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원래는 저런 잡귀들이야 딱히 해를 끼치지도 않고, 중환자실에 있는 애들이 다 불쌍하게 죽은 애들이라 이런 무식한 방법을 써서 보내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 내가.
남자는 구겨진 미간을 제 엄지로 슬슬 문지르며 영서의 침대로 가까이 다가왔다. 과연, 사고 당시에 봤던 것처럼 남자는 영서의 엄마와 아빠를 가볍게 통과해 영서의 눈앞까지 다가와 섰다. 가쁘게 쉬어지던 숨이 한결 편안해졌지만, 여전히 몸은 약기운에 절어 아무런 감각이나 힘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런 영서를 내려다보며 혀를 찬 남자가 말했다.
-숨 쉬는 건 좀 편안해졌지? 어때? 안 그래도 아까부터 네 목 위에 올라앉아서 이를 득득 갈던 할망구가 하나 있었거든. 여기 터주 대감인 모양인데, 그 양반 살아있을 적에 손자가 요절한 모양인지 자기 손자랑 닮은 남자애들만 입원했다 하면 꼭 자기가 데려가려고 병실마다 괴롭히고 다녔지. 어차피 힘도 약하고 너처럼 한창 양기 넘칠 나이대의 남자애들은 가위만 눌리고 끝나는 정도라, 불쌍하기도 해서 그동안 안 보내고 남겨 둔 건데…
쯔쯔, 혀를 찬 남자가 가볍게 영서의 머리맡에 걸터앉았다. 가벼운 몸짓은 자로 잰 듯 단정하면서도, 아무런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아 영서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 어차피 네가 생각하는 건 다 들리니까 맘대로 말해도 상관없어. 그것보다, 니네 엄마 아빠 무지 유난인 스타일이네.
팔을 짚으며 영서의 머리 위쪽으로 상체를 기울인 남자가 반쯤 비웃는 말투로 턱을 까닥였다. 영서의 시선이 그를 따라 병실 문가에 선 부모와 의사에게로 흘러갔다. 엄마와 아빠는 죽었다 살아난 자식을 연신 애틋한 눈으로 쳐다보면서도, 입과 손으로는 한창 의사와 CT를 찍니, 수술을 더 하니 마니 하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영서는 남자가 말한 대로 가만히 생각으로 하고픈 말을 떠올렸다.
-아저씨는, 누구예요? 아저씨도 귀신이에요?
-이 새끼가 살려줬더니 버르장머리 없이.
남자가 영서의 이마 위로 꿀밤을 놓는 시늉을 했다. 무언가가 닿는 느낌도, 어떠한 무게감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정말 꿀밤을 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찌르르했다.
-저승 차사라고 들어나 봤냐?
남자는 빙글빙글 웃으며 상체를 숙이고 손을 모아 잡았다. 새카만 셔츠의 팔 부분에 보기 좋은 주름이 졌다. 저승차사, 저승사자란 말인가. 이 남자가?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저승사자들은 다 까만 도포에 갓을 쓰고… 시퍼런 얼굴을 하고… 그렇지 않나?
-에이~그건 뭐 조선 시대 때나 그런 거고. 요즘 우리들도 다 사복경찰 같은 거라. 귀신 잡는 공무원이라고나 할까나.
남자의 반듯한 얼굴이 심드렁해졌다. 한쪽 손을 정장 안쪽에 넣더니 뭔가를 꺼내 들었다. 단말기 같기도 하고, 두꺼운 스마트폰같이 생긴 기계였다.
-그럼… 죽은 저를 데리러 온 거 아니에요? 저승사자라면서요.
-그럼, 그럼. 권영서. 너는 이미 명이 다해 죽은 영혼이었다. 분명 그랬었지. 근데 이놈 봐라, 내가 너를 데리러 왔을 때 명부를 확인했더니, 아주 재미있는 게 끼어있지 뭐냐?
