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간단하군. 은우 사제를 제압하려면 왼팔만 잡으면 되지 않는가.”
그의 말대로 서은우는, 그저 왼팔만 잡힌 것뿐인데도 그를 전혀 밀어 내지 못했다.
심우진이 허겁지겁 서은우의 겉옷을 벗겨 냈다.
금욕적이고 고집스러워 보이던 서은우의 몸이 얇은 옷 아래로 드러나자 심우진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제 옷을 먼저 벗어 버렸다.
그러고는 방을 빠져나가려던 서은우의 손목을 잡아채 품에 가득 안았다.
서은우는 제 입술을 향해 혀를 내미는 심우진을 피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속절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런 일을 당하려고 제가 화산에 남아 있었던 것인가.
스승님도 계시지 않는 화산에서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다는 것인가.
심우진이 서은우의 옷자락을 잡아 찢어 버리자 서은우의 밋밋한 가슴이 드러났다.
연한 앵두빛의 유두가 드러났을 때 심우진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서은우를 가득 끌어안고 제 몸을 밀착해 비비며 서은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빨아 댔다.
그런 상황에서도 서은우를 농락하듯이 그는 오직 서은우의 왼손만을 붙잡고 있었다.
그의 완력을 당해 내지 못한 채 서은우는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을 때였다.
심우진이 제 바지를 끌어 내리고 서은우의 상체를 돌렸다.
그리고 서은우를 엎어 놓고 옷 위로 막 골반을 움켜쥐었을 때 허리에 엄청난 타격이 느껴졌다.
언제 들어온 것인지, 그 자리에는 견인이 서 있었다.
그는 그때까지도 그 방에 있는 이가 심우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심우진의 어깨를 잡아 휙 돌려놓고 그 얼굴을 보더니 퍽이나 당황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가식적으로 말했다.
“아이고, 사백님이 아니십니까. 여기서 제 스승님의 엉덩이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고간까지 드러내고 이러고 계십니까.”
심우진은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진 채 다급히 바지를 올렸다.
견인은 그를 그냥 놔두지 않을 생각으로 다시 주먹을 내지르려 했지만 서은우가 다급한 손으로 막았다.
견인이 아무리 힘이 좋아도 심우진이 내공을 실어 권을 한 번 내지르면 견인은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견인에게는 꽤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스승님이 추잡한 일을 당하시는 건 줄 알고 막은 건데 두 분이 재미를 보려는 데 눈치도 없이 끼어들었던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나갈 테니 하려던 거 마저 하십시오.”
그 사이에 심우진이 밖으로 도망치듯 나갔고 견인도 나가려 했다.
그런 견인의 어깨를 서은우가 움켜쥐고 돌려세우고서는 내공을 실어 주먹을 날렸다.
“지금껏 네놈이 건방을 떠는 것을 참아 준 것이 네놈의 명을 재촉할 수도 있겠구나. 다른 사람은 네놈이 하는 짓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을 것이다. 대사형이 내공을 실어 네놈을 공격했다면 네놈은 죽었을 것이다!”
견인은 서은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막았던 건지 깨닫고 우두커니 서 있다가 물었다.
“저자가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그래도 이제 들을 생각은 있는 것 같아 서은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모른다. 할 얘기가 있다면서 들이닥친 것이다.”
“죄송합니다. 오해했습니다.”
우물쭈물하던 그의 시선이 견인의 오른쪽 어깨에 닿았다.
그 흉터를 직접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공격을 당했겠거니 하기는 했지만 그걸 보여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치료는 받았습니까.”
그러자 서은우가 제 흉터를 보고 옷을 입었다.
“됐으니 나가거라.”
견인은 모든 게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은우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함부로 흐트러진 것도, 옷매무시가 그런 것도.
하민을 보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제게 안겨 열락을 드나들던 하민이, 열기를 흘리며 눈가를 붉히던 그가 떠올라 어차피 견인도 그 자리에 더 있을 수가 없었다.
***
한밤중에 서은우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개수작인가 하면서 나는 모르는 척을 했다.
혹시 내가 도와줬다고 나한테 흑심을 품은 거 아냐? 내가 너무 멋있었나? 금욕적인 하민도 나에게 반했을 정도면 서은우 이 자식도 그런 것 아냐?
온갖 생각을 하며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할까 생각했다.
그래도 여기서 배울 게 있는데 스승이란 놈이 나를 좋아해 버리면 안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발소리도 내지 않고 다가온 서은우가 내 허리를 냅다 걷어찼다.
“아, 미쳤나!”
나도 모르게 너무 진심 어린 의문이 튀어나와 버렸다.
