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주민아.”
“네가 우주민, 맞지?”
어색한 적막이 흐르는 병실 속에서, 영서가 입을 열었다. 마치 겁먹어 숨어버린 작은 동물을 찾아내 괜찮다고, 이리 나오라고 손짓하듯, 영서는 그렇게 조용히 물었다. 주민의 시선이 도르륵 굴러 강 선생에서 영서에게 꽂혔다.
“주희랑 똑같이 생겼네. 역시 쌍둥이라 이건가.”
영문 모를 말을 내뱉으며 영서가 씨익 웃자, 강 선생과 간호사들은 혼란스러웠다. 얼른 애를 CT실로 데려가 검사를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하면서도, 강 선생은 어떻게 이 아이가 주희와 주민이 똑같이 생겼다는 걸 알았나 하는 궁금증이 차올랐다. 둘이 쌍둥이라는 것은 이 병실에서 일하는 자신과 몇몇의 담당 간호사들만 알뿐, 다른 직원들은 물론 환자들이 그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이 애는 대체, 뭘까. 듣기로는 몇 개월 전 큰 사고로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몇 차례의 수술 끝에 간신히 살아났다고 했지. 그러나 강 선생은 성격상 자신의 환자가 아닌 다른 중환자실의 가십까지 하나하나 신경 쓸 여력은 없는 사람이었기에, 항상 주희의 상태만 체크할 뿐 영서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게다가 영서의 주치의가 문 선생, 그 남자니까 더더욱…
“…꿈을 꿨어.”
주민이 희미한 목소리가 달싹이는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수척한 얼굴에는 응당 절어있어야 할 슬픔은 이제 바닥난 듯했고,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의 복잡한 찌꺼기들만 남은 것 같았다. 강 선생은 마음이 쪼개지는 것만 같았다.
“누나가… 나왔는데. 한 2년 만인가. 내 꿈에 나온 게… 누나가 나와서, 내 손을 잡고, 이제 다 괜찮다고 했어. 나도 편해지고, 엄마도 편해지고, 누나도 편해질 일만 남았다고. 내가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누나가… 자기는 이젠 친구가 생겨서 괜찮대.”
영서는 똑바르게 주민의 눈을 쳐다보았다. 주민도 힘 없이, 그러나 피하지 않고 영서의 시선을 받아냈다. 영서는 문득, 주희와 주민의 한 가지 다른 점은, 저 미묘한 눈매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게 너구나.”
한숨처럼 내뱉은 말에, 영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민의 입가가, 그제야 조금씩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
어른들을 잠시 물러나게 한 뒤, 해강은 마지막으로 병실 문을 닫고 나가며 영서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 눈길에는 약간의 아쉬움과 걱정, 불안감 내지는 갈증 같은 집요한 느낌도 묻어있었으나, 영서의 등으로 꽂히는 그런 눈길을 주민 말고는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둘만 남은 병실.
설명은 길지 않았다.
길게 더 설명할 것도 없었다. 자신 스스로도 터무니없는 얘기임을 인지하고 전해준 얘기였지만, 영서의 예상보다도 주민은 훨씬 쉽게 납득했다.
“…그런데, 내 얘기를 다 믿어주는구나.”
“…그야 전부, 우리 누나가 할 법한 얘기들이니까.”
의자에 털썩, 소리가 나도록 몸을 앉힌 주민이 마른 세수를 하며 대답했다. 다시 눈물이 나는지 얼굴을 문지르는 손은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얼굴을 가리고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앉은 주민을 내려다보며, 영서는 물었다.
“…내가, 단지 거짓말을 한 걸 수도 있잖아. 네 이름이나, 주희 이름이나…뭐 다른…”
“그렇게 해서 네가 얻는 게 뭔데?”
주민은 담담하게 되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3년 전 당시의 누나는… 나 말고는 친구가 없었어. 병원에 보러 오는 사람을 전부 통틀어서.”