남자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중얼거리며 기계에 뭔가를 톡톡 입력시켰다. 영서는 그 짧은 순간, 18년 동안 살아온 자신의 평범한 인생을 돌아보며 내가 뭔가 잘못한 거라도 있었나 싶어 괜히 찔끔했다. 저승사자라니까 괜히, 이 노옴! 하고 당장이라도 뒷덜미를 잡고 저승에 패대기칠 줄 알았는데. 하지만 지금 눈앞에 저승사자를 자처하는 이 남자는, 오히려 누구보다도 더 사람처럼 또렷하고 멀쩡한 모습을 가졌다. 물론 그가 걸터앉은 침대엔 아무런 자국도 남지 않았고, 강렬한 백색 등에 그림자가 생기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저 반듯한 이목구비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정적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아무리 가만히 무표정을 지으려 노력해도 결국 표면으로 드러나고야 마는 생기라는 것이 있었다. 삶의 증거, 시간이 흐른다는 증거.
남자의 얼굴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이름 석 자도, 생년 일시도, 한 군데도 틀림이 없었는데 말이지. 널 데려가려고 했는데 그때, 아주 위에선 난리가 났더라고. 아가, 아직도 기억나는 게 없냐?
-기억나는 거…?
-지난 열흘 동안, 네가 정말 잠만 잔 거라고 생각해?
머릿속이, 마치 심장이 뇌와 뒤바뀐 것처럼 두근두근 울리기 시작했다. 내가 의식을 잃었던 열흘 동안, 아니, 죽어 있던 열흘 동안…? 남자의 목소리를 따라 무언가가 아련히 떠오를락 말락 했다. 교통사고, 부서질 듯 아팠던 몸, 무거운 머리, 그리고 갑자기 떠오를 듯 가벼워진 내 몸. 그 순간 보았던 눈부신 빛이, 천장에 달린 백색 등과 겹쳐 보였다. 분명, 내 손으로 어떤 방문을 열고 들어갔었지. 그곳에서 무엇을 봤지? 방 안에는…
-얼른 정신 차리는 게 좋을 거야. 언제까지고 그렇게 모른 척 어리광을 부릴 시간은 없다.
순간 남자의 목소리가 여자의 것으로 바뀐 것 같았다. 아니, 여러 높낮이의 음이 겹치면서 그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변질되고 있었다. 영서는 이유 모를 두려움과 눈앞에 번지는 플래시백에 두 눈을 크게 떴다. 턱이 덜덜 떨려왔다.
-권영서. 곧 전부 기억이 날 거다. 약속을…지 마라. 넌 …한 운명으로…. 타고…으니…
남자의 목소리가 고장 난 라디오처럼 지지직거리며 흔들리더니, 그의 흰 얼굴 또한 물감을 풀어놓은 듯 어슴푸레하게 번져갔다. 실로 기괴한 그 모습에 영서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감지도 못한 채 뚫어져라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남자는 연기가 증발하듯 홀연히 사라졌다.
“어머, 영서야, 왜 그래?!”
“여, 영서야! 선생님, 우리 영서가!”
크게 뜨인 눈가가 충혈되는가 싶더니, 결국 방울지며 눈물이 새어 나온다. 소리 없이 허공을 노려보며 눈물을 흘리는 아들의 얼굴을 매만지며 부모는 애달픈 걱정의 소리만 쏟아낼 뿐이었다.
영서는 알 수 있었다.
방 안에 들어섰던 나는.
그날부로 죽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반쪽짜리 권영서인 것을.
***
“야야, 저기 옥상에 봐봐.”
“저거 전학생 아닌가? 왜 저러고 있냐?”
“쟤 좀 이상하다 하던데. 진짜 맛이 갔나.”
