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 외전(16)화 (136/137)

16화.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기혈이 뒤틀리고 혈맥이 상해서 그것을 회복하는 데 한계 이상의 내공을 사용했습니다. 지금 바로 완전히 회복시키라고 해도 하지도 못할 뿐더러 상처에 좋지도 않습니다. 지금부터는 명현 소협이 스스로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내공으로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기도 하고.”

의당주는 당당했다.

말하는 투로 보아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았다.

“며칠이나 필요한가.”

“하다 보면 본인이 알 겁니다. 달포 정도면 움직여지지 않을까 합니다.”

의당주는 이제 견인을 보지 않았다.

잘못한 게 있기는 하지만 서은우를 고친 것으로 자기 잘못은 만회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견인이 계속 자기에게 하대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견인은 실소를 흘렸다.

멋대로 생각하는 것은 이 자들의 습벽인가.

“돌아가라. 당문 놈들을 모조리 끌고 와서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복수를 하려고 해도 상관없다. 당문을 지워 버리고 싶다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겠지.”

의당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버렸다.

말은 당당하게 해 놨지만 서은우를 보살피면서 당문 놈들 모두를 상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꼭 해야 한다면 해 보겠지만 괜한 만용을 부릴 이유는 없었다.

“스승님,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그의 말에 서은우가 몸을 일으켰다.

아까부터 계속 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단지 견인과 몸을 섞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를 보는 게 어색해 잠든 척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자리를 옮기는 게 나을 듯합니다. 의당주가 당문 놈들을 이끌고 온다면 골치가 아파질 것입니다. 독공은 까다롭기도 하고….”

서은우가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는 도대체 언제 독공에 대해 들은 거냐고 말을 하고 싶은 듯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그래.”

서은우가 일어나더니 가만히 오른팔을 움직여보려 하는 듯했다.

그러나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의 얼굴에 실망이 비치는 것을 보며 견인이 위로를 해 주려다가 그냥 두었다.

사람이 갑자기 너무 변하면 그것도 무서운 일인 것이니.

***

두 사람은 다시 산으로 들어갔다.

객잔에 들어가는 것도 생각을 했지만 사천의 여러 곳은 당문의 권역이었다.

어느 곳이 당문과 닿아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괜한 위험을 감수하느니 산으로 들어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치료를 받은 서은우는 간병이 필요해 보이지도 않았고 이제는 화산을 내려올 때와 비슷할 정도로 나아졌다.

견인은 조금 전부터 서은우를 살피고 있었다.

의당주가 시킨 대로 내공을 사용해 치료를 해 보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기색이었다.

“그걸 못 해서 끙끙댑니까.”

“누, 누가 끙끙댄다고 그래?!!”

서은우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너는 도대체 네 스승을 뭐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도대체 네놈은 나를 네 스승이라고 생각하기는 하는 것이냐?”

“왜 그렇게 화를 내십니까?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여쭌 것뿐인데요?”

서은우는 기가 찼다.

“사람을 무시해 놓고 그렇게 말을 해? 네놈이 조금 전에 어떤 말투로 물었는데?”

“하아! 알겠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런 것으로 하면 되죠?”

서은우는 제 이마를 쳤다.

저놈과 말을 섞다간 아무래도 제 명대로 다 살지 못하고 죽을 것 같았다.

“빨리 저쪽 팔이 나아서 오른팔로도 이마를 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더니 견인이 서은우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괜히 찔린 서은우가 뒤로 주춤거렸다.

“왜, 왜 이래?”

“내공을 움직이는 것을 알려 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잘 못하시잖아요.”

서은우는 그때야말로 기가 막혔다.

“견인!”

“그건 제가 스승님보다 낫습니다. 이 자리에서 증명할 수도 있습니다. 내공을 누가 더 정교하게 운용하는지 겨뤄도 좋습니다.”

서은우는 분했지만 겨루자고 말하지는 않았다.

견인이 특이하고 특출나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매화생공은 이미 대성한 눈치였고,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제가 아직 익히지 못한 무공을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서은우는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그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견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견인은 서은우의 눈빛만 보고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린 듯 금세 거리를 두었다.

“서로 어색해질 질문은 하지 말고 제게 도움을 받으시면 어떻겠습니까, 스승님?”

