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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퇴마비록-4화 (4/166)

4화

자, 이제 저 녀석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영서는 평소처럼 심드렁한 얼굴로, 턱을 괴고 입을 가린 채 창에 매달린 그것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쳐다보는데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몸을 들썩거리는 것이, 자기도 여간 보통내기는 아니라 이건가. 미미하게 이맛살을 찌푸리는 영서의 몸에서 무거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보, 정말 이사 가는 게 좋을까? 이사 가면 당신 회사랑 많이 멀어지는데.”

“아, 그게 대수야 지금? 보살님이 그 동네의 그 학교로 콕 찝어서 가라고 하는데 어떡해? 우리 영서 살리는 게 먼저지, 지금 회사가 문제야?”

그것도 그렇지만… 영서의 아빠는 마지못해 입을 닫았다. 영서의 엄마는 영서가 퇴원하기 며칠

전, 영서의 외할머니를 따라 용하다는 무당집을 다녀왔다. 용하다는 소문답게 무당은 영서의

엄마가 자리에 앉기도 전부터 눈을 시퍼렇게 뜨고는 대놓고 혀를 찼다.

“아들내미 잡아먹을 년이 들어오긴 어딜 들어와!”

“뭐라구요?”

“너나 네 남편 놈이나 아주 똑같아. 팔자에도 없는 자식새끼 하나 얻어 보겠다고 욕심을 부리니까 지금 이런 사달이 난 거 아냐?”

“아줌마 말 다 했어요?!”

성질이 다혈질인 영서의 엄마는 외할머니의 만류에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씩씩대며 무당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얼굴에 허옇게 분칠을 하고 빨갛게 입술을 바른, 보통 사람들은 기에 눌려 찍소리도 못할 만큼 무시무시한 인상의 무당은 눈 하나 깜짝도 하지 않았다.

“너희 부부는 팔자가 그래. 자식 없이 그냥 둘이서 잘 지내며 살면 될 것을, 아이고, 쯧쯧쯔. 박복하다, 박복해.”

이 아줌마가 미쳤나? 영서의 엄마는 어이가 없어 소리를 치려다 말고, 갑자기 누군가 뒷목을 잡고 꾸욱 누르는 기분에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 손길을 느끼자마자 이상하게도 치솟던 화가 사르르 가라앉으며 자리에 가만히 무릎을 꿇고 앉게 된 것이다. 정말 이상하지만, 눈앞의 무당의 말이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그쪽 조상이 덕을 많이 쌓았네그려. 어떻게들 힘닿는 대로 도와주셨네. 아들 이름에 꽃이 들어가나?”

“아, 네…”

영서의 이름은 꽃부리 영 자를 쓰고 있었다. 영서를 가졌을 때, 문득 꿈속에서 떠오른 이름으로 지은 것이었다. 복사꽃이 화사하게 핀 정원을 거닐며 산책하던 꿈은, 영서가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기묘하고 생생한 꿈이었다. 그 순간 코끝에서 진한 복사꽃 향기가 스쳐간 것도 같았다. 이상하네. 왜 우리 영서가… 복숭아밭에 있는 모습이 보이는 건지. 영서는 처음 보는 교복을 입고 있었고,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복숭아나무 사이를 지나며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었다. 잠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백일몽에 영서의 엄마는 기이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왠지 그 뒷모습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 같아서… 대체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멍해진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던 무당이 눈을 가늘게 떴다.

“사주에 살이란 살은 다 끼어 있었어. 스물이 되기도 전에 죽을 팔자였지. 애초에 처음부터 그릇이 잘못된 아이야. 그런데 참말로 이상하다, 이상해. 다 죽은 애가 살아나더니 갑자기 팔자가 뒤엉켜 버려서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네.”

무당은 가부좌를 튼 무릎을 세워 앉곤, 옆에 놓인 작은 단지에서 쌀을 한 움큼 꺼내 작은 소반 위에 탁 뿌렸다. 가만히 그걸 지켜보던 영서의 엄마의 마음은 이상하게 불안하지도, 화가 나지도 않고 그저 차분하고 고요했다. 그 순간만큼은 눈앞에 앉은 작은 노파가 무당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기묘한 무언가 같았다.

“아들 앞길이 보이질 않아. 이미 죽을 팔자여서 그대로 끊긴 거였으면 잡귀들 노리개로 시름시름 앓다가 병사했을 텐데. 아니면…”

무당은 날카로운 눈으로 영서의 엄마와 외할머니를 번갈아 보았다.

“…나도 제대로 알 수 없을 정도로, 자네 아들은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걸 수도 있겠구만.”

잠시 뒤, 영서의 엄마는 홀린 듯한 얼굴로 작은 쪽지를 쥔 채 무당 집을 나섰다. 손안에 든 종이를 펴보자, 휘갈긴 글씨체로 글자가 적혀있었다.

‘xx시 xx동 남중고등학교’

‘이건 명심해. 나는 이미 자네의 아들을 보살필만한 그릇이 못돼. 다만 여기에 적힌 곳으로 가야 아들이 살아. 지금 당장은 멀쩡해 보여도 곧 안에서부터 썩어갈 거야. 이곳으로 아들을 보내게. 그리고 아들이 무사하길 그저 바라는 수밖엔 없어.’

‘여기는 학교잖아요. 여기로 전학을 가라는 건가요?’

