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뭘 어찌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뭘, 뭘 어찌해야 좋을지.
“해 봐야겠다. 호법을 서 다오.”
서은우가 견인의 가슴을 가만히 밀고 말했다.
서은우는 나무의 앞으로 갔다.
그러나 매화생공을 시작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견인도 마찬가지였다.
집중해서 서은우를 지켜봐야 하는데 머릿속의 번뇌가 너무 깊었다.
하민을 잊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졌다.
그리고 희미해진 그 기억 위에 서은우가 덧입혀졌다.
한동안 서은우는 하민을 닮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서은우를 보며 하민을 떠올리는 일은 많지 않았다.
시간이 더 지나면 하민에 대해 완전히 잊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견인은 마음이 복잡했다.
하민에게 미안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서은우를 향해 마음이 자라고 있었고 그 마음을 지키고 싶었다.
서은우에게 제 마음을 보이고 싶고 그의 마음을 얻고 싶었다.
서은우의 입술을 가르고 들어가 그를 적시고 싶었다.
그를 갖고 싶고 그의 안에 머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자신도 이제는, 살고 싶었다.
살아 보고 싶었다.
***
당문은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 되었다.
소문주가 죽었다.
그러나 소문주를 죽인 자의 실력이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복수할 힘이 없다면 입을 다물어야 했다.
어차피 그 일은 저희로부터 기인한 일이었다.
문주는 의당주에게서 일이 어찌 되었는지 들었고 견인이, 자기들이 상상하기도 벅찬 고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자가 지금껏 완벽하게 숨겨져 있었다는 것이 놀랍고 두려울 뿐이었다.
당문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을 알지 못한 채 견인과 서은우는 산속에서 그들만의 수련을 해 나갔다.
매화나무는 없지만 견인은 다른 나무의 생기를 받아 들이며 운기조식하는 것을 서은우에게 가르쳐 주었다.
일대 제자가 되어야 배울 수 있는 무공도 가르쳐 주고 장로가 되어야 익힐 수 있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화산 제일의 기재, 무공의 천재라 불리던 하민이라서 볼 수 있었던 무공들이 견인을 통해 펼쳐졌다.
서은우는 진실에 눈을 감았다.
한 발만 앞으로 가도 그는 거대한 진실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익사할 운명이었다.
그래서 애써서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견인 역시 서은우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날이었다.
따스한 늦봄의 어느 날.
그날도 서은우는 제 오른팔을 치료하기 위해 내공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뒤에서 견인이 다가왔다.
서은우는 그가 자기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용히 그를 기다렸다.
돌아봐야 하나 하다가 그냥 그 자리를 지켰다.
“서은우.”
작지만 단단한 목소리.
서은우는 그 순간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서은우.”
견인은 그 말만을 한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서은우를 깊은 혼란에 빠뜨린 것이 미안해서.
그래도 더 이상 끝을 알 수 없는 불안에 허덕이고 싶지 않았다.
그가 흔들린다면 붙잡아 주고 그가 괴로워하면 저를 보며 이겨 내게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서로를 바라보기를 바랐다.
진실을 피하지 않은 채로 그렇게.
뭐라고 말했어야 할까.
그날 저는 뭐라고 말을 했던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기억은 꼭 도중에 멈췄다.
그가 다가와 서은우라고 했다.
자신을 이름으로 불렀다.
그래서.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더라?
도통, 그 후의 일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자신을 감싸던 대기가 얼마나 따뜻했는지 그것만큼은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저를 부르던 그의 음성도.
***
서은우가 검을 들었다.
“아니지. 거기에서 더 뻗어야 한다고. 끝까지 더. 그리고 멈춰.”
견인은 납작한 바위 위에 앉은 채 검집 위에 두 손을 얹고 말했다.
저러고 있기도 쉽지 않을 텐데.
“그러다가 버릇 든다고 했다, 견인. 화산에 가서 그랬다가 죽도록 맞는다는데도. 너를 위해서 말을 하면 그건 좀 들어!”
“화산에 가면 입을 꾹 다물고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나한테 말 거는 사람도 없고.”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 네놈이 나한테 말하는 걸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있다는 게 문제야.”
“아, 맞네. 그런데 너는 왜 계속 나한테 하대를 하는 거지?”
“나도 걱정이 되니까. 화산에 가서 존대할까 봐. 그러니까 미연에 방지하려고 그러는 거지.”
심히 의심스러운 말을 하고 서은우가 다시 초식을 이어 나갔다.
“서은우, 본인에게 재능이 없다는 건 알고 있지?”
견인은 도저히 답답해서 못 보겠다는 듯이 기어이 다가왔다.
“팔을 이렇게 펴라는 거잖아. 일부러 이러는 거지?”
그러면서 그가 서은우의 뒤에 서서 팔을 잡고 끝까지 펴도록 했다.