그러면서 그가 서은우의 왼손을 잡았다.

사적인 의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접촉이었다.

“내공을 여기까지 흘려 보세요.”

서은우는 정말 자존심이 상했지만 일단 그가 말하는 대로 했다.

“제 손이 닿는 곳으로 내공을 모아 보세요. 검에 흘려 넣는 것과 비슷한 이치예요.”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안다.”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서은우는 견인이 시킨 것을 바로 해내지 못했다.

“천천히 하시면 됩니다.”

견인은 끈기를 가지고 알려 주었다.

서은우는 영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만 창피한 줄 알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집중했다.

“잘하셨습니다. 이제 오른팔로 하시는 거예요. 익숙하지 않을 거고 그동안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더 힘드실 거예요. 하지만 하셔야 합니다. 평소와 같은 상황이라면 느긋하게 하셔도 되겠지만 당문의 소문주가 죽었다는 걸 아셔야 해요. 그자들이 저를 잡으러 오면 스승님이 구해 주셔야죠.”

“….”

사실이었다.

자신이 구해 줘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도움만 받고 있을 것이 아니라.

서은우는 그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견인의 손가락이 그의 팔 위에서 부드럽게 움직였다.

다른 곳에 내공을 흘려 움직이는 것은 그럭저럭 되는데 상처 부위에 이르면 번번이 실패했다.

“느긋하게 마음을 가지세요, 스승님. 서둘러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조바심을 내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집중을 했는지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었다.

창백한 얼굴은 더욱 파리해 보였다.

그런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된 것… 같아. 됐어!”

서은우가 감격하며 소리친 순간 견인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계속 바라보는 동안 사랑스러워서, 안고 싶어서, 저도 어쩌지를 못했다.

서은우는 그의 품에 갇힌 채 잠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견인은 민망해하며 서은우를 놔주었다.

“다시 해 보세요.”

“그, 그래….”

서은우는 다시 집중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여간해서 성공하지 못했다.

견인의 입술의 감촉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버려서.

***

견인은 고민이 깊어졌다.

처음에 그냥 서은우에게 말을 해 버렸다면 쉬웠을까.

그때는 서은우가 저 때문에 마음을 다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때는 일부러라도 서은우를 다치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아까워져 버렸다.

내가 견인이라고 말하면, 네가 연모하던 네 스승의 정인이라고 말하면 서은우는 어찌 생각할까.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스스로를 벌하려 들지도 모른다.

어쩌자고 일을 이리 만들었을까.

이리될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서은우를 두고 잠시라도 좀 멀리 떠나 있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하필 소문주 놈을 죽여 버려서,

소문주를 죽인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그놈은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으니.

그렇지만….

하….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영원히 모른 척하면 서은우는 나를 보며 계속 저리 웃을까.

다른 것이 아니라, 진실을 알게 된 서은우가 자책하며 스스로 벌하려 들까 봐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

“일어났느냐.”

서은우는 의욕이 넘쳤다.

“혹시, 괜찮다면 나에게 매화생공을 가르쳐 줄 수 있느냐.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셨다만 내가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말을 하는 동안 서은우의 얼굴은 갈수록 붉어졌다.

제자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럽고 자존심도 상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말을 하는 것은, 자기가 강해지지 않으면 견인이 위험할 때 구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견인도 그 마음을 알아서 서은우에게 매화생공을 가르쳐 주었다.

견인은 매화생공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제 품에 안겨 하민이 정말 상세히도 알려 주었기에.

어느 순간 서은우가 멈칫하는 순간이 있었다.

제 스승에게 직접 들은 게 아니라면 알 수 없을 것들.

그것이 견인의 입에서 흘러나올 때였다.

하민은 매화생공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러니….

말을 하던 견인이 돌연 말을 멈추고 서은우의 손목을 잡아끌고 제 품에 가두었다.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서은우가 깨달을까 봐.

깨닫고 도망칠까 봐.

깨닫고 괴로워할까 봐.

두려웠다.

서은우는 묻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계속 그들의 앞에 있었다.

그 거대한 벽이 모두의 눈에 보일 정도로 분명히 존재해 왔는데 참 고집스럽게도 그것을 모르는 척 해 왔다.

견인은 서은우의 뒷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그의 머리에 얼굴을 묻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