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가만 계셔 보십시오.”
그리고 어깨의 흉터에 손을 대자 그가 움찔하며 내 손을 치우려 했다.
“수작 부리는 것 아니니 앙탈 좀 부리지 마십시오.”
“수, 수작이라니! 앙탈이라니!!”
화가 나서 바득바득 대드는 꼴이 제법 귀여웠다.
“이 꼴이 되도록 뭘 하고 다녔기에 이리된 것입니까.”
나는 그와 마주 선 채 그의 어깨에 진기를 흘려 넣었다.
이미 오래되어 뒤틀린 기혈을 바로 잡을 가능성은 없을 듯했지만 해 보기나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생각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정작 검에 관통당해서 생겨난 상처는 대수롭지 않았다.
그 주변의 상처는 검에 당한 후 무리하게 힘을 쓰다가 그리된 것 같았다.
만약 검에만 당했다면 오른팔을 영영 쓰지 못하게 되진 않았을 듯했다.
혹시….
혹시 하민을 구하려고 하다가?
하민을 향해 날아드는 검에서 그를 피하게 하려고 하다가 이리된 것인가?
내 손길이 불편했는지 서은우가 날개 달린 여린 새처럼 푸드득거렸다.
내 오해였던 것인가.
서은우도 그들이 올 거라는 것을 몰랐던 것인가.
생각은 복잡하게 이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답을 알아내려 해도 스스로 알아낼 수 있는 답이 아니었다.
“어찌 생긴 흉터인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관조를 마치고 그에게 물었다.
그날의 서은우라면 말을 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했다.
그날은 그가 나에게 도움을 받은 날이기도 했고 나와 함께 비무를 하면서 내 비밀을 본 날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도 그 정도는 말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의자에 앉아 그가 잠시 허공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스승님을 연모했다. 그분이 내 품에서 돌아가셨다. 그분을 향해 짓쳐들어오는 검을 막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날, 스승님을 따라 죽었다면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겠지.”
“….”
서은우가 나에 대해 알고 거짓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조금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자들은 누구였습니까.”
“장문인이 보낸 화산의 추살조였다. 화산이 생긴 이래 그렇게 강한 이들로 추살조가 꾸려진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사조님과 스승님은 함께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러고는 그가 피식 웃었다.
“그자의 이름도 견인이었다. 희한한 일이지. 그자도 꼭 너처럼 생겼다. 처음에 너를 발견했을 때 피가 얼어붙는 줄 알았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건가 했다.”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스승님은 오직 그자의 곁에서만 행복하실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스승님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스승님은 그자를 처음 만났던 곳에서 머무시기로 했고 나는 그곳에 찾아갔다. 내 뒤에… 나를 쫓는 자들이 있을 거라는 것을 생각했어야 했다. 알았다고 해도 갔을지도 모른다. 스승님을 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서은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자들은 가장 먼저 나를 공격했다. 그러면 스승님이 나를 구하러 오실 거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노린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한 줄 아느냐. 그분이 나를 구하러 오실까 하면서, 기대했다.”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달려오는 그분을 보며 기뻤다. 아팠는데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분의 곁에서 그분과 함께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고 말하고 싶었다.”
서은우의 눈에서는 끝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는 그런 그에게 다가가 뺨을 감싸고 손가락으로 눈물을 문질러 닦았다.
그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처럼 오열했다.
살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분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며 기뻤다. 이제 더 이상 그분이 견인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내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그분이 미웠다. 나를 그리 아프게 하실 수 있는 분은 그분뿐이었는데 그분을 연모할 수밖에 없어서. 보답받지 못하는 내 마음이 서러워서…. 단 한 번이라도 나를 그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기를 바랐다.”
그제야 알았다.
하민은 서은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었다.
서은우의 흉터를 만져 보지 않았다면, 그의 상처를 관조하지 않았다면 끝까지 알지 못했을 일이었다.
서은우가 하민을 구하려 했다는 것을.
흐느끼며 무너지는 서은우를 안았다.
극한의 슬픔과 죄책감으로 진이 빠져라 우는 서은우는 제대로 서 있지 못했다.
그런 그를 안았다.
그리고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서은우는 놀라며 나를 밀어 냈지만 나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의 입술을 가르자 서은우의 손가락이 내 가슴에 닿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술을 열어 나를 받아들였다.
입맞춤을 하다가 두 사람이 동시에 멈칫했다.
