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아저씨, 왜 또 왔어요?”
-어른이 왔으면 오셨어요~부터 하는 거지 임마, 싹바가지 없게 왜는 또 왜야?
“아저씨가 자꾸 와서 말 걸면 간호사 누나들이 저 이상한 눈으로 본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왜 혼자 허공에 대고 중얼거려? 말로 안 해도 그냥 난 알아듣는다니까.
“아, 싫어요. 기분 나빠.”
왜 남의 생각을 읽고 그래요? 영서는 입을 삐죽이며 링거를 끌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곧바로 도착한 엘리베이터 안에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걸 확인한 뒤 안심하고 올라탔다. 뒤따라온 남자는 오늘도 역시 머리부터 발끝까지 블랙이었다. 얼굴빛은 오히려 더 새하얗게 질려 보일 만큼 핏기가 없었지만.
“아저씨, 근데 저, 그때 말한 거, 기억이 잘 안 나요.”
-거짓말하지 마. 다 기억나면서.
“진짜예요. 아예 안 나는 건 아니지만, 드문드문 기억나서, 꼭 기억이 누가 조각낸 것 같아. 뭐가 뭔지 모르겠는 기억들만 가득해요.”
남자는 영서가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뻔히 알 수 있으면서, 괜히 팔짱을 끼며 투덜거렸다. 아마 단편적인 기억들로는 자신이 무엇들을 봤는지 알 수 없는 거겠지.
-아니면 네가 다시 살아나서 일부러 그분들이 대충 지우신 걸 수도 있겠고.
“그분들?”
-네가 보고 온 분들.
“왜 시원하게 대답을 안 해줘요? 아니, 애초에 저승 차사 씩이나 되는 분이 맨날 이렇게 일도 안 하고 병원에서 농땡이 쳐도 되는 거예요?”
날카로운 지적에 남자는 흠흠, 헛기침을 했다.
-내가 그래도 짬이 좀 있는 직급이라서, 그렇게 직접 발로 뛰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거든.
“뭐야, 저승 차사도 별거 없네.”
무시무시한 칼이라도 뽑아서 귀신들 잡고 다니는 줄 알았더니. 삐죽대며 대답하는 영서의 뒤통수를 아릴 정도로 노려본 남자가 팔짱을 풀고 영서의 앞으로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먹으로 그린 듯한 잘생긴 눈썹이 삐뚜름하게 올라가 있었다.
-아가, 내가 재밌는 거 하나 가르쳐 줄까?
“뭐, 뭔데요.”
자꾸만 찾아오는 불청객이 귀찮기도, 약간 신기하기도 했던 지라, 영서는 갑자기 무게를 잡는 남자의 얼굴에 조금 기분이 이상해졌다.
-너, 분명히 보이지? 귀신들.
“그…런데요?”
-그나마 편하게 살고 싶으면, 귀찮아 보이게 생긴 애들은 최대한 아는 척하지 말고 피해라.
“귀찮아 보이게 생긴?”
-그래, 뭐 그런 거 있잖아, 귀신 중에 좀 골치 아프게 생긴 애들.
영서는 불현듯, 언젠가 친구가 제멋대로 지껄였던 괴담들이 떠올랐다.
“그 뭐, 웃는 귀신이나 춤추는 귀신은 위험하다는, 그런 거요?”
-엉, 어떻게 알았냐?
농담으로 던진 건데, 진짜였냐고! 갑작스레 싸해지는 공기에 영서는 슬쩍 손을 들어 제 뒷목을 쓰다듬었다. 소름이 잔잔하게 돋아있었다.
-뭐, 앞으로 차차 알게 될 거지만, 점점 기억들이 되살아 날 거다. 하지만 친절한 내가 미리 알려주기로 하지. 권영서, 너는 앞으로 ‘퇴마사’가 될 거다.
이게 무슨 개소리???
-방금 개소리라고 생각한 거 다 들었다.
“아니 갑자기 그렇게 앞뒤 자르고 얘기하면 어떡해요! 그리고 제가 퇴, 퇴마사? 무당 같은 거 아니에요?!”
-같은 게 아니고 뭐 그게 맞긴 하지.
“아니, 저기요, 귀신이 보인다고 해서 다 무당 되고 그런 건 아니잖아요? 제가 아는 애들 중에만 해도, 그…”
영서는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중학생 땐가, 동창생 중 친하지는 않았으나 귀신을 본다는 소문을 가진 애가 하나 있었는데. 여자애였나? 그 애의 얼굴도 흐릿했다. 분명 같은 반도 했었는데. 영서의 어이없는 얼굴에 남자는 비식비식 웃었다.
-이놈 보게, 그럼 네가 공짜로 살아난 건 줄 아냐?
“아니 그럼, 뭐 제가 거래라도 했다는 말이에요?”
-기억이 좀 나나 보네?
뭘 한 거야, 기억도 안 나는 죽은 상태의 나! 영서는 절규하고 싶었다. 전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이 정도로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한 일이라고 할 수 없는 거 아니냐고. 그러나 현생의 이치가 저승에서까지 통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차라리 속 시원히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주면 다행이기라도 할 텐데, 눈앞의 이 저승사자라는 남자는 맨날 불쑥 불쑥 찾아와서 사람 신경이나 긁고 말이야, 귀찮게시리! 그래도 사실, 남자가 같이 다니는 동안은 시야에 이상한 것들이 보이지 않아 나름 편리했던 영서였다. 사람들과 사람이 아닌 것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인 모습은 벌건 대낮에 봐도 깜짝깜짝 놀랄 모습이었으니까. 그래도 직급이 있다는 게 진짜긴 한가 보네. 어중이떠중이 잡귀들은 남자가 등장하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증발하거나 사라지곤 했다. 영서는 한숨을 쉬며 복도를 걸어 자신의 병실 앞에 다다랐다.
