했다.
서은우가 이곳에 왔을 때 그는 겨우 세 살이었다.
“지금 그런 것을 따질 때인가.”
장문인은 말을 하고 그 자리에 있던 일대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알아서 일을 처리하도록 하여라. 명현이 제자를 들인다…. 이런 날이 다 오는구나.”
장문인의 뜻을 알아차린 장로와 일대 제자들도 하나의 표정을 하고 웃었다.
그곳에 있는 이들 중 상당수가 하민이 죽던 날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오직 그들만이 알고 있었다.
***
서은우는 견인이 매화나무 앞에서 못 박힌 듯이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너의 이름은 이제부터 서무영이라고 했지만 이름을 바꿔 부른다고 그가 서무영이 될까.
서은우는 견인을 발견한 후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마치 시간을 돌려 과거로 돌아가 견인을 찾은 것처럼, 저 아이는 제가 아는 견인과 너무나도 닮았다.
그래서 처음 본 순간 적의가 끓어올랐다.
‘저 아이의 이름은 왜 견인이며 어찌 스승님의 성함을 알고 있다는 말이냐.’
이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스승의 이름을 부르며 그 아이가 보인 표정.
그것이 너무도 익숙했다.
마치 스승님을 걱정하며 찾는 것 같지 않았던가.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이냐, 은우야. 네가 정신이 이상해지는 모양이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그런데 그렇게 애써 무시하려고 했던 마음이 다시 또 툭 터졌다.
스승과 운기조식을 하던 그 자리에 온 후 견인이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건 말이 안 되는 게 아닌가. 견인은 그날 스승님과 함께 죽었다. 스승님이 돌아가신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아 죽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 그것도 저렇게 어린 모습으로?’
서은우는 거기까지 생각을 하다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약해진 탓이다.
그래서 별 이상한 생각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서무영, 이리 오너라.”
그가 불렀지만 견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 이름이 아니라서 저를 부른 거라는 것을 모른 듯했다.
“서무영!”
그러자 그제야 견인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아아, 하고 깨달은 듯 서은우에게로 걸어왔다.
“저도 나중에는 도호를 받게 됩니까? 차라리 도호를 받아 그것으로 불리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생각했다.
하민.
내가 하민이 될 수는 없는가 하는.
서은우는 견인의 얼굴에 지어지는 표정을 보며 착잡해졌다.
저건 절대 열살의 아이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런데 도사님은 춘추가 어찌 되십니까?”
그 말에 서은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너보다 많다.”
“저보다 많은 것은 압니다.”
“열아홉이다.”
“네? 정말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공은 어느 정도나 됩니까?”
서은우가 깊이 한숨을 쉬었다.
“건방지게 굴지 마라. 나는 네놈이 귀여워서 데려온 것이 아니다.”
“귀여운 척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십니까?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여쭈면 안 되는 건가요? 알겠습니다. 대답하지 마십시오.”
건방진 놈!
그가 막 한 마디를 하려는데 견인이 말했다.
“몇 가지만 여쭙고 더 이상은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대답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은우는 그가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하는 건가 하며 냉랭한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혹시 도사님의 스승님은 어찌 되셨습니까?”
“…!”
서은우는 멍한 얼굴로 견인을 바라보았다.
도사님의 스승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하고 물었다면 그리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묻는 견인의 표정은 뭐라고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이미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그에게서 들을 말에 겁을 내며 물은 것 같았다.
웬만해서는 휘말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것만큼은 말해 달라 하는 바람에 그냥 무시하기도 뭐했다.
“돌아가셨다.”
“….”
견인의 시선이 뚝 떨어졌다.
놈의 심장도 그런 것 같았다.
슬픔을 표출하는 것이, 슬픔을 느끼며 보이는 반응이 그 나이 아이와는 달랐다.
서늘하고 공허한 눈으로 한참을 그렇게 허공을 보다가 돌아섰다.
그러더니 서은우에게 물었다.
“매화나무 옆으로 가도 됩니까?”
“가지 마라.”
“그것은 들어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면 왜 물은 거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저는 강해질 겁니다. 저를 데려오셨으니 그리 만드십시오.”
그러고는 매화나무에 다가가더니 그 앞에 망부석처럼 앉아 있었다.
내가 제자를 들이겠다고 데려온 것인지 제자가 되겠다고 데려온 것인지.
서은우는 짜증이 치밀어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에 방으로 따라 들어온 견인이 말했다.
“제가 꼭 서무영이어야 하는 게 아니면 견인이고 싶습니다.”
“네가 기억한다는 그것이 네 이름이 아닐 수도 있지 않으냐.”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제 이름인 것 같습니다.”
“이곳의 어른들은 그 이름을 싫어하신다. 그 이름을 가졌던 사람 중에 화산에 큰 해를 끼친 자가 있다. 그래서 네가 만약 그 이름을 갖고 지낸다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아도 이름 때문에 미움을 살 수 있다.”
“사지요, 그 미움. 이제는 저를 견인이라 부르십시오.”
할 말은 그것으로 끝났다는 듯, 견인은 다시 밖으로 나갔다.
***
제자를 정하는 것은 화산에서도 중요한 행사였다.
그 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봤는지 모르지만 견인의 눈에는 한 가지만 보였다.
다른 이대 제자들과 어울리지 않는 서은우의 모습.
사람들은 서은우를 따돌렸고 서은우는 스스로 그들 모두를 배척하는 듯했다.
그들이 작당을 하고 서은우를 따돌리려고 해도 꼴이 우스워지는 것은 그들이었다.
서은우는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고고하고 아름다웠다.
처음에 그를 봤을 때 그는 그저 예쁜 남자애였다.
어린 그가 하민을 지키려고 눈에 힘을 주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재미있다고 느꼈던 게 떠올랐다.
지금의 서은우에게는 그런 빛이 사라졌다.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스승을 잃었으니 이제 그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