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이번 편은 외전으로, 작중 시간 흐름과 상관없이 어떤 한 여름날의 시점입니다*
남중고등학교에는 최근 한 가지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2층 남자 화장실 네 번째 칸에는 귀신이 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괴이한 소문을 듣고 나선 자가 있었으니…
“뭐어어--??? 내가 왜?”
“그, 그렇지만 영서야, 이건 너 말고 아무도 해결할 사람이 없다구!”
“아니, 그것보다도 너 나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사람을 무슨 무당으로 아는 거야, 뭐야!”
“…아니야?”
“…아니거든!”
전투적인 점심 식사를 10분 만에 해치운 뒤, 남고의 점심시간은 으레 평화로운 축구나 농구, 산책, 또는 낮잠을 자는 학생들로 채워지곤 했다. 영서의 손에도 밥을 먹은 뒤 해강이 매점에서 사준 아이스크림이 들려있었다. 이 자식이 갑자기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 영서는 징징대며 들러붙는 해강을 밀어내며 눈을 흘겼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너, 그거 어디 가서 말한 적 없지?”
“당연하지! 내가 누구한테 말하겠어?”
“혹여나 하는 말이지만 소문내면 가만 안 둬. 자세히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어차피 네가 신경 쓸 만한 일도 아니야. 그냥 학교가 이상하면 내가 알아서 손 닿는 데까지는 할 거니까 넌 그냥 가만히 있으라구.”
영서는 마지막 남은 아이스크림콘의 과자 부분을 바삭바삭 갉아먹으며 말했다. 퉁명스러운 대답에도 불구하고 해강은 눈을 빛내며 영서의 옆에 바싹 다가앉았다.
“그래서 말인데 영서야, 지난번에 날 도와준 것처럼 다시 한번만 도와주면 안 될까? 응? 응??”
“이익…”
“으으으응?????”
그런 대형견 같은 눈으로 울망하게 바라보면 거절할 수가 없잖아!!!
영서는 고민 끝에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좋아. 일단 무슨 일인지 들어나 보고. 나도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건 아니라서, 들어보고 할 수 있는 거면 해결해 줄게.”
“정말???!!! 고마워!!!”
“아!! 안지 마!!!”
골든 리트리버가 헥헥대며 주인을 깔아뭉개듯 영서를 끌어안으려는 해강을 간신히 밀어낸 영서는, 마지막 남은 콘의 꽁다리 부분을 입에 넣고 씹었다. 달달한 초코가 덩어리로 뭉쳐있는 꽁다리 부분은 영서가 어릴 적부터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시작은 한 1학년 남학생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영서와 해강보다 한 학년 밑에 후배로, 잘 모르는 사이긴 하지만 1학년 중 꽤나 훈남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녀석이었다. 모름지기 남자끼리 추켜올려주는 훈남이란 객관적인 미남과는 거리가 먼 법인데, 그 후배는 중학생 때부터 동네에서 알음알음 잘생긴 것으로 입소문을 꽤나 탄 모양이었다. 나름 얌전한 스타일을 고수하는 듯했으나 숨겨지지 않는 날 티와 장난기로 입학하자마자 또래 패거리를 끌고 다니는 녀석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해강과 같은 축구부였다. 남중고의 축구 부는 도 단위 대회는 거뜬히 나갈 정도로 취미 동아리치고는 실력 있는 부였다. 그 부서의 주장인 해강은, 입시 준비로 인원이 거의 빠진 3학년을 대신해 올해 회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1학년이 입학하면서 1학년 부원이 대거 늘어 1학년 부장을 새로 뽑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녀석의 이름은 물론 잡다한 정보까지 어깨너머로 들어 아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한테 지금 할 말이 1학년 후배 놈이 건방지다, 뭐 이런 거 아니지?”
“그럴 리가! 그래도 애는 싹싹하고 괜찮아. 문제는 걔가 아니고, 영서 너도 들은 적 있지? 얼마 전부터 2층 남자 화장실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아- 들었지. 그런데 우리 교실은 3층만 쓰는데, 굳이 2층 화장실을 왜 가냐?”
영서는 귀를 후비며 심드렁하게 물었다. 해강은 진지한 얼굴로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영서는 그 모습이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맞아, 그런데 1학년은 2층 화장실을 쓰잖아. 그 1학년 애가 거기서 귀신을 봤대, 그것도 확실히. 그리고 그 자리에서 기절해서 뒷목을 부딪치는 바람에 목에 깁스를 했대.”
“그래, 그것참 안 됐네.”
“그런데 걔뿐만이 아니래!”
두둥-!
소리라도 날 것 같이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해강을 보며, 영서는 이 자식이 지금 웃기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진지한 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이번 달 들어서 4명이나 봤대. 그것도 2층 화장실 네 번째 칸에서…!”
영서는 눈을 깜박였다.
“…뭐, 뭐라고 할 말 없어, 영서야?”