“…”
“누나는 항상 어릴 적부터 나를 먼저 걱정했어. 내가 이가 아프다고 하면 매일같이 내 치아와 양치질을 검사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따뜻한 물하고 약부터 건네고, 공부가 어렵다고 하면 교재를 가져오라고 해서 직접 설명해 주곤 했어. 자기도 똑같이 이가 흔들리고, 매일 코피를 쏟고, 심지어 고등학교는 입학도 취소됐는데.”
주민의 목소리가 점점 가라앉았다. 마른 그의 손가락 사이로 언뜻 눈물이 비친 것도 같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울음에 잠겨 드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영서는 옆을 지켰다.
“널 의심하지는 않아. 그렇지만 죽은 누나와 만났다는 것도, 누나를 보내줬다는 것도, 전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미안.”
“…”
“…누나가 너무 오랫동안 자고 있어서, 나도 이제는… 뭐가 뭔지 모르게 됐나 봐.”
“…주희가, 마지막으로 했던 부탁이 있어.”
주민이 손을 내리고 고개를 들었다. 젖은 눈동자 안에는 슬픔이나 비통, 그 어떤 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텅 비었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영서는 숨을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너랑, 친구가 되어달라고 부탁했어.”
“…나랑?”
“자기랑 친구가 되어줬던 것처럼, 자기의 마지막을 봐준 것처럼…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자기 남동생도 나랑 동갑이라는 거 있지.”
“하…하하, 그야 쌍둥이니까.”
“너에 대해서도… 전부 알려줬어. 자기가 없으면 자기 동생은 친구가 없을 거라고, 또 자기가 죽었다고 매일 울기만 할 텐데, 그 바보 같은 놈 좀 어떻게 해서 같이 지내달라고 말이야.”
“바보라니…”
마지막까지, 정말. 주민은 힘없이 중얼거렸지만, 은연중 누나의 말투를 떠올렸는지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스며있었다. 젖어있던 눈은 어느새 누나에 대한 기억으로 가물가물 차올라, 한껏 눈매가 부드러워져 있었다. 영서는 손을 내밀었다.
“우주민, 우리 친구하자.”
“…”
“난 네 누나를… 그러니까, 주희와 약속을 했어.”
“…그런 약속 때문이라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 무엇보다도 난…”
“아니,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영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둠 속에서 울면서 자신에게 소리쳤던 목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치는 듯했다.
“난 약속을 이미 어겼었어. 그러니까 더욱더, 난 너와 친구가 되어야 해.”
주민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내내 음울한 얼굴만 보다가, 처음으로 동그래진 눈과 벌어진 입을 보니 정말 쌍둥이는 쌍둥이다 싶었다. 주희와 놀란 얼굴이 이렇게까지 똑 닮아있다니. 영서는 씩 웃으며 말했다.
“주희가 그러더라. 나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고, 자기 대신 살아서, 나를 아직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만 한다고. 그리고 겸사겸사 자기를 필요로 했던 사람들까지 챙겨서 같이 지내주면 고맙겠다고. 게다가, 우린 동갑이잖아?”
“…그렇긴 하지만… 난…”
“주희가 그러더라. ‘내 거는 주민이 거, 주민이 거는 내 거!’라고 말이야.”
“네가 그걸 어떻게…!”
“말했잖아, 진짜로 주희하고 만나고 온 거라니까!”
영서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주민은 의아한 얼굴로 그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이내 슬며시 웃어 보였다. 주희의 마지막 웃음과 닮은 그 얼굴을, 영서는 오래도록 눈에 깊이 담았다.
***
“그, 래, 서~~~?”
“…윽…”
“어디 사는 누구누구 씨께서 말이지~ 꿈속에 붙잡혀서 아무것도 못하고 꼼짝! 없이 당하기 직전에, 누가 구해줬었더라아~~~???”
혜리는 한쪽 귀를 영서의 얼굴에 불쑥 들이밀며 물었다. 한껏 장난기와 자랑스러움이 가득한 기세 등등한 얼굴로 혜리는 누구더라? 만 반복하며 영서의 입에 귀를 갖다 대고 있었다.
참자… 네가… 참자, 영서야… 후…
“…엄연히 말하면 네가 구해준 건 아니지 않냐? 아저씨 말로는 어차피 날 놓쳤었다며?”