“뭐?”
서은우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고개를 옆으로 탁 돌렸다.
“네가 지금 처잘 때냐? 네가 우리 대사형을 잘 모르는 모양인데 대사형이 얼마나 야비하고 비열한 사람인지 알 필요가 있어. 너한테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너를 죽이라고 사람들을 전부 충동질했을 거다.”
“저를 왜요? 사백이 잘못했는데요?”
나는 상체를 일으키고 말했다.
조금 버티면 그냥 넘어가 줄 건지, 내가 나갈 때까지 계속 있을 건지 알아보려고 버텨 봤는데 그냥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우리 대사형은 그런 걸 아는 사람이 아니야. 자기가 잘못한 건 간단히 잊어버리는 인간이거든. 그러니까 죽기 싫으면 따라 나와.”
“왜요? 이제 사부 노릇 좀 하시려고요? 그러게 진작 가르쳐 줬으면 좀 좋았습니까?”
“가증스러운 소리 좀 하지 마라. 매화생공을 스스로 익혀서 나보다 내공도 많은 놈이. 목검이나 챙겨라. 부러질지 모르니까 넉넉히 챙겨. 다섯 개 정도?”
그러고는 잔말 말고 따라오라는 표정을 했다.
왠지 오늘 밤은 그냥 지나기는 글러 버린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서은우는 나를 데리고 으슥한 곳으로 올라갔다.
“보이는 것도 없는데 여기서 뭘 하라고 그러세요?”
“가증스러운 소리 하지 말고 해.”
그러고는 목검을 빼 들었다.
서은우는 이제부터 말을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전부 다 내 보여야 할 거다 라는 말 같은 것도 없었다.
그 대신 목검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나는 조금 갈등했다.
서은우는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다.
오른팔을 쓰지 못하는 서은우를 상대로 내가 본신의 힘을 다 사용한다면 그는 이 자리에서 뼈도 못 추릴 텐데.
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서은우가 웃었다.
언제까지 그 마음가짐으로 할 수 있나 보자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를 향해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데.
아니, 이 인간이!
그래도 나, 네 제자잖아!!
나는 몇 번이나 뒤로 피하면서 그의 검격을 막아 내야했다.
“언제까지 미꾸라지처럼 피하기만 할 것이냐.”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보기 싫은 스승의 간병까지 할 생각이 아니라면 그냥 참는 게 나았다.
그러자 서은우도 점점 화가 나는지 목검을 던졌다.
나는 그가 이제야 포기하나 보다고 마음을 놨는데 이게 무슨?
그는 어느새 진검을 빼 들었다.
“그냥 죽어라, 견인.”
와, 심한데?
참는 것도 정도가 있었다.
그냥 아픈 정도면 맞아 줄 수 있지만 그는 내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하민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검법으로 서은우를 자근자근 몰아갔다.
정확한 초식에 내공까지 밀어 넣고 숨 돌릴 틈도 주지 않은 채 짓쳐들어가자 서은우의 눈이 금세 휘둥그레졌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지금의 이것이 가능하다는 건가 하는 것 같았다.
“계속합니까?”
서은우는 대답도 하지 못했다.
계속하라고 하면 꼼 없이 자기가 죽을 텐데 그러라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서은우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넘어질 뻔했고 나는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넘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이 힘 조절이 안 됐는지 그가 품으로 들어와 버렸다.
“큼!”
서은우가 갑자기 헛기침을 하더니 나에게 검을 넘기고 자신의 의복을 탈탈 털었다.
다시 손을 내밀기에 고개를 저었다.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언제부터 제자 행세를 했다고?”
“그러게 말입니다.”
그는 한밤중의 어색한 비무가 끝난 후에도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먼저 걸음을 옮겼다.
“네 동문들이 너를 공격할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어차피 이곳에 소속감을 갖지 않고 있다고 해도 실제로 일이 닥치면 충격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베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조심해야 한다. 대사형이 그걸 노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 뭐. 파문을 시키려나요? 그러면 하산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순진한 소리 하지 마라.”
“그럼 어찌하라는 말입니까?”
“맞지 마라. 베지도 마라.”
서은우는 그것으로 답이 되었다는 듯이 앞서 걸었다.
***
그의 방에 들어갔을 때 서은우는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같은 것을 달고 있는 처지에 알몸을 보여 주는 것이 큰일도 아니지만 서은우는 흠칫 놀랐다.
사실 나도 그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었다.
지난 생에, 내가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이 나와 같은 것을 달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자면.
그는 어색해하면서 후다닥 바지를 꿰입었다.
그리고 웃옷마저 입으려는 것을, 다가가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