다 들리거든, 짜식들아?! 영서는 이를 득득 갈며 주머니에 챙겨온 것을 꺼냈다. 6세 이상의 나이 제한이 적혀 있는, 그 나이 대 어린애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작게 그려진 장난감 새총이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아이고, 이런 썅…거의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든 영서의 얼굴에 빤하게 햇살이 비쳐들었다. 날씨 한 번 오지게 좋네…
“야, 빨리 안 하면 다 놓친다고!”
옆에서 재촉하는 목소리는 높고 앙칼졌다. 영서보다 키가 한 뼘쯤 작은, 아담한 체구의 여학생이었다. 밑에서 그들을 올려다보며 수군거리는 남학생들은 신경도 쓰이지 않는지, 여자아이는 잔뜩 짜증 난 얼굴로 영서를 쳐다보았다.
“아, 알겠다고! 근데 네가 말한 대로 왔는데 하나도 안 보이잖아!”
“뭐? 이거 완전 사기꾼 아냐? 네가 먼저 내 부탁 들어주겠다고 해서 나까지 올라온 거잖아!”
“아니, 그래도…!”
밑에 서서 올려다보는 남학생들의 눈에는 여전히 혼자 중얼거리는 영서만이 보일 뿐이었다. 정말 소문대로, 전학생은 맛이 간 놈인가 보다. 남학생들은 서로 안쓰럽게 혀를 차며 매점으로 향했다.
“아니, 애초에 너는 지박령이 네 자리 벗어나도 되는 거야?!”
“뭐? 안 그래도 힘들게 올라와 줬더니 이 쪼그만 게!”
“뭐, 쪼그만…!”
영서는 울컥 차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눌러 삼켰다. 참자, 참자, 권영서. 어차피 나보다 더 작은 애인데. 그래, 명찰 보니까 1학년이네, 보자 보자 하니까 이미 죽었으면 위아래도 없다 이거냐…?!
“잔말 말고 얼른 부탁 들어주기로 한 거나 해줘! 안 그래도 네 기운에 업혀서 나도 간신히 올라온 거지, 옥상은 진짜 기분 나쁘고 얼씬거리기도 싫다구!”
여학생의 교복은 영서가 입은 교복과 살짝 다른 모양새였다. 몇 년 전에 학교 교복을 새로 디자인했다더니, 아마 그전에 죽은 영혼인 모양이었다. 원래 이름이 수놓아져 있어야 할 자리를 곁눈질로 훔쳐본 영서가 한숨을 쉬며 머뭇머뭇 새총을 들었다. 이딴 장난감으로 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이야…
영서가 병상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 달 전의 일이었다.
병원의 그 누구라도 알만큼 끔찍한 사고로 입원한 영서의 상태와는 반대로, 오히려 다시 살아난 영서는 괴물 같은 회복력으로 2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며, 천지신명이 도우신 게 틀림없다며 부모를 비롯해 소식을 듣고 단숨에 달려온 양가 조부모까지 모두 영서를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의사들까지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의 회복력이었다. 영서는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자신의 회복력이? 그것도 물론 그랬지만, 무엇보다도.
다시 눈을 뜨게 된 순간부터 ‘보이게’된 것들이.
영서는 이따금씩 재활 훈련이나 산책을 하다가 허공을 응시하는 일이 많아졌다. 아니면 사람들이 득시글한 병원 로비에서나, 아니면 텅텅 빈 엘리베이터에 타고 나서도 괜히 구석 자리로 몸을 피하는 일도 있었고, 가만히 사람의 어깨너머를 지켜보다가 화들짝 놀라 자리를 뜨기도 했다. 간호사들은 그런 영서를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보았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별다른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떤 환자보다도 놀라운 속도로 뼈가 붙고 근육이 재생되어 회복하고 있지 않은가. 영서는 몇 주 전에 그런 큰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멀쩡하게 걸어 다니고 행동했다. 하지만 간호사와 의사들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영서는 물론 의학적으로는 멀쩡했지만, 회진을 도는 주치의에게도, 또는 부모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하나 생겼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