“뭐, 뭐라고?!?! 아저씨!! 말 안 하기로 했잖아요!!!”
-어차피 너는 빈손으로 빠져나왔잖냐. 영서도 다 아는 사실인데 뭘.
“그거야 아저씨가 얼른 나오라고 했잖아요!!!”
“아무튼! 뭐… 그래도 구하러 와준 건 고맙긴 하다. 비록 놓쳤지만.”
-그래, 놓쳤지만.
“이 인간들이 진짜!”
혜리가 답답해하는 동안, 영서는 그런 혜리를 보고 웃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맞다, 저 내일모레 퇴원해요. 이제 이 지긋지긋한 병원복도 끝이네, 후…”
-그럼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되는군. 할 일이 쌓여있다고, 권영서.
“아니, 이제 깨어난 환자한테 벌써부터 일을 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에엥- 다시 학교 가기 싫은데.”
-그럼 유혜리 넌 여기 병원에 남든가.
“아!!! 싫어요!!”
“하하하, 어, 이건 못 보던 과일이네? 누가 갖다 줬대요?”
“아 맞아! 나, 나 이거 까줘 영서야!”
“잠시만, 과도가…”
여느 때처럼 조용하지만 북적거리는 병실 안에서, 영서는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일만 남은 것이다. 하지만 학교라… 그래, 맞아. 남중 고등학교. 터부터가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나의 새로운 학교. 영서는 문득 과도 날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번에는 살아서 눈을 떴지만… 다음번에도, 그런다는 보장이 있을까. 영서는 주희의 장례식을 치르고 지난 일주일 동안, 부모와 주치의인 문 선생의 성화로 온갖 검사를 했었다. 그러는 동안 주희에 대해 생각했다. 주민에 대해서도. 일주일 동안 어른들은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검사들로 영서의 상태를 낱낱이 체크했고, 역시나 입원하기 전만큼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미심쩍지만 퇴원해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주희의 장례식에는 부모님 몰래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나마 얼굴을 본 주희와 주민의 엄마라는 분은 쌍둥이와 무척 닮아있었다. 쌍둥이가 정말 엄마를 닮았구나 싶어 영서는 기분이 묘해지는 것을 느꼈었다. 길게 머물지 못해 인사만 드리고 절만 올리고 온 주희의 장례식은 조문객이 별로 없어 황량한 느낌이었다. 쌍둥이 엄마의 지인들이나 직장 동료들, 유명 인맥들이 보내온 온갖 장례 화환들이 줄을 이어 복도 끝까지 이어져 있었으나, 그녀는 조문객들의 방문을 최소한으로 부탁했다고 한다. 영서는 절을 한 뒤 영정 사진을 잠시 바라보았다. 영정 사진을 찍지 못했는지, 어릴 때의 주희의 사진인 듯했다. 머리핀을 꽂고 카메라를 보고 활짝 웃고 있는 어린 주희의 모습은, 영서가 봤던 주희와는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았다.
마치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자신을 찍은 이 사진이 훗날 어떻게 쓰일지 전혀 모르는 얼굴로 어린 주희는 그렇게 웃고 있었다.
영서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도망치듯 장례식장을 나와버렸다.
-그건 그렇고, 그 주희라던 놈 장례는 치러주고 온 거냐?
“네, 일주일 전에 여기 병원 부속인 장례식장에서 했다더라고요. 주민이 얼굴만 보고 왔어요. 저도 환자복 입고 들어가기가 좀 그래서…”
-그렇군. 이 짓을 몇 번을 해도, 언제나 어미보다 먼저 죽는 자식 일이라는 게 참… 말로도 못할 일이야.
“…그러게요.”
-….
영서의 작은 대답에 남자는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한숨을 길게 내쉰 남자는 잠시간 침묵을 지키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름은?
“…회수했어요.”
-그래야지.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다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긴 한숨소리가 사라짐과 동시에 남자의 모습도 연기처럼 아른거리며 사라졌다. 영서는 창밖을 멀리 내다보았다. 옆에 선 혜리도 말없이 그런 영서의 시선을 따라갔다.
저 멀리, 하얀 뭉게구름 사이에 작은 무지개가 빛나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