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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퇴마비록-35화 (35/166)

35화

주희의 병실은 6인실이었고, 복도 제일 안쪽에 위치한 병실이었다. 버릇처럼 병실 문 앞에 걸린 이름을 하나하나 눈으로 읽어보며 복도를 천천히 걷던 주민의 시야에, 복도 끝에서부터 급하게 드나들며 무어라 외치는 간호사들이 보였다. 아까 그 간호사도 병실에 들어가며 다른 간호사의 팔을 잡고 급하게 뭔가를 말하는 듯했다. 주민은 천천히,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서, 막연히 누나가 있는 병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보다, 하며 어린 생각을 하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 ‘무슨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통 병원에서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되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10살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것이었으니까. 이상하게 발걸음이 갈수록 무거웠다. 가까워질수록 어른들의 시끄러운 목소리들은 더욱 분명해졌고, 병실 안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점차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자꾸만 흘러내리는 가방을 다시 어깨로 들쳐 메고, 입을 꾹 다문 채 주민은 병실의 앞에 섰다.

…하지만.

주민은 병실 문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서서, 더 이상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주희야, 주희야! 정신 차려 봐, 선생님 보이지?! 응?!”

“아아아아아악!!!”

“여기 애 좀 잡아줘요! 박 간, 가서 안정제 준비해!”

“주희야, 괜찮아, 괜찮아. 여기 보자, 응?”

“흐아아아아아앙- 엄마아아아-”

“빨리! 김 선생한테 연락 넣었어?!”

“지금 당직실에서 오고 계십니다!”

다급한 의사와 간호사들,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이리저리 연락을 넣고 뭔가를 끌고 오는 어른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어른들 사이에서, 주희는 울고 있었다.

울면서 마구 몸부림치고 있었다.

주민은, 누나가 그렇게 우는 모습을,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그렇게 아파하고, 소리 지르고, 자신의 몸을 누르며 진정시키는 어른들의 팔을 마구 할퀴고, 울면서 목이 터져라 엄마를 부르는 주희의 모습을, 주민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자신이 평소보다 늦게 온 것이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더 일찍 온 게 잘못이었을까?

누나는 얼마나, 몇 번을 저렇게 아파한 거지? 대체 언제부터? 어제도 아팠을까? 저렇게 정신도 못 차리고 울면서, 갓난아기같이 소리 지르고 손을 내저으면서 목이 쉬도록 울었을까?

주민은 병실 너머의 누나를 제대로 볼 자신이 없었다. 한 발짝만 더 들어가면 병실인데, 누나가 있는… 어제도, 그전 날에도 거의 매일 찾아와 누나와 놀던 병실인데.

주민은 무서웠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나오지도 않을 만큼 무서웠다.

주민은 아마 무의식중에 그때부터 받아들이고 있었던 지도 몰랐다.

주희의 병이 낫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그리고 그 병은, 점차 주희를 갉아먹으며 계속, 계속해서 주희를 괴롭게 할 것이란 사실을.

그리고 언젠가…

누나가 자신의 손을 더 이상 잡아주지 못할 때가 올 것이란 것을.

***

남자의 발길이 내려선 곳은 바로 501호였다.

정확히는 501호 안, 주희와 주희의 침대 앞에 엎드리듯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주민의 앞이었다.

남자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귀를 후비며 남매를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 나 참… 일직차사 많이 죽었네. 이런 것도 바로 눈치채지 못하고 뺑이나 치고 말이지. 누가 알았겠는가, 당연히 귀신이나 병원에 매인 지박령의 소행이라 지레 짐작하고 애먼 귀신들이나 노려보고 있었는데 말이지.

아직 살아있는 인간의 혼이 벌인 짓이라니.

뭐, 물론 병원에 매인 지박령이라면 령일 수도 있겠다 싶어, 남자는 한숨을 쉬며 침대로 가까이 다가갔다. 어찌 된 연유인지 확인이나 해봐야겠군. 그리고 영혼이 이미 변질되었다면 문답무용, 강제로라도 성불시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마 이 사태를 벌인 장본인은… 누워있는 저쪽이겠군. 이름은 이미 병실 앞에 쓰인 이름표를 봐 두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천천히 손을 빼며, 손가락을 가볍게 튕겨 자신의 명부名簿를 꺼냈다. 중력을 무시하는 움직임을 가진 반투명한 책의 낱장이 남자의 긴 손가락을 따라 가볍게 흩날렸다. 사르륵 넘어가던 낱장이 어딘가에서 멈추고, 남자가 누워있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한 번 훑으며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차사님!!!!! 영서 찾았어요!!!!!!’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다급한 혜리의 외침에, 남자는 동작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귀청 떨어지겠다, 짜식아! 아무튼, 영서를 찾았나?

