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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퇴마비록-18화 (18/166)

18화

끽…끽끽…. 끼익…. 끽끽….

그것은 미친 듯이 어깨와 등을 뒤틀더니, 이젠 끽끽거리는 소리를 내며 양 팔을 천천히 허공에 들어 올렸다. 해강에게도 저 소리가 들리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들렸다면 지금쯤 저 소름 끼치는 괴성에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저대로 선 채로 기절했거나.

끼익…. 끽끽끽…. 끽….

양 팔을 치켜든 그것의 소매는 꽤 길었다. 마치 부채춤을 출 때 무용수들이 입는 흰 한복과도 같은 모양이었다. 그것의 고개도 좌우로 이상하게 기우뚱대기 시작했다.

끽끽끽끽끽끽끽끽끽끽끽끽끽끽끽끽끽끽끽끽!!!!!!!!!

마치 즐거운 비명이라도 지르듯, 그것의 괴성은 더욱 커지고 요란해졌고 그와 동시에 그것은 양 팔을 덩실덩실 휘저으며 묘 주변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묘로부터 몇 미터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영서는 그 괴이한 장면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것 같이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더욱더 즐겁다는 듯 양 팔을 휘둘러대며 머리까지 흔들어댔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것이 춤을 추면서 자신에게 가까워져 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자신들과 묘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신나서 아주 널을 뛰는군. 그래서, 방법은 제대로 준비해온 건가?

“일단 저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거든요?!”

영서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한 뒤 그것에게서 눈을 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제단 위에 놓였던 작은 목각 인형이 그것이 뛰는 진동에 밀린 건지, 잔디밭으로 툭 떨어졌다.

“몸을 드리겠습니다. 산 자의 몸을 드리겠습니다. 산 자의 피와 살을 드리겠습니다. 몸을 드리겠습니다. 산 자의 몸을 드리겠습니다….”

영서는 할머니가 일러준 대로 낮게 읊조렸다. 주문을 외듯 말에 무게를 실어 중얼중얼 계속 외었다. 영서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는지, 한참 묘를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던 그것은 춤을 멈추더니, 끼릭대는 소리를 내며 주춤 주춤 걸어 제단의 앞으로 다가갔다. 긴 머리칼로 가려진 얼굴 부분은 마치 불에 지진 듯 검게 타들어가 있었다. 죽은 자들의 수의와 같이 생긴 흰 소복을 입은 그것의 찢어진 입에서는, 쉴 새 없이 끼리릭대는 소리와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꿈에라도 들릴까 무서운 소리였다.

-호오… 영물도 꽤나 괜찮은 물건으로 준비했잖아?

“몸을… 드리겠습니다. 산 자의 몸을 드리겠습니다. 산 자의…”

영서가 멈추지 않고 주문을 외자 그것이 제단 밑에 떨어진 목각 인형을 집어 들었다. 소매 끝으로 슬쩍 나온 팔이 검게 타들어간 나뭇가지 같았다. 인형을 집어 든 그것은 정말 기쁘다는 듯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영서는 순간 귀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피하면 안 되지. 친구를 구한다며?

“으…윽…”

이명이 심해졌다. 영서의 머릿속에 그 망할 끼릭대는 소리가 뇌를 갉아먹듯 계속 커지고 있었다. 두통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신 차려, 권영서. 정신 차려!

“산 자의 몸을 드리겠습니다!”

영서가 마지막으로 힘을 담아 외치자, 그것의 형태가 흐물흐물 허물어지더니 주변을 감싼 안개와 함께 목각 인형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해강의 피를 묻혀 바친 목각 인형을 해강의 몸이라고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영서는 숨을 죽이고 서서히 기운이 꺼지길 기다렸다.

성공…인가?

-그런데 물건이 영, 낡은 게 심상치가 않다? 어디서 출처도 모르는 물건 갖고 온 거 아냐?

남자가 제 손가락을 쳐다보며 넌지시 던진 말에, 영서는 갑작스러운 오한에 어깨를 떨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해강이 갑자기 고개를 도리도리 내젓기 시작했다. 절대 말을 하지 말라고 해서인지, 뭐라고 말소리도 내지 못하고 해강은 겁에 질린 듯 계속 고개를 내저었다. 벌어진 집에서는 금방이라도 신음 소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런 해강의 모습에 영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성공했을 텐데…! 방금 그 인형 안으로 봉인되는 것을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영서는 뛰듯이 걸어 묘 앞에 떨어진 목각 인형을 주우려 했다. 묘 앞에 다다른 찰나, 갑자기 목각 인형이 미친 듯이 진동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뭐 이런 말 못 들어봤어?

“이잇…!”

