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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퇴마비록-47화 (47/166)

47화

그들의 등이 작아질 때까지 미안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남직원의 표정이, 차갑게 바뀐 것은 순식간이었다.

“…방금 가져갔습니다. 네… 바로 작전 개시입니다, 누님. 네, 저는 다시 자리로 복귀하겠습니다.”

남직원은 귀에 끼고 있던 이어 플러그를 누른 채 무언가를 짧게 보고했고, 그 너머에서 무어라 지시가 내려오자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조금 전에 아이스크림 하나도 제대로 짜지 못하던 알바생의 어리바리한 눈은 사라지고, 무미건조하고 집요하게 그들의 뒷모습을 쫓는 눈만 남아있었다. 몇 초 만에 전달을 끝낸 남자는 유니폼의 모자를 벗으며 머리를 탈탈 털고는 가판대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CCTV와 행인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통로로 몸을 통과한 남자는 직원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탈의실의 뒷문으로 들어섰다. 어두운 탈의실은 불을 켜지 않아 캄캄했다. 구석에서 누군가, 낑낑거리며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쉿, 금방 풀어드리겠습니다.”

“읍, 으브븝, 읍, 으윽, 으…”

“당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으니 안심하세요. 이제 잠깐만 잠을 자다가 깨어나면, 다시 당신의 일자리에 있을 겁니다. 유니폼 고마웠어요.”

밧줄로 묶인 인영은 탈의실 캐비닛 구석에 처박힌 채 몸을 뒤틀고 있었다. 몸을 낮춘 남자는 그 직원을 달래며 안심시키는 말을 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직원의 뒷목을 내리쳐 기절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남자는 소리 없이 유니폼을 벗어 기절한 직원에게 원래대로 입혀주었다. 유니폼 바지 주머니에 있던 무전기를 꺼내 작동시킨 남자는 목을 가다듬은 뒤, 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는 제2 직원 탈의실! 여기는 제2 직원 탈의실! 5-F구역 직원 한 명이 쓰러져 있습니다! 의료반 보내주세요!”

상대방에서 뭐라고 반응이 들려오기도 전에 남자는 무전기의 전원을 껐다. 캐비닛 구석에 뭉쳐둔 자신의 옷을 꺼내 탁탁 털어 입은 남자는, 마지막으로 문을 열고 나가다가, 마지막으로 기절한 직원에게 다시 돌아와 속삭였다.

“…그리고, 당신 참 대단하네요. 솜사탕을 크게 부풀리는 법, 진짜 어렵던데요.”

남자는 웃을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속삭인 뒤 탈의실을 나섰다.

그의 자취는 놀이동산 내에 설치된 수백 대의 CCTV 그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고 한다.

***

“이거 맛있다~”

“아이스크림도 모양은 이상하지만, 뭐 괜찮네.”

“그건 그렇고 오늘 둘이서 놀러 온 거야? 집에는 언제 돌아갈 거야?”

보들보들하고 풍성한 솜사탕의 끝부분을 조금씩 떼어먹던 주민이, 핫도그와 아이스크림을 먹어 치우는 해강과 영서를 보며 물었다. 누가 뺏어 먹으러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간식을 해치운 영서와 해강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곧 갈 거야.”

“폐장 직전까지 놀다가.”

“엉?”

“응?”

“뭔 소리야, 나 이제 집에 갈 거거든?!”

“아, 영서야아아아~~!!!!”

“으휴, 또 시작이네 또, 이거. 창피해 죽겠어.”

여느 때처럼 열심히 투닥투닥거리는 둘을 보며 주민은 작게 쿡쿡 웃음을 참았다. 언제 봐도 참 웃기고 재밌는 애들이야. 주민도 사실은 일찍 집에 돌아갈 계획이었으나, 둘만 괜찮다면 조금 더 놀다가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주민이 다시 솜사탕에 눈을 돌리며 한 입 떼어 입에 넣은 순간, 갑자기 눈앞이 푹 꺼지듯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라?

털썩-

“어? 주민아, 야! 왜 그래? 괜찮아?!”

“…아… 여, 영…”

“갑자기 왜…! 야, 주민이가…! 헉.”

방실방실 웃던 주민이 앞으로 털썩 고꾸라진 것은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화들짝 놀란 영서가 벤치 앞으로 쓰러진 주민을 가까스로 받쳐 안으며 해강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다. 그러나 그 애타는 도움의 눈길이 무색하게, 영서는 숨이 멈출 듯 놀라고 말았다. 해강의 고개도 옆으로 스르르 넘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냥꾼의 마취 총에 맞은 사슴처럼, 조금 전까지 멀쩡하게 핫도그를 먹던 해강의 얼굴은 스르륵 넘어가 벤치의 팔걸이에 기대어 쓰러졌다. 영서는 갑자기 닥쳐버린 상황에 혼란스러운 얼굴로 쓰러진 친구들을 번갈아 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갑자기 뭐지? 정말 마취 총에라도 맞은 것처럼….

…마취?

혼란과 당황에 깊게 휘저어져 제대로 된 사고가 돌아가지 않던 뇌는 그제야 점차 이치를 맞춰나가고 있었다. 마취… 기절… 그렇다면….

수면제?

하지만 어떻게?

