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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퇴마비록-5화 (5/166)

5화

영서는 한쪽 눈을 감고 정확히 조준을 하려 애썼다.

쭉 뻗은 오른팔의 끝에는 유아용 새총 장난감이 들려 있었다. 길게 늘어난 고무줄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했다.

“야, 사기꾼. 너 진짜 무당 맞지?”

“무당 같은 거 아니래도.”

“흐응, 뭐, 나야 상관없지.”

순간, 영서의 어깨 뒤로 숨은 여자아이가 순간 어깨를 움츠렸다. 아마, 그들의 눈앞에 둥둥 떠다니는 ‘저것’때문이리라.

영서가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과 힘의 정도에 대해 깨달은 직후, 영서의 엄마는 영서를 위해 전학 수속을 밟았다. 남중고등학교. 그 수상한 무당 할머니가 영서를 보내라 일러준 곳. 엄마는 정말로 내가 이 학교를 다니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영서의 심경도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원래도 무덤덤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나날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사고도 모자라, 갑자기 귀신을 보는 능력과 더불어 재수 없는 저승사자가 알짱거리고, 게다가 짐작도 가지 않을 만큼 괴상하고도 어마 무시한 능력이 생겨버렸다.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런 기운.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영서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묘한 감정의 기류들과 세상의 흐름, 또는 흐릿한 흔적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예전과 달리 두통이 잦아진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쉴 새 없이 귓가에 흘러들어오는 속삭임과 웅웅거리는 말소리, 울음소리, 웃음소리, 또는 말로 형상화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르고 이상한 말소리들.

수십 년은 족히 묵어 보이는, 살기가 진동할 정도로 괴기스러운 악귀나 터주신 정도는 영서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영서에게 주어진 능력은 큰 것이었다.

그러나 항상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 했던가.

영서는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막말로 이런 걸 가르쳐주는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영서는 자꾸만 튀어나가는 기운을 억지로 갈무리하며 답답하게 막히는 속을 풀어내야만 했다. 그나마 조언 같지도 않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저승사자 놈은 최근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먹으로 그린 듯한 그 허여멀건 얼굴을 떠올리며 영서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꼭 필요할 때만 없단 말이지, 그 사람.

영서는 밤마다 자신의 침대 머리맡에서 우는 여자 귀신을 달랠 수도 없었고, 아침마다 자신의 집 현관 옆에 얼굴을 붙이고 서서 검은 자밖에 보이지 않는 눈으로 자신을 골똘하게 쳐다보는 아저씨 귀신을 조용히 쫒아 낼 수도 없었다.

영서는 자신의 힘을 쓰면 그들을 괴롭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은 악령의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아, 차마 자신이 멋대로 성불시킬 수도 없었다.

저승사자가 말하던 무력을 써야 할 경우가 언제인지는 대충 알 것 같은데, 퇴원하던 날 말고는 영서가 자신의 무력을 써야 할 것 같은 경우는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소란하고 시끄러운 것들이 늘어 예민해졌으면 예민해졌지. 원치도 않은 능력에 영서는 옛날처럼 조용하고 지루한 일상을 그리워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영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기꾼이라고 하지 말랬지, 내 이름은 권영서라고.”

“네 이름이 알 게 뭐야? 빨리 약속한 거나 해결해 줘!”

여자아이는 약간 기가 죽어 보였지만, 그럼에도 당당한 태도로 영서의 뒤에 숨어 빼꼼하게 얼굴만 내밀고 있었다. 곧 죽어도 자기의 이름은 말하지 않는구나. 영서는 살짝 아쉽다고 느끼면서 팽팽하게 당기던 새총의 시위를 놓았다.

핑-

공기를 가르며 날아간 조약돌이 옥상 난간을 넘어서까지 날아갔다. 그러나 허공의 어딘가에 부딪히기라도 한 건지 툭 튕겨져 나와 바닥으로 추락해버린다. 누군가가 봤으면 바람이 세서 돌이 떨어진 걸까, 하고 생각했겠지만, 영서와 여자아이는 안색이 파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쉬이익…쉬….휘익….

운동장의 가운데 정도의 위치, 옥상 정도의 높이의 허공에 떠 있던 족히 2미터는 되어 보이는 둥둥 뜬 거대한 얼굴의 입이 반쯤 열리더니, 이상한 바람 소리를 내며 쉭쉭 거리기 시작했다. 얼굴은 마치 밀가루 반죽을 한데 뭉쳐 둥글게 빚어놓은 찐빵처럼 둥글고 희며, 머리에는 긴 머리칼이 가닥 가닥 드물게 달려있었다. 이목구비는 뒤룩뒤룩 찐 얼굴살에 묻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저쯤에 눈과 코가 있고, 저기에 입이 있구나, 정도의 짐작만 가능할 뿐이었다. 얼굴은 영서가 전학을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날부터 생겨났다.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아 그저 지나친 게 화근이었다. 처음의 얼굴은 분명 저만큼 크지 않았다. 이목구비도 보일 정도로, 얼굴의 살은 거의 없었고 그저 흐릿한 인상의 멍한 얼굴이었다는 것만 기억이 났다. 영서도 어쨌거나 잡귀에 일일이 관심을 주는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바로 어제, 하교하는 영서의 앞에 이 여자아이가 나타난 것이다.