‘그래. 전학이든 뭐든, 최대한 그 근처로 가. 가면 자네 아들이 저절로 자기 팔자를 잡을 걸세. 자네들은 그 애를 믿기만 하면 돼. 확답은 주지 못하겠지만, 아무튼… 나도 행운을 빌겠네.’

무당의 당부가 아직도 귓가를 맴도는 듯했다. 남중고등학교라고 했지… 마침 그 동네는 영서가 다니던 병원이 있는 곳이었다. 어차피 병원도 주치의가 있는 곳으로 다니는 것이 좋을 테고, 학교도 그리로 전학을 가면… 영서의 엄마는 억지로 웃으며 핸들을 부드럽게 돌렸다. 누가 와도, 우리 아들은 못 데려가지. 그게 귀신이든 저승사자든. 절대로.

“…엄마.”

“응?”

“혹시 그 무당집에서 뭐 갖고 나온 거 있어요?”

뒷자리에서 들려온 난데없는 물음에 영서의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잘 생각해 봐요. 뭐 갖고 나오거나, 아니면 뭔가 건드렸다거나.”

“음…아, 사실 그 무당집 입구에 되게 특이한 불상이 있었거든?”

불상인지 무슨 상인 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영서의 엄마는 무당에게서 쪽지를 받고 나와 멍한 얼굴로 신발을 신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신발을 놓는 댓돌과 그 마루의 안쪽에, 뭔가가 삐죽 나와 있었다. 나무로 조각한 낡은 불상이었는데, 머리 부분이 없었다. 쓰러져 있는 그 목상이 어딘가 안쓰러워 그녀는 별생각 없이 목상을 집어 들고는, 먼지를 툭툭 털어 마루 위에 올려놓고 나온 것이다. 엄마의 대답에 영서의 인상이 팍 찌그러졌다. 이제야 앞뒤가 맞네.

“진짜 귀찮게 됐네…”

“응? 뭐라고 했니, 아들?”

“아니에요. 그것보다, 그런 곳 굳이 갈 필요 없다니까요. 할머니도 유난이셔, 참.”

“왜, 그래도 되게 용하시던데.”

“그런 곳 가봤자 이상한 것만 붙여온다구요.”

예를 들면 저런 거.

창밖에 거꾸로 매달린 얼굴이 반쯤 잘린 채 대롱대롱 흔들리며 웃고 있었다. 이젠 아예 엄마가 앉은 운전석 창문에 그 얼굴을 뭉개질 정도로 바짝 붙인 채, 입에서는 썩은 구더기들이 툭 툭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영서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퇴원할 당시 저승 차사라던 그 남자가 일러준 충고가 떠올랐다.

보아하니, 그 불상에 봉인되어 있던 저놈이 엄마의 손을 타고 깨어나 들러붙은 모양이었다. 신발이 밟는 댓돌 안쪽에 있었다는 건 아마 그 무당이란 사람이 일부러 기를 눌러놓으려고 사람들이 밟는 자리에 둔 거겠지. 마침 그 불상의 목이 깨져, 그때 방문한 엄마에게 접근한 거고. 엄마의 기는 영서가 그동안 본 사람 중 제일 센 편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어지간한 잡귀는 그 기에 눌려 엄마를 피해 갈 정도인데, 이렇게 들러붙어 오다니. 이놈도 보통은 아니군.

자신을 본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이상하게 그놈의 찢어진 입이 더 찢어지는 것 같았다. 웃고 있는 건가?

“엄마, 창문 좀 열어도 되죠?”

“그럼, 그럼.”

영서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창문을 반쯤 내렸다. 그와 동시에 열린 창문 틈으로 갈퀴같이 갈라진 손가락들이 재빠르게 기어들어왔다.

“어딜 덤비려고.”

감히 우리 엄마를 노려? 잇새로 작게 내뱉은 영서가 팔을 뻗어 반쯤 덜렁거리던 얼굴의 목을 콱, 쥐었다. 남들의 눈에는 단순히 허공을 쥔 것으로 보일 것이지만.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닿은 것을 느낀 그것의 기운이 잠시 주춤하는 것이 느껴졌다. 창문을 열고 보니 퍼지는 귀기가 더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영서는 싸늘한 눈으로 그것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목을 틀어쥔 손아귀에 힘을 더 주면서, 자신의 기운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그것의 찢어진 입이 대번에 쫙 벌어지며 귀가 멍멍할 정도로 지독한 비명을 질러 댔다. 손안이 뜨끈하게 달아올랐지만 손에 쥔 힘을 풀지 않았다.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힘껏 목을 졸랐다.

그 순간 손안에서 팍, 하는 느낌과 함께 덜렁거리던 얼굴이 파스스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 가루마저도 이내 날아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 몰라 창밖으로 고개를 뻗어 뒤를 돌아보았다. 차창에 더러운 점토같이 말라붙어 있던 불쾌한 기운들을 손으로 문질러 떼어버렸다. 으… 징그러워. 더러운 기분에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털어내자, 영서의 아빠가 뒤를 돌아보며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영서야, 달리는 차 안에서 얼굴을 내밀면 위험하잖아!”

“네, 네.”

영서는 가뿐해진 마음으로 손을 탁탁 털어내 버리곤 창을 다시 올렸다. 주르륵 올라가는 차창 너머로 그제야 맑은 햇살이 비쳐들어, 영서는 부신 눈을 감고는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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