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 외전(8)화 (128/137)

8화.

가만 보니 다른 삼대 제자들은 스승이 처음부터 정해진 게 아니었다.

한 사람의 삼대 제자를 두고 여러 명의 이대 제자가 경합을 하기도 했다.

이쪽은 그런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견인을 제자로 원한 사람은 서은우 뿐이었고 할 일이 없어진 두 사람은 일찌감치 그 자리를 떠났다.

다른 사람들이 정해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행사를 진행하는 일대 제자들이 말했지만 서은우는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다들 그의 사백이거나 사숙일 텐데 서은우는 그냥 막 나가는 중인 것 같았다.

‘그들이 모두 힘을 합해서 하민을 죽였으니 그럴 만도 한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곧 수긍이 갔다.

처소로 돌아가며 견인이 물었다.

“사조님이 돌아가셨어도 처소를 뺏기지는 않았나 봅니다.”

“내가 난리를 피웠다. 나는 중요한 사람이거든. 괴롭겠지. 마음에 들지 않는데 함부로 굴 수도 없으니까. 나를 잘못 다루면 나는 모든 걸 터뜨리고 다 날려 버릴 수가 있다.”

“멋진 분이네요.”

“그래.”

그런 말을 얘는 어떻게 웃지도 않고 하냐.

견인은 새삼스럽게 서은우에게 감탄을 하고 있었다.

***

“다른 애들은 사조님과 같이 수련을 한대요. 다른 애들의 사부님은 사조님이 수련을 봐 주신대요.”

삼대 제자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와서 쫑알거려 주었다.

속 뒤집어지라고.

서은우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견인을 보는 꼴이 꼭, 이걸 그냥 내다 버릴까? 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자기가 왜 이걸 주워 왔는지 서은우는 수시로 후회하는 듯했다.

“애들이 그러는데 사부님들도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아서 사조님의 도움이 필요하대요. 그런데 사부님은 사조님을 다시 안 얻으실 생각이세요? 아직 젊어서 새 사조님을 얻을 수 있다고 하던데요?”

“닥치고 네 할 일이나 해라.”

“다른 애들은 사부님이 착한 말씨를 쓴대요.”

“다른 애들은 너 같지 않겠지.”

점점 그에게서 느껴지는 적의가 강해졌다.

견인은 이 상황이 점점 재미있어졌다.

“사부님은 아직 내공이 일 갑자가 안 되세요?”

“내 나이가 열아홉이다. 세 살에 여기에 들어와서 내공심법을 배우고 축기를 시작한 게 십오 년쯤 됐을 거다.”

“그래서 십오 년 치 내공을 갖고 계신다고요? 사조님은 대단한 분이라고 들었는데요?”

서은우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가끔씩 견인은 이렇게 훅 들어왔다.

아주 위험한 발언을, 마냥 해맑은 얼굴을 하고 하는 것이다.

“좀 닥쳐라. 네 입에 재갈을 물려 버리기 전에.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단 말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열아홉이다. 스물도 안 됐는데 스승님과 제자 놈을 다 잃는 꼴을 봐야 속이 시원하겠냐?”

“저는 그냥 궁금해서 여쭤본 겁니다. 훌륭한 스승님의 제자라면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남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말을 하는 대신요. 게다가 스승님에게는 뒷마당의 매화나무도 있지 않습니까.”

서은우는 눈을 감은 채 오래 있다가 떴다.

“떠나고 싶으면 데려다주겠다.”

점점 견인이 버거워졌다.

“싫습니다. 저는 내공을 쌓을 거고 강해질 겁니다.”

그래서 스승님을 죽일 겁니다.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라면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했다.

***

그 후로도 견인은 삼대 제자 조무래기들이 하는 말을 듣고 와서 누구는 이런다더라, 누구는 저런다더라 하는 말을 했다.

견인이 속을 벅벅 긁고 간 후 서은우는 매화나무 주변을 기웃거렸다.

스승이 그리되고, 그는 매화생공을 할 수 없었다.

스승이 잊은 것이 있었다.

매화생공은, 매화나무 옆에서 운기조식을 하는 동안 호법을 서며 지켜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서은우는 하민이 화산을 떠나고 매화생공을 할 수 없었다.

운기조식을 하는 동안 다른 이가 공격을 하면 무방비가 될 수밖에 없는데 사방이 뚫린 야외에서 그것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견인은 어느 날 갑자기 그 사실을 깨달았다.

서은우가 혼자서 매화나무 주변을 맴도는 것을 보면서.

“제가 호법을 서겠습니다.”

서은우는 헛소리를 한다는 듯이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다가 밖이 조용해서 나가 봤더니 견인이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아직 삼대 제자는 내공심법을 배우지도 않았을 텐데.

게다가 삼대 제자가 배우게 되는 기초 심법도 아니었다.

분명히 그것은….

‘매화생공이다!’

서은우는 태산 같던 견인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

그런 채로 그는 꼼짝없이 견인의 호법을 섰다.