신발을 꺼내 신느라 자세를 구부리고 있던 영서의 눈앞에 나타난 여자아이의 운동화는 아무런 먼지 없이 흰색이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흰 운동화와 가는 발목, 마른 다리와 감색의 교복 치마에 영서는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했다. 새침하게 생긴 단발의 키 작은 여자아이였다.

“네가 그 전학생이지?”

또랑또랑한 말소리를 들으면서, 영서는 단박에 이 애는 귀신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왜냐면 남중고등학교는 햇수로 3년 전, 여고에서 남고로 바뀐 학교였기 때문이다.

***

영서는 주변을 둘러보며 생소한 옷차림의 여자아이를 내려다보았다. 혹시 혼자 말하는 걸 들키면 이상한 전학생으로 찍힐 수도 있으니까.

“나한테 볼 일 있어?”

“너, 귀신 보는 거 맞구나? 그리고 기운도 엄청 세다던데, 정말이야?”

“그런 건 어디서 들은 거야… 귀찮게 할 생각이면 꺼져. 나 바빠.”

“자, 잠깐만! 부탁이 있어서 그래!”

학원 시간을 확인하며 그냥 지나치려는 영서를 다급히 부른 여자아이가,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부탁?”

“…그래, 부탁.”

“내가 왜 귀신의 부탁 따윌 들어줘야 하지?”

여자아이의 표정이 조금 샐쭉해졌다. 그러나 그 얼굴에 어린 조급함에 영서는 마음이 조금 약해져버렸다. 말이나 한 번 들어볼까. 그냥, 듣기만 하는 거다.

“너, 일직차사랑 아는 사이지?”

일직…차사?

“그게 누군데.”

“그 덩치 크고 얼굴 하얗고, 눈 째진 저승사자 놈 말이야!”

확실히 영서가 아는 저승사자는 한 명밖에 없긴 했다. 그 사람… 일직차사였구나. 영서는 그 이름을 되새긴 순간, 머릿속이 욱신하게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왜지? 갑자기 왜…

“그놈이 알려주지 않은 정보가 있어, 나한테. 어때? 너, 그 교통사고에서 죽었다가 살아난 애라며?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나도 네가 궁금해할 만 한 정보를 알려줄게.”

영서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려 여자아이를 쳐다보았다.

“네가 왜 죽었는지, 그리고 어쩌다 그런 능력을 갖게 된 건지. 그리고 네가 기억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내가 아는 만큼 전부. 알려줄게.”

영서는 매섭게 노려보았다.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살기는 노을 진 교문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넘실대며 빠져나가 운동장까지 집어삼킬 기세였다. 여자아이는 숨이 막힌 듯 제 목을 쥐며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한낱 잡귀의 말을 어떻게 믿지? 네가 어떻게 그런 것들을 다 안다는 거야?”

“큭…윽…. 진, 짜야…”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넘어갈 듯 꺽꺽대더니, 손끝과 머리카락 끝부분이 부서질 듯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아차, 싶었던 영서가 저도 모르게 터뜨렸던 살기를 갈무리하며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여자아이는 털썩 주저앉아 숨을 고르며 어깨를 떨었다. 왜 갑자기 화가 난 걸까.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영서의 의지가 아니라, 반사적으로 영서의 안에 있는 무언가가 화火의 문을 열어버린 것처럼.

그나저나 보통 이 정도의 살기를 직접적으로 맞으면 약한 잡귀는 자연 소멸하거나, 아니면 줄행랑을 치기에 바쁜데. 영서는 좀 놀라웠다. 대체 어떤 열망과 한이 이 애를 이승에 이토록 분명하게 붙잡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미안한 마음 반, 궁금한 마음 반으로 영서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음 날 영서는, 여자아이의 성화에 이끌려 황금 같은 점심시간에 옥상에 올라와 이런 짓을 하게 된 것이다.

“으악, 징그러워! 쟤 눈 뜬 거 아냐?!”

귀가 시끄러울 정도로 법석을 떠는 여자아이와 허공에 뜬 얼굴을 번갈아 본 영서는, 해탈한 얼굴로 다신 잡귀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미친……쟤 입도 벌린 거야, 지금?”

“이상하다, 기운이 조금 달라졌어. 분명 아까까진 그냥…”

여자아이는 칠색 팔색을 하며 영서의 팔을 잡았다. 잡힌 팔에는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저 그 애의 기운이 닿았음을 알 수는 있었다. 이렇게 아무 도움도 안 될 거면 차라리 두고 올 걸 그랬다며 몰래 후회한 영서는, 주머니에서 다시 조약돌을 하나 꺼내 주먹을 꾹 쥐고 기운을 불어넣었다. 다시 새총의 시위를 당기면서, 과연 이런 돌 쪼가리로 저 거대한-심지어 가만 보니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얼굴을 잡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저 얼굴은 공중에 둥둥 떠다니기만 할 뿐, 지상 가까이로는 절대 내려오지 않았다. 내가 새도 아니고, 귀신은 잡아도 날 수는 없다고!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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