‘네! 그런데… 영서를 찾기는 찾았는데…’

-찾았는데? 뭐?

‘영서가… 쓰러져 있어요. 분명 아까까진 서 있었는데, 영서를 부르는 순간에 갑자기 그대로 고꾸라져서는… 그리고 눈을 못 떠요. 어떡하죠?’

남자의 미간이 깊어졌다. 분명 꿈속에서는 영서가 깨어있는 것이 타당했다. 혜리도 멀리서나마 그가 서 있던 것을 봤다고 하고… 이 자식, 끝까지 영서를 빼돌리려고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는 건가? 지금 당장이라도…

‘그런데, 여기 영서 말고… 누가 또 있어요.’

-…뭐?

‘어린 애인 거 같은데… 아닌가? 한 중학생…? 정도의…’

자신 없는 혜리의 목소리는 분명 무언가를 보고 어물어물 짐작하는 듯한 투였다. 남자는 누워 있는 여자아이 쪽으로 뻗으려던 손을 거두고 반걸음 물러났다.

-혹시, 그 녀석 머리가 짧고 병원 복을 입고 있나?

‘네,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아는 여자애인 것 같아서 말이지.

‘네?! 엑, 아, 아니 그보다, 여자애였어?!’

확실히, 누워있는 아이의 모습은 적혀있는 나이와는 맞지 않게 꽤 앳되고 중성적인 생김새였다. 게다가 환자 특유의 파리한 낯빛과 마른 체구, 눈을 감고 있지만 눈을 뜬다고 해도 제 나이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어린 얼굴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이 앞에 엎드려있는 이 남자애는 누구지?

“누나…”

음. 동생인가 보군.

남자는 빠른 수긍을 한 뒤, 별생각 없이 다시 명부를 꺼내 들었다. 어쨌든 간에 눈앞에 누워있는 이놈이 영서를 꿈속으로 끌고 들어간 놈인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 말이다. 그러나 남자가 명부를 여는 순간, 다시 한번 귀를 울리는 혜리의 외침에 손가락을 삐끗하고 말았다.

‘차사님! 갑자기 아무것도 안 보여요!! 으갹!!!!’

뭔가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했는지, 이상한 비명소리와 우당탕- 쿵 하는 소리까지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남자는 이마에 혈관을 세우고 물었다.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찾았다며, 영서.

‘그런데 갑자기 영서가 사라지더니, 아니, 그전에 아무것도 안 보여요! 사방이 캄캄하다구요!’

-그게 무슨…

어이없다는 듯 남자가 되묻는 순간, 눈앞에 엎드려있던 남자아이가 고개를 번쩍 드는 것이 보였다.

“누, 누나.”

-저놈은 또 뭐야, 어엉? 똑같이 생겼네? 쌍둥이냐?

“누나, 누나! 바, 방금… 움직였어?”

주민은 믿을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주민은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주희의 손을 잡고 침대에 울음을 묻고 있었다. 누나와 주민 자신밖에 없는 적막하고 어둑한 병실에서, 주민은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왠지 눈물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누나가 보고 있을 거야. 자꾸 울면 안 돼. 울지 않고 씩씩하게 지내면 누나가 걱정하지 않고 빨리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방금, 주희의 손이, 분명 움직였다.

착각이 아니었다. 자신이 바라 마지않던, 꿈에서나 볼까 싶던 그런 상상도 아니었다.

분명히, 자신이 잡은 주희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까닥이는 것을 주민은 느낄 수 있었다.

“누나! 누나!! 나 주민이야, 누나! 서, 선생님, 선생님 불러올게! 조금만 기다려!”

의자가 쓰러지는 것도 모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주민은, 다급한 몸짓으로 우왕좌왕하다가 병실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자신이 방금 무엇을 통과해 지나쳐간 것인지도 모른 채, 주민이 복도를 뛰어가는 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남자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왠지 일이 귀찮게 꼬이는 기분인데. 지금 당장 이 녀석을 성불시키면 영서의 영혼을 제대로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분명 혜리가 찾아낸 것을 알고 훼방을 놓는 중이겠지. 어차피 꿈속에 숨은 것을 안 이상 녀석은 독 안에 든 쥐다. 게다가 숙주, 아니 몸도 여기 이곳에 얌전히 있고 말이다. 그러나 그림의 떡이라, 눈앞에 찾아낸 모든 사태의 원흉을 이 자리에서 어찌해볼 수도 없는 일. 혜리가 다시 영서를 찾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인가. 남자는 끙, 소리를 내며 창가에 걸터앉았다.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꼬맹이들이란 말이지. 정말. 세상 천지에 이렇게 일직차사를 고생시키는 인간들은 없을 것이다. 남자는 일단 자리를 지키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주민이 떠난 자리에 서서 병실을 지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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