***

“제자가 먼저 매화검수가 되면 스승님은 어떠시겠습니까? 창피하시겠지요?”

하아….

서은우는 혼자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 건방진 놈에게는 약도 없다는 것을 그는 이제 너무 확실히 깨달아 버렸다.

째그락 째그락 하면서도 용케 지금껏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 않고 버텨 왔다.

서은우는 어느새 스물여섯이 되었고 견인은 스물이 넘은 것 같은데 이 몸의 정확한 나이를 몰라 그러지 않을까 추측만 할 뿐이었다.

몸은 한껏 여물어서 이제 제 스승을 따라잡았다.

가끔 서은우를 보며 하민과 비슷해진 것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스승님, 머리를 그렇게 묶지 말란 말입니다.”

견인이 그러면서 짜증을 내면 서은우는 예쁜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오늘은 내가 저놈을 기필코 죽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괜찮으세요?”

느닷없이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다시 매화검수 얘기였다.

“제가 매화검수가 돼도 되냐고요.”

“해 보든가.”

“제가 그게 되면 소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좀 전까지만 해도 건들거리며 건방지기가 이루 말을 할 수 없더니 갑자기 표정이 진지해졌다.

“….”

워낙 꼴통이라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몰라서 서은우는 움찔했다.

“어느 하루의 진실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제 소원은 그겁니다.”

견인은 그 말을 해 놓고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서은우가 거절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서은우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설마? 혹시?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냥 설마였다.

비록 견인이 견인이고, 가르쳐 주지 않은 매화생공을 하고, 벌써 자신에 버금가는 내공을 가졌지만 그러고도 그는 고집스럽게 ‘설마’라는 말 뒤로 도망치고 있었다.

***

아마도 서은우와 견인은 화산에서 가장 이상한 사제 관계일 거였다.

화산을 떠나 무림 전체를 통틀어 본다고 해도 그들만큼 이상한 사제 관계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에는 적의가 가득 담겨 있었다.

어느 때 보면 저건 살의가 아닌가? 할 정도였으니 말은 다 한 거였다.

서은우는 견인을 경멸했고 견인은 서은우를 죽이고 싶어 했다.

그나마 견인이 어렸을 때는, 아직 어린아이를, 그 아이가 그저 어떤 사람을 많이 닮고 그 사람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미워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겨우겨우 그 마음을 참아 왔었다.

그런데 어느덧 견인이 저보다 훌쩍 더 커지고 나니 그 마음을 지키기가 어려웠다.

자라 버린 견인은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지난날의 견인 자체였다.

견인을 볼 때마다 서은우는 제 스승의 곁에서 그윽한 눈으로 스승을 바라보던 견인이 떠올라 속이 욱신거렸다.

그 견인을 마주 바라보던 스승이 더 밉고 원망스러웠지만 차마 스승을 미워할 수는 없으니 미움의 방향이 견인에게 향한 것이다.

미워할 수 있도록 살아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킨 것은 다 했느냐.”

“다 했습니다.”

“천 번씩 하라고 한 것을 다 했단 말이냐.”

“천 오백 번씩 했습니다. 그런 짓을 왜 시키는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가끔 보면 스승님은 제가 스승님을 뛰어넘을까 봐 무서워서 저에게 도움도 안 되는 것을 시키면서 시간을 허비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

서은우는 견인을 노려보았다.

“네놈은 도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느냐. 존대는 왜 하는 것이고 스승이라고는 왜 하는 것이냐. 네 발가락 사이의 때만도 못하게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이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사조님도 없지 않습니까. 사조님도 없는데 저를 데려와서 제자로 삼았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닙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이렇게 살다 죽어라, 뭐 이런 겁니까?”

서은우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걸 그냥 죽일까?

도사는 무슨 도사인가.

나는 영, 화산의 도사가 적성에 맞지 않다.

그래. 그냥 저걸 죽이자. 죽이고 화산을 뜨자. 그리고 조용히 아무 곳에나 숨어들어 사는 것이다.

서은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견인이 말을 이었다.

“혹시 오른팔 때문입니까? 오른팔을 다쳐서 기량을 다 사용할 수가 없어서요? 그럼 제가 의원을 구해 와요?”

“네놈에게 그러라고 한 적 없다!”

“그러면 제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기 전에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 두어야 할 게 아닙니까. 오른팔을 사용할 수 없으면 왼팔로 두 배의 기량을 보이거나. 그것도 아니면서 알량한 자존심만 내세우지 말란 말입니다.”

“그렇게 불만이면 나를 떠나거라. 붙잡지 않겠다. 내가 네놈을 내친 것으로 해 줄 수도 있다. 네놈이 도망간 것으로 된다면 추살조가 네놈을 찾아내서 근맥을 잘라 버리겠지만 그 꼴은 면하게 해 주겠다.”

“왜 모르겠습니까. 그 추살조가 스승님의 오른팔을 그리 만들지 않았습니까.”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