“…뭐라고…해야 하는 타이밍이야, 내가?”
“그, 그치만! 뭔가 듣는 순간 기가 파박! 하고 왔다거나, 뭔가 알겠다거나! 그런!”
“…너, 천기누설 같은 유튜브 채널 자주 보냐?”
“…어, 어떻게 알았어?”
영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거 얼굴값 못하고 또 은근 허당짓 한다니까.
“얘기만 들었다고 내가 뭘 어떻게 알아?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귀신을 볼 수 없어. 그 자리에서 귀신을 봤다는 애들 뭔가 공통점이라든가 있어? 1학년이고, 그 화장실에 들어간 거 빼고.”
“이, 있어! 네 명 전부, 우리 축구부야!”
아하- 영서는 게슴츠레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해도 별다른 흥미가 생기질 않는걸. 남은 점심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머릿속으로 헤아려보던 영서가 옆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해강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주해강.”
“응?”
“축구부 주장으로서, 여름 맞이 후배들 단체 몸보신 회식이라도 시켜주든가 해라.”
“…영서야!!! 나 진지해, 지금!!!”
“나도 진지해, 임마.”
“그, 그리고 또 다른 공통점!”
영서는 심드렁한 눈으로 해강을 쳐다보았다. 진지한 얼굴의 해강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네 명 전부…”
전부…?
“전부… 잘생겼어!”
……
……….
영서는 일찍 들어가 다음 수업 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저, 정말 이 방법밖에 없어…?”
“먼저 오자고 한 건 너였잖아. 이제 와서 그러면 어쩌자는 거야?”
“난… 나는… 영서 뒤에 딱 붙어서 갈래…”
그러든가. 영서는 한숨을 내쉬며 손전등을 딸깍 켰다. 경비 아저씨가 자주 뒷문을 잠그는 걸 잊어버린다는 것은 남중고 학생이라면 공공연하게 아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영서는 해강의 부탁에 못 이겨ㅡ부탁이라기보다 징징거림에 가까웠지만ㅡ문제의 그 ‘2층 화장실 네 번째 칸의 귀신’을 처리하러 아닌 밤중에 학교를 찾아온 것이다. 보통 영화 같은 거나 괴담 같은 거 보면 꼭 이렇게 무모하게 행동하는 애들이 제일 먼저 죽는다고. 영서는 한숨을 내쉬며 귀찮은 기색을 숨김없이 표했다. 해강은 덩치에 맞지 않게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휙휙 둘러보며 영서의 팔을 붙잡았다.
“애초에 말이야, 그 잘생긴 애들만 노린다는 귀신이라는 게 말이나 되냐? 그냥 너희 축구부 애들이 좀 기가 허했던 거지. 대체 어떻게 그런 사고방식이 나오는지 이해가 안 되네…”
“아냐, 정말이야! 다음은 나일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왜냐면 이제 축구부에 남은 잘생긴 사람이라고는 나뿐인걸.”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걱정스럽고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해강의 얼굴을 영서는 가만히 돌아보았다가, 다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옮겼다.
“어쩌다 이런 놈한테 엮여버려서… 내 팔자야…”
“여, 영서야, 같이 가!”
징징대는 해강을 등 뒤에 매단 채 영서는 가만가만 복도를 걸어 2층으로 이동했다. 마룻바닥은 두 명의 몸무게만큼 끼익대는 소리를 맘껏 내지르고 있었다. 낮에는 훨씬 많은 인원이 뛰어다니거나 걸어 다녀도 이렇게까지 거슬리는 소리는 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영서는 기분 탓이겠거니, 하며 2층 화장실 앞에 멈춰 섰다.
뭐야… 별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데. 아무런 것도 아직까지 안 보이고. 영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화장실이 문을 밀어 열었다. 해강이 작게 숨 삼키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움츠렸다.
손전등의 미미하고 부연 불빛이 동그랗게 어둠을 비추고 있었다. 보자, 네 번째라고 했지. 태연한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 네 번째 칸에 다가가 문을 휙 열었다.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보나 마나 뜬소문일 게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영서의 활동 범위 밖이라고 해도 같은 건물 안에 있는 이상 그 정도 존재감을 내보이는 녀석을 영서가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잘생긴 놈들만 기절시키거나 다치게 만든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영서가 알기로 그 기준에 해당하는 얼굴은 적어도 해강 외에는 없을 것 같았다. 우리 학교에 그 정도로 잘난 놈들은… 으음…. 음….
기억나질 않았다. 보나 마나 자의식 과잉인 놈들이 낸 소문 아니겠나 싶어, 영서는 한심한 마음 반, 안도하는 마음 반으로 한숨을 내쉬고 몸을 돌렸다.
“주해강, 역시 아무것도 없다고. 이제 집에 가자.”
“저…정말?”