나는 그를 놓아주었고 서은우는 황급히 방을 나갔다.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지.
방으로 돌아가 침상에 눕고도 한동안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날 처음으로 나는, 하민이 아닌 서은우의 꿈을 꾸었다.
오직 서은우만 나오는 꿈을.
***
수련장의 분위기가 달랐다.
교두는 자리에 없었다.
같은 삼대 제자지만 기수가 달라서 평소에 수련받는 곳이 다르던 사형들이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기수가 높아 깍듯하게 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삼대 제자들도 나를 에워쌌다.
문파의 어른들에게 반항적으로 굴며 마음껏 엇나가고 있는 서은우 때문에 나에게는 이렇다 할 친우가 없었다.
그런 게 이럴 때는 다행이다 싶었다.
나와 친한 녀석이 있다면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얼마나 걱정이 될까.
“견인, 우리를 원망하지는 말거라. 다 자업자득이다.”
“욕심이 많습니다. 원망도 받고 싶어 하지 않다니요.”
그 말에 사형들 몇이 키득거렸다.
“잘난 주둥이를 언제까지 나불거리나 보자.”
그리고 누군가 매화권을 날렸다.
귀여웠다.
그 간단한 동작도 제대로 못할 뿐만 아니라 내공은 아주 조금뿐이고 운용하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나는 그동안 사람들 앞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제자가 아니었다.
교두의 앞에서도 실력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서은우만 해도 위험한데 서은우의 제자인 나까지 위험하면 화산의 수뇌부가 얼마나 골머리를 앓겠는가.
처음 내가 서은우를 따라 화산에 들어왔을 때 내 이름이 견인이고 내 얼굴이 지난 생의 나를 닮았다는 사실에 장문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긴장을 했었다.
해서 나는 그들이 긴장을 풀 때까지 닥치고 얌전히 있기로 했다.
서은우가 하도 나에게 닥치라고 해 대서 그게 습관이 됐나?
어찌 됐건 그런 이유로 지금 이 조무래기들은 내가 어떻게 나올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웬만하면 이대 제자나 일대 제자가 돼야 배울 수 있는 것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게 아니어도 충분했으니까.
내가 가진 내공을 전부 드러낼 필요도 없었다.
빠르게 권을 내지른 것만으로 사형들이 추풍낙엽처럼 조무래기들이 나가 떨어졌다.
“이, 이놈이!!”
처음에는 나서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려고 마음먹은 것 같던 이들이 합류했다.
그들의 실력은 그나마 조금 나았지만 내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서은우의 말이 떠올라서 손속에 자비를 두었다.
맞지도 않고 베지도 않는 건 뭐.
나에게 꼭 어려운 게 아니니 들어주기로 했다.
그래 놓고 나는, 뭐가 지나갔나 하는 듯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직 내가 여기에 더 있어야 하는 건가 했다.
“비무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이 사제가 시간 없을 걸 아시고 이렇게 한꺼번에 덤벼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아직 날이 따뜻해서 누워 있을 만한 모양입니다? 안 일어나는 걸 보면.”
그들은 대꾸를 하지 못한 채 서로 눈알만 굴렸다.
내가 어떻게 한순간에 자기들을 제압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껏 드러내지 않고 말하지 않아서 그랬을 뿐 우리를 가르치는 일대 제자들보다 내가 나을 거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걸음을 옮기는데 한 사람이 뒤에서 기습을 했다.
나는 돌아서며, 찔러 오는 주먹을 잡고 매화권의 초식으로 그의 턱을 올려 쳤다.
순간적으로 주먹에 내공까지 실어 날리자 그의 입에서 피가 뿜어졌다.
“확실하게 할까요? 비무가 끝난 겁니까, 아닙니까? 안 끝난 거면 제대로 붙겠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멍하니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리 끝내는 것은 이번까지만입니다. 다시 기습을 하면 그때는 그동안 배웠던 모든 것을 연습해 볼 생각입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서은우가 했던 말이 있어 그 정도로 했다.
내가 한 말이 어떤 식으로 왜곡될지 알 수 없어서.
‘계속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건가?’
그동안에도 화산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정을 하려고 하면 늘 마음이 약해졌다.
어차피 다른 곳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귀찮기도 했다.
이곳에는 하민을 떠올릴 곳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내 마음을 약해지게 만드는 것이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사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화산에서 어떤 공간을 볼 때 그곳에서 함께 했던 하민이 아니라 서은우와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사실을 부정하려 애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