목각 인형의 눈이 빨개지고 있었다. 분명 착각이 아니었다. 영서의 눈에는 목각 인형이 마치, 풍선으로 부풀린 인형처럼 뒤죽박죽 부풀어 커지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사라졌다고 느낀 귀기가 다시 인형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서 이걸 봉인해야만 해, 어서…!

영서는 그 순간, 할머니가 당부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래, 일단 해 보는 거야.

이판사판이니까.

목각 인형에 빙의된 그것이 다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는 순간, 인형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빨갛게 빛나더니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겁에 질린 듯 고개를 내젓던 해강은 입술을 깨물며 양 귀를 손으로 막고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영서는 가빠 오는 숨을 애써 진정시키며 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냈다.

‘이게 아마 필요할 게다.’

‘이건…부적?’

‘그래. 그냥 종이 쪼가리라고 무시하지 마렴. 그저 종이 한 장일지라도 어떤 사람이 쓰느냐에 따라 다른 효과를 내는 게 바로 부적이다.’

‘하지만 이번 악령은 부적 정도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부적이 무기가 아니다, 영서야.’

영서는 그 순간, 고모할머니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주름진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살짝 토닥여주던 그 손. 그 손이 닿자마자 형용할 수없이 따스한 기운이 가득 들어차던 그 감각.

‘부적은 단순한 매개. 힘을 담을 그릇이다. 그릇이 뭐가 되든지 상관은 없다. 영서야, 바로 네가 그 무기인 거다.’

‘제가요…?’

‘귀왕님께서도 무슨 꿍꿍이 신지, 나는 평생을 다 해도 그분의 뜻을 발톱만큼도 이해할 수가 없구나.’

초연한 얼굴의 노인이 뒷짐을 지고 등을 돌려 제단 앞에 향을 피우던 모습을 기억했다. 그 작고 옹송그린 등과 어깨에는, 보통의 어중이떠중이 무당들은 범접치도 못할 신령의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영서의 눈에는, 그것이 보였다.

“으…으으…”

갑작스럽게 해강의 입에서 희미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목각 인형은 거의 땅바닥에서 덜그럭거리다 못해 둥실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주해강, 조금만 기다려!!!”

영서는 단숨에 해강과 인형의 사이로 달려들어 인형을 낚아챘다. 손안에 인형을 쥐자마자 아까 만졌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귀기가 넘쳐흐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의 손바닥이 타들어갈 것 같은 자극이었다. 그러나 영서는 이를 악물고 인형을 꾹 쥔 채 땅바닥에 양 무릎을 꿇고 한 손으로 인형을 땅에 힘껏 내리쳤다. 덜그럭거리며 손안에서 미친 듯이 흔들리던 인형이 그 김에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그렇게 산 자의 몸이 갖고 싶거든, 재판을 받고 새로운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라!!”

인형을 땅에 내리친 순간, 영서의 몸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낯선 목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영서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었다. 심지어 목소리도 어딘가 기괴하게 낮고 걸걸한 음성이었다. 벼락이 치듯 큰 소리가 터져 나와 영서는 물론 영서의 주변을 감싼 공기, 풀, 땅, 해강마저도 그 기세에 질려 숨을 죽였다. 단 한 명, 일직차사만이 눈이 동그래진 채 팔짱을 끼고 서서 영서를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으윽…!!…큭…. 으아아아악!!!”

손안이, 손 전체가 모두 화로에 손이라도 넣은 것처럼 불타는 것 같았다. 아파, 진짜로 아파…! 하지만 영서는 어금니를 깨질 듯이 악물고 오른손으로 주머니에서 부적 꾸러미를 꺼내 미친 듯이 인형을 부적으로 감싸기 시작했다. 부적 한 장, 한 장이 덧대어질수록 인형의 움직임이 조금씩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영서는 자신의 손안에서 뭔가 타는 듯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제 와서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모든 정신을 집중시켜야 했다.

“으아아아아!!!”

기합이라도 넣듯, 아니 무언가 악이라도 쓰듯이 영서는 소리를 지르며, 부적으로 싼 인형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영력을 몰아넣었다. 지난번 학교에서 얼굴을 없앴을 때보다 열 배, 아니 수십 배는 될 만큼 힘을 짜내어 부적 속에 힘을 실었다.

치직- 치이익- 치익-

펑!!!

콰광------!!!

-권영서!!

불꽃이라도 튈 만큼, 손에 쥔 것에 온 힘을 집중하던 것이 한계점에 다다랐는지 인형은 폭발했다. 아니, 그와 동시에 불타 전소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터. 폭발을 몸으로 고스란히 맞은 영서의 모습이 번쩍, 하는 불빛과 함께 빛났다가 뿜어져 나온 연기에 가려 사라졌다. 당황한 일직차사가 영서의 이름을 외치자, 그와 동시에 해강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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