영서는 그다음 순간, 누가 눈앞에 검은 안대를 덧씌운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러나 역시나 착각은 착각이었다. 순식간에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묵직해져 아무런 거동도 할 수 없었고, 자신의 몸도 가누질 못해 천천히 쓰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갑작스레 파고든 졸음 기운과 온몸이 마비되는 감각, 아득해지는 머리로 영서는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차갑고 딱딱한 것에 닿는 듯하더니, 머리에 큰 진동이 울렸다. 아마 쓰러지면서 머리를 부딪친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지, 나만… 멀쩡할…리…가…

가쁜 숨을 마지막으로 토해내는 순간, 영서는 보았다.

어둑한 시야 사이로, 어떤 인영이 나타나 잠든 해강의 머리채를 잡고 얼굴을 확인하는 것을.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고꾸라진 자신과 주민의 이마에 손을 대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영서는 더 이상 졸린 눈을 뜰 수가 없었다.

***

눈을 뜬 것은 머리 전체에 아릿한 둔통이 지끈지끈 울려 퍼질 때쯤이었다.

영서는 뻑뻑한 눈을 몇 번이나 깜박이며 시야를 찾으려고 애썼다.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온몸이 아직도 쥐가 난 것처럼 울렁거리는 걸 보니 쓰러진 지 적어도 몇 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어떤 놈들인지는 몰라도, 우리 같은 새 나라의 청소년들에게 이 정도의 약물을 쓰다니, 어쨌거나 제정신은 아닌 놈들이라고 영서는 조소했다.

사고에, 온갖 귀신에, 저승사자에, 그리고 다시 죽음 같은 잠에서 깨어나 살고 있건만.

이제는 이런 납치까지 당하다니, 대체 팔자에 무슨 망조가 들었을까, 하며 영서는 멍한 눈으로 생각했다. 온몸이 아주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자고 있을 때 누가 단체로 팬 게 아닌 이상 말이다. 영서는 어두운 주위에 눈을 익숙하게 하려 눈을 굴렸다. 빛 하나 새어 나오지 않게 온갖 문이며 창문이 봉해진 곳 같았다. 아니면 애초에 그런 게 없거나.

“으윽… 아… 으…”

“이 목소리는… 주해강?! 너야?”

“어,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영서야? 어디야? 나, 아윽!”

들리는 목소리와의 거리를 가늠해 보니 좀 떨어진 곳에 해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영서는 몸을 뒤틀어보았다. 눈은 가려져 있지 않았지만 몸은 어느 기둥에 기대어 앉은 채로 꽁꽁 묶여있는 것 같았다. 시선을 내려 보니 희미하게 자신의 상체를 두르고 있는 끈이 보였다. 이 모양이니까 온몸이 다 저리고 쥐가 났지. 영서는 몇 번이나 몸을 흔들어 보다가, 이내 자신의 힘으로 간단히 풀릴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해강은 깨어나자마자 영서의 목소리 방향을 따라 몸을 돌리다가 어딘가에 부딪친 모양이었다. 고통에 찬 신음을 억누르던 해강이 급한 목소리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서야, 어디 있어?! 여기 있어? 영서야!”

“나 이쪽에 있어. 그리고 쉿! 큰 소리 내지 말아 봐. 지금 상황이 어떤 것 같아? 너도 묶여있어?”

“응, 나는 팔이 뒤쪽으로… 그런데 여기는 어디야? 대체, 갑자기 무슨…으윽.”

“어디 아파? 왜 그래?”

“안 보여서 모르겠지만, 내 옆에 있는 무언가에 어깨를 부딪쳤거든. 좀 아프네…”

어깨를 세게 부딪친 건지, 둔탁했던 충돌 음은 영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큰일이다. 그나마 우리 셋 중 제일 힘이 센 녀석은 저 녀석뿐이었는데…

셋?

맞다, 주민이!

영서는 다시금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깨어나지 않은 건가… 아니면 이 공간에 있지 않은 걸 수도. 답답하고 어두운 시야와 아직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몸의 상태는, 영서의 머리를 더욱더 흩트리기만 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일단 주변을 탐색하고, 그리고…

…뭔가 이상해.

영서는 자신이 뭔가 놓친 것이 있었는지 다시 입을 다물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왜 뭔가를 그냥 지나친 기분이 들까. 뭔가… 평소랑 다른…

“…헉!”

“여, 영서야 왜 그래?”

“…안 보여…!”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영서야…”

약간 기운이 빠진 듯한 해강의 대답에, 영서는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귀신이… 그러니까, 그동안 보이던 놈들이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영서는 기이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사고 후 눈을 뜬 후부터, 그것들이 보이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절대로.

그것들은 항상 눈가에 어른거렸다. 보지 않으려고 해도, 일부러 눈을 감고 시선을 피해도 언제나 그것들은 말라붙은 투명한 풀처럼, 눈꺼풀 사이로 들어간 가려운 속눈썹 하나처럼 영서의 시야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둡고 밝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들인데. 어째서…

영서는 혼망한 표정으로 허공을 노려보며 어느새 익숙해진 그것들을 하나라도, 아니 하나의 손톱만 한 기운이 남겨진 것이라도 찾아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매분 매초 영서의 귓가에 화이트 노이즈처럼 스며들던 그들의 속삭임도, 그림자 같던 어둠들도, 차갑고 축축한 그것들의 기운들도, 모두…

“…안 보여…”

영서의 머리 안은 수백 가지의 가설과 그 몇 배나 되는 반박들로 인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해강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귀가 멀어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적막한 어둠이 영서를 안고 있었다. 오직 영서가 내뱉는 거친 숨소리만이 귓가에 떠돌았다.

“…아저씨…”

문득 영서는 자기도 모르게, 그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일직차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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