“그래서요, 제가 뭐 아저씨처럼 돌아다니면서 엑소시스트 같은 거라도 해라, 이건가?”
-그렇지,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혼을 달래주는 것보단 그냥 이쪽에서 먼저 보내버리는 방법이 제일 간단하긴 하지만.
물론 난 난폭하게 처리하는 건 싫지만 말야~ 남자는 이제 거의 공중에 누운 자세로 떠다니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잊지 마. 네가 할 일은 원혼 하나라도 더 구제하고, 그들의 한을 풀어주고, 또 필요하다면…
“필요하다면?”
-…
남자는 잠시 턱을 괸 채 영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공중에 둥둥 뜬 채 그러는 것은 하나도 멋지지 않았지만.
-필요하면, 무력을 써야 할 일도 있을 거야.
그 무력이란 거, 가능하다면 지금 쓰고 싶어요.
영서는 옥상 위에서, 여학생 귀신의 잔소리에 시달리며 생각했다. 울고 싶었지만 울 수도 없었다. 아, 내 팔자야, 인생은 왜 이다지도…
듣고 있냐며 더 소리를 높이는 여학생과 영서의 뒤로, 한 그림자가 슬쩍 스쳐 지나간 것을, 영서는 보지 못했다.
***
일주일 전.
<남중(南中)고등학교>
영서는 눈앞에 떡하니 쓰인 학교의 이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뭐 학교 이름이 이래. 영서는 입술을 삐쭉대며 자신의 키보다 몇 뼘은 큰 철창 교문을 지나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수업 시간인지 텅 빈 운동장은 아직 고등학생인 영서에게는 꽤 낯선 풍경이었다. 괜히 무언가 잘못한 느낌.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영서의 시야에 벌써부터 한 놈, 두 놈씩 어른대기 시작했다. 소문 대로구나, 여기는.
영서가 되살아난 지 2주 후, 퇴원 수속을 대신 밟은 영서의 엄마가 핸드백을 고쳐 잡으며 주차시켜놓은 차에 올라탔다. 뒷좌석에 앉은 영서는 턱을 괸 채 창밖을 구경하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아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여보, 정말 괜찮은 거 맞대?”
“그렇다니까, 의사 선생님도 놀랄 노자라잖아. 영서야, 배는 안 고파? 가다가 휴게소 들를까?”
“괜찮아요.”
무감각한 아들의 얼굴을 백미러로 흘긋 건너다 본 엄마가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영서의 부모는 젊지 않은 나이에 늦둥이로 영서를 얻었다. 꼭 딸 하나만 낳으면 좋겠네, 싶다가도 막상 각자의 일에 치여 딩크족도 나쁘지 않다며 주말부부로 살던 그들에게, 영서는 느지막하게 찾아온 축복 같은 아들이었다. 물론 그 축복이를 맞벌이로 바빠 한동안 외롭게 만들었다가 큰 사고를 당하게 해-남편은 그날 영서를 데리러 가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라며 계속 자신의 탓을 하곤 했다-최근 마음고생을 많이 한 그들이었다. 영서는 원래도 부모에게 그다지 애교스럽고 살가운 아들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가족의 분위기는 화목한 편이었다. 오히려 아들은 점잖고 부모가 애들 같다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들은 적도 있으니까. 최근 일이 바빠 영서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써준 것은 사실이었으니, 영서의 부모는 사고 후 영서를 더 금지옥엽 대하고 있었다.
“영서야, 아빠가 미리 얘기했겠지만, 새로 이사 가기로 한 동네로 전학도 갈 거야. 아무래도 지금 학교는 그 동네에서 많이 머니까.”
“…”
“우리 아들은 그냥 푸욱~ 쉬면서 편하게 다니면 돼, 알겠지? 학원도 옮길 거니까 당분간은 쉬엄쉬엄 공부하고, 피곤하거나 조금이라도 아프면 바로바로 말하고. 알겠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부모의 말에도 영서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창밖에 뭐라도 있는 듯 뚫어져라 노려 볼 뿐이었다. 사고 후 좀 더 멍해진 영서였지만, 그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무튼지 간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을 뻔했다가 다시 얻은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영서는 아까부터 차 위에 거꾸로 매달려 실실 웃으며 차 안을 들여다보는 ‘저것’을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자신이 눈을 떼면 금방이라도 차 안으로 저 갈퀴 같은 손을 뻗어 엄마의 목을 할퀼 것만 같았다. 그것의 눈은 뻥 뚫려 핏물이 질질 흐르고 있었고, 귀밑까지 찢어진 입안은 텅 비어 보였다. 엄마가 영서에게 말을 걸 때마다 이죽이죽 웃으며 다 뭉개진 잇몸을 드러내고는 고개를 좌우로 마구 꺾어댔다. 어찌한다, 이 상황을? 검게 그을린 뼈대투성이의 몸은 거미처럼 사지가 쫙 벌어져 영서 가족의 자동차 위에서 쿵쿵대고 있었다. 물론 엄마와 아빠에게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