실제로 하고 싶었던 것은 서은우의 몸을 만지는 거였는지, 서은우의 뒤에 바짝 붙어 선 채로 가느다란 팔을 야무지게도 쓰다듬었다.
“상체는 바르게, 허리는 꼿꼿이.”
그럴 때마다 견인의 뜨거운 숨결이 서은우의 목덜미에 닿아 서은우도 모른 척하기가 어려워졌다.
뒤에서 심상치 않은 열기가 느껴졌다.
“스, 슬슬 사천지부에 가기는 해야 할 텐데.”
서은우가 딴소리를 하는 동안 견인이 뒤에서 그를 안았다.
그리고 잠시 그렇게 멈추어 있었다.
서은우를 제 품에 가두고 있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 뻔뻔하게 안고 있지만 등에 닿은 가슴에서 견인의 심장이 얼마나 거세게 뛰고 있는지 전해졌다.
그도 쉽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서은우는 깨달았다.
견인 역시 용기 내고 있는 거라는 걸.
서은우가 그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견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오른팔이었다.
견인이 그 팔을 어루만졌다.
“이 팔이 완전히 다 나으면 그때 가자, 사천지부에.”
“장로들이 알면 가만있지 않을 텐데.”
“좀 가증스럽네. 무서워하지도 않으면서.”
서은우가 웃었다.
“네가 장문인이 돼 버려. 화산의 장문인. 그리고 네 사조가 당했던 억울한 일을 밝혀 줘. 하민은 그러고 싶어 했어.”
서은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스승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그것뿐이리라 했다.
어렵더라도 할 것이고, 오히려 그것이 더 어렵다면 좋을 듯했다.
그러면 이 죄스러운 마음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아서.
“널 장문인으로 만들려면 내가 고생이 많겠다. 네 길을 막는 놈들은 내가 전부 손을 봐줘야 할 테니까. 그냥 장문인이 되지 마. 그래. 안 되는 게 낫겠다.”
견인의 말에 서은우가 큭, 하고 웃음소리를 냈다.
견인이 서은우의 턱을 가만히 잡고 그의 입술을 찾았다.
서은우가 눈을 감자 견인의 입술이 눈꺼풀 위로 이어졌다.
감히, 꿈꾸지 못했던 사치.
서은우를 안은 팔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우리, 이래도 되는 걸까.
견인은 묻고 싶었다.
벅차도록 행복해서 죄스러운 기분이라서.
“널 애모한다, 서은우.”
그의 입술 위에 대고 견인이 속삭였다.
서은우가 가만히 견인의 손가락을 잡았다.
그러고는 그 손가락 모두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하나하나에 정성스럽게 입맞춤을 하고 서은우가 그를 바라보았다.
서은우를 바라보는 견인의 눈에 열기가 일렁였다.
그의 부드러운 손이 서은우의 어깨에 닿았다가 걸쳐져 있던 옷가지를 벗겨 내렸다.
서은우는 불안한 기색 없는 눈으로 견인을 바라보았다.
견인의 앞에서 나신이 되고서도 마찬가지였다.
견인은 서은우의 낭창한 허리를 안고 입을 맞추다가 그를 돌려세웠다.
올라붙은 엉덩이를 두 손으로 주무르다가 잡아 벌리고 그 사이의 비밀스러운 주름을 하나하나 만졌다.
그 뒤에서 견인의 중심이 흉물스럽게 부풀었다.
서은우는 엉덩이 사이에 그것이 닿는 것을 느끼며 숨을 골랐다.
손가락이 들락거리며 구멍의 크기를 넓히다가 결국 그의 단단한 것이 서은우를 꿰뚫었다.
“하으으읏!”
비틀거리던 몸이 견인의 단단한 손으로 받쳐졌다.
하얀 목덜미에 견인의 입술이 와 닿았다.
귓불을 머금고 따뜻한 숨결을 흘렸다.
그의 숨결을 삼키고 싶어 서은우는 한껏 고개를 돌렸다.
견인은 안타까운 듯 매달리는 그에게 입을 맞췄고 서은우는 그의 숨결을 삼켰다.
서은우는 파정의 순간을 기다렸다.
견인이 제 안에서 한껏 몸을 부풀리다가 마침내 풀기를.
거친 추삽질 끝에 견인이 파정하자 서은우의 선단에서도 뜨듯한 정액이 토해졌다.
견인이 만족스러운 듯이 서은우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꼭 안았다.
“애모한다, 널.”
견인의 부드러운 음성이 그의 귓가에 닿았다.
서은우는 말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영원히.
나도 너를 애모하고 있노라는 그 고백만큼은, 결코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인지, 그렇게 해서 하민에 대한 죄책감을 덜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는 그 말을 삼켰다.
바람이 불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서은우의 긴 머리카락을 휘감다가 떠나갔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머리를 반만 잡아 묶지 않았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