어두컴컴한 화장실에 발도 들이지 못하고 문가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던 해강이, 반쯤 밝아진 얼굴로 영서에게 다가갔다.
끼익….
쾅-
“아아아악!!!”
“악!!아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질러!!!”
“으아아아아아아악 영서야아아아악!!!”
영서가 들어올 때부터 열어 놨던 문이, 해강이 들어섬과 동시에 그의 등 뒤로 스르륵 닫혀 큰 소리를 냈다. 발작하듯 비명을 지르며 와다다 영서에게 뛰어든 해강의 비명에 덩달아 놀라 더 크게 소리를 지른 영서가, 벌떡벌떡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버럭 성을 냈다.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진짜!!!
“그냥 바람에 문이 닫힌 거잖아. 너 고딩 맞냐 진짜?”
“아냐, 바람은 한 점도 안 불었다고오… 진짜… 흐어어엉… 영서야…”
“너, 너 또 울어?”
영서는 이제 완전히 피곤해져버렸다. 이렇게 오밤중에 학교에 온 것도 영서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이었다. 무엇보다 귀찮기 때문이다.
“진짜 괜찮다니까. 너 나 못 믿냐? 아무것도 없어, 여긴.”
“진…진짜…?”
“응, 진짜.”
영서는 어린애를 달래듯 침착한 태도로 해강의 등을 쓸어주며 달랬다. 덩치는 산만한 게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을 끌어안고 울고 말이야, 진짜… 영서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자신에게 매달린 해강을 토닥토닥 두드려준 후, 간신히 해강의 몸을 떼어내고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어. 이상한 흔적이나 기운도 없고. 단지 이쪽 화장실이 많이 낡아서, 너처럼 바람에 닫힌 문 같은 거에 놀라 나자빠진 거겠지, 다들. 이제 알았으니 괜찮지?”
자신의 등 뒤에 창문이 열려 있는 것을 엄지로 가리키며 영서가 말하자, 해강은 작은 창문과 영서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과연, 바람은 느껴지지 않았다지만 영서가 서 있던 곳 벽에는 화장실 문과 마주 보도록 작은 창문이 있었다. 낡은 창문은 누가 열어놨었던 건지 반쯤 열려 있어, 그 사이로 칠흑같이 새카만 나뭇가지와 바깥 풍경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집에 가자.”
“…응!”
눈물로 얼룩진 해강의 얼굴이 다시금 환한 웃음을 되찾았다. 어라, 뭔가 데자뷰….그러나 영서는 더 이상 깊게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왜냐면 무엇보다 귀찮았기 때문에…
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복도를 걸어 1층 현관에 다다랐다. 처음에 들어왔던 뒷문으로 무사히 빠져나간 둘은 손을 흔들며 각자의 집으로 가기 위해 교문 앞에서 헤어졌다. 해강의 멀어지는 등을 한참 동안 쳐다본 영서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돌아서 가다가, 뭔가 떠오른 듯 제자리에 멈춰 섰다.
“아 맞다, 이름.”
영서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박수를 한번 짝, 쳐서 명부를 불러냈다.
“어디 보자… 이름, 이름… 아, 여기 생겼네.”
후루룩 넘어가던 페이지를 중간에 멈춰 세운 영서가 낱장에 적힌 이름을 확인했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녀석이어서, 일직 차사에게 배웠던 대로 무명귀無名鬼 페이지에 이름을 새겨 넣었던 것이다. 이거 편리하네, 이름 모르는 잡귀나 하급 귀신들도 맘만 먹으면 명부에 넣을 수 있고. 아는 거라곤 화장실 귀신이라는 것뿐이었지만, 뭐, 영서는 아무려면 어떠냐 싶었다. 일단 귀신은 영서가 순식간에 봉인했지만, 그것이 생겨난 그 화장실은 음기가 너무 세서 아마 오래 쓰지 못할 것이다. 교무실에 얘기해 봤자 헛소리 취급할 테니, 이를 어쩐다.
영서는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정말 문제인 것은, 그 안에 어떤 귀신이 있든지 상관없다는 걸.
왜냐면.
그 화장실의 공간 자체가 전부, 학교 건물에 기생해 증식한 귀신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이래서 귀찮아지는 게 싫다고 한 건데.
그리고 거기서 갑자기 문을 닫을 건 뭐람. 영서는 괘씸한 마음에 명부에 적힌 이름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뭐, 이걸로 당분간은 괜찮겠지만… 어쨌거나 그 화장실은 조만간 폐쇄시키는 게 우선일 것이다. 어떻게 막을지는… 음….
나중에 생각하자.
왜냐면 귀찮으므로.
영서는 하품을 하며 명부를 다시 사라지게 한 후, 기지개를 켠 뒤 집 쪽으로 향했다.
그 뒤로 남중고등학교의 2층 네 번째 화장실에서 귀신을 봤다는 소문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남중퇴마비록 외전1. 말할 수 없는 비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